영국 일간 <인디펜던트>의 중동 전문기자인 패트릭 콕번은 즉각 미국 정치 평론 웹사이트 <카운터펀치> 기고를 통해 부시 대통령의 이번 선택을 "잘못된 정보에 근거해 내린 오산"이라고 규정했다. 애초에 이라크 전쟁의 실패를 '전쟁 초반에 병력이 적게 투입된 탓'으로 돌리고 있기 때문에 추가파병을 통해 꼬인 전쟁의 실마리를 찾겠다는 판단이 나왔다는 지적이다.
콕번은 부시 대통령에게 잘못된 판단의 근거를 제공한 세력을 "럼스펠드에게 모든 비난을 돌리려 하는 펜타곤의 장성들"로 지목하고, 부시 대통령이 이 '핏빛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일부 관료들의 잘못된 정보와 계산으로 아편전쟁에서 지고 만 중국의 전철을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것으로 경고했다.
콕번은 추가파병이 해결책이 될 수 없는 이유로는 "다른 어떤 민족보다도 외세의 지배를 거부하는" 이라크 민족의 속성을 들며, 결국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유엔에서 "미국과 중동 양측에서 신뢰를 받는 아랍세계의 인사"를 특사로 지명해 미영 연합군의 철군과 이라크 중립국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국제 협상에 돌입하는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콕번이 쓴 <부시가 바그다드에 관해 품고 있는 핏빛 환상(Bush's Blood-Soaked Myths About Baghdad)>의 전문이다.
중국과 영국 간에 벌어진 19세기 아편전쟁 와중에 중국군이 연패를 거듭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베이징의 관료들은 수치스러운 후퇴를 계속하면서도 전혀 풀이 죽지 않았다. 최종 협상국면에서 영국을 한 번에 물리칠 수 있는 비장의 무기를 중국이 쥐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베이징 관료들의 이 같은 자신감은 중국이 전 세계 루바브(식용 대황) 공급을 독점하고 있다는 잘못된 믿음에서 비롯됐다. 그들은 한 술 더 떠 장운동을 촉진하는 루바브 없이는 영국 사람들이 배변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하기까지 했다. 교활한 관료들은 중국이 루바브 공급을 끊으면 영국인들은 대량 변비사태에 시달려야 할 것이란 분석을 황실에 올렸고 전쟁의 승부와는 상관없이 영국인들은 중국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병사가 부족해 전쟁 실패?…펜타곤이 만들어 낸 '환상'
이라크 전쟁에서 이기겠다고 백악관에서 내놓은 계획을 듣고 있자니, 그 무지하고 철없음이 150년 전 잘못된 정보로 앞날을 구상했던 중국 관료들과 같은 수준이란 생각이 든다.
이번 계획은 소름끼치도록 잔인하게 집행된 사담 후세인 사형 장면이 인터넷을 타고 공개된 직후 발표됐다. 500만 수니파 세력이 보기에 후세인의 사형은 종파적 이해관계와 미국의 부추김이 뒤섞여 속전속결로 진행된 편파적인 처형이었다. 광분한 수니파 청년들이 무장단체로 몰려들고 있는 것도 이같은 판단 때문이다.
그런데 조지 부시 대통령 계획의 핵심은 이미 이라크에 주둔 중인 14만5000명 미군 병력에 병사 2만 명 이상을 더 투입하겠다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이번 추가파병을 통해 인구 700만의 바그다드와 중부 이라크에 대한 통제력을 확보하길 기대하고 있다. 지난 3년 반 동안 하지 못했던 일을 추가파병된 병사들이 해치워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런 발상은 미국이 이라크 상황에 대해 한결같이 유지해 온 '환상'에서 기인한 것이다. 요컨대 이라크 전 초반에 더 많은 전투인력을 투입했었더라면 이라크 상황은 즉각 해결될 수 있었다는 믿음이다.
이는 도널드 럼스펠드 전 국방장관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펜타곤의 장성들은 이 모든 실패의 책임을 렘스펠드에게 뒤집어씌울 요량으로 군대를 더 보냈더라면 모든 일이 순조로웠을 것이라고 주장한 데서 시작됐다. 작년 한 해 미국에서 쏟아진 관련 출판물들의 대부분이 이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게서 얻어들은 정보를 마치 확인된 사실인 양 각색해서 미국이 이라크에서 실패한 이유는 병력 부족이라고 단정하고 말았다. 책에 나온 주장들은 다시 추가파병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승리의 길로 '병력 증강'을 들고 나온 것은 마치 중국이 루바브를 비장의 무기로 꺼냈던 것과 같은 짓이다.
"점령군에 대한 이라크인들의 반감, 아직도 모르나?"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에서 얻은 주요 교훈을 외면하고 추가파병의 효용을 과신해 버렸다.
이라크 인들은 다른 어떤 민족보다도 지배받는 것을 싫어한다. 이라크 인 대부분이 사담 후세인이 제거된 일에 기뻐하겠지만 다른 지배 아래 들어가는 것까지 환영할 리는 없다. 제임스 베이커 전 국무장관이 이끌었던 이라크연구그룹(ISG)은 이를 이해하고 있었다. 이라크 인들의 61%가 미군이 공격받는 상황을 좋아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는 점령군에 대한 이라크 인들의 반감을 잘 설명해 주는 예다.
이라크에서 외세의 점령은 항상 반란을 수반했다. 그리고 미군의 추가 파병은 곧 더 많은 저항을 의미할 수 있다. 바그다드에 있는 모두가 자기 세력 내에서 자기들이 믿을 수 있는 군대가 나와서 자신들의 지역을 보호해 주기를 원하고 있다. 바그다드 서부에 사는 수니파 소속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무자헤딘은 우리 구역 내에서 총을 들 수 있는 청년들 모두를 요구했고 이 요구를 들어준 결과 우리는 영원히 그들의 보호 아래 있을 수 있게 됐다."
추가파병으로 무크타다를 잡겠다는 '더 위험한' 발상
갈수록 수니파 게릴라 세력이 커져가는 상황에서 미국이 추가파병으로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오히려 증강된 병력은 더 위험한 목적으로 쓰일 수 있는 여지가 다분하다.
추가파병된 병사들은 시아파 무장단체인 메흐디 민병대와 이를 이끄는 급진 민족주의자 무크타다 알 사드르를 잡는 역할을 맡게 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은 최근 일어난 많은 유혈사태의 주범으로 무크타타 알 사드르를 지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부시 행정부는 정말 이라크에서 저질러 온 실수를 통해 아무 교훈도 얻지 못하는 데 특별한 재주가 있는 것이다.
무크타다 알 사드르와 그의 추종자들은 지난 2004년 미국과 두 차례 전투를 벌인 적이 있는데 그때는 많은 병사를 잃었을 뿐 아니라 이라크 인들의 신뢰도 함께 잃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무크타다 일파들이 훨씬 강해졌다. 미국이 밀어주려는 '온건파' 망명자들과 비교했을 때 정통성도 인정받고 있다. 미국이 구상 중인 '온건파 정부'는 현 누리 알 말리키 정부보다 훨씬 더 친미적인 인사들로 들어찰 것이 분명한데 이에 대한 여론의 호응이 높지 않은 것이다.
1991년 걸프전쟁 당시 아버지 부시는 사담 후세인을 몰아내려 하지 않았다. 후세인이 물러난 자리를 친 이란 성향의 시아파가 메우지 않을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2003년 이라크 침공 이후 아들 부시도 같은 딜레마에 부딪쳤다. 2005년 미국이 억지로 이라크 총선을 열어놓고 보니 전체 인구의 60%를 차지하는 시아파 주민들이 모두 시아파 성향의 정치지도자들에게 표를 몰아준 것이다.
그때부터 미국은 시아파 정치 세력들에 대한 분열 획책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무크타다 알 사드르를 노린 미국은 그의 본거지인 나자프 통제권을 이라크 정부에 넘겨주겠다며 알 사드르의 자택을 급습해 그의 측근을 죽이기도 했다. 미국은 알 사드르를 잡기 위해 시아파 내 주도권을 두고 메흐디 민병대와 경쟁하고 있는 이슬람혁명최고위원회의 바드르 여단과 손을 잡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수니파 대 시아파 간 종파 분쟁, 그리고 수니파와 미국 간의 전쟁으로 초토화 돼 가는 이라크에 시아파 내부 분쟁이란 또 하나의 불씨를 던지는 격이다.
미국은 이미 구성된 시아파 정부를 확실한 자신들의 통제 아래 두려는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고 결국 알 말리키 총리는 "미국의 허락 없이는 보병 중대 하나도 옮길 권한이 없다"고 시인하기도 했다.
부시에겐 기대할 수 없는 '평화적 해결'
이처럼 백악관이 이라크 전쟁 실패를 피할 수 있는 묘안이 있는 척 행세하는 동안 유일하게 이라크 문제를 풀 수 있었던 도구들이 힘을 잃어가고 있다.
이라크 평화를 위한 기본 원칙은 평화 특사를 임명하는 데에서 시작해야 한다. 미국과 중동이 공히 신뢰할 수 있는 아랍 세계의 중진 지도자를 특사로 뽑아 유엔 사절 자격으로 활동하게 하는 것이다. 특사가 임명된다면 제일 먼저 이라크 안팎의 주요 인사들을 한 자리에 모으는 국제회의를 열어 대화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 국제회의에서는 마땅히 이라크 주둔 미영 연합군의 철수가 주로 논의돼야 한다. 그리고 최종 합의서는 쿠르드족이나 수니파 같은 소수민족의 안전 보장이 포함된 국제 협약의 꼴을 갖춰야 한다. 1950년대 오스트리아처럼 중립국화 되는 것이 이라크로서는 최선의 미래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런 모든 상황은 부시 치하에선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현 정책의 부메랑은 너무나 엄청날 것이고 수치스러운 실패를 거듭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부시는 1차 세계대전의 결과에서 교훈을 얻으려 하지 않고 병사 2만 명을 더 보내면 승리로 가는 돌파구가 뚫릴 것이란 헛된 믿음을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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