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이란혁명에서 비롯된 제2차 석유파동 때 미국에서는 주유소에서 서로 먼저 기름을 넣으려고 다투던 사람들이 총에 맞아 죽는 사건이 발생했었다. 현재 배럴당 60달러 수준인 유가가 100달러 대에 진입한다면 세계 곳곳의 주유소에서 석유를 둘러싼 '총질'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석유 판 돈으로 무기 사는 중동의 악순환
신간 <석유, 욕망의 샘>은 이처럼 '잉크가 아니라 석유로 기록된' 20세기의 어두운 역사를 되짚으면서 우리 눈앞에 도달해 있는 '석유 문명의 종말'을 경고하고 있다.
"이제 곧 닥쳐올 에너지 위기의 시대에 우리가 얼마나 독한 마음을 먹어야 하는지 간접적으로 증언하기 위해" 석유를 둘러싼 탐욕과 갈등의 현장에서부터 테이프를 끊는 것이다.
'세계의 화약고'로 불리는 페르시안만 일대 국가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군사화된 지역이기도 하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정부 총예산의 43.2%를, 이스라엘은 18.5%를 국방비로 지출하고 있다.
석유를 판매해 벌어들인 막대한 현금을 살상력이 높은 무기를 사들이는 데 갖다 바치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 선진국들은 무기를 팔아 번 돈으로 석유를 사들여 결과적으로 이 지역의 군사화를 촉진한 셈이다.
내 손 안에 든든한 무기가 있다면 그 무기를 쓰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마련. 1980년부터 8년 동안 벌어져 무려 100만 명의 희생자를 낸 이란-이라크 전쟁도 따지고 보면 그런 군사적 유혹에서 비롯된 전쟁이다.
아프리카는 美-中의 각축장
중동이 '고전적 화약고'라면 아프리카는 '떠오르는 화약고'다. 석유 쟁탈전의 선두주자 미국이 반미감정이 높아지는 중동 대신 아프리카를 대안으로 꼽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나이지리아, 앙골라 등지에서는 유전 개발에 해외 투자가 몰려 "2010년에는 전 세계에 생산되는 석유의 30% 이상이 아프리카에서 생산될 것"이란 전망이 나올 정도다.
미국의 아프리카 전략을 앞장서 펼치는 첨병은 미군 유럽사령부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유전지대가 테러 공격을 받는 것을 막고 이슬람 세력이 정권을 잡아 안정적 석유 공급이 어려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유럽을 거점으로 한 미군이 아프리카 군사 활동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나이지리아의 풍부한 석유 매장 지역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이라크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군사적 개입을 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는 가운데 중국 역시 아프리카 석유 쟁탈전에 뛰어들 태세다.
21세기 들어 아프리카와의 무역을 세 배로 늘려 온 중국은 앙골라에 20억 달러 차관을 건네준 대가로 해저유전 개발권을 얻어내기도 했다. 자원 개발을 위해서라면 다르푸르 인종청소로 국제적 지탄을 받고 있는 수단 정부와 손잡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미국과 중국이 자원 개발권을 두고 각축을 벌이는 가운데 국가마다 안고 있는 정치적 불안, 그리고 이슬람과 기독교 간 종교 충돌까지 얽혀 있는 아프리카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조마조마한 화약고인 것이다.
"우리의 에너지 소비행태는 자살프로그램의 실천"
국제분쟁 전문기자로 2005년 7월부터 <프레시안> 연재 '김재명의 월드포커스'를 통해 국제문제를 조망하는 폭넓은 시각을 인정받아 온 저자는 이처럼 세계 각국에서 벌어진, 그리고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석유를 둘러싼 분쟁사를 정리하며 "창조적 파괴를 통해 석유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을 제안한다.
2004년 펜타곤이 석유문제를 직접 풀기 위해 거액의 용역비를 대고 로키마운틴 연구소에서 받은 보고서의 결론도 결국 값싼 대체에너지를 개발해 2025년까지 미국의 석유 소비량을 50%로 낮춰야 한다는 것이었다. 대체에너지를 개발하는 비용이 외국에서 석유를 들여오기 위해 미국이 치러야 하는 비용보다 훨씬 싸다는 이유에서다.
"우리의 에너지 소비행태는 자살프로그램의 실천"이라고 규정한 저자는 "한정된 자원에 매달려 있기 보다는 창조적 대안을 찾아 나설 것"을 당부한다.
그리고 '차는 클수록 좋다고 생각하고 한겨울에도 집안에서는 속옷 바람을 즐겨하는' 독자들에게 반문한다. 곧 닥쳐올 석유문명의 종말을 언제까지 외면하고만 있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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