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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대의 아픔을 알지 못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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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대의 아픔을 알지 못하지만…

팔레스타인과의 대화 <24>

나는 그대들의 아픔을 알지 못합니다. 관념적으로는 압니다. 아주 조금. 신문이나 텔레비젼을 통해, <팔레스타인의 눈물>이라는 책을 통해 어느 정도 들어본 적은 있으나, 안다고 해봐야 껍데기뿐입니다. 평생을 그곳에서 살아야만 하는 그대들의 슬픔과 절망을 어찌 안다 하겠습니까. 그러나 어쩌면 나는 그런 것을 알기를 두려워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나 자신의 아픔만으로도, 이 나라의 아픔만으로도 차고 넘치는데, 어째서 그대들의 아픔까지 내가 알아야 한단 말인가, 하고 내 안의 또 하나의 작은 나는 두려움에 떨며 반문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대들이 부모를 모시고 병원에 잠깐 가기 위해 이스라엘 군인들의 검문소를 서너 개나 통과해야 하고, 때로는 검문소마다 저희들끼리 잡담을 주고받으며 장난을 치는 스무살짜리 이스라엘 군인들을 쳐다보며, 고통에 시달리는 부모를 초조히 지켜보며 서너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일이 벌어진다고도 하지만, 아아 천만다행이지, 이 나라에서는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비록 낡았다고는 해도, 끌어내어 시동을 걸기만 하면 어디든지 나를 데려다주는 차를 나는 가지고 있습니다. 시간이 없어서 못할 뿐이지, 마음만 먹으면 나는 어디라도 언제라도 돌아다닐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십중팔구 그대네 나라, 또는 그 근처에서 나온 석유가 깨끗이 정유되어 내 차의 연료통 안에 가득 채워져 있고, 그 석유가 다 소모되면 나는 거리거리 높다랗게 간판을 세운 주유소에 들어가 얼마든지 다시 채울 수 있습니다.
  
  내가 석유는 그대들에게 축복이자 저주가 아닌가, 하고 물었을 때 그대들 가운데 하나, 이라크인 하이셈 카씸 알리는 대답했습니다. 한번도 축복이었던 적이 없다, 오직 저주였을 뿐이다. 그 저주를 나는 매일 소비하며 살지만, 그러나 공짜로 쓰지는 않습니다. 1,2년 사이에 다락같이 높아진 값을 지불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석유는 나에게도 조금은 저주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여기선 돈이 또한 축복이자 저주니까요.
  
  이 나라는 반동강이 나 한쪽에서는 굶주림으로, 어처구니없는 이데올로기의 재갈로 주둥이를 틀어막히고 발에는 족쇄가 채워져 말 한 마디 맘대로 못하고 발자국 한 번 맘대로 떼어놓을 수 없는 사람들이 살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나라의 군대를, 다름아니라 이 나라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먹이고 키운, 순수히 이 나라 젊은이들로 구성된 군대를 지휘하는 권한을, 미국에게 50여년 동안 양도했던, 혹은 빼앗겼던 그 권한을 되찾아오느냐 마느냐를 놓고 아주 민주적으로, 아주 자유롭게 혹은 아주 더럽고 한심하게 싸움박질을 벌이는 사람들이 삽니다. 그리하여 미국이 이라크를 참략하며 이 나라에 파병을 권고 혹은 강요했을 때 이 나라의 병사들을 그곳에 파병하느냐 마느냐를 놓고도 우리들은 그런 식으로 싸우다가 결국 파병을 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그대들에게 너무나 수치스런 일이라는 것을 압니다.
  
  우리들이 오랜 세월 동안 독재자들에 저항하여 목숨을 바쳐가며 싸워 일궈낸 민주주의와 자유는 우리에게 과연 자유를, 우리의 싸움에 누구든 멋대로 먹칠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주었고, 얼마든지 타락하고 게을러질 수 있는 자유를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노동자로부터 대통령까지, 노동조합으로부터 정당들에다 정부까지 모두 흥겹게 타락과 게으름을 즐기면서 이기주의 혹은 개인주의라는 것이 얼마나 큰 복덩이인지를 새삼 깨우쳐가는 중입니다.
  
  그대가 술 몇 잔에 취하여 노래 부를 때, 그 흥겨운 가락 속에서 내가 본 것은 위안, 5분 동안의 위안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5분의 위안이 없이 어찌 그대들의 아픔을 견디겠습니까. 인간이 이런 아픔을 물리치려 애쓰는 것은 바로 그런 위안 속에 살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 먼 나라에서 온 벗이여, 키파 판니와 바쉬르 살라쉬, 하이셈 카씸 알리여, 그대들의 아픔을 잘 알지 못한다 하여 나를 욕하지 마시기를. 그대들의 아픔을 잘 알지 못한다 해도 나는 우리의 아픔을 조금은 압니다. 서로 다른 곳에서, 서로 다른 아픔에 시달리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먼 길을 떠나기 위해 같이 나섰다는 것을 나는 압니다. 그대의 아픔이 나의 아픔과 다르지만, 훨씬 더 간교하고 혹독하고 지옥 같지만, 비록 그대와 나의 갈 길이 서로 다를지 모르지만, 우리는 만날 것입니다. 그대와 내가 목표로 삼은 그곳에서. 인간이 인간에게 위협이 되지 않고, 인간이 사형집행자와 처형자로 분리되지 않고, 이스라엘과 아랍으로 분류되지 않고, 가난한 자와 부자로 나뉘지 않고, 유식한 자와 무식한 자로 나뉘지 않는 곳, 석유는 물론이요 길가의 민들레 한 송이, 메뚜기 한 마리가 모두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 되는 곳, 인간이 인간에게 위협이나 저주가 아니라, 오직 위안이 되고 기쁨이 되는 곳.
  
  우리의 노래가 만들어내는 것이 5분의 위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5년의 위안, 50년의 위안, 500년의, 5000년의 위안이 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나의 이성은, 내 안의 작은 이기주의자는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리지만, 나의 가슴은 박수 치며 긍정합니다. 그 희망으로 기꺼이 목숨 바친 인간들을 우리는 무수히 알지 않습니까. 이 나라의 혁명가이자 시인 가운데 한 분, 김남주는 그런 희망으로 싸우다 죽기 몇 년 전 이렇게 노래한 적이 있습니다.
  
  "그대가 지금 누리는 것을 위하여
  지하실에서 뒹군 자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

  
  더 오랜 세월이 걸린들 대수입니까, 그런 날이 오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그런 날이 오기만 하면 그 길 위에 그대와 내가, 아주 잠시, 키파 판니가 펼쳐주는 슬라이드를 보며, 생맥주를 마시며, 바쉬르 살라쉬가 부르는 아름다운 민요를 들으며, 같이 서 있었다는 것을 나는 축복으로 기억할 것입니다. 그 시간만으로도 축복이 분명했지만, 더욱 큰 축복으로 기억할 겁니다.
  
  내가 이런 것을 믿게 만든 것은 그대의 노래와 아픔이었으며, 또한 우리의 노래와 아픔이었으니, 부디, 그대의 아픔을 다 알지 못한다고 나를 욕하지 말아 주기를, 더불어 그대들의 노래가 영원하기를 바랍니다.
  
  <팔레스타인을 잇는 다리(www.palbridge.org)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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