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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의 물을 마신 것이 부끄럽다"

[정찬주 연재소설 '하늘의 道'] 제9장 끊이지 않는 역모<44>

갖바치 문하에서 공부하던 한천은 명경을 관리하는 사인(舍人)이 됐다. 탁발과 시주로 끼니를 잇던 갖바치의 생활이 더욱 어려워졌으므로 한천의 입이라도 덜기 위해서였다. 물론 초설의 입장에서는 사서삼경을 외고 중국말도 능통한 한천이 필요했다. 명경은 중국에서 온 사신들이 들르기도 하는 명소가 되었고, 초설이 할 수 없는 일을 한천이 밖으로 드나들면서 잘 처리해 주었던 것이다. 한천은 초설이 고용한 사람이라기보다는 이미 갖바치의 주선으로 초설과 의형제를 맺은 사이였기에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한천은 초설을 스스럼없이 누님이라고 불렀다.
  한천은 자신의 과거를 잘 모르고 있으나 초설은 갖바치에게 들어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갖바치가 금강산 마하연에 있을 때였다. 만삭한 한 여인이 절골 마을의 샘가에서 심한 산통으로 혼절해 있었는데, 그 여인의 아들이 바로 한천이었다. 여인은 절로 와 기도하려 한 듯 품속에 생남(生男)의 축원문을 갖고 있었다.
  마침 물을 뜨러 나온 아낙네와 갖바치가 도와주어 한천이 태어났지만 여인은 곧 죽고 말았다. 그러니 갖바치와 한천이 인연을 맺은 것은 운명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갖바치는 한천을 살리기 위해 마을로 돌아다니며 동냥젖을 먹였던 것이다.
  한천의 아버지는 영월이 고향인 진사 신영희(辛永禧)이고, 어머니는 어느 문사의 종이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신영희라 하면 일찍이 김굉필과 교유가 있는 처사였다. 남효온, 홍유손 등과 죽림우사(竹林羽士)로 자처하였던 인물이고 보면 한천에게는 반골의 피가 흐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신영희가 남효온, 홍유선 등과 가깝게 어울렸던 것은 서로가 기질이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남효온과 홍유손은 김종직의 제자들 중에서도 광인의 기질이 다분했던 인물들이었던 것이다. 추강에 나가 낚싯대를 드리우고 살았던 남효온은 바람처럼 떠도는 김시습을 따로 스승으로 흠모했으며, 홍유손은 호를 '미친 참사람'이라는 뜻의 광진자(狂眞子)라 하였으며 서울에서 벼슬을 하고 있는 스승 김종직에게 '잘못된 세상일을 건의하지 않고 어찌 공연히 벼슬만 하고 있느냐'고 따질 정도였던 것이다.
  신영희가 벼슬하지 않고 숨어산 것은 김굉필의 고언이 작용한 탓이었다. 김굉필이 신영희를 찾아가 '화가 멀지 않은 시일에 일어날 것이니, 나 같은 사람은 화를 피할 수 없지만 그대는 멀리 피하라'고 했던 것이다. 머잖아 무오사화, 갑자사화가 일어날 것이니 몸을 숨기라는 충고였다.
  갖바치가 한천에게 출생의 인연을 얘기해 주지 않은 것은 한천의 어미가 한천을 낳은 후 죽어버렸고, 한천의 아비가 누구인지는 소문일 뿐이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갖바치는 출생과 신분을 묻지 않는 승려였으므로 그런 세속적인 것들은 아예 관심도 없었다.
  
  아침을 먹기도 전에 초설은 한천을 불렀다. 간밤에 엿들은 심정과 문서귀의 얘기 중에 조광조가 거명된 탓이었다. 조광조가 김공저와 박경의 역모에 연루되어 있다니 서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누님, 부르셨습니까."
  "과천에 다녀와야겠다."
  "과천 기방에 무슨 일이 있습니까."
  "지월심을 만나고 와야겠다."
  지월심(只月心)은 박원종이 달이를 기첩으로 삼으면서 내린 이름이었다. 심정의 부탁을 받아 갔다가 박원종의 눈에 들어 지월심이 된 것이었다. 심정은 지월심의 덕을 톡톡히 본 셈이었다. 정국공신 3등에 올랐고, 화천군(花川君)이란 군호를 받았고, 최근에는 정 4품의 무관직인 호군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인데 누님께서 이리 급하십니까."
  "생사가 걸린 일이니 어쩌면 좋겠느냐."
  "누구의 생사가 걸렸다는 것입니까."
  한천은 밤새 얼굴이 초췌해진 초설을 바라보며 물었다.
  "정암 선생이 역모에 연루되었다는구나."
  "몇 년 전에 낙산에 보았던 그분이 연루됐다는 말입니까.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분은 세상일에 초연한 도학자이셨습니다."
  "나도 믿어지지 않는구나. 뭔가 오해가 있거나 음해한 사람들이 있는 것 같구나."
  "그렇더라도 가벼이 볼 일이 아닙니다. 억울하게 죽은 뒤 오해를 풀면 뭐합니까."
  "나도 그래서 서두는 것이야."
  "누님이 생각하는 해결책은 무엇입니까."
  초설이 밤새 생각해 낸 계책이란 지월심이 박원종에게 사정하여 참형만은 면하게 하는 것이었다. 중종을 능가하는 박원종의 힘이라면 불가능한 일이 없을 터였다. 마침 지월심이 박원종의 사랑을 받고 있으므로 면죄를 받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한천은 초설의 다급한 얘기를 다 듣고 나서는 말했다.
  "누님의 계책이라면 틀림없이 해결될 것입니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느냐."
  "그렇습니다. 이런 일은 곁가지를 붙드는 것보다 힘이 어디 있는지를 살펴서 그곳을 찔러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누님께서 박원종을 생각해 낸 것은 정확이 맥을 짚은 것입니다."
  "네 말을 듣고 보니 다소 안심이 되는구나. 자, 지체할 시간이 없다. 너는 어서 지월심에게 가보아라."
  
  한천은 곧 과천으로 가는 나루터 쪽으로 길을 떠났다. 급히 가다가 역과(譯科) 초시를 함께 보았던 길삼재를 만났다. 길삼재는 자나 깨나 복시를 준비하는지 역서를 옆구리에 끼고 있었다. 한천도 초시에 합격한 뒤 복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갖바치는 한천에게 만인의 병을 고치는 의원이 되라고 의과(醫科)를 권했으나 한천은 어린 시절부터 역관이 꿈이었으므로 스승 갖바치의 말을 따르지 않았던 것이다.
  역과 복시는 총 27명을 뽑는데, 한어(漢語)가 23명으로 가장 많았고, 몽고어, 여진어, 왜어를 각각 4명씩 등용했다. 한어 역관을 많이 뽑는다고 하지만 응시자가 많아 경쟁이 가장 치열했다. 그러나 한천은 역과 초시에서 1등을 했고, 길삼재는 겨우 턱걸이를 했다. 길삼재는 한천을 보더니 걱정하는 말을 했다.
  "신형, 난 아무래도 한어는 자신이 없으니 몽고어로 돌려야겠네."
  "몽고어는 준비해 두었는가."
  "이미 망해버린 원나라의 말이라 지원하는 자가 없어 미달일 때가 더러 있다는구먼. 한어면 어떻고 몽고어면 어떤가, 역관만 되면 그만이지."
  "잘 생각해서 선택하게나."
  "일단 역관만 되면 전공을 바꿀 수도 있다고 하네. 몽고어로 뽑혔으나 중국사절로 몇 번 다녀와 경험이 쌓이면 한어 역관으로 돌릴 수 있다는 것이야."
  한천과 길삼재는 남소문 밖에서 헤어졌다. 아침부터 역서를 옆구리에 끼고 다닐 정도로 열성을 보이면서도 복시에 자신 없어 하는 길삼재를 한천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뒤를 돌아보니 길삼재는 어느새 술청 앞에서 술청아씨와 수작을 부리고 있었다. 복시에 합격하고는 싶은데 공부에는 별 흥미가 없으니 아침부터 술 생각이 난 듯도 싶었다.
  한천은 나루터에서 배를 타고 노량진에서 내려 바로 남태령 고개로 갔다. 남태령을 넘어야 자하동천으로 유명한 과천이 나왔다.
  
  지월심은 수완이 좋아 어느 새 책임자가 되어 과천 기방을 운영하고 있었다. 박원종이 후원을 하니 번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명경이 젊은 벼슬아치들이 찾아와 쉬고 가는데 반해 과천의 기방은 주로 늙은 정객들이 기녀를 하나씩 점찍어두고 들락거렸다.
  그런데 한천이 기방에 도착했을 때는 지월심이 나들이를 나가고 없었다. 빨래를 하고 있던 한천 또래의 소녀가 고개를 바로 들지 못하고 말했다.
  "지월심 언니는 성안에 갔사옵니다. 허나 곧 들어올 때가 됐으니 기다리겠사옵니까."
  "어디로 간지 모르오."
  "평성군 대감댁에 간 줄 아옵니다."
  "어허, 큰일 났구먼."
  "급한 일이 있사옵니까."
  "한시가 급한 일이오. 일각이 여삼추라더니."
  "소녀가 나가보고 오리까."
  "나간들 지월심이 빨리 오겠소."
  한천은 자기 일처럼 관심을 가지고 허둥대는 소녀가 마음에 들었다.
  "여기서 좀 기다리겠소."
  "방으로 들어가시지요. 마침 비어 있는 방이 있사옵니다."
  "마음이 급해서 그러니 여기서 기다리겠소."
  한천은 예의가 있고 공손한 말씨로 보아 소녀의 신분이 천민은 아닌 것 같았다.
  "보아 하니, 이런 곳에 있을 만한 분은 아닌 것 같소만 내 말이 틀렸습니까."
  소녀는 대답을 못하고 얼굴을 붉혔다. 누구에게도 자신의 신분을 얘기하지 않고 기방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돈을 벌어 집으로 가지고 들어갔는데, 한천에게 여지없이 발각되고 만 것이었다.
  소녀의 이름은 소옥, 그녀의 아비는 신수근의 사인 김만교였다. 박원종이 반정을 일으키던 날 밤이었다. 김만교는 신수근 집으로 야근을 하러 갔다가 신윤무의 역사(力士)들에게 박원종 집으로 붙들려가 도망친 사람들과 숨겨놓은 재산을 이실직고하라고 죽지 않을 만큼 곤장을 맞았고, 그 이후 김만교는 장독이 올라 반신불수가 되어 드러누워 버렸고, 외동딸인 소옥은 아비의 병수발을 위해 기방에 드나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소옥은 이러한 자신의 과거를 철저하게 숨겼다. 아버지가 역적으로 몰린 신수근의 사인이었기에 무슨 화를 당할지 두렵기 때문이었다.
  "사실은 소녀의 신분을 감추고 이곳을 드나들었사옵니다."
  "내 생각이 맞았구려. 이런 기방에 있을 소녀 같게 보이지 않았소."
  "허나 이곳이 생각보다 그리 부끄러운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이곳에도 예가 있고 정이 있사옵니다."
  "또 무엇이 있소."
  "사내들을 즐겁게 하는 춤도 있고 노래도 있사옵니다."
  "그밖에 무엇이 있소."
  "목숨을 바칠 줄도 아는 일편단심이 있사옵니다."
  한천은 금세 소녀에게 반하여 이름을 물었다.
  "소녀의 이름이 무엇이오."
  "성은 김해 김가고 이름은 소옥이라 하옵니다."
  "나의 성은 영월 신가이고 이름은 한천이오."
  "저의 아비 이름은 나중에 말씀드리겠사옵니다."
  한천은 소옥이 기방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것보다 명경에서 잡일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한천이 소옥을 명경으로 데리고 가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여기 기방보다는 성안의 다장인 명경에서 일하고 싶지 않습니까."
  "아니옵니다. 지체 높은 양가 사람들은 이곳을 지날 때 고개를 돌리기도 하지만 소녀는 이곳에서 세상사는 지혜를 많이 배우고 있사옵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소녀는 불가에서 왜 연꽃을 좋아하는지 이곳에서 깨달았사옵니다. 더러운 진흙에 뿌리를 내리지만 맑은 꽃을 피우기 때문이옵니다. 이곳이 진흙이라 하더라도 소녀는 마음을 더럽히지 않을 자신이 있사옵니다."
  "허허."
  한천은 소옥이 한 말에 말문이 막혔다.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말로써 져본 적이 없었지만 소옥의 사랑스럽고 소박한 말에 한천은 주눅이 들었다. 실제로 한천의 말에 낙산을 찾아온 조광조도 놀랐고, 갖바치도 세치 혀를 조심하라고 당부할 정도로 한천은 변재(辯才)에 뛰어났던 것이다.
  
  한천이 당황하여 잠시 침묵하고 있을 때 지월심이 기방으로 들어왔다. 한천은 명경에서 자주 보았던 지월심에게도 편하게 누님이라고 불렀다.
  "누님, 긴히 드릴 애기가 있습니다."
  "어서 말해보아라."
  "정암 조광조 선생님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습니다."
  "정암 선생님이라면 어디에 사신 분을 말하는 것이냐."
  지월심은 조광조가 누군인지 모르고 있었다. 입이 무거운 초설이 조광조를 얘기했을 리가 만무했다. 할 수 없이 한천은 조광조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었다.
  "정암 선생님은 용인에 살고 계신데, 한훤당 김굉필 공의 제자입니다. 한훤당 공은 무오년에 평안도 희천으로 유배를 갔다가 다시 전라도 순천으로 이배되어 사약을 받고 억울하게 돌아가신 도학자입니다."
  "헌데 정암 선생님이 왜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다는 것이냐."
  "역모에 연루되어 곧 국문을 받을 것입니다."
  "역모에 가담하면 누구라도 극형을 받는 것이 국법이 아니겠느냐."
  "누님, 숨어 사는 도학자인 정암 선생님이 무슨 연유로 역모에 가담하겠습니까. 그것은 역모의 숫자를 부풀리기 위해서 엮어 넣은 것이 틀림없습니다. 저도 정암 선생님을 뵌 적이 있는데, 참으로 훌륭한 도학자이십니다."
  "네가 정암 선생님을 보았단 말이냐."
  "낙산 갖바치 스승님 밑에서 공부할 때 뵈었습니다. 더구나 정암 선생님이 저에게 한천이란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그러니 그때부터 저는 이름도 없는 천한 것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한천이 부탁하니 내가 손을 써봐야겠구나."
  그때 옆에서 얘기를 듣고 있던 소옥이 나서 말했다.
  "언니께서 나선다면 다 해결하실 겁니다."
  "소옥이는 또 언제 한천이와 눈을 맞춘 것이냐."
  "언니, 눈을 맞춘 것이 아니라 마음을 맞추었습니다. 호호호."
  그러자 한천이 화제를 돌렸다.
  "초설이 누나가 정암 선생님을 사모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밤새 애를 태운 것이지요. 오죽했으면 이른 아침에 제가 길을 나섰겠습니까."
  "알았다. 명경으로 가서 언니께 걱정하지 마시라고 해라. 평성군 대감님의 바지가랭이를 붙들고라도 사정해서 정암 선생님을 구하마."
  "누님, 내일 국문이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평성군 대감 댁으로 갈 것이니 걱정하지 말아라."
  그 길로 지월심은 박원종의 사저로 갔고, 한천은 명경으로 돌아왔다. 한천은 명경으로 돌아오면서 공연히 기분이 좋아져 콧노래를 불렀다. 마음을 맞추겠다는 당돌한 소옥을 만났고, 정암 조광조가 역모의 누명을 벗을 것 같아서였다.
  
  국문은 아침 일찍 시작되었다. 국문하는 추관으로 유자광도 들어 있었다. 고문하여 죄를 캐는 데 유자광을 따를 자가 없었다. 유자광은 폐주 무오년부터 국문하는 데 단골 추관이 되어 저승사자처럼 두렵게 굴었던 것이다.
  유자광은 죄인을 고문하는 데 쇠를 불에 달구어 지지는 당근질, 즉 낙형(烙刑)도 주저하지 않았다. 낙형으로 고문하는 것은 불법이었다. 세종 26년에 낙형은 매우 참혹하므로 금하는 명을 내린 바 있으나 유자광은 죄인들의 자백을 받아내는 데 낙형을 쓰곤 했다.
  대궐 뜰에 잡혀온 사람 중에서 조광보가 먼저 추관들의 심문을 받았다. 그러나 조광보는 큰 소리로 옛글을 외우다가 유자광이 거만하게 나와 의자에 앉자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자광은 소인인데, 어찌 이 자리에 있는 것이오!"
  조광보의 기개는 이미 연산주 때부터 소문이 나 있었다. 식견이 고명했으나 그는 거짓으로 미친 체하고 다녔다. 그러면서도 임사홍이 조정을 어둡게 하고 어지럽게 하므로 분하고 노여워서 친구 박영(朴英)을 만나자마자 '너는 무부(武夫)로서 임사홍 같은 놈을 베어 죽이지 못하는가. 네가 죽이지 않으면 내가 마땅히 너를 죽이리라' 하고 말했던 것이다.
  유자광이 잠시 머뭇거리자 조광보가 다시 소리쳤다.
  "무오년에 어진 사람들을 무함해서 김종직 같은 사람들을 모두 죽였는데, 이제 또 무슨 일을 하려는 것이오."
  "할 말이 그것뿐인가."
  "상방검(尙房劍)으로 아첨하는 신하의 머리를 베어버린다면 좋은 정치를 볼 수 있지 않겠소."
  상방(尙房)은 임금의 일상생활에 쓰이는 물건을 저장하고 올리는 것을 말하는데, 한나라 성제(成帝) 때 주운(朱雲)이 임금에게 '상방에서 말을 베이는 칼(斬馬劍)을 신에게 빌려주시면 아첨하는 신하의 머리를 베어버리겠습니다'고 한 고사를 빗대어 조광보는 유자광을 비웃고 있었다.
  그러자 성희안이 물었다.
  "아첨하는 신하는 누구인가."
  "진정 몰라서 묻는 것이오."
  "누구인가."
  "그것은 자광이외다."
  조광보는 다시 박원종을 쳐다보며 죽기를 각오하고 말했다.
  "대감은 성스러운 임금을 추대했으니 그 공이 과연 크지마는 어찌 폐주의 내인(內人)을 데리고 사는 것이오."
  박원종이 사람들에게 가장 지탄을 받는 부분을 질타했으므로 박원종은 기가 막혀 말을 못했다. 박원종이 그러는 사이 조광보는 다시 성희안을 보면서 말했다.
  "예전에는 한훈(韓訓)이 대감에게 명유라 했소. 헌데 지금은 어찌 자광과 함께 일을 하는 것이오."
  국문의 추관은 반정의 공신들인 정승들이었지만 조광보의 경우는 반대가 돼버린 듯했다. 조광보가 추관 의자에 앉은 정승들을 국문하는 형국이 돼버린 것이었다. 조광보는 자신의 말을 가감 없이 기록하도록 사관(史官) 강홍(姜洪)과 이말(李抹)에게도 말했다.
  "이보시오, 그대들은 사관이니 내 말을 반드시 써 두기를 바라오."
  유자광이 소리를 지르면서 길길이 뛰자 그제야 나졸들이 곤장을 들어 조광보를 내리쳤다. 그러나 조광보는 비명 대신에 소리쳐 통곡을 했다.
  결국 박원종은 조광보에 대해서는 국문을 그만 두게 하였다.
  "쯧쯧. 참으로 미친병이 든 사람이로군."
  그러나 김공저와 박경에게는 유자광으로 하여금 낙형까지 하여 대신들을 무함하고 조정을 변란케 했다는 대역죄를 씌워 참형에 처하도록 했다. 그리고 나머지는 경중을 따져 귀양을 보내거나 장형(杖刑)을 내렸고, 조광조와 김식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훈방 처리했다.
  조광조는 국문에 임해서 박경과 나눈 대화 내용을 사실대로 얘기했다. 김식도 마찬가지였다. 박원종과 성희안은 조광조와 김식에게 죄를 준다면 고변하지 않은 것 정도라고 판단했다. 역모를 공모했다고 보기에는 미약했다.
  역모가 성립되는 자는 박원종과 유자광을 죽이고 정미수를 영의정으로 삼아 조정을 바로잡겠다고 한 의관 김공저였다. 그리고 과격한 언사를 함부로 내뱉어 난언(亂言) 죄를 진 박경 정도였다.
  
  호되게 국문을 받고 대궐 뜰을 나온 조광조는 이를 악물었다. 그러기는 김식도 마찬가지였다.
  "남곤이 이럴 수 있는가. 그는 도학의 큰 산인 점필제(김종직의 호) 선생의 제자가 아닌가. 어찌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 고변할 수 있다는 말인가. 배운 것과 행하는 것이 어찌 이리 다를 수 있다는 말인가."
  "정암, 나는 심정의 집을 들락거렸다는 것이 창피하네. 겉과 속이 이리 다를 수 있는 것인가. 심정 집으로 가서 가끔 밥을 먹고 물을 마셨다는 것이 부끄러울 뿐이네. 토할 수만 있다면 지금 다 토해버리고 싶네."
  김식도 김공저와 박경 등이 역모를 일으키려 했다고 조정에 고발한 남곤과 심정을 격렬하게 성토했다. 막연하게 호감을 느꼈던 남곤과 심정이었는데, 출세를 위해 고발도 마다하지 않은 그들을 조광조와 김식은 소인배라고 단정했다. 그뿐만 아니라 공조 참의 유숭조도 만나서는 안 될 소인배와 다름없다고 혀를 찼다.<계속>
  
  *[정찬주 연재소설] "하늘의 도"는 화순군 홈페이지와 동시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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