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인 <보통시민 오씨의 548일 북한체류기>가 작가의 금호지구 근무 경험을 그대로 드러낸 논픽션이었다면 <평양프로젝트>는 작가 자신의 경험과 자료조사, 탈북자 인터뷰 등을 바탕으로 그린 픽션 만화다.
남한의 젊은 작가 오공식이라는 인물이 평양에 파견돼 생활하며 좌충우돌 겪는 북한과 북한 사람들의 모습이 생생하고 '익살스럽게' 그려진 이 책은 가공의 이야기지만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보여준다는 평가다.
개혁·개방 이후 자본주의적인 마인드와 상술을 도입한 북한 사람들, 부와 물질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그들의 행태, 심지어는 개인이 만든 상품을 버젓이 내놓고 판매하는 요즘 모습까지도 재미나게 펼쳐진다.
변화된 북한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이야기는 「군당대기실」이다. 과거 군인(군)-당경력자(당)-대졸자(대)-5장6기(기, 혼수품 조달 능력)-실(실력) 순으로 신랑감 선호도가 매겨지던 것이 최근에는 현물조달능력(현)-장사능력(장)-대졸자(대)-5장6기(기)-실(실력) 순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2~3쪽의 짤막짤막한 에피소드가 모여 속도감 있게 읽히는 <평양프로젝트>에는 우리 사회에 알려지지 않은 북한의 실제 모습들도 등장해 흥미를 더해준다.
북한에도 점쟁이가 있고(「점쟁이」),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 사기를 치는 야바위꾼도 있다(「전문꾼」). 여성이 이혼소송을 제기하는 경우 사회적 약자라는 이유로 남성이 제기한 것보다 쉽게 처리된다고 한다(「살다 보면」). 그리고 북한에도 우리가 쓰는 것과 유사한 문서 작성 프로그램이나 수식 계산 프로그램이 있다(「스타크」).
한편 남과 북의 이질감을 드러내는 에피소드도 많다. 북한의 보수세력이 등장해 탈북자를 비난하고, 그 자리에 있던 오공식과 조동만까지 싸잡아 비난한다(「비사회주의 그루빠」). 또 북한의 학생들을 동원하는 북한의 「아리랑」 공연을 놓고 오공식과 조동만이 언쟁을 벌이기도 한다(「아!… 아리랑」).
이질감 때문이 아니더라도 이 만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툭하면 싸운다. 조동만, 김철수, 리순옥 등 북한의 주인공들은 북한에 와서 생활하면서도 자본주의적 태도를 고수하는 오공식을 비판한다. 오공식도 개인주의적이고 가볍고 약해빠진 소시민이지만 북한의 지도원에게도 할 말은 하는, 이른바 '남한스러운' 사고와 행동을 보인다.
그러나 이들의 다툼에는 뿌리깊은 악의(惡意)나 '적대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만화라는 매체의 특성이기도 하겠지만, 서로를 잘 몰라 저지르는 실수와 해프닝이 그리 밉지 않게 그려져 있다. 만화의 주인공들은 다음 날이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다시 한 사무실에 모여 일을 하고, 도와주고 이야기하다 다시 실수하고 싸우곤 한다.
북한에도 지역색이 있다는 사실 역시 흥미롭다. 평양 사람은 깍쟁이라고 불리고, 황해도는 성향이 둔하고 게으르다고 해서 '띵해도'라고 부르며, 함경도는 알려줄 듯하면서도 알려주지 않고 얄밉다해서 '정평 짜드라기'라고 한다는 것이다.
작가 오영식 씨는 "북한에 다녀온 사람들은 우리와 너무 같아서 한 번 놀라고, 우리와 너무 달라서 또 한 번 놀란다"며 자신의 책이 북한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는 소박한 바람을 이야기한다.
만화 속 주인공들의 얼굴이 변화무쌍하게 달라지는 걸 특히 재밌게 봤다는 시인 도종환 씨는 그들이 보여주는 '같음'과 '다름', 그리고 티격태격하면서도 얼굴을 붉히지 않는 모습을 보며 이런 말을 남겼다.
"다르다는 것 때문에 적대시하거나 차별하지 않고 차이를 인정하며 사는 것이다. 이게 중요하다. 서로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시작하는 것, 그것이 화해의 시작이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차이를 존중하는 것, 그것이 공존의 시작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