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부터 한미 FTA 타결을 위한 5차 협상이 진행되고 있으나 올 연말까지 마무리 짓겠다던 양국 정부의 당초 목표는 물 건너간 듯하다. 그러나 미 무역촉진법(TPA) 만기가 돌아오는 내년 6월말까지 결판을 내야 한다는 한국 정부의 조급증은 여전한 가운데 양국의 협상이 급진전을 이루더라도 미국 의회의 비준을 받아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전망이 나왔다.
"의회 요구 수위 높아 결렬 낙관"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7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한반도 평화주간 토론회>에서 "중간선거 이후 민주당이 고삐를 잡은 미 하원에서 FTA가 비준을 얻기 위해서는 한국 정부의 치명적인 양보가 필요한데 대선을 앞둔 현 정부로서는 쉽지 않은 선택이 될 것"이라며 "한미 FTA의 결렬에 대해 낙관 아닌 낙관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최근 삼성경제연구소가 한미 FTA에 대한 찬반을 꼽아본 하원 표 계산을 그 근거로 들었다. 재선 이상 그룹에서는 찬반이 188대 186으로 팽팽히 맞서는 것으로 나온 만큼 결국 초선 61명의 선택에 비준 여부가 좌우된다는 것.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FTA는 일자리를 수출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캠페인을 통해 당선된 초선 의원들이 비준에 적극적으로 찬성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이 교수의 전망이었다.
미국 내 일반 여론이 FTA에 우호적이지 않은 쪽으로 기울어 가는 것도 의회 비준을 비관케 하는 요인 중 하나다.
2004년 미 메릴랜드대학 국제정책태도프로젝트팀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연봉 10만 달러 이상 고소득 미국인 가운데 4분의 3이 자유무역이 미국에 손해를 가져왔다고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1999년 조사에서는 절반 이상이 NAFTA에 지지를 보낸 것과 대조적인 것으로, 이 교수는 이와 관련해 "미국 내에서조차 여론 주도층을 중심으로 자유무역에 대한 회의론과 반대론이 급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민주당의 '공정무역', 한국엔 불공정하기 짝이 없어"
이 교수는 "의회 비준을 감안하자면 한국 정부는 미국의 요구를 파격적으로 수용해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11월 중간선거 결과 의회권력을 잡은 민주당은 '공정무역'을 내세워 한국 입장에서는 불공정하기 짝이 없는 거래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현재 협상이 진행 중인 미국 몬태나에서 쇠고기를 먹으며 "맛있습니다"를 연발했던 맥스 보커스(민주당) 상원 재경위원장 내정자는 현재 40% 수준인 쇠고기 관세의 완전철폐와 위생검역금지를 주장하고 있다.
이들 요구대로 관세를 철폐하면 미국산 쇠고기의 가격은 한우의 3분의 1수준까지 떨어지고 위생검역을 금지하면 세 차례나 뼛조각을 살코기에 붙여 보낸 미국 업체의 검사를 신뢰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전통적 민주당원의 대표인 찰스 랭글 하원 세입세출위원장 내정자와 존 딩겔 하원 에너지 상무 위원장은 한국 차의 수입량이 미국 차의 수입량보다 많다는 점을 들어 미국으로 들여오는 한국 차의 관세 철폐에는 반대하지만 미국 차 수입과 관련한 한국의 세제는 모두 다 바꿔야 한다는 불공정한 요구를 계속해 오고 있다. 디트로이트 출신인 이들은 미국 자동차 노조의 막강한 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노무현 정부가 미국의 이 같은 고강도 압박에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정부가 위험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치명적인 요구'들을 전면적으로 수용할 수도 있다는 설명이었다.
이 교수는 그러나 "이것은 내년 대통령 선거와 후내년 총선을 포기하지 않고서는 하기 힘든 선택"이라고 말해 정치적 고려를 한다면 한국 정부 역시 미 의회의 요구를 전면 수용할 수 없을 것임을 강조했다.
이 교수는 "부시 행정부의 통상전략 상 가장 실익이 많을 것으로 예상됐던 한미FTA가 결렬된다면 이는 민주당 주도의 새 통상전략의 신호탄"이라며 "FTA가 결렬된다 하더라도 공정무역을 위시한 미국의 통상압력은 강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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