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노무현 대통령의 처지가 실로 어렵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그 기(氣)와 세(勢)가 천지를 진동시켰는데 말이다. 하지만 12월 3일자의 "열린우리당 당원에게 드리는 편지"를 유심히 읽어보니 비록 세(勢)는 잃었어도 그 기(氣)는 여전함을 느끼게 한다. 얼마 남지 않은 임기지만 나름 최선을 다하는 자세라 하겠다.
오늘은 노무현 이라는 한 개인의 운명과 그 운명의 흐름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맞물려 전개되는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노 대통령의 사주는 다음과 같다.
연 병술(丙戌)
월 병신(丙申)
일 무인(戊寅)
시 병진(丙辰)
1946년 양력 9월 1일에 태어난 무토(戊土)이니 혹독한 더위가 그치는 처서(處暑)로부터 9일이 지난 계절에 태어났다. 여름 더위에 땅이 한창 메말랐다가 겨우 이제 아침, 저녁나절로 이슬이 스미기 시작하는 때인데, 천간(天干)에는 늦여름 태양의 열기를 말하는 병화(丙火)가 강렬하기만 하다.
메마른 늦여름의 무토 일간(日干)이라 물을 반기는 입장이건만 수기(水氣)가 약하니 빈한한 가정에서 태어났음을 말해준다. 시각적으로 노 대통령의 타고난 팔자를 떠올려보면 늦여름 더위에 비는커녕 땡볕만 내리쬐는 넓은 벌판을 연상시킨다.
어릴 적 노 대통령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공상도 많고 꿈도 많은 내성적인 기질의 아이였을 것이다. 메마른 땅이지만 바탕 그 자체는 크고 튼튼한 이런 운명은 중년 들어 금수(金水)의 운(運)을 만나면 그 꿈을 펼칠 수 있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시원한 비만 잘 내려주면 옥토(沃土)로 변해 많은 이들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인 것이다.
오행(五行)상 토의 날에 태어난 사람은 사회문제에 대한 감각이 예리하다. 자연히 정치적인 성향이 높아지는데, 빈한하게 자랐으니 성장 과정에서 다소간 사회주의적 성향을 지니게 됨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노 대통령을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꿈꾸는 사람(dreamer)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건강상의 문제를 보면 태어난 월의 신금(申金)이 말랐으니 일지 인목(寅木)과 그 기가 상충하여 허리 디스크나 눈에 병이 생기기 쉬운 체질이다. 재작년 눈꺼풀이 쳐져 눈을 찌르는 안검하수로 수술을 했었던 것도 그런 연유이다.
필자가 노무현 대통령의 운명에 대해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어떤 면에서 운명과 역사가 준 과업과 소임을 이제 다 완수했다는 생각에서이다.
그러면 지금부터 역사 속의 인물이라 할 수 있는 노 대통령이 어떤 운을 통해 성장하고 발전하며 주어진 소임을 다 하게 되었는가를 구체적으로 알아보기로 하자.
필자는 여러 번 이 칼럼을 통해 사람의 운명은 호운(好運)이든 악운(惡運)이든 30년 이상 이어지지 않는다는 운명의 기본적인 법칙을 얘기해왔다.
노 대통령의 경우 운이 대단한 분이니 30년의 호운(好運)을 끊어보면 그가 사법고시에 합격한 1975년 을묘(乙卯)년부터 시작하여 2005년 을유(乙酉)년에 와서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노 대통령이 한 단계씩 진일보하는 해는 지지(地支)에 오화(午火)가 오는 해였다. 다시 말해 말띠 해마다 그로서는 새로운 운명의 길로 접어들었던 것이다.
1978년 무오(戊午)년에 변호사로서 독립한 것이 그것이다. 무토(戊土) 일간이 자신과 같은 기운인 무(戊)의 해에 독립한 것이니 잘한 일이었다.
1990년 경오(庚午)년에는 3당 합당을 거부하고 민주당을 새롭게 창당했던 것이 자신의 신념과 색깔을 보여주기 시작한 해가 되었다. 경오년의 경금(庚金)은 그가 왕성한 활동과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 시작함을 말해준다.
2002년 임오(壬午)년에는 아시다시피 대선에서 승리했던 해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말띠 해마다 약진한 것은 그의 전체적인 대운이 23세 이후 수운(水運)으로 접어들었기에 물과 불의 균형, 다시 말해 음양의 조화가 이루어지는 해마다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운세를 살피는 법에는 크게 네 가지가 있다.
먼저는 앞서 말했듯이 30년간의 큰 흐름으로 파악하는 방법이고, 다음으로는 요즘 흔히 쓰는 말인 소위 '모멘텀'이 생기는 시점을 근간으로 보는 방법이니 앞서 노 대통령이 말띠 해마다 새로운 길로 접어들었다는 것을 살피는 방법이다.
세 번째로는 일간과 같은 기운이 오는 해는 그 사람의 주관적 의지가 크게 작용하는 해이기에 그 때마다 어떤 일을 일어나는지를 보는 방법이다.
노 대통령의 경우 무토(戊土)이니 무토의 해마다 일어나는 일을 보는 방법이다.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78년 무오(戊午)년에 변호사 개업
1988년 무진(戊辰)년에 국회의원에 당선, 정치인 노무현의 등장
1998년 무인(戊寅)년에는 국회의원 종로구 보궐선거에 당선, 거물급 정치인으로 성장
그리고 운세를 살피는 마지막 방법으로서 의미 있는 출발점으로부터 18년이 운세의 종말점이 됨을 계산하는 방법이다.
즉 금년 병술(丙戌)년은 노무현 대통령이 정치인으로 등장한 1988년으로부터 18년이 지난 시점이니 그의 정치 운명이 크게 마무리되는 자리인 것이다.
또 역사의 흐름 속에서 살피면, 우리나라의 경우 1978년 무오(戊午) 학번부터 이른바 386이라는 운동권 세력이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그 해 그는 변호사로서 독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어서 지난 1987년 정묘(丁卯)에 민주화의 물꼬가 터졌는데, 그 거대한 흐름 속에서 1988 년 무토 일간인 노 대통령이 국회로 진출하여 새로운 정치인으로서 자리했으니 이 또한 역사의 흐름과 그의 시운이 맞아떨어진 것임을 말해준다.
이제 우리나라는 민주화를 추진하는 나라가 아니라 명실 공히 민주주의 국가로 자리 잡았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숱한 문제와 갈등에도 불구하고 권력이 국민의 손에서 나오는 체제라는 사실만은 요지부동인 것이다.
다만 우리에게 문제가 있다면 민주국가에서 나라와 사회를 이끌어가는 방법은 대화와 타협밖에 없다는 생각이 아직은 보편화되어 있지 않다는 점인 것 같다.
노 대통령이 자주 '연정'을 주장하는 것 역시 그 본지는 대화와 타협의 정치 말고는 길이 없다는 나름의 확고한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본다.
열린우리당을 만들어 잘 해보려고 했으나 흥행에 실패했다고 해서 다시 지역당으로 회귀하는 것만큼은 싫다고 하는 편지에 실린 그의 말도 그 연장선상에서 나왔다고 여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노 대통령의 정치적 견해와 이상을 모두 지지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편에 더 가깝다.
돌출발언도 많고 투박한 대통령이지만 그가 펼치고자 하는 정치적 이상과 견해 중에서 더 이상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대결의 정치만은 지양되어야 한다는 생각만큼은 우리 민주정치의 귀중한 자양분으로 남을 것임을 굳게 믿는다.
일을 이룸에 있어 중요한 것은 기(氣)와 세(勢)를 얻어야 하는 것이다.
기만 있고 세가 없으면 외로울 것이요, 세만 얻고 기가 없으면 자신의 영달을 위해 세상을 어지럽히는 무리에 불과할 것이다.
노 대통령은 한 때 기와 세를 모두 얻었다가 이제 와서 세를 잃었으나 기 자체는 잃지 않는 모습이니 의연한 장부요, 영웅이라 불리기에 하등의 모자람이 없다 하겠다.
(전화:02-534-7250, E-mail :1tg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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