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지도부가 본격적인 정계개편에 앞서 "의례적인 절차"로 진행하려 했던 설문조사가 예상 밖의 거센 저항에 직면했다.
현 비대위에 반대하는 친노 세력 결집의 매개가 됐을 뿐더러 이로 인해 김근태 지도부는 '당심'을 들고 나선 일부 당원들의 비난까지 감수해야 할 처지로 내몰렸기 때문이다.
잘못 끼운 첫 단추, 밀고 나갈까?
5일 기자회견을 열어 "비대위를 해체하라"고 요구한 친노 성향 기간당원들의 불만은 지난 11월 비대위가 기간당원제도 개편을 골자로 한 당헌개정안을 확정할 때부터 누적되어 온 것이다. 나아가 당 지도부가 현역 의원들에 국한해 당 진로와 관련한 설문조사를 실시키로 한 결정이 이러한 불만을 직접적인 행동으로 추동한 기폭제가 됐다.
지도부로서는 대단히 곤혹스런 상황전개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신 정치'로 당청갈등의 후폭풍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마당에 당 내분까지 확산일로에 올라 리더십은커녕 향후 운신의 폭까지 협소해졌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난감해진 쪽은 김근태 의장. 최근 노 대통령의 정치적 카운트파트로 주목 받으며 '여의도의 햄릿'이라는 오명을 벗나 싶더니, 하루아침에 '무능 비대위'를 이끄는 수장으로서 당원들로부터 날아드는 화살의 과녁이 됐다. 설문조사를 강행하면 '아래로부터의 비판'은 더욱 거세질 것이 뻔하고, 되돌리면 친노계의 압력에 굴복한 인상을 줄 수밖에 없다.
일단 비대위는 5일 저녁 비공개 간담회를 열어 이 문제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로 했다. 표면적으로는 당의 문제점과 정계개편 방향, 현 비대위 체제에 대한 평가, 당청 갈등에 대한 입장 등을 묻는 질의내용을 확정하고 이르면 6일부터 설문조사를 실시하겠다는 입장에서 물러섬이 없다.
그러나 이 자리에선 설문조사 실시 여부를 원점에서 재검토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우선 계획대로 설문조사를 진행한다 하더라도 친노계 의원들의 반발로 애초 의도했던 '전수조사'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현실적 이유가 크다. 일부 중립성향 의원들 역시 진행되지도 않은 '논의'에 앞서 '결정'을 묻는 듯한 설문조사에 적지 않은 회의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조사의 핵심인 당의 진로와 관련해선 각 언론사에서 진행한 여론조사로 의원들의 성향이 거의 드러난 상황이어서 설문조사 무용론도 심심치 않다.
무엇보다 설문조사 시행에 그다지 내켜하지 않는 김 의장이 마음을 돌릴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점이다. 당초 설문조사 방안은 1~2명의 비대위원이 워낙 강력하게 주장해 김 의장이 마지못해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김 의장으로서는 자신이 주도하지 않은 사안으로 정치적 부담을 지는 것에 거부감이 클 수밖에 없다.
결국 챙길만한 이득은 별로 없고, 위험 부담만 큰 이 문제에 대한 결론은 아무래도 김 의장의 판단에 달린 듯하다. 매우 사소해 보이는 이 문제에 대한 결정이 곧 '김근태 리더십'의 가늠자가 됐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김한길 원내대표는 5일 기자간담회에서 의원 설문조사에 대해 "설문조사 결과로 당 진로를 정하는 것은 좀 문제가 있고 비대위가 조용히 (당내 여론을) 취합해 의총에 참고자료로 내놓는 절차가 돼야 한다"며 "이는 지금 (당의 진로를) 토론하자는 것과는 다르다"고 설명해 여지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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