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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의 보따리' 받아든 김계관…깊어지는 北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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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의 보따리' 받아든 김계관…깊어지는 北의 고민

장고 끝 악수냐 묘수냐…'핵폐기' 전제조건 걸림돌 될 듯

28일과 29일 도합 14시간에 걸친 북미 베이징 회담에서 나온 양측의 태도와 향후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라는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의 30일 발언과 "일방적으로 핵을 폐기할 수 없다"는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의 말을 보면 입장차가 여전하지만 물밑에 흐르는 기류변화마저 무시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태도 변화에는 '의견일치'

이번 회담 과정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미국의 태도변화였다. 미국은 '핵을 폐기한다면'이라는 전제를 달긴 했지만 전례 없이 구체적인 인센티브를 제시하며 핵폐기를 유도했다.

힐 차관보는 자신이 내놓은 제안이 '조지 부시 대통령의 위임'에 따른 것이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져 미국이 내놓은 보따리의 무게를 실감케 했다.

이는 '악행(惡行)에 대한 보상은 없다'던 기존의 태도에서 한 걸음 물러선 것으로 미국 중간선거 이후 미국 조야에 강경 일변도의 정책을 추구하는 네오콘(신현실주의자)이 퇴조한 대신 북한과의 직접대화를 요구하는 현실주의 세력이 부상했다는 배경에 따른 것으로 분석됐다.

김연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중간선거 이후 북한을 대하는 태도가 변한 건 사실이고, 협상의 적극성에서도 분명 변화가 있다"고 말했다. 정영철 현대사연구소 부소장도은 "핵폐기라는 전제조건이 박혀 있지만 범죄행동에는 보상이 없다는 태도가 변한 것은 사실"이라고 평가했다.

부시 대통령은 특히 북한이 핵을 폐기한다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만나서 한국전쟁 종전 선언을 서면으로 할 수도 있다고 노무현 대통령에게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정 부소장은 "그 역시도 전제조건이 있지만, 미국이 북한을 '악의 축' '폭정의 전초기지'로 보는 인식에서는 빠져나온 것 같다"며 "그렇게 하면 도저히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미국이 이처럼 태도를 바꾸고 그간 한사코 거부해 오던 북미 직접대화까지 수용한 것은 중국의 역할에 대한 회의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6자회담은 북핵에 대한 중미 공조체제로 볼 수도 있는데 핵실험을 끝내 막아내지 못했던 중국을 믿지 못한 미국이 직접 북한과 담판을 지으려 한다는 것이다.

리비아 모델 고수가 장벽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핵폐기라는 전제조건이다. 힐 차관보는 이번 회담에서 6자회담이 재개되면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관을 수용하고 △모든 핵 시설을 신고하며 △영변 핵시설의 가동을 중단하고 △9.19공동성명을 이행해야 한다는 등 이행조치가 필요하다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요구는 회담이 시작된 직후 북한이 해야 하는 선제조치에 불과하다. 미국은 재개될 6자회담의 과정에서 이들 선제조치는 물론이고 9.19공동성명에 담긴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프로그램 포기"가 선행되어야만 그에 대한 상응조치가 있을 것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 미국측의 '인센티브'를 들고 북한으로 돌아간 김계관 부상, 향후 북한의 반응이 주목된다 ⓒ로이터=뉴시스

핵폐기와 보상을 동시해 하는 소위 '우크라이나 모델'이 아니라 핵을 먼저 포기하고 보상을 논하는 '리비아 모델'을 고수하겠다는 기존의 태도가 변하지 않은 것이다.

2002년 2차 북핵위기 발발 후 끊어졌던 대북 중유제공을 비롯해 수많은, 그리고 구체적인 인센티브가 힐 차관보의 입에서 나왔다고 언론에 흘러나오긴 했지만, 극심한 대미 불신감을 갖고 있는 북한이 선(先)핵폐기를 받아들이기는 대단히 어렵다. 그 인센티브가 오매불망 바라 왔던 한국전쟁 종료와 안전보장 제공이라도 말이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힐의 '보따리'를 들고 귀국한 김 부상과 북한 지도부의 향후 대응 방향과 6자회담 개최 후 북한의 태도에 대해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기 꺼려 했다.

안병진 창원대 교수는 "북한이 미국의 제안을 두고 장고(長考)에 들어가더라도 당분간 획기적인 입장 변화는 힘을 것이고 오히려 더 강경한 태도를 취할 가능성이 있다"며 "결국은 핵폐기와 검증을 통과해야 인센티브를 준다는 건데 핵검증이란 게 쉬운 일이 아니다"고 어두운 전망을 내놨다.

김연철 교수는 "정확치는 않지만 언론에서 나오는 각종 인센티브는 미국이 실제 얘기한 것과 중국이 중재 차원에서 내놓은 것들이 혼합된 것 같다"며 "중유 제공도 미국은 검토하겠다는 답을 했을 뿐일 것이고, 현실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미국은 6자회담 초기의 이행조치를 강조하는 게 핵심이고, 북한은 금융제재나 유엔 안보리 제재를 해제하라는 게 핵심이었다"며 "쟁점으로 들어가면 여전히 이견이 좁혀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영철 부소장도 "미국이 합당한 보상을 하면 북한도 핵폐기 '단계'로 진입할 수 있다는 건 예측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불신이 많은 사이에서 그 과정은 대단히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北, '싶도 깊은 검토' 있을 듯

전문가들의 다소 비관적인 평가와 전망에도 불구하고 정부 당국자들의 태도는 그리 나쁘지 않다. 날짜가 문제가 될 뿐 6자회담 재개 자체에 의문을 표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미국의 대북 유인책이 유래없이 컸을 뿐만 아니라, 김계관 부상도 '귀국해서 검토해 볼 것'이라며 미국의 제안에 대해 과거처럼 즉각 반발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서 협상의 여지가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의 고위 당국자는 30일 베이징에서 "현재로서는 북한이 협의한 내용을 갖고 잘 검토해 회답을 보내면 회담 재개를 위한 준비가 갖춰질 것으로 기대된다"며 "북한이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 변화에 대한 확신을 갖느냐 여부가 회담서 뭘 내놓느냐를 결정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진지하게 검토할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서울에 있는 한 고위 당국자도 "6자회담을 빨리 재개하자는 데에 대해서는 공통된 입장"이라며 "미국쪽에서 상당히 비중있게 제시한 것 같다. 북한도 심도있게 검토하기 위해 답을 늦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연철 교수는 "북한이 미국의 제안을 검토하면서 적절한 중유 제공 같은 적절한 요구 수준에 따라 핵시설 동결 혹은 사찰을 수용하면 본 게임(9.19공동선언 이행 문제)이 시작될 것"이라며 "북미가 각자 돌아가서 초기 이행조치에 대한 상응조치를 만드는 게 핵심"이라고 말했다.

그는 부시 대통령의 한국전쟁 종전 선언과 관련해서도 "9.19공동성명 이행 합의 틀에서 논의될 것"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시 대통령이 9.19공동성명 이행 의지를 재확인하고 있다는 것이어서 협상의 환경 차원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게를 가늠하기 힘든 힐의 보따리를 들고 온 김계관 부상이 그 보따리를 풀었을 때 나올 김정일 위원장의 일성(一聲)은 그래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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