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26일 제안한 '여야정 정치협상회의'는 하루도 못가 해프닝으로 끝났다. 한나라당이 제안을 거부한 것이 일차적인 이유다. 그러나 또 다시 드러난 청와대의 일방통행 방식에 대한 열린우리당의 불만, 정치협상회의 제안의 대상에서 제외된 비교섭 야당의 불만 등이 얽혀 교착 정국은 더욱 꼬여가게 됐다.
與, '전효숙 카드' 버리기 초읽기
이번 청와대발 해프닝은 당장 발등의 불인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 처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일단 우리당은 "한나라당이 정치협상회의 제안을 거부했기 때문에 상황은 제안 이전으로 돌아간 것"이라며 30일 본회의에서 전효숙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강행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우상호 대변인은 "한나라당이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폭력적 방식으로 문제 해결을 가로막겠다는 의사가 드러난 것"이라며 "한나라당이 너무 정치적 술수로만 이해한 것 아니냐"고 짐짓 분개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일로 여권은 전효숙 문제를 해결할 의지와 수단을 모두 잃어버린 것 아니냐는 관측이 많다. 그렇지 않아도 '전효숙 사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터에 이번 일을 거치며 여권이 전효숙 카드를 접는 수순으로 가닥을 잡은 듯한 분위기가 확연해졌기 때문이다.
또한 전효숙 임명동의안 처리의 열쇠를 쥐고 있는 비교섭 야당이 이번 정치협상회의의 대상에서 아예 벗어나 불만을 갖게 된 것도 뼈아프다.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등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에만 정치협상회의를 제안한 것은 범국민 차원에서 정국을 풀겠다는 것이 아니라 제2의 연정을 제안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노골적인 불만을 표했다. 이에 따라 전효숙 임명동의안 처리 건에서 비교섭 야당의 협조를 구하기는 더욱 난망해진 것으로 평가된다.
결국 여당의 장담과는 달리 30일 본회의에서 전효숙 헌재소장 임명동의안이 처리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30일 본회의를 전후해 여당 일각에서 제기되는 자진사퇴설이 더욱 힘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여야간 협상 데드라인인 29일을 전후한 시점부터 노 대통령이 출국하는 다음달 3일까지 당에서 전효숙 자진사퇴나 지명철회 등 청와대의 후퇴를 압박하는 목소리가 나올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 노 대통령의 출국 전에 사태를 매듭짓기 위한 모종의 추가 조치가 청와대에서 나올 수도 있다.
"당의 대화요구에 청와대 대답이 겨우 이거냐"
한편 청와대의 정치협상회의 제안이 하루 만에 무산되면서 당청간의 불신의 골도 더욱 깊어졌다. 열린우리당에선 청와대가 한나라당에 대해 직접 여야정 협상회의를 제안하면서 사실상 여당을 배제한 데 대한 불만이 크다.
여당이 청와대로부터 이러한 제안이 있을 것을 통보받은 것은 당일 오전. 발표 30분 전에 통보받은 한나라당과 별반 차이가 없다. 이번 제안이 있기까지 당청 간 어떠한 의견 조율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발표 전날인 25일 오전 당정청 4인 회동이 열렸으나 이 자리에서도 청와대는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정청 회동에서 김 의장은 "청와대는 당과 함께 가겠다는 것인지 입장을 분명히 하라"며 강경한 요구를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날 오후 노무현 대통령은 참모회의를 열어 한나라당에 '여야정 정치협상회의'를 제안하기로 결정해 다음날 당에 통보했다. 그 때문에 당 일각에서는 '당의 대화 요구에 대한 청와대의 대답이 이것이냐'는 불만도 새어나오고 있다.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이 27일 오전 당 회의에서 "책임 있는 당정청간 대화를 더욱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한 것은 이러한 속사정과 무관치 않다. 여당을 국정운영의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 청와대에 대한 문제제기를 계속할 것이라는 의지의 표명인 셈이다.
당청 갈등 심화될 듯
이에 따라 이번 일이 당청 간의 결별을 앞당기는 계기가 될 가능성도 엿보인다. 이라크 파병, 부동산 대책,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등 당청 간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굵직굵직한 정책 현안들이 쌓여 있는 터에 여당에서 당 주도권에 대한 의지를 벼르고 있기 때문이다.
김근태 의장이 "중요한 국정현안에 대해서는 당의 입장을 분명히 전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겠다"며 "앞으로 당은 정부가 방향을 정해놓고 추진하는 당정협의에는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한 것도 더 이상 청와대에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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