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문제가 최대 쟁점이었던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부시행정부의 공화당에 압승을 거두면서 워싱턴에서는 '이라크 주둔 미군의 수개월내 단계적 철수 시작' 등 장밋빛 시나리오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중동 사정에 정통한 전문가들은 미국의 '이라크 발빼기'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우선 민주당 등 미국 제도권 내에서 부시의 반대세력이 주장하는 이라크 발빼기는 미군의 무조건 철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라크에 친미적인 동시에 저항세력이나 이란 등 주변국들에 휘둘리지 않을 안정적인 정권을 세워놓은 후에 이라크에서 발을 빼자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예컨대 이번 중간선거에서 부시에 대한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던 <뉴욕타임스>는 지난 12일자 사설
'민주당과 이라크(Democrats and Iraq)'에서 민주당에 대해 "더 이상의 혼란이나 테러리즘을 발생시키지 않으면서 이라크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를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결국 민주당 등 미국의 제도권세력이 요구하는 이라크 발빼기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현 이라크 정부의 치안능력을 현저히 강화시키는 한편 이란, 시리아 등 이라크 인접국가들과의 모종의 타협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제임스 베이커 전 국무장관이 이끄는 이라크조사그룹(ISG)의 보고서가 이란 및 시리아와의 직접대화를 권고할 것으로 알려진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 보고서는 오는 12월 7일 발표될 예정이며, 이에 앞서 베이커 전 국무장관은 13일 백악관에서 부시 대통령을 만나 이라크 탈출방안을 논의했다.
문제는 미국이 이란 및 시리아와의 직접협상을 통해 이라크 상황을 안정시킬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와 관련, 미국의 중동문제 전문가 트리타 파르시(Trita Parsi) 박사는 지난 11일 <아시아타임스>에 기고한 글(Iran the key in US change in Iraq: http://www.atimes.com/atimes/Middle_East/HK11Ak04.html)을 통해 다음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나는 이란은 지금까지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기대하고 미국의 아프간 및 이라크 침공 과정에서 미국을 도왔지만 결과적으로 배신당했기 때문에 이번 협상에서는 상당히 빡빡하게 나올 것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이란은 아프간 침공 직후인 2001년 12월 아프간 재건을 위해 독일 본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아프간 내 여러 군벌들의 타협을 이끌어내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지만 그 직후 부시 대통령은 이란을 이라크, 북한과 함께 '악의 축'으로 규정했다.
이와 관련, 당시 본 국제회의에 참석해 이견 조정을 이끌었던 자바드 자리프 현 유엔주재 이란 대사는 "당시 우리는 미국이 당연히 보답할 것으로 생각하고, 아프간 문제에 대한 이란의 협력을 다른 분야에서의 미국의 협력과 연계시키지 않은 잘못을 저질렀다"고 말한 것으로 파르시 박사는 전했다. 이번에는 아무 전제조건 없이 이라크 문제와 관련해 미국을 돕지는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다른 하나는 이란은 이라크 문제에 협력하는 대가로 이란 핵문제에 대하여 미국의 양보를 요구할 것이라는 점이다. 부시 행정부는 지금까지 이란 핵문제를 다른 문제와 연계시키는 것을 한사코 거부해 왔다. 과연 미국이 이라크 상황 안정을 위해 이란 핵문제와 관련해 양보를 할 수 있을 것인지 파르시 박사는 반문한다.
한편 이라크전쟁 초기부터 이라크 상황을 추적해 온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의 패트릭 콕번 기자는 미국의 정치평론 웹사이트 <카운터펀치>에 기고한 글을 통해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문제에 관한 결정권을 행사하는 한 이라크 상황의 변화는 기대할 것이 없다고 단언했다.
현재 이라크 내에서 활동하는 반미 저항세력에 대한 이란 및 시리아의 지원 정도와 영향력도 불분명하거니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이라크의 혼란상은 이들 국가의 배후조종 때문이라기보다는 미국 스스로의 잘못에 기인한 바가 훨씬 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어 부시 행정부는 지난 3년간 자신이 파놓은 구덩이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앞으로 비슷한 기간동안 온갖 애를 쓸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내놓았다. 결국 미국이 친미적이며 안정적인 이라크 정권을 기대하는 한 미국의 이라크 발빼기는 결코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다음은 <카운터펀치> 주말판(11/12일)에 실린 콕번 기자의 칼럼("We Worry About Staying Alive, Not the U.S. Elections": http://www.counterpunch.com/patrick11112006.html) 전문이다. <편집자>
이란ㆍ시리아와 화해한다고?
"우리 바로 옆집 지붕 위로 박격포탄이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바람에 우리 가족들은 벌벌 떨었지요. 우리는 그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까 걱정하고 있습니다. 미국 선거가 어떻게 되든, 사담 후세인이 죽든 살든, 그건 관심 없습니다."
바그다드에 사는 내 친구 마르완은 이렇게 말했다. 이라크인들은 현재 총체적 난국에 빠져 있는 미국이 난국을 헤쳐나오기 위해 취할 수 있는 방책은 그다지 많지 않다고 보고 있다. 이는 정확한 현실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점령 초기, 반미 저항세력을 분쇄하겠다는 도널드 럼스펠드의 호언장담이 실패로 돌아간 것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곧 이임할 이라크 주재 미국대사 잘마이 칼릴자드의 보다 기민한, 심사숙고 끝에 나온 전략도 역시 실패하고 말았다. 지난 1년간 그는 이라크의 500만 수니파와 화해하기 위해 갖은 애를 써 왔다. 이라크에서의 미국의 야망을 수포로 만들고, 지난 주 미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패배하도록 만든 것은 결국 수니파의 봉기였기 때문이다. 그는 수니파 정치인들을 이라크 신정부에 참여시켰고, 저항세력과 대화를 시작했으며, 점령 초기 미국이 추진했던 탈(脫)바트화 정책을 되돌리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그의 이같은 노력은 효과를 보지 못했고 미군에 대한 공격은 늘어만 갔다. (이라크의) 이슬람주의나 민족주의자들이 미 점령군과 협상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또한 다수파인 시아파와 미국 간의 관계도 갈수록 소원해지고 있다. 미 점령군을 진심으로 지지하는 것은 쿠르드족뿐이다.
미국이 곤경에 처하게 된 또다른 근본적 이유는 왜 이제 와서야 수니파에게 러브콜을 보내느냐라는 점이다. 1991년 미국이 후세인을 축출하지 않은 것은 이란에 동조하는 시아파 정치세력이 이라크의 정권을 잡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15년이 지난 지금, 미국은 아주 난처한 곤경에 처해 있다. 그 결과 현재 미국은 이라크 신정부가 저항세력을 이겨낼 만큼 강하지만 그 외의 모든 면에서는 취약해야 한다는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이번 중간선거 직전 이라크 주둔 미 육군은 시아파 성직자 무크타다 알사드르가 이끄는 메흐디군과 일전을 벌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250만 시아파가 거주하는 바그다드 내 사드르시티에 대한 포위작전은 누리 알말리키 이라크 총리의 반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그러나 일부 이라크 정치인들은 만일 이번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이겼다면 미군은 이 작전을 밀어부쳤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앞으로 2년간 미국은 대이라크정책과 관련하여 이란과 시리아에 보다 유화적인 태도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003년) 이라크 침공 당시 부시 대통령은 바그다드의 정권교체(regime change)가 완료되면 테헤란과 다마스커스도 똑같은 운명을 맞을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했었다. 이란과 시리아로서는 미국의 이라크정책 실패를 고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란과 시리아 정부가 (이라크의) 반미 무장세력을 얼마나 지원했는지는 결코 분명치 않다. 지금까지 워싱턴이 스스로 일을 망쳐 왔던 전력을 감안하면, 이 이라크의 이웃(이란, 시리아)들이 나서서 반미 저항세력을 애써 도울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앞으로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약화되면서 이들 국가와 터키 등은 뭔가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
앞으로도 미국의 이라크정책은 부시가 좌지우지 할 것이며, 그런 한에서는 이라크 상황의 변화는 별로 기대할 것이 못 된다. 지난 3년간 이라크에서 자신이 빠질 구덩이를 파느라 무던히 애써 왔던 부시 행정부는 앞으로 비슷한 기간 동안 그 구덩이에서 빠져 나오느라 온갖 애를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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