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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의 끝은 패가(敗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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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의 끝은 패가(敗家)

[정찬주 연재소설 '하늘의 道'] 제7장 반정 전후 <37>

진성대군의 사저는 장정과 심순경의 휘하 군사들이 삼엄하게 경계를 펴고 있었다. 장정은 사저의 정문인 솟을대문을 중심으로 군사를 배치했고, 심순경은 후문 좌우로 군사를 잠복시켰다. 새 임금으로 옹립할 진성대군이었으므로 철저하게 신변을 보호해야 했다. 연산주 심복들이 진성대군을 감쪽같이 빼돌린다면 반정은 실패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장정은 말을 타고 다니면서 보초를 선 군사들에게 명했다.
  "단 한 사람도 사저의 출입을 금하라. 제지하는데도 출입하려는 자가 있다면 즉시 목을 베도 좋다. 진성대군께 위해를 가할지 모르니 그리하라. 알겠느냐."
  "네, 부사 나으리."
  그뿐만 아니라 진성대군의 사저 식구들도 밖으로의 외출이 금지됐다. 반정이 끝날 때까지는 누구도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연산주 심복들과 접촉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아직도 인정 많은 진성대군은 연산주를 무섭고 두려운 형으로 섬기고 있었다. 연산주의 명이라 하면 즉시 그 명을 따를 것이 틀림없었다.
  군사들이 횃불을 하나만 남기고 모두 꺼버리자 사위는 칠흑처럼 컴컴했다. 초승달이 떴지만 밤안개에 가려 보일 듯 말 듯했다. 군사들은 사전에 약속한 대로 장정의 부장이 든 횃불의 신호에 따라 움직였다.
  "제 자리에 단 한 발짝도 움직이지 말고 경계하도록 하라."
  "네, 알겠습니다."
  사저에서 대문을 열고 나온 진성대군의 부인 신씨가 문밖의 군관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무슨 일이오."
  "우리는 입이 있어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집니다요."
  "이보시오, 무슨 일인지 묻지를 않소."
  그러나 군사들은 입을 다문 채 아무도 경계를 서고 있는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아무 얘기도 하지 말라는 장정의 지시를 지키고 있었다. 아랫것이 나서 대신 물어도 역시 돌부처처럼 서 있기만 했다.
  "부부인 마님이 묻지를 않습니까요. 무슨 일입니까요."
  역시 대답하는 군사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자 부인을 뒤따라 나온 아랫것이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부부인 마님. 안으로 드셔요."
  "두려워할 것이 뭐 있느냐. 주상 전하께서 우릴 지켜주고 계시는데."
  그제야 장정이 솟을대문 앞으로 다가와 말했다.
  "군사들은 사저를 지키고자 왔으니 안심하십시오."
  "어디서, 누가 보냈습니까."
  "그것은 말할 수 없습니다. 다만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주상 전하께서는."
  "폭주는 이제 폐주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진성대군을 시위(侍衛)코자 왔으니 안심하시고 들어가십시오."
  그래도 신씨 부인은 미심쩍은 얼굴을 하고는 대문을 닫았다. 나이답지 않게 위엄이 있어 보이는 당찬 부인이었다. 신씨가 반신반의한 것은 언젠가 아버지 신수근으로부터 진성대군이 새 임금이 될지 모른다는 언질을 받은 바 있어서였다. 실제로 박원종은 두 달 전 신수근을 찾아가 장기를 두면서 은근히 반정에 가담시키려다 성공하지 못한 일이 있었다.
  군사들이 담을 에워싸고 있으니 사저 안도 긴장감이 돌았다. 삼경이 지난 야심한 시각이었지만 하인들의 방까지 불이 꺼질 줄 몰랐다.
  
  바로 그때였다. 멀리서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진성대군의 사저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말을 탄 군복 차림의 사람이 칼을 찬 평복의 무리를 이끌고 있었다. 한 군사가 달려와 장정에게 급히 보고를 했다.
  "부사 나으리, 이쪽을 향해 한 무리가 오고 있습니다."
  "천천히 본 대로 보고하라."
  "우두머리는 군복을 입었으나 따르는 무리는 칼을 찼을 뿐 평복 차림이옵니다."
  "숫자는."
  "70여 명 가량 되옵니다."
  "알았다. 그들은 군사가 아니라 무사들일 것이다."
  장정은 말을 타고 부장(副將)과 함께 그들이 오고 있는 방향으로 달려갔다. 장정의 부장은 그들이 좀 더 다가오기를 기다렸다가는 소리쳤다.
  "멈추거라. 누구냐."
  "우리는 운산군 대감을 모시고 진성대군의 사저로 가는 길이다."
  운산군 이계라면 이미 반정에 가담한 왕실의 종친이었다. 그러나 장정은 그들이 진성대군을 빼돌리기 위해 위장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오늘 밤은 아무도 이 길을 통과할 수 없소."
  "무엄하구나. 우리는 이계 대감을 모시고 가는 길이니라."
  "가고 싶거든 목을 내놓고 가라."
  장정의 부장이 칼을 치켜들며 소리치자 이계 대감 측에서도 칼을 빼어들며 고함으로 맞섰다.
  "신분을 밝혔거늘 무엄하구나. 여기서 지체할 시간이 없다. 어서 길을 비켜라."
  장정이 자신의 부장을 제지하고 나섰다. 그러자 이계도 말을 타고 가까이 왔다. 이계가 장정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웃으며 말했다.
  "광화문 진영에서 가져온 부신(符信)이 여기 있소이다."
  "운산군 대감을 어찌 믿지 않겠사옵니까만."
  부신을 받아든 장정은 그것을 보지도 않고 길을 비켜주었다. 이계는 진성대군을 호위할 무사를 이끌고 있었다. 이계 뒤에는 성종의 계비 정현왕후의 사촌오빠인 윤형로, 구수영, 덕진군 등 왕실과 직간접으로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대군 저하께서는 안전하신지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군사들이 사저를 철통같이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성대군은 사저에서 꼼짝을 못하고 떨고만 있었다. 초저녁에는 군사들이 든 횃불로 담 밖이 환하더니 지금은 동굴 속처럼 컴컴했다. 순식간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가슴이 뛰고 오금이 저렸다.
  "부인, 어찌 돼가는 것이오."
  "마마, 마음을 편하게 가지십시오. 담 밖의 군사는 마마를 해치기 위해 온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말을 믿지 못하겠소. 주상 전하 형님께서 나를 잡아들이기 위해 모의를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마음을 굳게 자셔야 합니다. 주상 전하께서 어찌 죄 없는 동생을 잡아들인단 말입니까. 죄 없는 동생 하나를 잡아들이기 위해 저리 많은 군사를 보낸단 말입니까. 오히려 그 반대가 분명합니다. 마마를 보호하기 위해 누군가가 보낸 군사일 것이니 안심하십시오."
  신씨가 진성대군의 손을 잡아 안심을 시켰다. 가위 눌린 꿈을 꾸거나 불안해 할 때는 신씨가 남편인 진성대군의 손을 잡아주곤 했는데, 그때마다 진성대군은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혔던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두 사람은 하인들의 눈을 피해 손을 잡고 다니기를 좋아했다. 그만큼 금슬이 남달라 종친들이 부러워하는 부부였다.
  "마마, 이제 마음이 좀 놓이십니까."
  "부인의 손은 언제나 따뜻하구려. 손을 잡고 있으니 불안했던 마음이 가십니다."
  "손만 따뜻하다는 것인지요, 마마."
  "그럴 리가 있소. 부인의 마음도 따뜻하지요. 부인, 나는 이때까지 부인의 손처럼 아름다운 손을 본 적이 없다오."
  삼경이 넘도록 불안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던 진성대군은 부인의 무릎에 머리를 베고 잠시 코를 새근새근 골았다.
  
  그런데 그때 다시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신씨는 진성대군을 자리에 조심스럽게 눕히고는 방문을 열고 나가 밖의 동정을 살폈다. 칼을 든 한 무리의 무사들이 대문 안으로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하인들이 놀라 뿔뿔이 흩어져 달아났다. 그러나 신씨는 마당으로 내려가 호통을 쳤다.
  "집에 주인이 있거늘 누구의 허락을 받아 소란을 피우는 것이오."
  "마님. 소란을 피웠다면 용서하십시오."
  "어서 물러서지 못하겠소."
  "대군 저하를 시위코자 왔습니다."
  "무엄하오. 야심한 밤에 대군 저하의 사저를 들이닥치다니 말이오."
  신씨는 평복을 한 복장으로 보아 그들을 믿을 수 없었다. 초저녁부터 담 밖의 군사가 진성대군을 시위하고자 와 있는데, 삼경이 넘은 시각에 갑자기 담 안으로 뛰어든 자들이므로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씨는 마음을 다잡고 또 말했다.
  "누가 보낸 것이오."
  "조금만 기다리시면 알게 되실 것입니다."
  "어서 대문 밖으로 물러가시오."
  "그리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대군마마를 좀 더 가까이 시위하라는 지시를 받고 이러는 것입니다."
  그때였다. 이계가 나타나 말했다.
  "대군 저하의 옥체를 종친들이 보위하고자 온 것입니다."
  신씨는 이계가 세종의 손자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 이상 물러서라는 말은 못했다. 그래도 그들의 무례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담 밖에 군사가 있거늘 칼을 든 무리가 담 안으로 들이닥칠 일은 아닌 듯 싶습니다. 집안 식구들에게 두려움을 주는 일이 아닙니까. 하인들을 보십시오. 무서워서 벌벌 떨고 있지 않습니까."
  "그랬다면 사과 드리겠습니다."
  이계는 무사들에게 마당 한쪽에서 무릎을 꿇고 경계하라고 지시했다. 그런 뒤 다시 말했다.
  "군사들이 담 밖에 경계를 서고 있다지만 자객이 나타날 수도 있어 담 안에 무사를 배치한 것이니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대군 저하께서는 어디 계십니까."
  "지금 만나시려고요."
  "화급한 일입니다. 친견해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어서 뵐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신씨가 방으로 들어가자, 대문 밖에 있던 윤형로와 구수영, 덕진군도 마당으로 들어섰다. 신씨는 진성대군을 보더니 놀랐다. 자고 있는 줄 알았는데, 어느 새 의관을 정제하고 단정히 앉아 있었다. 마치 최후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처럼 처연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마, 세종의 손자이신 운산군 대감이 왔습니다."
  "운산군 형님이 나를 해치려 온 것이 분명합니다. 형님은 주상 전하의 은혜를 받은 종친입니다."
  진성대군은 갑자기 품 안에서 단도를 뽑아들고 말했다. 이제 연산주가 장녹수의 꼬임에 빠져 자신마저 제거하려 한다고 진성대군은 생각했다. 신씨는 진성대군이 팔을 붙들고 말했다.
  "마마, 고정하십시오. 종친이 오신 것은 마마께 도움을 주시려고 찾아온 것입니다."
  "도움이라니, 무슨 도움을 주겠다는 것입니까."
  "대궐에 변괴가 일어난 것이 분명합니다."
  "대궐에 무슨 변괴가 일어났다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마마."
  "변괴라니... 부인, 나는 이제 어찌하면 좋겠소."
  "종친이 오신 것은 마마를 모시고 새 세상을 열겠다는 것입니다. 이 나라의 정통을 이으실 분이 마마뿐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런 말씀 마시오. 나는 부인과 함께 평범하게 사는 것이 소원이오. 나는 운산군 형님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오."
  "마마, 임금의 자리는 하늘이 내리는 것입니다. 사람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옛 말에도 하늘의 명을 따른 자는 살고, 거스른 자는 망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마마께서는 하늘의 명을 거역하지 마십시오."
  "부인, 오늘 밤은 꼭 내 옆자리를 지켜주시오. 믿을 사람은 부인밖에 없어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마마. 무슨 일이 있더라도 마마와 함께할 것입니다."
  
  진성대군을 가까스로 진정시켜 놓은 신씨는 방문을 열고 이계 일행을 맞아들였다. 방안으로 든 일행은 갑자기 예를 갖추어 진성대군에게 큰절을 했다. 이계가 먼저 말을 꺼냈다.
  "대군 저하, 초저녁부터 소란을 피워 많이 놀라셨을 줄 압니다. 너그러이 용서해주신다면 소신들은 더욱 신명을 바쳐 모시겠습니다."
  "운산군 형님, 신명이라니. 주상 전하가 계신데 무슨 망발입니까."
  "이제 주상 전하를 폐주라 부르심이 마땅하실 것입니다. 그러니 폐주에 대한 두려움은 놓으셔도 좋을 것입니다."
  "폐, 폐주라니 당치 않은 말씀이오."
  "이제 이 나라는 대군 저하의 나라입니다. 그러니 두려움을 놓으시고 위의를 보이소서."
  진성대군은 이계의 말에 도리질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는 신씨를 보고는 용기를 내어 말했다.
  "하루아침에 주상 전하 형님을 폐주라 하니 당황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소. 지금 나는 실로 황당해서 무어라 말을 못하겠소."
  진성대군은 목덜미에 독충이 기어가는 듯한 전율을 느끼고 있었다. 며칠 전만 해도 연산주의 협박에 죽을 고비를 간신히 넘겼던 것이다. 즉 연산주가 사냥을 갈 때 말을 타고 함께 따라 갔는데, 돌아올 무렵에 연산주가 "나는 흥인문으로 들어갈 터이니 너는 숭례문으로 들어오너라. 나보다 뒤에 오면 마땅히 군법으로 다스리겠다"고 겁을 주었던 것이다. 연산주의 말은 준마인 데다 흥인문이 숭례문보다 대궐로 들어가는 길이 더 가까웠으므로 이미 경기는 잔혹한 연산주에게 진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때 진성대군이 수심에 가득 찬 채 두려움에 떨고 있자, 영산군 이전(李恮)이 "걱정 마십시오. 내 말은 임금이 타신 말보다 빠르기도 하고 나는 내 말을 잘 다룹니다" 하고 즉시 영산군이 하인 복장으로 갈아입고 말을 다루니 진성대군이 연산주보다 대궐에 먼저 도착하여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신씨가 이계의 주장을 거들었다.
  "운산군 대감은 마마를 위해서 진심으로 말씀 드리고 있습니다. 마마께서는 운산군 대감의 뜻을 받아들이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또한 운산군 대감께서는 마마께서 왜 하늘의 명을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말씀해주시는 것이 합당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대감들의 말씀을 진언이라 믿지 않겠습니까."
  신씨가 이계에게 한 말은 남편인 진성대군이 바꿔진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합당하게 얘기하여 설득해보라는 주문이었다. 이계는 연산주의 무도함과 패악을 이야기하며 반정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말했다.
  "성종의 승하와 함께 왕위에 오른 폭주는 너무도 많은 무도한 짓을 저질렀습니다. 즉위 초에는 전조의 치평(治平) 기운이 남아 있어 어느 정도 하늘의 도가 유지되었습니다만 재위 4년째부터는 폭주의 악한 본성이 나타나 두 차례나 옥사를 일으켜 어처구니없게도 많은 사림들을 포악하게 죽이는 참극이 일어났습니다. 무오, 갑자사화의 참혹함이 그것 아니겠습니까. 임금으로서 자질이 의심되는 바 더 이상 나라를 맡길 수 없는 것입니다."
  윤형로도 이계의 말을 자르며 거들었다.
  "폐주의 방탕한 생활로 나라는 가난해지고 민생은 도탄에 빠져 도둑이 날뛰는 흉흉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패륜이 극에 달한 것은 부모가 돌아가셨는데도 3년상을 금하고 단상제(短喪制)를 명한 일이었고, 성균관을 주색의 연회장으로 만들어 기생이 뛰놀게 했습니다. 그뿐입니까."
  무예에 뛰어난 이효성도 연산주의 잔인함을 열거했다.
  "최근에는 더욱 황음하고 패악한 나머지 대간과 시종 가운데 쓸 만한 사람이 없어졌습니다. 형벌의 포악함이란 입에 담기조차 어려울 지경입니다. 가슴을 빠개는 착흉(斮胸), 토막내 자르는 촌참(寸斬), 몸을 단근질하는 포락(炮烙), 뼈를 갈아 바람에 날리는 쇄골표풍(碎骨飄風), 묘를 파헤쳐 시신을 절단하는 부관참시(副棺斬屍) 등 폭군이 아니고서 어찌 이와 같은 형벌을 가할 수 있겠습니까."
  구수영은 비교적 점잖게 말했다.
  "문신들의 직간을 귀찮게 여기어 경연과 사간원, 홍문관을 없애버리고 온갖 상소와 상언, 격고 등의 제도를 중단시켜버린 것은 뒷날 두고두고 허물이 될 것입니다."
  덕진군은 사뭇 강압적으로 진성대군을 몰아붙였다.
  "대군 저하, 폭주를 더 이상 주상으로 인정하지 마십시오. 지금 광화문에는 백성들이 몰려들어 아우성입니다. 대전에 있는 폭주를 끌어내 단죄하라고 소리치고 있습니다. 어디 백성뿐입니까. 조정의 모든 대신들, 왕실의 종친부에서도 모두 등을 돌렸습니다. 이제 이 나라의 주인은 대군 저하이십니다."
  "밤이 너무 늦었습니다. 그러니 오늘은 물러가십시오. 찾아온 분들의 충정을 따르겠으니 이만 물러가 계시오."
  진성대군은 갑자기 들이닥친 이들이 쏟아놓은 말들이 부담스러웠다. 주색잡기로 왕실의 명예를 더럽힌 덕진군의 입에서는 술 냄새까지 풍겼다. 진성대군은 무엇보다 허락 없이 들이닥친 그들의 무례가 싫었다.
  
  밖이 조용해진 후 방문을 열어보니 그들은 물러갔지만 무사들은 여전히 마당가에서 경계를 서고 있었다. 진성대군은 또 다시 신씨의 손을 잡았다. 중압감과 어지럼증 같은 것으로 무거웠던 머리가 신씨의 손을 잡음으로 해서 씻어지는 듯했다. 진성대군은 솔직하게 말했다.
  "부인, 나는 임금 되는 것이 싫소."
  "그러시면 아니 되십니다. 하늘의 명을 거스르지 마셔야 합니다."
  "어찌 저 자들의 말을 따라야 합니까. 하늘의 명이 아니라 이것은 저 자들의 명입니다."
  "마마, 임금은 몇 사람이 욕심을 낸다 해서 바꾸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의 명이 아니라면 누구라도 임금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부인은 내가 임금 되는 것을 하늘의 명이라 생각하는 것이오."
  "그렇습니다. 저들이 오늘 밤 찾아와 얘기했다 해서 임금이 되시는 것이 아닙니다. 저 자들은 동녘하늘을 지나가는 구름장에 불과합니다. 넓은 하늘의 해는 이미 밝게 떠오를 뜻이 있었습니다."
  "부인, 정녕 그렇습니까."
  "마마께서는 임금이 되실 운명을 타고난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대군의 생각에 머물러서는 아니 됩니다."
  그래도 진성대군은 신씨와 대궐 밖에서 평범하게 살고 싶었던 아쉬움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그의 입에서는 아쉬움이 흘렀다.
  "부인, 나는 부인의 손을 꼭 잡고 욕심 없이 살고 싶었소. 그것이 내 꿈이었소. 욕심을 부리다가 패가(敗家)한 종친을 너무 많이 봐 왔던 때문이오."
  진성대군은 자신이 임금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괴롭고 슬펐다. 반면에 신씨는 아버지 신수근이 신윤무의 부하들에게 살해당한 줄도 모르고 희미하게 미소를 흘렸다. 진성대군은 잠자리에 누워 곧 잠이 들었으나 신씨는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여 잠을 이루지 못했다. 무거운 바위 하나가 가슴을 짓누르는 듯하여 벌떡 일어나 숨을 길게 몰아쉬었다.<계속>
  
  *[정찬주 연재소설] "하늘의 도"는 화순군 홈페이지와 동시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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