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환 외교통상부 제1차관을 비롯한 외교부 고위 당국자들은 7일 한국을 방문한 미 국무부의 니컬러스 번스 정무 담당 차관과 로버트 조지프 군축·안보 담당 차관을 각각 만나 6자회담 재개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결의안 이행방안 등을 폭넓게 논의했다.
특히, 미 국무부 내의 강경파로 분류되는 조지프 차관은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참여를 압박하기 위해 방한한 것으로 풀이되기도 했으나 정작 박인국 외교부 외교정책실장과의 면담에서는 전혀 이를 논의하지 않은 것으로 발표돼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우리 정부 "국내법만으로도 가능하다" 상세히 설명
이날 조지프 차관과 박 실장 간의 면담 후, 우리 정부 당국자는 "PSI와 관련된 문제는 논의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유엔 결의안 1718호의 이행에 대한 양국간 의견 교환은 있었지만 이와 PSI는 연관이 없다는 설명이었다.
그 대신 우리 측은 남과 북의 선박이 상대측 해역을 항행할 때 무기 또는 무기 부품 수송을 금하고 이를 위반할 때는 해당 선박에 승선, 검색할 수 있도록 명시한 기존의 '남북해운합의서' 내용을 미국 측에 상세히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반도 주변 수역에서는 국내법에 해당하는 합의서만으로도 유엔 안보리 결의 1718호에 적시된 북한선박 검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한 것이다.
이는 정부가 미국 요구에 따라 PSI에 정식 참여하더라도 북한을 자극할 수 있는 한반도 주변 수역에서는 PSI 활동에 참여할 수 없다는 속내를 우회적으로 전달한 것으로 해석된다.
"北에 '사전조치' 요구한다는 것은 말도 안 돼"…'경고음'
번즈 차관과 유 차관의 차관급 전략대화에서는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핵실험으로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했다고 평가받는 북한이 6자회담을 핵군축 회담으로 바꾸자는 주장을 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한-미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다시 한번 못 박은 것이다.
이에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어렵게 열린 6자회담에서 핵보유 국가임을 주장하는 것은 한반도 비핵화를 목표로 하는 6자회담 정신에 배치돼 6자회담을 지지하는 여론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그런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는 미국이 6자회담이 시작된 후 이른 단계에서 북한에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 재개 및 일부 핵시설 해체 등 '선행조치'를 요구할 것으로 전망되는 데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정부 당국자는 "조건 없는 회담 재개라는 말은 지난 번 6자회담 재개를 합의할 때 합의 당사자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가 일관되게 설명한 바 아니냐"며 "오늘 회담에서 '6자회담 사전조치'라고 하는 표현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고 확인했다.
이 당국자는 또 "미국 측에서 '사전 조치'를 얘기한다면 힐 차관보가 얼굴을 걸고 한 말과 배치되는 것"이라고 쐐기를 박았다.
이는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부 장관이 지난 1일자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6자회담이 재개되면 다른 참여국들과의 협력을 통해 북한이 핵프로그램을 종료하는 구체적인 행동을 취하도록 하겠다"면서 핵시설 가운데 하나를 해체하거나 IAEA 사찰을 재개토록 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고 말한 데 대한 우리 정부의 거부의 뜻으로 풀이된다.
그 동안 미국이 선행조치를 요구하는 것은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이라는 6자회담의 기본 원칙에도 어긋나는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그러나 조지프 차관은 6일 시오자키 야스히사 일본 관방장관과의 회담에서 향후 6자회담 진행과정에서 북한 측에 핵포기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결과물'을 요구키로 한다는 데에 합의해 회담이 시작되면 북한에 선(先)행동을 강력히 요구할 수도 있음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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