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실험에 가장 흡족해할 나라는 다름 아닌 북한이다. 북한은 핵실험을 통해 정권의 생존을 보장받으려고 했고 적어도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다한 것 같다. ... 반면, 가장 손해를 본 나라는 미국이다. 전 세계적으로 미국의 패권이 약해져 가는 상황에서 북한의 핵실험은 미국의 마지막 보루였던 동북아에서마저 미국의 주도권을 밀어내고 말았다."
세계적인 석학인 이매뉴엘 월러스틴 예일대 석좌교수는 지난 1일 자신이 소장으로 있는 페르낭 브로델 센터에 기고한 칼럼 <난마처럼 얽힌 북한문제, 승자는 누구인가? (The North Korean Imbroglio: Who Gains?)>을 통해 북한 핵실험의 최대 승자로 당사자인 북한을, 최대 피해자로는 미국을 꼽았다.
월러스틴 교수는 북한의 핵개발을 방치할 경우 "동북아 전체가 핵무장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단 일본이 핵 프로그램을 짜기 시작할 것이고 남한과 대만도 그 대열에 합류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월러스틴 교수는 북핵을 다루는 부시 행정부의 태도에 대해 "뭘 해야 하는지 모르는 모양이다"고 혹평했다.
미국이 주도해 유엔 안보리에서 채택된 대북제재 결의안을 두고는 "'너덜너덜한 넝마(limp rag)' 같아 북한이 만든 게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였다"며 "만일 민주당 정부가 이런 결의안을 만들어 내놨으면 존 볼튼(제재결의안 채택을 주도한 유엔주재 미 대사)이 제일 먼저 제재결의안의 유약함을 비난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월러스틴은 이어 결의안의 실효성에 불안을 느낀 라이스 국무장관이 직접 동북아를 순방하면서 한국과 중국에 대해 강력한 대북제재를 설득했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고 말했다. 결국 미국이 공언했던 강력한 대북제재는 허사로 돌아갔다는 지적이다.
일본도 겉으로는 매우 유감스럽다며 미국과 함께 강경대응을 부르짖고 있지만 내심으로는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을 것이라고 월러스틴은 진단했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아베 신조 정권은 추진하는 평화헌법 개정과 핵 보유 등을 정당화할 명분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사실 미국의 네오콘들은 일본의 핵무장을 공공연히 주장하고 있다. 아시아에서 미국의 지위를 강화하는 동시에 북한에 대한 군사행동의 가능성을 높이겠다는 속셈에서다. 그러나 "일본의 핵 프로그램은 이들의 의도와는 정 반대의 결과를 가져오기 쉽다"는 것이 월러스틴 교수의 판단이다. 미국과 일본이 50년 간 동맹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이 미국의 핵우산 아래 있었기 때문인데, 일본이 핵을 가지게 되면 일본은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독자적 행동에 나설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결국 북한의 핵실험은 일본과의 관계에서도 미국에게는 손해인 셈이다.
중국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기분이 좋지 않다. 북한의 핵실험 강행으로 북한에 대한 중국 영향력의 한계가 드러났을 뿐 아니라 이미 핵을 갖고 있는 중국에겐 북한 핵보유가 대만과 일본 등 주변국들의 '핵욕심'을 부추기게 될 상황이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이처럼 명확하게 손익을 계산해 내던 월러스틴 교수도 남한을 두고는 "가장 어려운 위치에 있는 나라"라고 평가했다. 집권당은 북한에 포용정책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야당은 일본처럼 미국과 동맹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등 여론상 '중도'가 없다는 것이다.
월러스틴 교수는 "이 문제는 남한의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도 최대 이슈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관련 링크: http://fbc.binghamton.edu/commentr.htm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