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지도부는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김근태 당 의장 주재로 비상대책위원회의를 열고 장시간 향후 정계개편의 방향에 대해 격론을 벌였다.
당 지도부는 그간 논의된 통합 신당, 재창당 등의 정계개편 방안을 두고 논의했으나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일단 앞으로의 정계개편 논의를 비대위 중심으로 '체계적이고 심도깊게' 진행해나가자는 원칙만을 확인했다.
"정기국회 이후" 강조…당내 파열음 삭히려는 듯
이날 오후 5시부터 3시간 반 동안 진행된 비대위 회의 직후 박병석 비대위원은 "비대위는 정기국회 기간에는 국정감사를 원만히 마무리 짓고 입법안과 예산안을 마무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데에 합의했다"고 강조했다.
이는 통합신당 논의의 속도조절을 꾀하는 한편 통합신당과 재창당을 두고 각기 다른 주장을 내세우고 있는 각 계파 간의 파열음 누출을 막기 위한 미봉책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열린우리당은 오는 2일 의원총회를 열어 정계개편 등에 대한 의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기로 했으며, 그 이전에 비대위를 한번 더 열기로 했다. 박 위원은 "의총이 열리는 2일 당일 비대위가 한번 더 열릴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이날 오전 천정배 의원이 공식 제안한 '당내 특별기구' 설치 여부도 이날 비대위에서 한번 더 논의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날 비대위에서는 비대위원 상당수가 '별도의 특위 구성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나타낸 것으로 전해졌다.
비대위 '무질서한 퇴각은 공멸' 공감
일단 "비대위를 중심으로 체계적이고 심도깊게 논의해 나갈 것"이라는 이날의 결정은 당 내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통합론' 쪽으로 모아지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퇴각'(민주당-열린우리당 분당 상황의 해소, 즉 통합)에도 질서가 필요하다 주장 자체에 대해서는 퇴각 자체를 반대하는 일부 친노직계를 제외하면 당내에 이견이 크지 않은 상황이다.
또한 천 의원이 이날 '신당창당'과 '당내 특위구성'을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하기 이전에 김근태, 정동영 등 대주주가 의견을 먼저 모은 정황도 드러나고 있다. 최근 천 의원의 한 측근 의원은 "전부 다 깨고 다시 해야 한다"면서 "(각 계보의 전략통들인) 이목희, 민병두, 박영선 의원과 일을 같이 하면 참 잘 될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는 당내에서 김근태계, 정동영계, 천정배계가 이미 뜻을 모으고 있다는 말이나 민주당과 재통합, 노무현 대통령의 배제 여부, 고 건 전 총리의 배제 여부 등 구체적 내용에 대해선 이견이 적지 않다.
이처럼 당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통합론이 비대위에서도 그대로 수용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으나 이날 비대위 회의는 일단 각 계파의 목소리를 청취하고 본격적인 조율 절차는 의총 이후로 미룬 것으로 보인다.
회의가 끝난 뒤 비대위원들은 극도로 말을 아끼는 가운데 일부 위원만이 "재창당론, 통합신당론 주장이 모두 나왔고, 의견이 모아지지 않는 가운데 '정기국회 이후 재론' 주장도 있었다"고 '난산'의 분위기를 전했다.
이는 당내에서 통합론이 다수를 점하고 있더라도 아직 설득과 조율의 절차가 많이 남았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더 이상 주요 변수도 아닌 청와대
신당 준비 특위 등에 대한 최종적인 결론은 다음 달 2일로 예정되어 있는 의원총회가 끝나야 알 수 있겠지만 현 상황에서 청와대는 주요 변수가 아니란 점이 흥미롭다.
최근 청와대가 이해찬, 조영택, 오영교, 문재인 등 정무특보단을 출범시킨 것과 관련, 한 여당의원은 "이해찬 총리는 이제 소수파일 따름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당과 별 관련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윤태영 대변인이 "대통령은 지역분할 구도를 강화하는 쪽으로 가는 데는 찬성하지 않는다"고 볼멘소리를 했지만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우리당 간판으로 되겠냐"고 말할 정도로 신당 자체에 대해선 청와대도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는 분위기다.
신당론자들 가운데 "신당에서 대통령을 배제해선 안 된다"는 인사들이 없지 않지만 그들 역시 '도의 상'이라는 말을 덧붙이는 것이 현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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