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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바뀌었어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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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바뀌었어요, 지금."

[정찬주 연재소설 '하늘의 道'] 제7장 반정 전후 <35>

병인년(1506) 9월 초하루.
  무서리가 소금을 뿌린 듯 하얗게 내린 새벽이었다. 심순경은 오줌을 서너 줄기 누고 다시 방으로 들어와 누웠다. 간밤에 박원종을 만나고 돌아온 심순경(沈順徑)은 한숨도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새벽을 맞이하고 있었다. 박원종에게 반정에 동참하라는 부탁을 받고 돌아왔던 것이다. 평소에 박원종과 교분이 몹시 두터웠으므로 거절할 수 없었을 뿐더러 그 역시도 연산주에 대한 반감이 컸던 참이었다.
  심순경은 누운 채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온갖 생각으로 잠이 올 리 없었다. 박원종이 자신에게 했던 말이 다시 떠올랐다.
  "연산에게 몸을 더럽힌 누이가 죽음에 이르러 반드시 원수를 갚아달라고 했소이다. 이제 누이의 한을 풀어주어야 할 때가 다가온 것 같소이다. 비록 처자와 형제일지라도 이 일을 알리지 마시오."
  심순경은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홀어머니가 기거하는 안채는 벌써 불이 켜져 있으나 누이부부가 살고 있는 아래채에는 아직 불이 켜 있지 않았다. 심순경은 장검을 들고 뒤뜰로 나가 늙은 감나무 아래서 기합을 넣었다.
  야앗야앗!
  잎이 다 떨어져버린 감나무 꼭대기에는 연시 서너 개가 까치밥으로 매달려 있었다. 심순경은 장검을 십여 차례 휘둘러 허공을 베었다. 그러자 흐리멍텅하던 정신이 맑게 깨었다. 그의 입에서는 하얀 김이 장검을 휘두를 때마다 새어나왔다.
  심순경은 다시 장검을 크게 움직여 어깨의 근육을 풀었다. 장검이 허공에서 바람소리를 낼 때마다 굳었던 어깨의 근육이 풀어지는 듯 새벽안개가 차갑게 느껴졌다.
  야앗야앗!
  심순경의 기합 소리에 식구들이 하나 둘 깨어났다. 먼저 홀어머니가 일어나 마당에까지 날아와 뒹구는 낙엽을 쓸었다. 그러자 게으른 종이 뒤늦게 일어나 홀어머니에게서 빗자루를 빼앗았다. 누이도 방문을 열고 밖의 사정을 살피더니 다시 방문을 닫고 나오지 않았다. 누이의 남편 이성동(李盛同)은 태종의 아들 후손인데, 간밤에 술에 취해 돌아와 아직도 곯아떨어져 자고 있는지 코 고는 소리가 났다.
  심순경와 이성동은 처남 매부 사이로 한 집에 살면서도 그리 좋은 관계는 아니었다. 종친부에 있는 이성동이 연산주에게 유흥을 조장하고 비위를 맞추어 총애를 받아 온 반면에 심순경은 성격이 직선적이어서 그러지 못했고, 더구나 지금은 벼슬에서 잠시 물러나 있는 처지였다.
  심순경은 온몸이 땀에 젖자 장검을 놓았다. 그리고는 종에게 물을 가져오게 한 후 웃옷을 벗고 꼿꼿이 서서 냉수마찰을 했다.
  "아범아, 물을 따뜻하게 데워 세수를 하거라."
  "어머님, 날씨가 차갑습니다. 몸 상하시면 안 됩니다. 소자 걱정 말고 어서 따듯한 방으로 들어가십시오."
  심순경은 홀어머니가 종의 부축을 받고 방으로 들어가자, 바지마저 벗고 온몸에 물을 끼얹어 땀을 씻었다. 심순경은 몸을 깨끗이 씻고 반정에 임하고 싶었다. 그래서 온몸을 구석구석 씻고 있는 중이었다.
  '날이 밝으면 훈련원으로 나가리라.'
  심순경은 이미 박원종으로부터 훈련원의 일부 군사를 장악한 후 대기하라는 지시를 받아놓은 상태였다. 박원종의 명령이 떨어지면 그의 군사는 광화문으로 달려가 박원종이 지휘하는 진영(陣營)을 지키기로 약속이 돼 있었던 것이다.
  심순경은 아침을 하는 둥 마는 둥했다. 그러고는 아내에게 술상을 차려오라고 했다.
  "날이 차가우니 아무래도 한 잔을 해야겠소."
  "무예를 하러 밖으로 나가시는 것입니까."
  "교외로 나갈 것이오."
  심순경의 아내는 별 의심 없이 아랫것에게 술상을 보라고 지시했다. 심순경은 무예를 겨룰 때는 꼭 술을 마시는 버릇이 있었던 것이다. 술을 마시고도 과녁을 명중하곤 하여 무부들의 찬사를 받아 온 심순경이었다.
  그런데 이날따라 심순경의 어조는 비장했다. 마치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 사람처럼 말투가 무거웠다.
  "부인, 이 술잔을 보니 감회가 새롭소. 어제 만진 술잔이건만 오늘 보니 새롭게 보이니 말이오."
  "무슨 말씀이십니까. 어제의 술잔 따로 있고, 오늘의 술잔이 따로 있습니까. 당신의 심중을 알 길이 없습니다. 다시는 이 술잔을 만지지 못할 사람처럼 말입니다. 저에게 숨겨둔 이야기라도 있습니까."
  "당신에게 하지 못했던 얘기도 있지요. 허나 그것은 나만이 아니라 이 세상의 다른 남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오."
  "알 수 없습니다."
  그래도 심순경은 희미하게 웃을 뿐 더 이상의 얘기는 하지 못했다. 간밤에 박원종과 처자와 형제에게도 함구하겠다고 약속했던 것이다.
  "부인, 어머니를 모시고 오시오. 어머니께 술 한 잔을 받아 마시고 싶소."
  "그렇지 않아도 어머니께서 걱정스럽게 지켜보고 계시옵니다."
  심순경은 홀어머니에게 가끔 어리광을 부리는 효자였다. 또 다시 당당한 체격에 어울리지 않게 어린 아이처럼 말했다.
  "어머님, 오늘은 여러 친구들과 교외에서 무예를 연습하고자 합니다."
  "무엇을 하겠다는 것이냐."
  "활쏘기를 겨루기로 했습니다. 얼근히 취해서 가겠사오니 어머니께서 술 한 잔 따라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오냐, 아들이 원하니 따라주고 말고."
  "고맙습니다. 어머님."
  심순경은 무릎을 꿇고 노파가 준 술을 받아 단숨에 마시더니 갑자기 엎드려 큰절을 했다. 그러자 노파가 아들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더니 말했다.
  "아범아, 날이 추우니 따뜻하게 입고 나가거라. 술도 이젠 그만 마시고. 아무리 네가 말을 잘 타는 장수라고 하지만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느니라."
  "어머님, 이 술을 한 잔 받으십시오."
  "웬 술이냐."
  "이 술잔에 담긴 술은 어머님의 장수를 비는 술입니다."
  노파는 심순경이 장수를 빈다고 하자 기분이 좋아져 이 빠진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히히히 웃었다.
  심순경은 또 누이를 불러 앉혔다.
  "내 술을 한 잔 받아라."
  "오라버니, 무슨 일이십니까."
  "허허. 무슨 일이 있어야만 술을 마시느냐. 좋아도 한 잔, 궂어도 한 잔, 무심코 한 잔 하는 것이 술이 아니더냐."
  "무심코 주는 술은 아닌 것 같습니다."
  "네 남편은 아직도 자는 모양이구나."
  "임금님이 베푼 연회에 갔다 온 것 같습니다. 주는 대로 다 마시고 나서는 밤새 토악질을 하더니 저렇게 곯아떨어져 있습니다."
  "그래도 좋은 일이야. 전하의 총애를 받고 있으니."
  "좋긴 뭐가 좋습니까. 임사홍의 똘마니지요. 사람들이 얼마나 임사홍을 욕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뭐라고 하느냐."
  "제 명에 못 살 거라고 합니다. 염라대왕이 곧 임사홍의 목을 낚아채 갈 것이라고 수군댑니다."
  "네 남편이 임사홍의 비위를 맞추며 살고 있다는 말이냐."
  심순경의 술을 받아 마신 그녀는 거침없이 말하다가 제풀에 꺾이어 입을 다물었다. 심순경은 끝까지 그녀의 투정을 받아주더니 일어나 갑옷과 장검, 그리고 활을 챙겼다. 안개가 자욱하여 해는 아직 보이지 않고 있었다. 심순경은 말을 타고 집을 나섰다. 식구들은 모두 방으로 들어갔지만 홀어머니와 그의 아내만이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심순경을 물끄러미 쳐다볼 뿐이었다.
  
  한편, 김수동을 찾아갔던 성희안은 김수동을 만나지 못했다. 가는 길에 갑자기 배가 아파 집으로 귀가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성희안은 낮 동안 내내 배를 감싸고 누운 채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정하는 날이라도 좋으니 끝가지 회유시키라는 박원종의 당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의원이 급하게 다녀간 뒤 성희안은 투덜거렸다.
  '에잇, 앞뒤가 꽉 막힌 영감을 어디다 써먹으려고.'
  투덜거리는 소리를 들은 듯 사인이 물었다.
  "무슨 걱정이 있사옵니까."
  "배가 아파서 해본 소리니 괘의치 말게."
  "과로하신 데다 신경을 많이 써 일어난 곽란(癨亂)이라 하니 편안하게 쉬십시오."
  "큰일을 앞두고 어찌 마음이 편안하겠는가."
  "영화도 건강하셔야 길이 누릴 수 있는 것 아니겠사옵니까."
  "이렇게 몸이 아프니 말일세, 영화고 뭐고 다 귀찮아. 건강하게 사는 것이 제일 큰 복인 것 같아."
  "그렇사옵니다. 건강하지 못하면 권세도 영화도 다 남의 것이 되기 마련이옵니다. 그러니 대감께서는 몸을 잘 보존하셔야 하옵니다."
  "알겠네. 헌데 김수동 영감만 생각하면 목에 가시가 걸린 것 같다네."
  "아직도 만나지 못했사옵니까."
  "만나기야 했지. 헌데 요지부동이야. 살면서 그렇게 꽉 막힌 영감은 처음이라니까."
  그때였다. 박원종에게서 소식이 왔다. 날이 어두워지면 즉시 광화문으로 달려오라는 반정의 첫 소식이었다. 성희안은 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났다. 마침내 시기를 엿보던 반정이 시작된 것이었다.
  "말을 준비하게. 내일 아침 해가 뜰 때까지는 식구 중 아무에게도 나의 행선지를 밝히지 말게. 나는 지금 광화문으로 갈 것이네."
  "대감님, 김수동 어른은 어찌하시고요."
  "아참, 그렇지. 그 영감을 만나야 박 대감에게 내 체면이 서게 되지."
  "그렇사옵니다. 김수동 어른을 만나셔야 하옵니다."
  성희안은 말구종 없이 혼자 말을 몰았다. 석양이 하늘을 벌겋게 물들이며 지고 있었다. 지는 해가 연산주처럼 처량하고 슬프게 보였다. 그러나 해도 뜨면 지고, 달도 차면 기울게 마련이었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이자 순리였다.
  성희안은 광화문으로 바로 가지 않고 사인의 충고대로 김수동 집을 다시 찾아갔다. 무슨 일인지 김수동은 일찍 퇴궐하여 마당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김수동은 성희안을 보더니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성희안은 고개를 굽히고 말했다.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 달려왔습니다."
  "저번에 하던 말씀이라면 돌아가시는 게 좋을 것이오."
  "나라 사정이 급변하고 있습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저는 지금 입안에서 침이 마르고 애가 탈 정도입니다."
  "허허."
  "충분에서 하는 말이니 내치지 마십시오."
  "나라 사정이 급변하고 있다고 말씀했습니까."
  김수동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내일 장단의 석벽으로 연산주가 유람할 때 영상 이하 육조 판서들이 대동하기로 했는데, 도승지의 전언에 의하면 조정이 뒤숭숭하여 유람을 취소한 것밖에는 모르고 있었다. 호남에서 올라온 격서의 파문에다 반정이 있을지 모른다는 해괴한 소문이 돌아 연산주가 유람을 취소한 것이었다.
  "호남으로 귀양 간 이과 등이 거병하여 서울로 올라온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전하를 몰아내고 진성대군을 옹립한다는 격서도 이미 팔도에 나돌고 있습니다. 격서를 아직 보지 못하였습니까."
  "격서라니 처음 듣는 말이오."
  "죄 지은 자들이 거병하였다 함은 반란군이 아니겠습니까. 어찌 그들에게 나라의 운명을 맡길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아니 되지요. 전하를 두둔하자는 게 아닙니다. 조선 왕조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입니까. 태조로부터 성종에 이르기까지 천도와 인도를 지켜 온 왕조가 아닙니까. 다만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듯 오늘의 왕조는 잠시 천도와 인도를 잃고 있을 뿐이오. 그러니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 우리들은 백성 편에서 자기 자리를 충실하게 지키며 때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오."
  김수동은 성희안을 방으로 맞아들였다. 밖에 세워놓고 박대했던 것이 미안했던지 뒤늦게 사과했다.
  "성 대감, 미안하오. 날이 차니 어서 방으로 듭시다."
  "영상 대감, 진심으로 드리는 말씀이오니 흘려듣지 마시고 움직여 주십시오."
  방으로 들자마자 성희안은 김수동의 두 손을 잡아끌며 통사정을 하듯 말했다. 방 안에는 단 둘만 있으니 무엇이 두려워 망설이느냐는 투로 매달렸다.
  "영상 대감, 이 방에는 대감과 또 누가 있습니까. 아무도 보고 듣는 사람이 없으니 마음을 열고 말씀해 주십시오."
  "이는 나라의 큰일이오."
  "그래서 이렇게 찾아와 백성들의 인망이 두터운 영상 대감의 뜻을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애초에 이 일의 내용을 알지 못했는데 어찌 한 재상의 말만 듣고 바쁘게 서둘 수 있겠소."
  김수동은 고침을 끌어당기더니 머리를 뉘며 말했다.
  "나는 원래 부모님 묘 옆에서 시묘살이를 하고 있어야 할 불효자식입니다. 참으로 딱한 처지에 놓인 사람이 무슨 면목으로 나선단 말이오."
  "영상 대감, 왜 생각을 숨기시고 그러십니까."
  "난 생각을 숨긴 적이 없어요. 성 대감, 나에게 무슨 야심이 있어 보입니까. 야심이 있어야 무슨 생각을 숨기든지 말든지 하지요."
  성희안은 고침(高枕)을 베고 누워 있는 김수동을 보면서 자신의 인내에 한계를 느꼈다. 더 이상 김수동에게 매달리는 것은 굴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엉거주춤 일어서면서 말했다.
  "다시 한 번 생각하고 말씀해 주십시오. 반란군에게 이 나라를 맡길 것입니까. 아니면 영상 대감이 나서 이 나라를 지킬 것입니까."
  "성 대감, 내가 꼭 필요하다면 내 머리를 베어가시오."
  김수동이 고침에 기댄 머리를 들어 올리며 목을 내밀었다.
  "진정 영삼 대감의 뜻이 그러합니까."
  그러자 김수동은 이번에는 책상 위에 머리를 얹으며 말했다.
  "내 머리라도 필요하다면 베어가시오."
  "영상 대감, 동지들이 반정을 하려 함은 동지들이 권력을 갖고자 해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허허. 성 대감은 지금 역성혁명(易姓革命)을 일으키려 하는 것이 아닌가요."
  역성혁명이란 왕의 성이 바뀌어 왕조가 달라지는 혁명을 말했다. 이를테면 태조 이성계가 고려 왕조의 왕씨를 무너뜨리고 이씨 조선왕조를 세운 혁명과 같은 것이었다.
  "영상 대감께서는 오해가 깊으신 듯합니다. 박원종 대감이나 유순정 대감이 임금이 되고자 해서 반정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누가 새 임금이 된단 말이오."
  "성종의 친 아드님이신 진성대군밖에 누가 또 있겠습니까."
  "진성대군이라 한다면 반대할 사람이 아무도 없겠지요."
  "이래도 나서지 아니하겠습니까."
  김수동의 고집이 누그러진 틈을 타 성희안은 다시 주저앉아 매달렸다. 김수동의 태도는 좀 전과 달랐다. 고침에 머리를 눕히지 않고 뭔가 각오를 한 듯 바르게 앉아 성희안의 얘기를 들어주고 있었다.
  "전라도에서 거병한 반란군이 서울에 오려면 이레가 걸릴 것입니다. 격서가 올라온 지 이틀이 지났으니 한시가 급합니다."
  "진성대군을 새 왕으로 옹립한다고 했습니까."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성 대감, 좋소. 내 마땅히 광화문 앞으로 나갈 것이니 먼저 가시오."
  밖은 벌써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석양은 보이지 않았고 붉게 타오르던 놀도 잿빛으로 변해 있었다. 성희안이 말을 몰아 흙먼지를 날리며 바람처럼 사라지고 나자, 김수동은 그제야 의관을 정제한 뒤 가마를 타고 광화문으로 나갔다.
  
  이 무렵.
  심순경의 누이는 남편의 친구로부터 반정이 일어나 훈련원에 무부와 군사들이 모이고 광화문에 박원종, 성희안, 유순정이 진영 안에서 반정을 진두지휘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제야 술에서 깨어난 남편 이성동이 일어나 울고 있는 아내를 보고 말했다.
  "목이 마르오. 찬물 좀 주시구려."
  "찬물 마시고 정신 좀 차리시오. 세상이 바뀌었어요, 지금."
  "뭐라고 했소, 부인."
  "사람들이 몽둥이를 하나씩 들고 광화문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정전에 계신 임금님을 저잣거리로 끌어내어 죽이겠다고 아우성입니다."
  "헛헛헛."
  이성동은 기가 막힌 듯 헛웃음을 쳤다. 그러더니 눈을 휘둥그레 뜨고 아내에게 물었다.
  "처남은 어디 갔소."
  "군복으로 갈아입고 아침 일찍 나갔소."
  "헛헛. 처남은 광화문으로 갔으니 살겠고, 나는 이제 죽겠소."
  "당신이 죽다니 무슨 말씀이오."
  "나는 죄를 많이 졌으니 장차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오."
  연산주의 패악과 유흥을 도왔으니 그 죄가 크다는 자책이었다. 그러나 이성동은 자신이 지은 죄도 죄지만 처남 심순경이 야속하여 한탄을 했다.
  "인정이 없구려. 친동기가 한 집에 있는데도 알리지 않았구려."
  심순경의 누이와 이성동은 이불을 쓴 채 서로 붙들고 울었다. 갑자기 통곡 소리가 나자, 안채를 지키던 심순경의 홀어머니도 나와 함께 눈물을 흘렸다.<계속>
  
  *[정찬주 연재소설] "하늘의 도"는 화순군 홈페이지와 동시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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