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유엔 제재 결의안 이행 논의 차 한국을 방문했던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유엔 회원국들은 각자의 레버리지를 통해 북한의 핵 폐기를 이끌어 내야 한다"며 제재 동참을 강조했다.
이에 반기문 외교부장관이 "개성공단 사업은 북한의 개혁 개방을 촉진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을 뿐 아니라 순수경제적인 측면뿐 아니라 정치적 측면이 있다는 것을 미국 측도 잘 알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경협 계속 입장을 공고히 하자, 이튿날 <뉴욕타임스>에서는 "라이스 장관이 실망했다"는 풀이가 나오기도 했다.
이처럼 북한의 최대 원조국인 중국과 경제협력을 계속하고 있는 한국이 북한과 연결돼 있는 돈줄을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해 북한 압박에 동참해야 한다는 것은 부시 행정부의 한결같은 주장이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고립'을 전제한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뉴욕타임스> 국제관계 고정 칼럼니스트인 니콜라스 크리스토프는 "미국의 고립 정책과 제재가 북한, 쿠바, 미얀마, 이란 등 세계에서 장수하기로 손꼽히는 정권들을 떠받쳐 온 힘"이라고 꼬집었다. 독재정권의 원동력인 민족주의, 전체주의 등이 모두 미국이란 '공적'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또 미국의 제재 일변도 정책은 독재정권의 경제적 실정을 떠다 넘기기에도 적합한 대상이었다는 설명이었다.
크리스토프는 "고립과 제재를 통한 독재정권 부양을 그만두자"고 제언하며 특히 부시 행정부가 남한에 개성공단 사업 중단을 압박하는 것을 '큰 실수'라고 지적했다.
크리스토프는 개성공단이 계획대로 2012년까지 70만 명의 북한 주민을 고용하게 된다면 북한 사회에 자본주의와 개방의 물꼬가 트이게 되는 길일 뿐 아니라 김정일 정권에도 '제재' 이상의 압박이 될 수 있으리라고 전망했다.
"북한 정권의 최대 위협은 미국의 군함이 아니라 다이어트를 하고 '아이팟'으로 사랑 노래를 들으며 시시껄렁한 코미디 쇼를 보는, '다른 한국인'을 목격하는 것"이란 주장이었다.
다음은 22일자 <뉴욕타임스>에 실림 크리스토프의 칼럼, <북한에 뚱보를 보내자(Send in the Fat Guys)>의 전문이다.
북한 주민 한 사람이 남한을 방문했다. 도로 위의 차를 보며 그는 남한에 대한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남한 정부가 다른 나라에서 빌려온 것들이라 생각했다. 그때 그를 초대한 남한 주민이 차갑게 말했다. 고층 빌딩들을 빌려오는 것이 훨씬 힘들었노라고.
외부 세계의 자극은 북한의 전체주의를 깨부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다. 그러나 우리는 수십 년 간 김정일과 공모해 북한 주민들을 고립시키느라 그 기회를 번번이 놓쳐 왔다.
최근 미국에서는 북한의 핵실험이 빌 클린턴의 탓이냐 조지 부시의 탓이냐를 두고 논쟁을 벌이고 있다.
빌 클린턴이 지금까지 수 백 개, 앞으로도 매년 50개씩 핵무기를 더 만들어낼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놓은 것이 사실이다. 그 대신 클린턴은 북한과 협상을 했다. 그 결과 북한은 그가 재임하고 있던 8년 동안 단 일 온스의 플루토늄도 추가 생산하지 않았다.
반면, 부시 대통령은 그의 정권만을 떼어놓고 보자면 북한 핵을 완벽하게 동결했다. 북한은 새 플루토늄을 생산하지 못했다. 그러나 부시는 콜린 파월의 협상 노력을 산산조각 내 버렸다. 이미 북한은 핵무기를 대량생산해 낼만한 플루토늄을 갖고 있었고 부시 대통령은 북한의 핵무기가 8개로 추정되는 현실을 목도해야 했다.
그러나 넓은 안목에서 보면 북한의 핵실험과 김정일 정권의 건재는 비단 부시나 클린턴만의 탓이 아니다. 정권을 막론하고 수 십 년 간 계속돼 온 미국의 북한 고립 외교 전반이 책임져야 할 문제인 것이다.
우리가 경멸해 온 정권들을 한 번 살펴보자. 북한, 쿠바, 미얀마, 이란… 모두 세계에서 장수하기로 손꼽히는 정권들이며 미국이 그들에게 가해 온 고립과 제재가 실제로는 그들 정권을 떠받치는 효과를 내 왔다. 이들 정권의 지도자들은 모든 실정의 책임은 미국에 떠넘기면서도 또 미국 덕분에 민족주의를 고취시킬 수도 있었던 것이다.
김정일 역시 북한의 전체주의를 보존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으로 고립된 북한을 아예 포름알데히드 용액에 담가 두는 편을 택했다. 사실 김정일이 북한을 제재 속에 방치해 뒀다면 우리는 그를 부추긴 면도 적잖다.
1970년 대 북한이 장막 밖으로 머리를 내 민 적이 있다. 북한은 남한과 협상을 시도했고 외국 조사관들을 찾았으며 지미 카터에게 편지를 보내기도 해 카터는 북한의 지도자를 캠프 데이비드로 초대하는 계획을 고려하기도 했다. 그의 보좌관들이 기겁을 해 계획은 무산됐지만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 만남을 실제로 열었더라면, 그래서 북한과 교역을 장려하고 접촉을 늘려 왔더라면 북한 정권은 지금쯤 붕괴하지 않았을까. 적어도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유연해지기는 했을 것 같다.
나는 198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중국에 살며 공산주의 이데올로기가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래서 나는 북한을 침식시키는 최선의 길은 각 기업의 임원들을 파견하는 것이라 확신한다. 그것도 좀 체중이 많이 나가는 사람들로 말이다. 정부가 기아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쌀밥을 많이 먹어 몸무게가 불어난 사람을 훈계하는 다큐멘터리를 방송하는 북한 같은 나라에서는 뚱뚱한 외국인을 직접 보여주는 것만큼 위협적인 일도 없을 것이다.
북한 정권의 뻔뻔스러운 핵실험을 응징해야 한다는 부시의 말은 옳다. 실제로 부시 행정부는 지난 몇 주간 연속적으로 응징 방안을 내 놓으며 민감하고 빈틈없이 이 일에 대처해 왔다. 그러나 북한이 6자회담을 거부한 이후부터 우리는 줄곧 이미 전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나라를 더 고립시키겠다고 애써 왔지만 실패한 만큼 이제는 그 지루한 전략으로부터 멀어질 때가 왔다.
특히 그 누구보다 북한의 위협에 가장 직접적으로 노출돼 있으면서도 우리보다 더 많이 북한을 이해하고 있는 남한이 운영하고 있는 북한의 개성공단을 비난한 것은 우리의 가장 큰 실수다.
북한의 노동자들이 힘이 없고 노동자들에게 지급된 임금이 군부의 자금으로 쓰일 가능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개성공단에 있는 남한 공장들은 2012년까지 무려 70만 명의 북한 주민을 고용할 예정이다.
북한은 아무리 가혹한 제재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정권이다. 그러나 주민 70만 명이 남한의 자본주의를 위해 일하면서 남쪽 사람들은 부유하고 돌멩이가 들어 있는 밥 따위는 먹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그 정권이 지속될 수는 없을 것이다.
북한 정권의 최대 위협은 미국의 군함이 아니다. 북한 정권의 최대 위협은 바로 다이어트를 하고 '아이팟'으로 사랑 노래를 들으며 시시껄렁한 코미디 쇼를 보는 '다른 한국인'을 목격하는 것이다.
자, 이제는 '친애하는 지도자'가 그 인민들을 고립시키는 작업을 그만 도와줘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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