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북한의 실패, 미국의 실패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북한의 실패, 미국의 실패

미래연의 '지구촌 분석과 전망' <56> 북한 핵실험과 미국의 대응

1. 북한의 핵실험: 벼랑끝 전술의 실패
  
  북한의 핵실험 강행으로 한반도가 출렁거리고 있다. 10월 3일 핵실험을 하겠다고 공언한 지 일주일도 안 되어 9일 전격적으로 북한은 핵실험을 강행했다. 핵실험을 통해 핵보유를 공식화하겠다는 북한의 시나리오는 이미 짜여져 있었고 그 각본대로 신속하게 집행됐다. 핵실험 선언을 알리는 외무성 성명 내용과 핵실험 성공을 밝히는 외무성 성명 내용이 거의 그대로 판에 박은 듯 유사하고, 10월 9일 오전 10시35분의 핵실험이 감지된 지 한 시간이 조금 넘은 11시 45분경 '방사능 누출이 전혀 없는 안전한 핵실험'이 성공했다고 성명을 발표한 것 자체가 이미 실험의 결과와 성공 여부를 확인도 안한 채 성명 내용이 준비되어 있었음을 역으로 입증하는 것이다. 결국 북한은 멋대로의 계획과 전략에 따라 핵실험을 진행한 것이다.
  
  북한의 핵실험 강행 의도는 미국을 압박하기 위한 벼랑끝 전술로서 이른바 레드라인을 넘으려는 것이었다. 지난 해 2.10 핵보유 선언으로도, 올해 7.5 미사일 발사로도 미국의 양보를 얻어내지 못하자 북한은 미국이 인내하기 어려운 레드라인, 즉 핵실험을 넘어섬으로써 미국에게 위기감을 조성하고 이를 통해 미국을 협상장으로 끌어내려는 것이었다. 전형적인 극단적 벼랑끝 전술의 일환이었던 셈이다. 9.19 공동성명 이후 북한의 불법 활동을 이유로 미국이 취한 대북 금융제재의 해제가 없는 한 회담장에 나올 수 없다는 북한의 입장은 이번 핵실험으로 위기상황을 한껏 고조시키고 이에 놀란 미국이 양보하기를 바라면서 최후의 카드를 사용한 것이다.
  
  물론 미국의 양보를 얻기 위한 벼랑끝 전술 이외에도 이번 핵실험은 추가적인 부수적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우선 핵실험을 통해 핵보유 사실을 확인함으로써 향후 만약에 있을지도 모를 미국의 제한폭격 등 군사적 공격을 오히려 억지해내는 역설적 효과도 노렸다. 핵무기가 있는 이상 미국의 선제공격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게 된 것이다. 또한 북은 핵실험을 통해 대미 대결의 장기화에 대비하고 있는 주민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대내적 결속을 다지는 통치기제로도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더욱이 우여곡절 끝에 미국과 협상이 시작되면 핵실험을 하기 전보다 핵실험 이후에는 분명 핵포기의 댓가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북의 몸값이 역으로 올라가게 된 것이다.
  
  미국을 압박해서 양보를 얻어내려는 벼랑끝 전술 이외에 이러저러한 다양한 의도와 목적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핵실험의 가장 선차적 목적은 바로 미국의 양보, 즉 태도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었다. 그 이외의 목적은 사실상 미국이 움직여서 협상장에 나오지 않을 경우 무의미하거나 북미간 최후의 극단적 대결상황을 대비한 부차적 목적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핵실험 이후 미국은 결코 북한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북한의 핵실험에 미국이 놀라기는커녕 아주 '절제된' 자세로 6자회담 복귀를 촉구하는 외교적 수사를 내세우면서 신속하게 유엔을 내세워 본격적인 제재에 돌입했다. 핵실험에 화들짝 놀라 북미 협상에 나서고 북한에 양보할 것이라는 김정일 위원장의 기대는 하나도 이루지 못했다.
  
  여전히 김정일 위원장은 1994년의 기억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미국이 감내하기 힘든 레드라인을 살짝 넘으면 결국 미국은 북이 원하는 협상에 나설 것이라는 주관적 기대에 빠져 있는 것이다. 클린턴 행정부 당시 미국이 용인할 수 없었던 레드라인은 이른바 수조에 저장된 폐연료봉의 인출과 재처리 시도였고 이를 간파한 북은 1994년 봄 연료봉 인출을 직접 시도함으로써 한편으로는 미국의 북폭 시도라는 극적 대결을 감수하면서도 결국은 카터 전대통령의 특사방북 이후 자신이 원하는 바의 대미 협상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2006년의 현실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1994년의 성공 기억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상황을 한참 잘못 본 것이었다. 2006년의 상대는 클린턴이 아니라 가장 완고한 대북관을 가지고 있는 부시 대통령이고 이미 미국은 9.11 테러 이후 불량국가의 대량살상무기 확산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단호한 입장을 갖고 있으며, 대북 양보가 굴복이자 비굴한 행위라는 인식이 확산되어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2006년 김정일 위원장이 1994년의 기억 속에 단행한 핵실험의 벼랑끝 전술은 애초부터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2. 미국의 대북 제재: 실패의 가능성
  
  북한의 벼랑끝 전술이 사태를 제대로 파악 못하고 실패로 끝난 것처럼 그 이후 미국이 취하고 있는 대응 역시 절반의 성공에 머무르고 있는 듯하다. 우선 미국은 북한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북한이 원하는 바를 전혀 들어주지 않는 확고한 모습을 보였다. 북이 원하는 바가 바로 미국의 위기의식이고 호들갑이기 때문에 부시 행정부는 그 어느 때보다 절제되고 침착한 태도로 대했고 북한이 요구하는 양자협상과 금융제재 해제는 일언지하에 묵살해버렸다. 북한의 벼랑끝에 대해 확고부동한 무시 정책으로 일관한 것이다.
  
  그리고 6자회담 복귀라는 외교적 수사와 함께 유엔 안보리에서의 기민한 논의를 거쳐 중국과 러시아까지 끌어들여 신속한 대북 제재를 공식 결정했다. 절대 북한의 벼랑끝에 굴복하지 않음을 단호하게 보여주면서 북한을 압박하기 위해 전면적 제재에 착수한 것이다. 오히려 북이 핵실험으로 얻고자 했던 미국의 금융제재 해제 문제는 이번 안보리 결의를 통해 사후적으로 국제적 정당성을 확보함으로써 이후에도 결코 양보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미국이 북의 벼랑끝 전술에 확고한 무시 정책으로 임한 것은 성공적이었지만 유엔을 통한 대북제재에 착수한 것이 과연 미국이 의도하는 바의 북한 굴복을 얻어낼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북한의 의도에 말리지는 않았지만 미국이 원하는 대로 북한을 완전 굴복시키지 못한다면 이 역시 절반의 성공에 그치기 때문이다. 이번 안보리에서 통과된 1718호 제재 결의는 지금까지 북핵과 관련되어 통과되었던 몇 차례의 의장성명이나 권고 수준의 결의안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북핵문제에 관해 북한을 제재하겠다는 분명하고 공식적인, 구속력있는 결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향후 유엔 회원국은 안보리 결의에 따라 다양한 내용과 방법으로 대북 제재에 동참함으로써 결의안을 이행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완전히 승리하려면 핵실험에 대한 대응으로 취한 제재의 방식이 북한의 완전굴복을 얻어낼 수 있어야 한다. 즉 제재의 위력에 눌려 김정일 위원장이 스스로 항복을 선언하고 핵을 포기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최소한 제재의 효과에 의해 북한 체제의 근본적인 변환이 가능해야 한다. 그러나 과연 제재의 방식으로 북을 굴복시키거나 북한체제의 변환(transformation)을 가져올 수 있을지는 회의적인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미 오랫동안 제재에 익숙해 있고 봉쇄에 내성이 강한 북한이 과연 이번의 제재를 통해 견디지 못하고 굴복할 것 같지 않고, 더욱이 보다 결정적으로는 북한의 정치경제적 생명선 역할을 하고 있는 중국이, 북한이 견디지 못할 정도까지 제재에 동참하기는 아직 기대하기 어렵다. 북중관계의 최근 이상기류를 감안하더라도 중국이 북한의 추가 도발을 막기 위한 압박의 성격으로서 제재동참은 가능하지만 북한의 완전 굴복이나 체제붕괴의 수준에 이르기까지 제재를 전면화할 가능성은 낮다.
  
  결국 제재를 통해 미국이 원하는 바대로 김정일 위원장이 견디지 못하고 항복을 선언하기는 당장 어려운 것이다. 항복이 아니라 김정일 체제의 근본전환을 목표로 한다 해도 이 역시 중국의 머뭇거림과 북한의 체제 능력 및 내구력 등을 감안할 때 지금 제재의 방식으로 북한체제의 변화를 얻기는 아직 힘들어 보인다. 결국 미국이 제재를 통해 더 이상 북한의 벼랑끝에 절대 응하지 않겠다는 단호함을 보여주는 성과는 가능하지만 북한의 완전굴복과 근본변화를 이끌어낼 정도의 성과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이 역시 절반의 성공에 불과한 것이다.
  
  3. 실패하지 않는 성공을 위하여
  
  이처럼 북한의 벼랑끝도 결국 실패하고 말았고 미국의 대북 제재도 성공하지 못하는 것이라면 가장 합리적인 방식은 더 이상 북도 벼랑끝을 지속해선 안되며 미국 역시 제재를 위한 제재에 매몰되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향후의 상황은 이와 정반대로 갈 가능성이 높다. 즉 북한은 지금까지의 벼랑끝이 효과가 없음을 알고도 이를 그만두기보다는 반드시 성공시키기 위해 더 높은 수준의 위험한 벼랑끝을 강행할 가능성이 충분하고, 미국 역시 대북 제재가 소기의 목적을 완전히 달성하기 힘듦을 알고도 협상에 나서기보다는 제재의 수위를 높이고 장기화함으로써 북한체제 변환에 적극 나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지금의 북핵 위기와 한반도 상황을 극단적인 방향, 즉 파국으로 몰고 갈 것이다. 벼랑끝에 절대 굴하지 않는 미국에게 끊임없이 벼랑끝을 가하는 북한, 제재에 굴복하지 않는 북한에게 지속적인 정권붕괴와 체제변화를 노리는 미국, 이 둘은 결국 접점을 찾지 못하고 파국의 길에 이를 수밖에 없다.
  
  이제라도 북한은 벼랑끝이 성공하지 못함을 인식하고 당장 회담장에 복귀해야 하며 미국 역시 제재만능주의가 성공하지 못함을 깨닫고 협상의 여지를 마련하고 진지하게 대화에 나서야 한다. 이 길 외에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는 일은 없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