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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시간은 우리 편"

[정찬주 연재소설 '하늘의 道'] 제7장 반정 전후 <34>

성희안은 집을 나서다 말고 뒤따라 나온 사인에게 엽전꾸러미를 던졌다. 최근에 일이 풀리지 않고 자꾸 꼬이기만 하여 답답하던 차에 이조판서 유순정이 반정에 가담하겠다는 의사를 서신으로 보내왔기 때문이었다. 성희안은 그의 부탁대로 서신을 보고나서는 즉시 태워버렸지만 이조판서 유순정의 모습이 눈앞에서 자꾸 어른거렸다. 유순정은 권신(權臣)에게 아부를 잘하거나 인맥을 잡고서 출세한 벼슬아치가 아니라 조정 안팎에서 성종 때부터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선비였던 것이다.
  "유순정 대감의 소식을 듣고 박 대감께서 뭐라 하시던가."
  "박수를 치면서 아주 기뻐하셨사옵니다. 지금 대감을 만나 술을 한 잔 하고 싶다고 하셨사옵니다."
  "당연히 가서 나도 기뻐할 것이네."
  장수나 군관들의 가담은 속속 늘어나고 있었으나 인망이 높은 문신들의 동조는 가뭄에 콩 나듯 하였기에 유순정의 합류는 분명 희소식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무오년과 갑자년에 연산주의 명으로 청류 선비들이 대부분 화를 당하여 조정에는 간신과 소인배들만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유순정 대감이 가담하겠다고 하니 비로소 안정감이 드네. 박원종 대감과 나, 그리고 유순정 대감이 합세하니 누가 보더라도 3대장 같지 아니한가. 비유를 하자면 마치 큰 가마솥에 세 개의 발을 가진 삼발이가 놓인 것처럼 말이네. 그렇지 아니한가."
  "대감, 그렇사옵니다."
  유순정은 반정을 모의한 이후 지금까지 성희안이 은밀하게 접촉한 대신 중에 가장 인망이 두터운 사람이었다. 박원종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축하의 술을 한 잔 하자고 사인 편에 전해 왔던 것이다.
  "유순정 대감도 참석했으면 좋으련만."
  "박 대감님께서 사람을 보냈으니 유 대감님께서도 곧 박 대감님 댁으로 오실 것이옵니다."
  "그리했다니 잘 됐군, 잘 됐어."
  성희안은 기분이 한껏 고조되어 두 손을 크게 움직여 소맷자락을 펄럭이며 집을 나섰다. 며칠 전에 우의정 김수동을 만나 그의 마음을 떠보려다가 일언지하에 거절당한 일이 있는데, 그날의 떨떠름한 뒷맛까지 개운하게 씻어지는 느낌이었다.
  성희안이 야심한 밤을 이용하여 김수동 집을 남모르게 찾아갔을 때, 김수동이 '나는 부모를 잃은 죄인이오. 비록 임금님의 명에 의해 단상법(短喪法)으로 상복을 입지 아니하고 조정의 녹을 먹고 있으나 아직 상중(喪中)이오' 하고 더 이상 세상 얘기를 거론하지 못하게 막아버렸던 것이다.
  성희안은 말을 타고 긴 수염을 만지작거리면서 천천히 박원종 집으로 갔다. 앞서 가는 행인들이 길을 비켜주지 않아도 기분이 좋은 탓에 지그시 내려다보고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박원종의 집은 성희안의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또한 두 사람의 집 중간에는 신윤무의 집도 있었다. 이처럼 서로가 한 동네에 살았음으로 반정을 모의하는 데 변복을 하지 않고서도 수시로 만날 수 있었다.
  박원종의 행랑채 아랫것들이 성희안을 알아보고 달려와 고개를 숙였다.
  "나으리, 대낮에 어인일이시옵니까."
  "대감님은 계시느냐."
  "지금 손님을 만나고 계시옵니다."
  "손님이 누구시더냐."
  "쇤네는 처음 뵌 분이라 모르겠사옵니다. 다만, 가마를 타고 오신 것으로 보아 지체 높으신 분 같았사옵니다."
  그렇다면 유순정이 틀림없었다. 조금 전에 사인으로부터 유순정이 올 것이라고 전해 들었던 것이다.
  "어서 대감께 내가 왔다고 일러라."
  "네."
  성희안은 기다리지 않고 아랫것의 뒤를 따라 사랑채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아랫것이 성희안이 왔다고 이르자, 박원종의 목소리가 크게 났다.
  "어서 드시라고 해라."
  과연 방 안에는 유순정이 박원종과 마주 앉아 있었다. 유순정이 박원종을 만나고 있는 것은 성희안이 삼고 초려한 성과였다. 성희안이 반갑게 말했다.
  "일찍 퇴청하셨습니다."
  "뱃속이 거북하여 집에서 쉬고 있다가 이리로 왔소이다."
  "참으로 잘 오셨습니다. 유 대감을 학수고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유순정은 실제로 뱃속이 불편한 것인지 얼굴을 펴지 못하고 있었다. 또한 반정에 참여하려는 자신의 결정에 아직도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는 것도 같았다. 그러나 박원종이 술상을 준비하라 하고 왕실의 최근 분위기를 전해주자 얼굴에 조금씩 화색이 돌았다.
  "대감, 왕실은 이미 전하에게 등을 돌렸소이다. 왕실의 종친들 대부분이 누군가가 나서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소이다."
  "왕실 종친들이라고 했습니까."
  "종친부의 운수군이나 이계 대감 같은 이들 모두가 전하에게 등을 돌린 지 오래 됐소이다. 제가 이처럼 자신 있게 나서고 있는 것은 그분들의 힘이 큽니다."
  "이계 대감은 전하께서 은혜를 베풀어 귀양을 면했는데도 그렇다는 말씀이십니까. 처음 듣는 얘기라서 심히 놀랍습니다."
  "사사로운 감정으로 거사를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백성을 구하고자 하는 충분(忠憤)에서 나선 것입니다. 전하와 그 수족의 간신들만 모를 뿐 새 세상을 갈구하는 민심은 이미 강 밑을 흘러가는 저류처럼 도도하게 흐르고 있소이다. 유 대감, 진정 잘 선택하셨소이다. 누구도 민심의 흐름을 역류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박 대감, 나라고 어찌 충분이 없었겠소이까."
  "나는 유 대감의 마음을 알고 있기에 내 집으로 모신 것입니다. 아무에게나 어찌 함부로 천기를 누설할 수 있겠소이까. 유 대감과 함께라면 천기를 말해도 좋을 만한 큰 그릇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성 대감, 아니 그렇습니까."
  성희안은 마지못해 나선 것 같은 유순정의 마음을 달랬다.
  "자, 대감. 술을 드시지요. 맹약의 술입니다. 이 술로써 우리는 한 운명이 될 것입니다. 이 술로써 우리는 한 배를 탄 것입니다."
  박원종도 어금니를 물었다 놓으며 거들었다.
  "성 대감의 말이 맞소이다. 옛 장수들은 백마의 목을 베어 그 붉은 피로 맹약을 했습니다. 이 술은 백마의 피와 같소이다. 그렇지 않습니까. 유 대감."
  "좋습니다. 이 유순정이도 목숨을 기꺼이 바치겠소이다. 나라를 구하고 백성을 구하는 데 무엇을 주저하겠소이까."
  세 사람은 술잔을 높이 들고 부딪쳤다. 박원종은 다시 이를 악물었고, 성희안은 수염을 손바닥으로 쓸었고, 유순정은 감정이 격해지는 듯 입술을 떨었다.
  "대감, 이 유순정은 이 순간부터 사사로운 욕심을 버릴 것이오. 오직 대의명분에 따라 말하고 행동할 것이오. 그것이 지금까지 전하를 바르게 보필하지 못한 속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오."
  박원종은 허공을 바라보다가 두 사람을 똑바로 응시했다.
  "유 대감, 바로 그것입니다. 유 대감을 만나 천군만마를 얻은 것처럼 기뻐하는 것도 바로 유 대감의 그러한 인품을 흠모해서입니다."
  "아니, 무슨 말씀을 그리하십니까."
  "우리가 만난 벼슬아치들 대부분은 그것이 없소이다. 선비가 선비답게 보아지는 양심 말입니다. 연산주를 잘 보필하지 못한 것에 대한 최소한의 참회는 있어야 그들을 용서하고 믿지 않겠소이까."
  "그러하겠습니다."
  "허나 이런 난세에도 단 한 사람 예외가 있소이다."
  "그 사람이 누굽니까."
  박원종은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김수동 대감이오."
  세 사람 모두 이론이 없었다. 그러나 김수동을 끌어 들이는 것에 실패한 성희안은 벌레 씹은 얼굴을 했다.
  "성 대감, 내 말이 틀렸습니까."
  "틀렸다는 것이 아니고 김 대감이야말로 남산의 바위처럼 꿈쩍을 않습니다. 아무리 건드려도 조금도 미동을 하지 않으니 답답할 뿐이지요."
  "그래도 다시 만나보시는 것이 어떻겠소. 반정하는 날에라도 말이오. 이 박원종이 왜 김수동 대감에게 매달리는지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알지요. 알고 말구요."
  유순정은 왕실에서부터 김수동에게까지 반정의 손길이 뻗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러고 보니 왕실 종친부터 조정 대신에 이르기까지 반정세력의 촉수가 미치지 않는 데가 없었다. 무관들에게 존경을 받는 박원종이고 보면 군사를 움직이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었다.
  유순정은 반정에 가담하는 데 갈등했던 자신이 아둔하고 어리석게도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박원종과 성희안에게 뒤늦게나마 환대를 받으며 끼어든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세 사람은 박원종의 말대로 백마의 피 같은 맹약의 술을 초저녁의 달이 뜰 때까지 기분 좋게 마셨다.
  그러나 신윤무가 들어서며 분위기가 변해버렸다. 군복을 입은 신윤무는 경황이 없었던지 허리에 칼을 차고 있었다. 전에 없던 무례한 일이었다. 칼을 놓고 드는 것이 지체 높은 어른에 대한 무부로서 예의였던 것이다. 박원종은 신윤무의 얼굴을 보고서는 단번에 변고가 생겼음을 알았다. 박원종은 신윤무를 다독이며 말했다.
  "이보게, 귀한 손님 앞에서 무슨 무례인가."
  "한시가 급합니다. 대감."
  "우리 세 사람이 있는데 두려울 일이 무엇인가. 흥분을 가라앉히고 급하다는 사정을 말해 보게나."
  "대감, 큰일 났사옵니다."
  "어허!"
  성희안이 참지 못하고 말했다.
  "우리 거사를 누가 고변이라도 했다는 말이오."
  "고변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큰일이란 말이오. 어서 얘기해 보시오."
  그러나 신윤무는 유순정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이조판서 유순정이 박원종 집에 와 있으리라고는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박원종과 성희안이 대답을 재촉하니 신윤무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쩔쩔맸다. 그제야 박원종이 신윤무의 마음을 간파하고 말했다.
  "아, 유 대감이 있어 그러는 모양이구만. 허나 걱정할 것 없네. 유 대감도 우리와 뜻을 같이하기로 했네. 자네에게 미리 알려주지 못해 미안하이."
  그제야 신윤무는 오만상을 찌푸리더니 군복 속에서 접혀진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대감, 전라도에서 반란군 수괴가 올려 보낸 격서(檄書)이옵니다."
  "격서란 말인가."
  "호남으로 귀양 간 유빈, 이과 김준손(金駿孫) 등이 격서를 팔도에 돌린바 임금의 음란함이 극에 달하여 사직이 위태롭다 하고."
  "무엇이라고!"
  박원종이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위태로운 사직을 지키고자 군사를 일으켜 진성대군을 새 임금으로 추대하려고 한다는 내용의 격서이옵니다."
  "어허."
  성희안이 격서를 펼치면서 자신도 모르게 탄식을 했고, 유순정도 변고라며 안절부절 못했다. 격서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태조는 나라를 어렵게 세웠으며, 세종은 덕화가 밝았고, 성종은 한결같이 선대의 법도를 따라 절약하고, 사람을 사랑하고, 백성을 편안케 하고, 물질이 풍성하여 세상이 태평하게 되었다. 허나 뜻밖에 사왕(嗣王)이 포악하고 인도에 벗어나서 부왕의 후궁을 때려죽이고 옹주와 왕자를 귀양 보내어 죽이었다. 논박하는 대간을 귀양 보내거나 죽이고 대신을 욕보이고, 충성스럽고 선량한 신하를 살해하였으며, 이들의 부자, 형제까지 연좌시킴이 진나라 법보다 더 심하였다. 무덤을 파서 해골에까지 화가 미치게 되었으니 시체를 토막 내는 형벌과 뼈를 부수는 형벌은 무슨 형벌인가. 남의 아내와 첩을 빼앗아 음욕을 마음대로 행하고 남의 집을 부수어 원유(苑囿)를 넓히었다.>
  
  연산주의 패악을 나열해 놓은 격서의 내용은 조금도 과장이 없었다. 격서는 연산주의 패악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었다.
  
  <선왕의 능침은 모두 여우와 토끼의 놀이터가 되고, 선성(先聖)의 사우(祠宇)는 곰과 범을 기르는 우리로 변하였다. 세금을 한없이 많이 거두니 백성들이 생계를 유지할 수 없고, 그뿐 아니라 종실의 형제와 아내와 첩까지도 핍박하여 서로 간통하고, 삼년상은 예로부터 다 행하는 것인데, 그 기한을 짧게 줄이고, 부모의 기일도 또한 모두 폐지시켰으니, 인륜은 무너지고 인도(人道)가 멸망되었다. 그밖에도 토목의 역사(役事)와 노래, 여색을 즐기고 못을 파며 대를 쌓고 사냥을 일삼으며 새와 짐승과 화초를 좋아하는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많은 죄가 걸,주(桀紂)보다도 오히려 더 심하니, 백성들의 고생은 말할 것도 없고, 만일에 크게 간악한 자가 신기(神器; 왕위)를 엿보아 하루아침에 일어난다면 왕조가 바뀌는 화가 생길 것이 두렵다. 성종이 26년 동안 신하들을 잘 대우하고 충의를 배양한 것이 바로 오늘을 위한 것이다. 진성대군은 성종대왕의 친 아드님이다. 어질고 덕이 있어 온 나라의 칭송이 그에게 돌아간다. 이에 아무 아무 등은 진성대군을 추대하여 아무 달 아무 날에 의병(義兵)을 일으키려 한다. 격서를 모든 도에 돌려서 기일을 약속하여 서울로 모일 것이니, 조정에 있는 공경(公卿)과 백관들은 마땅히 곧 진성대군을 추대하여 종실의 위태함을 붙들라.>
  
  진성대군을 추대하겠다는 격서의 주장에는 조금의 억지도 없었으므로 누가 들어도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격서를 다 읽고 난 성희안은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했다.
  "격서를 어디서 구한 것이오."
  "이미 장안에 돌고 있는 격서이옵니다."
  "그렇다면 이과의 군사가 서울로 올라오고 있다는 얘기가 아니오."
  유순정도 충격을 받은 듯 가만히 앉아 있지를 못했다.
  "박 대감,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소이까."
  그래도 박원종은 깊은 생각에 잠겨 미동도 안 했다. 허탈하게 한동안 허공을 응시하더니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 그러자 신윤무가 크게 소리쳐 말했다.
  "대감, 한가하게 자리에 앉아만 계실 것이옵니까."
  "군자부정, 아직 우리에게는 시간이 있어. 이럴 때일수록 냉정하게 움직여야 되는 법이네. 우리 모두의 목숨이 걸린 대사니까."
  "풍전등화 같은 형국이니 빠르게 결단을 내리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암, 물론 그래야지. 헌데 군자부정은 내가 보기에 목숨을 내어놓은 장수 같지가 않아. 목숨을 내어놓은 사람은 아무리 급해도 결코 당황하는 법이 없거든."
  박원종은 신윤무를 조롱하듯 말하고 있었다. 그의 눈에서는 살기 같은 것이 번뜩였다. 그를 응시하던 유순종과 성희안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군자부정, 자네의 칼을 뽑아 밖에 두고 오게나."
  "경황이 없어 무례를 저질렀사옵니다."
  "자네의 무례를 탓하려고 그러는 것이 아닐세. 장수는 칼을 허리에 차고서는 몸과 마음이 얼음처럼 차가워져야 하는 법이라네. 그래야 자신의 목숨을 지킬 수 있지 않겠는가. 허나 자네는 지금 몹시 허둥대었네. 그렇다면 자네의 목숨을 지켜야 할 칼은 결과적으로 무용지물이 아닐 것인가."
  박원종은 신윤무를 거꾸러뜨릴 듯이 표독하게 쏘아보며 말했다. 그 바람에 유순정과 성희안도 주눅이 들어 입을 열지 못했다. 잠시 후 성희안이 겨우 말했다.
  "박 대감, 이 일을 어찌 해야 하겠소."
  "심히 걱정할 일은 아닌 듯하오. 전라도에서 거병한 군사가 서울에 닿으려면 적어도 이레는 걸릴 것이오.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충분한 시간이 있는 것이오."
  "듣고 보니 안심이 됩니다."
  유순종이 고개를 끄덕이며 안도했다.
  "군자부정, 전하의 소식은 어떠한가."
  "모레에 장단 석벽으로 유람을 나가신다고 하옵니다."
  "확실한가."
  "그렇사옵니다. 미리 장단으로 나가 그곳 사정을 정탐하고 온 도승지에게 직접 전해 들었사옵니다."
  그러자 성희안이 반색을 하며 말했다.
  "전하께서 장단으로 행차하신다면 더 없이 좋은 기회입니다. 군사를 일으켜 성문을 닫아 걸고 전광석화같이 진성대군을 추대하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성 대감 말씀대로 기회는 더 없이 좋습니다. 허나 역습을 당할 수도 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지당하신 지적이십니다. 박 대감님의 말이 맞습니다. 전하께서 유람을 가실 때 재상들을 대동하고 갈 것이며, 많은 군사가 호위할 것입니다."
  박원종의 지적을 받아 신윤무가 설명을 했다. 텅 빈 궁 안으로 들어갔다가 오히려 군사들에게 포위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이과의 군사가 서울로 오고 있을지 모르니 하는 말입니다. 아무리 시간이 우리 편이라 하더라도 급하지 않습니까."
  "성 대감, 하루만 더 지켜보고 결론을 내려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하늘과 시간은 우리 편입니다. 이 박원종은 반정의 날을 남모르게 기다려 왔소이다."
  박원종은 하루를 더 조심스럽게 지켜보자고 했다. 그가 그러한 이유는 격서가 장안에 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의금부 도사가 격서의 내용을 연산주에게 고하였다면 궁 안팎으로 비상이 내려질지도 몰랐다. 박원종이 경계하는 것은 바로 그 점이었다.
  그래도 이과가 보낸 격서는 반정의 꿈으로 달아오른 박원종 등에게 찬물을 끼얹지는 못했다. 박원종의 반정 계획을 유예케 하거나 포기시키지 못했던 것이다. 박원종과 성희안을 더 신중하게 만들었을 뿐이었다.
  그들은 내일 다시 모이기로 하고 밤늦게 헤어졌다. 박원종은 신윤무를 붙들고 동원 가능한 군사를 점검했고, 유순정은 먼 집을 핑계 삼아 일찍 자리를 떴고, 성희안은 삼경이 지난 새벽에 박원종의 집을 나와 우의정 김수동의 집을 찾아갔다.<계속>
  
  *[정찬주 연재소설] "하늘의 도"는 화순군 홈페이지와 동시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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