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실험 사태에 대한 대응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10일 열린 국회 통일외교통상위 전체회의에선 대북 포용정책의 지속성을 둘러싼 여야간의 입장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났다. 이런 가운데 전체회의에 참석한 이종석 통일부 장관은 "부분적인 정책 조정이 필요하지만 포용정책의 폐기나 전면 수정이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종석 '수난'…여야에서 문책론
정부는 회의에 앞서 제출한 북 핵실험 관련 보고를 통해 "안보리 결의 헌장 7장을 원용하겠지만 이것은 경제 제재 조치를 위해 필요한 것이지 군사적 조치와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정부는 또한 "북한의 즉각적인 핵 폐기와 NPT 복귀 유도, 국내외적인 의견 교환에 기초해 전략적이고 조율된 대응을 추진할 것"이라며 "유엔 안보리 논의와 조치를 지지하고 미국 등과 긴밀히 협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종석 장관은 "우리가 6자회담의 틀을 만들고 9.19 공동성명을 작성하는 등 여러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북한의 핵실험에 이르고 말았다"면서 "통일부 장관 입장에서 우려할만한 사태 발생에 대해 국민들께 죄송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나 회의 시작 전부터 한나라당 김용갑 의원은 이 장관을 향해 "노무현 대통령과 이 장관은 북핵 개발을 실질적으로 도와준 사람"이라며 "보고를 시작하기 전에 정부가 이 재앙을 막지 못한 데 대해 석고대죄로 사과하라"고 호통을 쳤다. 그는 "나 같으면 한강에 빠지겠다. 이 판에 금강산 관광을 보내면 국민이 어떻게 생각하겠느냐"며 이같이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 장관은 "나도 국민이다"며 불쾌한 반응을 보였고, 김원웅 위원장이 "질서를 지켜달라"고 당부했음에도 김 의원은 "전세계가 흥분하고 있는데 책임 있는 장관이 말이야. 사죄부터 하고 회의를 시작하라"고 거세게 몰아붙였다.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사실상 입안하고 집행해 온 이 장관의 수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이 장관을 비롯한 외교안보라인의 전면 교체를 요구했고, 최재천 의원 등 열린우리당 일각에서도 '이종석 책임론'이 제기됐다.
이 장관은 사태의 책임을 추궁하는 여야 의원들의 요구에 대해 "이 상황을 정리하고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다.
"햇볕정책이 핵개발 원인 아니다"
열린우리당 배기선 의원은 "핵 실험은 새로운 안보환경을 낳았다. 북한에게 배신감을 느낀다"면서도 "평화번영 정책의 실천은 계속하되, 조건의 변화에 따라 전략적인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 의원은 "이 장관은 민족 내부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각오로 북쪽에 직접 가서 대화를 할 용의가 없느냐"고 물으며 이같이 주장했다.
임종석 의원은 "민간 경협의 모멘텀과 인도적 지원을 지속하는 게 중요하다"며 "지금보다 밀도 있는 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그 중에서도 북미 직접대화를 촉구해야 한다"며 "이 문제가 해결돼야 북핵 문제의 해결 실마리를 찾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최재천 의원도 "남북교류 협력, 경제협력은 유지돼야 한다"고 말했고, 이해찬 의원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견지하고 실효성 있는 제재를 결의하는 한편 무력충돌은 회피하는 것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자신의 방북 요구에 대해 "용의는 있지만 지금은 그렇게 할 상황이 아니다"고 피해갔다.
한편 한나라당 의원들은 이번 사건을 대북 포용정책의 총체적 실패로 규정하며 남북 협력 사업의 전면 중단을 요구했다. 이해봉 의원은 "남북 협력기금 집행을 동결하고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사업을 전면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런 과정에서 이 장관은 한나라당 의원들과 대북정책 기조를 둘러싸고 크고 작은 마찰을 빚었다. 박진 의원이 "햇볕정책이 핵폭탄으로 되돌아 왔다"고 주장하자, 이 장관은 "햇볕정책이 핵개발의 원인이라는 분석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이 장관은 "핵개발 방지는 우리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은 "참여정부가 햇볕정책을 전적으로 계승하지 않았다"며 "참여정부가 미국의 북한 제재에 동참한 것이 북한을 고립으로 몰고갔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번 사태는 6자회담만을 통해서 북핵문제를 해결한다는 단선적 접근방법이 실패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종석 "PSI 참여 검토한 적 없다"…유명환 "부분적으로 참여 검토"
한편 PSI(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 참여 문제를 놓고 이종석 통일부 장관과 유명환 외교부 차관 사이의 미묘한 인식 차가 드러나기도 했다.
이 장관은 "우리 정부의 기존 방침은 PSI에 참여하지 않는 것인데 미국 측의 공식 요구가 없어 현재로선 참여 여부를 검토한 적이 없다"고 밝혔으나, 유 차관은 "PSI에 부분적으로,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하려 한다"고 답했다.
PSI는 북한으로 수입 또는 북한에서 수출되는 무기의 수송을 막기 위해 60여개 회원국이 정기적인 정보교환 및 훈련을 하는 것으로, 참여국은 각국의 영해 상에서 북한 선박에 대한 임시 검문을 할 수 있다.
이 밖에 이 장관은 "우리 정부는 북한을 실질적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느냐"는 열린우리당 최성 의원의 질의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유명환 외교부 차관도 "미국은 북한 핵 보유를 인정도 부인도 하지 않는 모호성을 당분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우리 정부는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것을 불용한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또한 북한의 핵무기 수출 가능성에 대해 "예측은 할 수 없지만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당초 통외통위는 이날 북한 핵실험 규탄 및 시정조치 촉구 결의안을 채택해 본회의에서 의결할 예정이었지만, 여야 간의 입장차로 상정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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