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길을 잃었습니다. 오후 한 시에 라말라 사자상 앞에서 '자카리아 모함마드' 시인을 만나기로 하고 예루살렘에서 넉넉잡아 두 시간 전에 출발했건만, 두 시간이나 늦어버렸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라말라까지 차로 죽 달리면 15분이나 20분밖에 안 될 거리를 네 시간이나 걸렸습니다. 중간에 칼란디아 검문소1)에서 세 시간 반은 서서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지요. 검문소를 지나자마자 나는 급한 마음에 택시를 타고 사자상 앞으로 가자고 말했습니다. 물론 사자상 앞에 시인은 없었습니다. 나는 사람들한테 물어물어 공중전화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공중전화는 사자상으로부터 백 미터는 떨어진 골목 어귀 나지막한 건물의 이층, 간판도 없는 사무실 안에 있었습니다. 휴대전화를 받은 시인은 놀랍게도 자기가 아직도 사자상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시인이 잠시 어디 간 동안 길이 엇갈렸다고 생각하고, 사자상 앞으로 뛰어갔습니다.
시인은 보이지 않았으며, 반시간이 또 흘렀습니다. 나는 그 사무실로 다시 가서 전화를 걸었습니다. "나는 사자상 앞에 있는데, 당신은 어디 있는 거예요?" 시인이 먼저 물었습니다. "나도 거기 있고, 이제 동전이 없어요." 나는 초조하게 답했습니다. 공중전화에 넣은 동전이 톡톡 떨어져 내렸습니다. 사자상 앞에서 반시간을 더 서 있다가 나는 세 번째로 사무실로 돌아왔습니다. 내가 오락가락해서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기색이 역력한 사무실 직원들에게 동전을 바꿔줄 수 있느냐고 물어보니, 직원들은 주머니를 뒤져보고 안타깝게 고개를 저었습니다. 나는 마지막 동전을 넣고 시인이 전화를 받자마자 한 마디 외쳤습니다. "사자상!" 전화는 끊겼습니다. 나는 사자상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습니다. '인샬라 (신이 원하신다면)'라는 말의 뜻을 절감했습니다.
자카리아 시인이 말한 사자상은 내가 그 앞에 서 있던 사자 머리 상이 아니라, 거기서 멀지 않은 광장의 사자 전신상들이었습니다. 마침내 시인이 라말라에 사자 두상이 한 군데 더 있음을 기억해내고 찾아와서 우리는 만났으며, 나는 그와 함께 찻집으로 걸어가면서 원래 약속 장소인 사자상들을 비로소 보았습니다. 방금 전에 본 사자 두상도 도무지 사자답잖게 멍했으나, 그 사자상들은 더했습니다. 나중에야 들었지만 그 조그만 광장과 네 귀퉁이 사자상들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건축학과 대학생들이 반대 시위를 했을 만도 했습니다. 그리고 철거될 뻔 하다가 남은 이 사자상들이 라말라 시민들과 함께 이스라엘 침공을 겪은 후 절대로 철거돼서는 안 될 시민들의 친구가 되었다는 것 또한, 나는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그들의 입은 한껏 벌어져 있지만, 내가 보기에 그 사자들은 포효하고 있지 않다. 그들의 소리 없는 으르렁거림이야말로, 내게 그들이 고통 받고 모욕당해 울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2)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또 헤맸습니다. 검문소까지 가는 승합 밴들이, 서 있어야 할 자리에 없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물어도 누구도 왜, 어디로 그 밴들이 가버렸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자주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습니까. 이스라엘의 '보안'을 위해 시도 때도 없이 지도가 바뀌고 지표물들이 이동하지요. 그것이 '보안 사항'이기 때문에 팔레스타인 사람으로서는 물어볼 수조차 없는 이유로 장소가 끊임없이 뒤틀리지요.
벌써 삼 년도 넘은 일입니다. 그런데 나는 여기 한국에서 여전히 헤매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이라는 장소가 내 안에 들어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뒤틀린 땅이 내 안에 들어와, 멍한 사자상이 계속 소리 없이 으르렁거렸습니다. 예컨대 이라크 파병 논란이 일었을 당시, 우리가 살려면 어쩔 수 없다는 이른바 현실론이야말로 내게는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뒤틀려 보였습니다. 하지만 저기 아니면 여기, 그들 아니면 우리, 살기 아니면 죽기라는 식으로 간단히 말하기는 쉬운데, 그게 아니라고 말하기는 무지 어렵습니다. 팔레스타인에서 난민촌이 집안에 든 거주민들과 함께 이스라엘 불도저에 붕괴되고 있다고 말하면, 어떤 이들은 냉철하게 21세기 대한민국의 생존 전략을 대라고 합니다. 내 조국에서 나는 길을 잃었습니다. 반벙어리에 반봉사가 되었습니다.
키파, 당신 말대로 장소 자체는 죄가 없습니다. 지금 당장 우리가 보는 장소는 우리가 선입견으로 만들어낸 모습일 뿐, 그게 다가 아닐 거라고 나도 생각합니다. 그 앞, 뒤, 위, 아래에 뭔가 더 있어야 합니다. 말이 나온 김에 말하자면, 이라크에 파병하면서 북한 핵 문제와 모종의 관계가 있는 것처럼 공공연히 암시되었습니다. 나는 그때도 그랬고 북한이 핵실험을 해버린 지금도 그것이 이라크 파병과 어떤 관계가 있다는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이왕 파병 연장을 주장하던 측들은 그러니까 더욱 미국 비위를 거스르면 안 된다고 언성을 높이겠지만, 파병을 연장하면 '한반도가 질적으로 다른 상황(럼스펠드)'이 되기 이전으로 돌아갈까요? 이라크 파병 덕분에 대한민국이 이제껏 미국의 대북 정책에 끼친 영향이 있기나 한지 의심스럽습니다. 너무도 당연한 것 같은 현실론일수록 도리어 어이없이 허술한 허구일 수 있습니다.
어느 한국 시인의 표현을 빌자면 '말 한 마디, 일거수일투족 시인 티를 내지 않고는 못 배기는' 당신은 이 고정된 현실 너머,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보려는 자입니다. 시적 영감을 얻기 위해 자기만의 사탄의 계곡으로 내려가려는 자이며, 늘 갈 데까지 가서 절벽 끝에서 하늘로 비상하려는 자입니다. 나도 내 사탄의 계곡으로 내려가고 절벽 끝에서 날아오르고 싶습니다. 여기 우리가 살려면 저기 저 사람들이 죽어야 한다는 이 평면적인 세상을, 위 아래로 쫙 벌리고 싶습니다. 높이와 깊이를 보고 싶습니다.
10월 말이면 당신은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갑니다. 팔레스타인은 하마스 집권 후 상황이 최악이고, 여기 한국도 보다시피 결코 좋지 않지요. 당신이 인사동에서, 나는 라말라에서 그랬듯이 우리는 앞으로도 오래 헤매야 할 겁니다. 그러나 '학살자의 나라에서도 시가 쓰여지는 아름답고도 이상한 이유'3)가 있고 '독재와 불의는 세상 어디에서나 얼굴이 똑같으며 또 인간은 어디서나 자유를 추구하는 본능이 있는'4) 한 우리는 결국 만날 겁니다. 가다 보면 우리는 같은 길을 가서, 어느 사자상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 그런 데서 만날 겁니다. 인샬라!
필자 주
1) 예루살렘과 라말라 사이 이스라엘 검문소.
2) 자카리아 모함마드의 산문 '취한 새' 중에서.
3) 진은영 시 '러브 어페어' 중에서
4)' 팔레스타인 시낭독회'에서 키파 판니가 한 인사말 중에서
<'팔레스타인을 잇는 다리'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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