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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르익는 반정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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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무르익는 반정의 꿈

[정찬주 연재소설 '하늘의 道'] 제6장 반정 모의 <32>

신윤무는 하루 종일 군자시(軍資寺)에서 보관하고 있는 군수물자를 점검한 뒤 퇴청시간이 지나 곧장 명경으로 갔다. 최근에 군수물자를 자주 검열하고 있는 것은 군대가 움직이는 반정 때를 대비해서였다. 칼과 창이 녹슬지 않게 했고, 군복도 물량을 충분히 확보해 두어야 했다. 의금부에 하옥된 죄인들을 풀어주면서 군복만 입히면 졸지에 군졸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명경에는 이미 함경도병마절도사에서 은성부사로 좌천되었다가 다시 연산주의 눈 밖에 나 파직된 변수(邊修)가 와 있었다. 멧돼지처럼 생긴 변수는 연산주에 대한 불만이 아주 큰 무관이었는데, 한번 만나자는 신윤무의 연락을 받고 지체 없이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변수 역시도 신윤무를 만나 자리 하나를 부탁하려 했던 것이다.
  초월은 신윤무를 문 밖으로 나가 맞아들였다. 신윤무가 문 밖에서 굳이 초월의 안내를 받아 들어가려고 '이리 오너라, 이리 오너라!' 하고 거드름을 피우고 있었다. 초월은 목소리만 듣고도 신윤무가 온 것을 알았다.
  "나으리, 드시지 않고 왜 서 계시옵니까."
  "아무리 술집이라 하더라도 주인의 허락을 받고 드는 게 모양이 좋지 않겠는가."
  "감히 소첩의 허락을 받다니요. 천부당만부당 하옵니다."
  "허허."
  속살이 살짝 드러나 보이는 모시저고리를 입은 초월을 보더니 신윤무는 눈요기만으로도 만족하여 수염을 쓰다듬으며 다장 안으로 들어서려 했다. 그러면서도 걸음을 늦추어 자기보다 권세가 있는 자가 있으면 나와 보라는 듯 이리 저리 거만하게 두리번거렸다.
  "어서 드시지요. 지금 나으리를 찾는 손님이 오셔서 기다리고 계시옵니다."
  초월은 손님이 함경도병마절도사를 지낸 변수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건달처럼 다장의 여인들이 오갈 때마다 실실 웃음을 흘리고 있는 손님이었다. 변수가 신윤무를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큰 소리로 맞이했다.
  "신 장군, 잊지 않고 불러주어 고맙소이다."
  "변 장군, 요즘 얼마나 답답하십니까. 내 오늘 술 한 잔 사겠소이다."
  변수는 신윤무를 만나고자 고대했던 참이었으므로 내심 좋은 기회라고 여겼다. 연산주의 총애를 받는 신윤무에게 부탁하여 병마절도사는 아니더라도 낮은 직급이나마 하루라도 빨리 복관하고 싶었던 것이다.
  "불러 주셨으니 오늘은 변방의 장수가 술을 사겠소이다. 그럴 일이 있소이다. 있고 말구요."
  "변 장군, 제가 사야지요. 박원종 대감의 부탁도 있고 해서 말이오."
  "아니, 파직된 무관에게 무슨 부탁할 것이 있다고 그러십니까."
  술상을 가지고 온 초월이 방에서 나가기를 기다렸다가 신윤무가 비밀을 털어놓듯 작은 소리로 말했다.
  "변 장군, 이제 장군에게 신바람 나는 일이 생길 것이오."
  "전하께서 복관이라도 시켜준답니까."
  "전하께서 서용하신들 그 직급이 보잘 것이 있겠습니까. 기다리는 김에 푹 쉬시면서 큰 벼슬을 하나 잡아야지요."
  "하긴 나를 은성부사로 좌천시킨 전하께서 다시 부를 일이 없겠지요. 부사로 미끄러뜨렸다고 불평을 한 마디 했더니만 나를 파직시킨 전하였으니 말이오."
  "박원종 대감께서 변 장군을 외롭지 않게 돌봐주라고 했소."
  "무부들의 마음을 알아주는 이는 박원종 대감뿐이구려. 고마운 분입니다."
  "박 대감이야말로 무부들의 대부가 아니십니까."
  "이제 보니 지난달에 양식을 보내준 사람이 바로 박 대감이었던 것도 같소."
  "쉬고 있는 무관들이 누구누구냐고 묻기에 대답한 적이 있소이다."
  "틀림없소. 박 대감이 아니라면 누가 쉬고 있는 우리 무관들을 돌봐주겠소."
  박원종이 무관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그들의 뒤를 알게 모르게 돌봐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지난달에도 변수의 집으로 하인 편에 곡물을 한 수레 보냈던 것이다.
  "곡물을 받으셨다면 박원종 대감이 보낸 것이 맞을 것이오."
  "언젠가 나의 칼이 필요할 때가 있을 것이오. 사내대장부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에게 목숨을 바친다는 얘기가 있지 않소이까. 은혜를 꼭 갚겠다고 전해주시오."
  "변 장군의 용맹이라면 무슨 일이든 이루지 못할 것이 있겠소. 박원종 대감은 변 장군을 반드시 부를 때가 있을 것이오."
  그제야 변수가 자신의 귀를 손가락의 후벼 파며 물었다.
  "아니, 신 장군. 내 용맹이 필요하다니 무슨 말씀이오."
  신윤무도 너무 앞서간 것이 아닌가 하여 주춤했다. 변수도 입이 가벼우니 조심하라고 박원종이 지시했던 것이다.
  "변 장군의 용맹이 필요하다는 것은 장군을 치하하고 싶어 하는 말이지 다른 뜻은 없소이다."
  그래도 변수는 감격하여 팔을 크게 저으며 말했다.
  "나를 따르는 부하들이 아직 많소이다.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올 수 있는 심복들이오. 대감께서 내 힘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불러달라고 전해주시오. 하시라도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가리다."
  신윤무는 변수의 태도를 확인하고는 마음 놓고 술을 마셨다. 변수도 자신을 알아주는 박원종이 있다는 것에 크게 만족하여 대취했다.
  
  한편, 박원종은 세를 규합하는 데 명경을 이용하지 않고 주로 자신의 사저로 사람들을 불러들여 의중을 타진했고, 성희안은 직접 벼슬아치 집들을 찾아다니며 탐색을 했다. 박원종이 자신의 사저로 초대하는 사람들은 주로 왕실의 종친들이었다. 거사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왕실의 묵인이 없으면 그 후유증이 크기 때문이었다.
  신윤무가 변수를 만나고 있는 날, 박원종은 이효성(李孝誠)을 초대하여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마셨다. 정종의 손자인 이효성은 덕천군(德泉君) 후생(厚生)의 아들로 활을 잘 쏘는 등 무예가 뛰어난 왕족이었다.
  "형제분께서는 강녕하신지요."
  "우리 형제는 가끔 활 솜씨를 겨루며 우애를 다지고 있소이다."
  이효성의 형제 모두 왕실의 일을 관장하는 종친부(宗親府)에서 일하고 있는데, 한결같이 학문보다는 무예가 뛰어난 것이 특징이었다. 그런 이유로 이효성 형제는 무관들과 친교가 두터운 편이었다. 신종군(新宗君) 효백(孝伯), 부윤부수(富潤副守; 종4품) 효숙(孝叔), 송림부수(松林副守; 종4품) 효창(孝昌)이 그들인데, 모두가 활과 칼을 잘 다루는 왕족이었던 것이다.
  "활로 우애를 다지고 있다니 참으로 드문 일입니다."
  "왕실의 도덕과 우애가 무너진 지 오래입니다. 그나마 우리 형제는 칼과 활이 있어 우애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지요."
  "운수군(雲水君; 이효성의 군호)께서는 무엇이 왕실의 법도를 무너뜨렸다고 생각하십니까."
  "박 대감은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아진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습니까. 왕실의 법도도 백성들의 법도와 마찬가지로 지극히 평범한 데 있지 않겠소."
  이효성은 왕족으로서 차마 연산주를 직설적으로 들먹이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연산주를 옹호할 생각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종실 왕족들이 최근에는 얼굴을 들고 다니기 힘들어졌습니다. 전하께서 사냥과 연희를 즐기시며 세월을 보내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효성의 말에 박원종은 이를 악물었다. 자신이 경기 감사로 있을 때 연산주가 사냥을 위해 양주, 파주, 고양 등의 마을을 폐지하고 사냥의 놀이터로 삼은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연산주는 동쪽과 북쪽 백리 거리에 금표(禁標)를 세우고 관사와 민가를 헐어버렸던 바 허락 없이 통행하는 자는 사형에 처했고, 나중에는 또 서쪽과 남쪽의 백리 거리에도 금표를 세워 백성들의 원성이 더욱 극에 달했으므로 자신이 나서 분연히 사냥터를 해제해달라는 소를 올렸던 것이다.
  홍문관과 사간원이 폐지되기 전, 대간(臺諫)들의 치욕도 전에 없던 일이었다. 내시의 우두머리 김자원을 보내어 대간들에게 기생들이 부를 가사(歌詞)를 짓게 하였던바 대사헌 이자건(李自健)이 죽음을 무릅쓰고 홀로 다음과 같이 아뢰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전하, 대간들이 기생을 위하여 시를 짓는다면 아마 전하의 성덕(聖德)에 누가 될까 두렵습니다."
  이자건이 눈물로 호소하는 바람에 연산주는 즉시 대간들에게 기생이 부를 가사 짓는 명을 중지시켰는데, 사헌부 집의(執義) 이계맹(李繼孟)은 가슴을 치며 탄식하는 글을 남기지 않을 수 없었다.
  "대사헌 이자건의 직언이 없었더라면 우리들 모두는 뒷사람의 호된 비난을 면치 못하였을 것이다."
  임금의 잘잘못을 지적하는 대간이 이러했으므로 문관과 유생들의 굴욕은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문관과 유생들이 멀리 유락을 나가는 연산주의 연을 메는 가마꾼이 될 때도 있었다. 그런데도 낯간지럽게 출세를 위해 자청해서 연을 맨 선비가 있었으니 훗날 조광조가 이 때를 떠올려 중종에게 다음과 같이 아뢴 적이 있었다.
  "연산군이 유생들로 하여금 연을 메게 했는데도 선비로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붓과 벼루를 소매 속에 넣고 다니면서 상 주는 데 참여하기를 희망하여 선비의 기습(氣習)이 크게 무너졌으니 어찌 한심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마땅히 선비의 기습을 고치고 추향(趨向; 유행)을 바로잡는 것을 급선무로 삼아야 될 것이옵니다."
  
  이효성은 특히 성균관이 잔치를 여는 장소로 바뀐 것에 대해 부끄러워했다.
  "강당과 제사 지내는 집들이 흥청(興淸; 기생)의 음탕한 놀이터로 변하니 신(神)과 사람의 분노가 극에 달한 것 같소이다."
  "이러한 패악을 어찌하면 퇴치할 수 있겠습니까."
  박원종이 은근히 이효성의 심중을 떠보았다.
  "종친으로서 백성들에게 죄스러울 뿐입니다."
  "운수군(雲水君)께는 빼어난 무예가 있지 않습니까. 그것을 형제간의 우애를 다지는 데만 쓰실 생각입니까."
  "종실의 분위기로 봐서는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이지만 무슨 방도가 있겠소이까."
  "종실의 분위기가 그렇소이까."
  "누가 나서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느냐가 문제입니다."
  박원종은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효성에게 가장 확인하고 싶었던 대목이었던 것이다.
  "왕실의 분위기가 진정 그렇단 말입니까."
  "충분에서 하는 말인데 왜 거짓말을 한단 말이오."
  이효성은 사실대로 왕실 분위기를 전하고 있었다. 박원종은 며칠 전에도 이계(李誡)한테서 전해들은 바 있었으므로 바야흐로 반정의 때가 무르익고 있음을 느꼈다. 세종의 손자인 이계도 왕족으로 밀성군(密城君) 침(琛)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그날 이계는 박원종에게 '나야말로 전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이오만 그래도 전하는 왕실의 법도를 어겼소이다. 소혜왕후 제사 날에 음악을 듣고 고기 먹기를 평시와 같이 하였소이다' 하고 말하며 분개했던 것이다.
  이계가 연산주의 은혜를 입었다는 것은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유배를 갈 뻔했으나 연산주의 옹호로 풀려났던 일을 두고 한 말이었다. 그런데도 이계는 연산주에 대해서 반감을 크게 가지고 있었다.
  "이계 대감도 운수군께서 생각하신 바와 같았습니다."
  "그렇다니까요. 종친 모두가 전하에게 등을 돌린 지 오래 되었어요."
  박원종은 잠깐 동안의 침묵을 깨고 말했다. 이효성의 속마음을 간파한 때문인지 대담하게 물었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만한 분이 그리도 없는 것입니까."
  그러나 이효성은 고개를 흔들었다.
  "우리 종친부에서 나설 만한 인물은 없소이다."
  "덕진군(德津君)이 계시지 않습니까."
  "덕진군이라 했습니까. 덕원군(德原君)의 아드님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이효성은 또 다시 고개를 흔들었다.
  "어찌 덕진군을 믿습니까. 관비를 첩으로 삼아 의금부에 연금되었던 사실을 정말 모르고 있었습니까. 덕진군은 우리 종친의 체통에 먹칠을 한 위인입니다. 박 대감께서는 다시는 덕진군을 들먹이지 마시오."
  "허나 덕진군께서 저에게 대단한 호기를 부렸습니다. 전하가 머잖아 폐주가 될 것이라고 단언했습니다."
  "민심이 흉흉한 데다 권세를 탐하여 그랬을 것이니 마음에 담아두지 마시오."
  술이 취하자, 이효성이 허리에 차고 있던 신언패(愼言牌)를 저만큼 내동댕이치며 말했다.
  "여기까지 이런 것을 차고 왔으니 술맛이 나지 않았던 것 같소."
  "하하하. 그러셨겠습니다."
  박원종은 맞장구를 쳐주며 크게 웃었다.
  신언패란 연산주가 신하와 백성들의 불만을 통제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골패였는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글을 새기게 하였다.
  
  입은 화를 가져오는 문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니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간직하면
  어딜 가나 마음이 편하도다.
  口是禍之門
  舌是斬身刀
  閉口深藏舌
  安心處處牢
  
  관리들 모두가 위와 같은 신언패를 차고 다니게 함으로써 실제로는 함구령을 내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반정을 모의하는 데 박원종과 더불어 우두머리 격인 성희안도 평소에 가깝게 지내던 재상들을 찾아가 그들의 심중을 떠보느라 바빴다. 성희안은 연산주에게 반대의 의견을 냈다가 홍문과 부교리에서 파직된 조계상(曺繼商)과 함께 영의정 유순(柳洵)을 찾아갔으나 의례적인 얘기만 주고받고 말았다. 유순이 조정의 일을 얘기하는 데 극도로 말을 아꼈던 것이다.
  "전하께서 홍문관에 이어 사간원마저 폐지한다고 하시는데 영상께서는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전하께서 하시는 일이니 그저 보고 있을 수밖에요."
  "전하께서 상의를 하지 않았던가요."
  "상의가 아니라 지시를 하였지요."
  유순은 짧은 대답을 한 뒤 눈만 껌벅거릴 뿐, 더 이상 얘기하는 것을 꺼려했다.
  "저희들이야 영상 대감의 생각을 따르고자 이렇게 찾아온 것이 아니겠습니까."
  "전하께서 임사홍과 독대하여 그 자의 얘기대로 교지를 내리시니 허울만 영상인 내가 무슨 말을 하겠소."
  간곡하게 청해도 유순은 고개를 흔들 뿐 얘기하지 않으려 했다. 대답을 기다리다 못한 조계상이 연산주가 큰 실정을 저지르고 있다고 논박해도 여전히 입을 다문 채 고개를 끄덕거리거나 눈만 껌벅거렸다.
  "대간을 없앤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전하께서 큰 실수를 하신 것입니다. 두고두고 뒷사람들이 전하를 비난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유순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못했다. 침묵하는 동안에도 여전히 고개를 끄덕거렸다가도 다시 도리질을 했다. 그러니 유순의 심중은 오리무중일 뿐이었다. 성희안이 찔러 물어도 마찬가지였다.
  "일찍이 선왕 때는 이런 일은 없었습니다. 영상 대감,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고말고요."
  "그렇다면 영상 대감께서 한 말씀 하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성 대감, 나는 본래 겁이 많고 소심한 사람이 아닌가요. 내 마음은 성 대감과 다를 바 없으니 그리 아시는 것이 좋겠어요. 얘기를 더 깊게 하고 싶다면 다른 대감들과 의논하시는 게 나보다 도움이 될 것이오. 성 대감을 위해 하는 말이오. 나의 진심이라고 믿어 주시오."
  대세를 따라가겠다는 것이 유순의 태도였다. 반면에 갑자년에 우의정에 오른 김수동(金壽童)은 신중하고 무겁게 반응했다. 무슨 말이든 너무나 진지했으므로 섣불리 말을 꺼내기가 힘들었다. 그에게 세상 얘기를 하려 하자, '나는 상중이오. 비록 전하의 명으로 상복은 벗고 봉직 중에 있으나 어머니를 잃은 죄인이 무슨 할 말이 있겠소. 물론 내게도 할 말은 있으나 상기(喪期)를 마친 뒷날에야 하겠소' 하고 입을 다물었던 것이다.
  성희안이 박원종을 만나 김수동의 비협조적인 태도를 말하자 박원종은 눈을 지그시 감고 말했다.
  "성 대감, 갑자년에 선비들이 참살을 당할 때 미수(眉叟; 김수동의 자) 대감이 있어 그나마 피를 덜 흘린 것이라고 봐야 하오. 미수 대감이 조정에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 위로가 되었지 않소. 지금도 세상의 인심을 크게 얻고 있는 사람은 미수 대감 한 사람뿐이라고 나는 생각하오. 거사가 성공하려면 반드시 미수 대감이 우리 편에 서 주어야 하니 성 대감이 책임을 져야 합니다."
  박원종이 연산주의 조정에서 마음속으로 존경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김수동 단 한 사람이었다. 설령 김수동이 반정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해도 반대만 하지 않는다면 그를 정국공신으로 추대하리라고 박원종은 이미 결심하고 있었다.
  연산주의 충복이라 할 수 있는 한성판윤 구수영(具壽永)이나 예조판서 김감(金勘) 등은 오히려 포섭하기가 쉬웠다. 민심이 흉흉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들은 언제든지 연산주를 배반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세종의 여덟 번째 아들인 영응대군(永膺大君)의 사위인 구수영은 풍류와 음악에 밝았으므로 연산주가 장악원 제조(掌樂院 提調)로 명했는데, 그는 기생들에게 악률을 교육시키고 반듯한 기생을 선발하여 올리는 등 연산주의 유락을 도운 공로로 한성판윤까지 올랐던 인물이었다.
  김감도 마찬가지였다. 연산주의 사냥터에 백성들의 출입을 금한다는 금표의 안내문을 짓는가 하면, 연산주에게 충성을 서약하는 경서문(敬誓文)을 지은 장본인이기도 했다. 김감 역시도 선비들이 참살을 당한 갑자년 이후 예조판서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반정의 징후가 보이자마자 양다리를 걸치려고 하였다.<계속>
  
  *[정찬주 연재소설] "하늘의 도"는 화순군 홈페이지와 동시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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