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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화살이 한 과녁을 맞추듯

[정찬주 연재소설 '하늘의 道'] 제6장 반정 모의 <30>

연산주의 미움을 사 하루아침에 참판 직에서 물러나게 된 성희안은 명경에 나가거나 집에서 술을 마시며 솟구치는 화를 다스렸다. 그날은 집에서 재산과 가노(家奴)들을 관리하는 사인과 함께 술을 마셨다. 사인은 성희안의 고향인 창녕에서 올라와 이십여 년 동안이나 충복 노릇을 해 왔으므로 성희안의 마음을 환히 꿰뚫고 있는 사람이었다. 성희안은 그가 한미한 집안 출신이었으나 먼 조카뻘이었으므로 창녕조카라고 예우해 주었다.
"창녕조카, 신윤무라는 자가 있지 않는가."
"군기시부정 신윤무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렇다네."
"오늘도 우리 집에 와 한 잔 하고 가겠다고 하네. 헌데 난 그 자가 아직도 믿기지 않아. 관직에서 물러난 나에게 줄을 서 무슨 이득이 있다고 찾아다니는지 알 수가 없다네."
"대감,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신윤무는 임금님의 총애를 받는 사람이라고 들었습니다."
사인이 성희안더러 경계하라고 한 것은 신윤무가 연산주에게 충성하기 위해 주고받은 이야기를 고자질할 염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자네 눈에는 그리 비치는가."
"대감, 그렇지 않습니까."
성희안은 수염에 묻은 술을 손으로 닦더니 말했다.
"그 놈의 정체를 알 수 없단 말이야. 내 앞에서 전하를 비난할 때도 있으니 도대체 놈이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지 말이네."
"그것은 대감의 생각을 떠보려고 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럴까. 날 안심시키고자 위장한 것일까."
"아무래도 신윤무에게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어찌 됐든 그 사람 겁이 없는 사람이야. 감히 전하를 비방하다니. 내가 고변한다면 그 자는 물론 삼족이 살아남지 못할 것이야."
사인은 성희안더러 신윤무를 더욱 경계하라고 말했다.
"대감, 신윤무를 믿기 전까지는 절대로 먼저 대감의 속마음이나 생각을 보여주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나도 그리 생각하고 있네. 한 마디로 신윤무는 양다리를 걸치고 있어. 민심이 전하를 떠나 있음을 간파하고는 전하와 박 대감과 나 사이를 왔다갔다 하고 있는 것이네."
"세를 규합하는 것이 어디 쉬운 일입니까."
"혁명은 사람 숫자가 많다고 되는 것이 아닐세. 혁명에 밑그림을 그리는 지략가가 한 사람, 군사를 움직일 수 있는 우두머리 한 사람, 조정에서 인망이 두터운 높은 벼슬아치 한 사람이면 천하를 능히 바꿀 수 있는 것이네."
사인이 성희안의 빈 잔에 술을 따르며 다시 물었다. 밖은 벌써 어두워져 인적이 끊기고 멀리서 소쩍새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성희안은 해질 무렵부터 들려오는 소쩍새 울음소리에 사인과 얘기를 나누다가도 가끔 입을 다물곤 했다.
"대감께서 말씀하신 그 세 사람이란 누구입니까."
"흠, 내 마음속을 꿰뚫어 본다는 영리한 자네가 맞춰보게나."
사인은 망설이다가 성희안이 뭘 꾸물거리느냐는 듯 의뭉스런 미소를 짓자 그제야 입을 열었다.
"밑그림을 그리는 지략가는 대감이옵니다. 소인이 알기로는 때를 알고, 그것을 손에 쥘 줄 아는 사람은 대감이 단연 최고라고 생각하옵니다."
"군사를 움직일 수 있는 우두머리는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평성부원군 박원종 대감입니다. 실제로 박원종 대감은 무부(武夫)들의 주군이나 다름없습니다. 무부들은 박원종 대감의 명이 떨어지면 기꺼이 목숨까지도 내놓을 것입니다."
"조정에서 인망이 두터운 사람은 누구인가."
"조정의 벼슬아치들은 기대할 것이 별로 없습니다만 그래도 인망이 있는 한 사람 정도는 가담해야 세상의 인심을 얻는 데 도움이 될 것이옵니다. 유순종 대감이라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입니다."
성희안은 만족하여 크게 웃으며 말했다.
"자네야말로 나의 복심(腹心)일세. 아니 그런가. 내 생각과 조금도 다르지 않아. 세 사람이 힘을 합치면 임금 정도야 능히 폐위시킬 수 있을 것이네."
성희안에게 칭찬을 받은 사인은 새삼 감격하여 말했다.
"대감을 모신 지 이십 년도 넘었습니다. 어찌 대감의 마음을 모르겠습니까."
"그래그래. 이 술이나 한 잔 더 받게. 헌데 신윤무를 미행하는 일은 어찌 되었는가."
"대감님의 명인데 여부가 있겠습니까. 어제도 신윤무는 박원종 대감댁에서 나와 바로 이리로 왔다고 합니다."
"전하의 총애를 받는 신윤무가 수상해. 전하에게 홀대를 받는 박원종 대감과 내 집을 오가는 것을 보면 말이야."
"대감, 박원종 대감을 한 번 만나보면 어떻겠습니까. 그리하면 신윤무의 정체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겠습니까. 신윤무가 그러는 것은 대감과 박 대감 사이에 뭔가를 연결시키려고 하는 의도가 있는 듯합니다."
"박원종 대감과 나 사이에 특별하게 원수 진 일은 없네만 난 그 자가 왠지 내키지 않아. 우락부락한 얼굴을 보면 사나운 맹수 같아 오금이 저릴 정도야. 그래, 조정에서도 가급적이면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네."
"그래도 대장부다운 기질과 의리가 있으니 무부들이 따르는 것 아니겠습니까. 두 분께서 만나면 밀고 당기는 것 없이 바로 의기투합하실 것입니다."
"자네는 그리 보는가."
"두 분의 장점을 합치면 힘이 배가될 것이 뻔한데 만나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저 같으면 진즉 찾아가 만났을 것입니다."
성희안은 사인의 조언을 받아들여 내심 그리 결정하고 신윤무를 기다렸다. 신윤무는 어김없이 밤중에 나타나 사인의 안내를 받았다.
"대감께서 군자부정 어른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알겠네."
"군자부정 어른, 은밀한 일은 잘 돼가고 있습니까."
사인이 궁금하여 찔러 물었으나 신윤무는 걸음을 멈추고 잠시 대꾸를 안 했다. 그러더니 나무라는 투로 한 마디 툭 던지고는 사랑방으로 들어갔다.
"입을 잘 간수하시게. 어찌 천기를 함부로 말하려 하는가.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 수가 있으니 앞으로는 조심하게나."
사인은 고개를 숙이고 도망치듯 물러났다. 그러나 두 사람 간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므로 장검을 하나 가져와 사랑방을 지켰다. 성희안의 성격도 고집이 세고 불같이 급했으므로 두 사람 간에 격론이 벌어진다면 혁명할 세(勢)의 규합은 고사하고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방 안에서는 사인의 기우와는 달리 간간히 웃음소리가 났고, 거친 고성은 단 한 번도 나지 않았다. 사인은 차가운 칼집을 만지작거리며 도둑고양이처럼 가만가만 사랑방 뒤로 돌아가 창호에 귀를 댔다.
술이 몇 잔 돌고 난 후에야 성희안이 시시껄렁한 객담을 접고 물었다.
"어디서 오는 길이오."
"박원종 대감 댁에서 바로 오는 길입니다."
성희안은 신윤무의 대답을 듣고는 조금 안심했다. 그의 동태를 이미 다 파악하고 있는 바 그의 말은 사실이던 것이다.
"박 대감은 요즘 무슨 일로 소일하고 있소."
"대인이라 다릅니다. 세상을 걱정하며 소일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걱정스러우니 요즘은 술을 더 많이 드시겠구먼."
"대감뿐만 아닙니다. 어디를 가나 세상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군자부정도 그중에 한 사람이오."
"비록 전하의 총애를 받고 있다고는 하나, 어찌 세상 돌아가는 것을 모르겠습니까. 전하께서는 장녹수와 김자원과 신수근, 임사홍 등의 간신들에게 둘러싸여 눈이 멀고 귀가 멀어 있습니다."
김자원은 내시로서 김처선이 죽고 난 후 내시의 우두머리에 오른 자였고, 신수근은 외척으로서 최고의 세도를 부리고 있는 자였다.
"박 대감은 이런 세상을 어찌 말하고 있소."
"어찌 저에게 천기를 말하겠습니까. 아마도 박원종 대감께서는 대사(大事)를 함께 의논할 사람으로 대감을 지목하여 기다리고 계실 것입니다."
"평성부원군 박원종 대감께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그렇습니다."
신윤무가 자세를 가다듬고 말하자 그의 진심을 확인한 듯 성희안이 화답했다.
"사실은 나도 박원종 대감을 기다리고 있었소. 세상은 지금 박원종 대감이 나서기를 갈망하고 있는 것 같소. 박원종 대감은 이때를 놓쳐서는 아니 될 것이오."
"지금 궁궐 안팎으로 전하께 원한을 품은 이가 많습니다. 조정의 신하들 가운데 전하를 따르는 자는 거의 없습니다. 대감께서 좌천된 이후 모두가 전하를 떠나버렸습니다."
신윤무의 말은 아부가 아니었다. 연산주에게 작은 목소리로나마 할 말을 해 왔던 박원종이나 성희안 같은 강직한 신하들이 하나 둘 제거되자, 대부분의 벼슬아치들은 목숨이 두려워 조정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내일 박원종 대감을 만나보겠소."
"대감, 이 신윤무는 대감께서 움직이시는 것을 기다려 왔습니다. 그것이 천하를 살리고 백성을 살리는 길입니다. 다행한 일 중에 하나는 용맹과 지략을 겸비한 이장곤이란 자가 조정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장곤의 지금 귀양을 가 있지 않소."
"거제도로 귀양 갔다가 전하를 피해 도망쳤습니다. 어느 때 그가 무리를 모아 군사를 일으켜 한양으로 쳐들어오면 조정은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넘어가고 말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이장곤이 그리 대단한 사람이던가요."
"임금님께서도 늘 이장곤을 경계하시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오. 세상이 어찌 한 사람의 힘으로 바뀔 수 있겠소."
"일당백으로 대적할 수 있는 이장곤이기 때문에 말씀드린 것입니다."
이장곤은 확실히 무부들에게 경계의 인물이었다. 문과 무를 고루 갖춘 데다 대소신료들로부터 고루 신망을 받고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으므로 연산주에게 총애를 받는 벼슬아치들에게 늘 반정할지 모르는 위험한 인물로 지목되어 감시가 뒤따랐던 것이다. 따라서 신윤무가 이장곤을 경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장곤(李長坤).
그의 자는 희강(希剛), 호는 금재(琴齋)라 했고, 김굉필의 문인이었으며 연산주 1년에 생원시에 장원한 재원이었다. 그는 풍채가 기걸스러워 어린 시절부터 훗날 장수감이라고 불렸고, 홍문관 교리 때 김굉필의 문인이라 하여 거제도로 귀양 갔다가 그를 시기하는 간신들이 장차 반정할 인물이라고 끊임없이 모함했기 때문에 처형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들어 육로와 뱃길을 이용해 어디론가 도망쳐버린 인물이었다.

"이장곤이 군사를 일으켜 서울로 쳐들어온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니 그 자라면 안심해도 되네. 도망친 위인이 군사를 일으켜 봐야 도적놈들이 아니고서야 누가 그 자의 뒤를 따르겠는가."
성희안은 신윤무가 걱정하는 말을 무시해버렸다. 신윤무가 돌아가고 나자, 사인이 다시 들어와 말했다.
"대감, 이제 신윤무를 믿어볼 생각이십니까."
"박원종 대감과 나 사이를 연결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보면 믿지 못할 사람은 아닌 것 같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위험한 일을 자처해서 하겠는가. 이제 내가 나서야 할 때가 된 것 같네. 내일 박원종 대감 댁을 찾아가 만나고 오겠네."
"제가 준비할 것은 무엇입니까."
"집안에 아껴둔 오래 된 술이나 한 병 마련해 두게. 목숨을 내거는 일로 마시는 술이니 심장의 피만큼이나 귀한 것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분부대로 준비하겠습니다."

다음날.
신윤무가 군자시에 들러 결재를 하는 둥 마는 둥하고는 말을 타고 서둘러 박원종의 집을 찾아가 간밤에 성희안을 만났던 얘기를 꺼냈다.
"대감, 간밤에 인재(성희안의 호) 대감댁을 다녀왔습니다."
"요즘 인재 대감은 어떻게 지내시던가."
"망원정 사건으로 참판 직에서 물러나 가슴 속에 분노가 부글부글 끓고 있는 듯했습니다."
"원망이 어찌 인재 대감 한 사람뿐이겠는가. 나도 그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을 것일세."
"인재 대감의 댁과 내 집을 오가는 자네의 요즘 기분이 어떤가."
"비로소 과실이 무르익어가는 듯합니다."
"과실이라. 제법 그럴 듯한 표현일세. 그래, 인재 대감은 세상을 어떻게 읽고 있던가."
"직접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지금의 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대감을 만나야겠다고 했습니다."
"이보게. 난 오리무중을 좋아하지 않아. 분명하게 말해 보게. 왜 나를 만나러 오겠다는 것인가."
"대감, 그것은 함께 혁명을 하자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혁명이라."
박원종은 소매를 펄럭이며 벌떡 일어나 신윤무를 쏘아보았다. 신윤무는 갑자기 일어난 박원종의 행동에 당황하여 움찔했다. 그러나 박원종은 크게 웃으며 말했다.
"이는 밤낮으로 내가 쌓은 뜻이네. 혁명을 생각해 왔단 말이네."
신윤무가 이를 부드득 갈며 말했다.
"두 분이 의기투합하면 못 이룰 대사가 없을 것입니다."
"어서 인재 대감을 불러 오게나. 아니면 내가 그리로 갈까. 천기가 누설됐으니 한시가 급해."
"그럴 것이 없습니다. 인재 대감께서 저물녘에 대감 댁으로 오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조금만 참으시면 인재 대감과 은미한 얘기를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럴까. 일각이 여삼추라더니 지금 내 심정이 그렇다네."
"백성들의 민심도 대감 편을 드니 이번 대사에 말 그대로 천운이 따르는 것 같습니다. 아니 그렇습니까."
두 사람은 술을 마시는 시늉만 했으나 금세 한 병을 기분 좋게 비워버렸다. 두 병째 비워갈 때 과연 성희안이 나타났다.
"대감마님, 손님이 왔사옵니다요."
"누구시더냐."
"성 대감이라 하옵니다."
신윤무가 뛰어나가 성희안을 맞아들였다. 성희안은 말 대신에 소를 타고 왔다. 참판 직을 잃은 후, 연산주의 잘못된 인사에 항의하는 뜻으로 말 대신에 소를 타고 다녔으므로 저잣거리 사람들에게 동정을 사기도 했다.
"대감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니, 군자부정이 여기 있는 줄 몰랐소. 이거 박 대감께 드리려고 가져 왔소. 아주 귀한 술이라고 말씀드려주시오 ."
"두 분께서 서먹서먹할까 걱정하여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두 분을 소개만 하고 물러나겠습니다."
"군자부정이 있다고 못할 말이 무에 있겠소. 자리에 남아도 상관 없으니 마음 편한 대로 하시오."
박원종은 사랑방을 나와서 성희안을 맞아들였다. 박원종이 직접 일어나 손님을 맞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아무리 높은 벼슬아치가 와도 높은 방석에 앉아 한 손은 고침(高枕)을 잡고 또 한 손으로는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맞이하는 것이 도도한 그의 인사법이었던 것이다.
"대감, 어서 오시오."
"진즉 찾아뵈었어야 하는데 이제야 인연이 되어 왔습니다."
"대감, 지척에 살면서도 왕래가 없었으니 제 불찰입니다.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아닙니다. 만나는 것도 때가 있는가 봅니다. 오래 된 지기가 다시 만나 듯 때가 되니 이렇게 찾아와 반갑게 만나고 있지 않습니까."
"인재 대감의 말씀이 옳습니다. 옳고 말고요."
술이 몇 순배 주거니 받거니 돌아간 뒤에야 박원종이 눈짓을 보내니 신윤무가 눈치 빠르게 방을 나갔다. 그러자 박원종이 삐딱하게 벽에 대고 있던 등을 곧추세우며 고개를 들고 말했다. 박원종의 두 눈에서는 살기 같은 것이 쏟아지는 듯했다.
"자, 이제 방 안에는 우리 두 사람밖에 없소이다. 그렇지 않소이까."
성희안은 각오하고 온 걸음이기에 결코 박원종의 기세에 눌리지 않았다. 그의 말을 맞받았다.
"아니오. 방 안에 두 사람밖에 없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하늘이 보고 있고, 땅이 보고 있고, 우리 두 사람의 양심이 보고 있소이다."
"하하하. 그렇습니다. 그러니 우리 얘기는 하늘과 땅, 그리고 각자의 양심에 두고 하는 맹세입니다."
기세 싸움 같은 인사가 끝나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런데 갑자기 성희안이 먼저 말을 하려다가 굵은 눈물을 떨어뜨려 박원종이 흠칫했다.
"대감."
성희안의 눈물은 박원종의 마음에도 미묘한 파장을 일으켰다. 성희안은 이내 소리 내어 짧게 통곡하고 난 뒤 말했다.
"대감, 이 성희안은 나라를 위해 충의(忠義)를 펴고 싶소이다. 이 순간 사사로운 욕심은 한 티끌도 없소이다."
이에 박원종은 갑자기 격해진 성희안의 감정에 전염된 듯 잠시 입술을 깨물더니 사뭇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박원종이도 천지신명께 맹세할 수 있소. 천도가 무너진 나라를 일으켜 세우는 데 신명을 다 바칠 생각뿐이오."
"대감, 마땅히 죽음으로써 나라에 몸을 바칠 것이오. 대장부가 죽고 사는 것은 천명에 달렸으니 어찌 종묘사직의 위태로움이 가까이 있는데도 돌보지 않으리오."
신윤무가 주선한 이들의 만남은 시기적으로 절묘했다. 두 개의 화살이 한 과녁을 맞추듯 단 한 순간에 아무런 이견 없이 동지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반정(反正)은 성희안의 지략에서 비롯되었으나 무반의 벼슬아치들에게 신임이 두터운 박원종이 신윤무를 지휘하여 전술을 펼쳐나가는 것처럼 치밀하게 진행시켜 나갔다. 신윤무는 무반들의 세력을 모으는 연락책을 맡았다.<계속>

*[정찬주 연재소설] "하늘의 도"는 화순군 홈페이지와 동시에 연재됩니다.
☞ 화순군 홈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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