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자, 흔히 호모와 레즈비언으로 알려진 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오늘의 주제로 삼았다.
필자가 사주와 관련하여 동성애자들에 연구해온 지는 그 연원이 꽤나 멀다. 계기가 되었던 것은 무척 오래 전에 '크라잉 게임'이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그 바람에 동성애자들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젊은 시절, 그러니까 정확하게 스무 해 전에 한 남자로부터 구애(求愛)를 받은 적이 있다. 동원 예비군 훈련에 참가하여 강원도 인제 근처의 산에서 야영을 했는데, 2인용 텐트를 치게 되었고 그 친구와 한 조가 되었던 것이 인연이었다.
훈련 중의 어느 날 밤, 소나기가 심하게 내린 뒤의 하늘에는 별들이 초롱한 별빛으로 가득했고 도처에 벌레소리로 구성졌는데, 그 친구가 하늘과 별을 올려다보면서 하는 얘기들이 감흥이 있었고 그 바람에 친해지게 되었었다.
약간은 여성스런 감성이 있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 친구가 겉은 남자, 속은 여자라는 것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 친구는 호텔에서 일하고 있었던 터라 값비싼 호텔 요리와 술을 자주 얻어먹을 수 있다는 즐거움만 마냥 컸었다.
그렇게 친하게 지내던 어느 날 촛불이 켜진 식탁의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그 친구로부터 정식 오퍼가 있었다.
"자기를 사랑해..."라고 하기에 필자 역시 "그럼, 나도 자기를 사랑하지, 암, 우린 정말 좋은 친구야..."라고 답하면서 보니 그 친구의 얼굴이 붉게 물들고 있기에 이상하다는 생각이 문득 스쳐갔다.
얼마 후 친구의 본뜻을 알아차린 후, 당혹스런 필자가 대답이랍시고 내놓은 말이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이 없는데"였다.
지금 생각해도 참 민망한 말이었다. 한편으론 그 친구에게 좀 더 정중하고도 따뜻하게 반응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지금도 미안한 마음이다.
그런 후 몇 년이 지나 '크라잉 게임'이란 영화를 보면서 동성애의 정서를 지닌 사람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해했다는 얘기는 동성애자를 별로 이상하게 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사랑의 감정에 바탕을 둔 성애(性愛)라면 그것이 어떤 형식이든 납득할 수 있다는 생각 같은 거 말이다.
연후에 필자는 어떤 사람들이 동성애자가 되는지 너무나도 궁금해졌고 운명학적으로 연관지어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계기가 된 것은 필자가 운명상담을 시작하면서 찾아왔던 한 남자(속은 여자)분 때문이었다.
그 분은 필자에게 동성애적 감정에 대해 자신의 성장과정에서부터 동성애에 대해 눈을 뜨게 되고 그런 까닭으로 인하여 자신이 걸어야 했던 힘든 삶의 노정에 대해 소상하게 들려주었다.
몇 시간에 걸쳐 들은 그 분의 얘기는 필자로 하여금 그냥 기다리지 않고 동성애자들을 찾아 나서게 만드는 힘이 되어주었다. 어떤 사람이 운명적으로 동성애에 관심을 가지는지에 대한 약간의 힌트와 단서를 얻었던 것이다.
필자가 찾아간 곳은 서울 시내 모처의 이른바 게이클럽이었다.
저녁마다 게이클럽에 가서 술도 마시고 얘기도 하면서 그곳에 있는 치마씨-자신이 여성이라고 생각하는 남자-들과 친숙해졌고 그러면서 그 친구들의 사주를 무료로 봐주겠다고 하자 별 어려움 없이 그 사람들의 사주 데이터들을 수집할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아가씨들도 필자의 의도를 알게 되었지만, 개의치 않았고 외려 협조적이었다. 한 달 가량이 지나자 근 백 여명 가량의 사주를 모을 수 있었고 그것으로서 필자는 동성애자가 되는 원인에 대해 충분히 납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그것은 생물학적으로 남성인 사람이 여성으로 자신의 성(性)을 정체화하는 사람들이기에 절반의 연구에 불과했다. 겉은 여성이 스스로를 남성으로 여기는 사람들에 대한 데이터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뜻이 있으면 길도 있는 법, 시간이 지나고 관심을 두면서 결국 이른바 레즈비언에 대한 사주 데이터들도 충분히 입수할 수 있었고 그 중에는 자주 필자를 찾아와 자신의 일과 운명에 대해 자문을 구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게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생물학적으로 여성이고 스스로도 여성이라 여기면서도 남성이 아니라 여성에 대해 사랑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남성의 경우도 마찬가지. 다시 말해 이성(異性)에 대해 사랑이 아니라 순수한 동성애적 사랑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사랑의 형태는 실로 다양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런 그들이 사회에서 겪는 어려움과 불이익에 대해 아픔을 같이하게 되었다.
필자는 여성이 아니면 성적 감정을 느끼지 않지만, 그들이 그들의 사랑에 대해 느끼는 자연스런 감정에 대해 충분히 공감하게 된 것이다. 예전에는 변태란 섬뜩한 말을 듣고 싫기도 했지만,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순수한 감정에 대해 그런 모멸적인 어휘로 값매김 하는 것은 일종의 사회적 폭력에 다름 아니라고 여기게 되었다.
개인의 사생활에 관한 자료이다 보니 여기서 동성애자들의 사주를 소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왜 동성애자가 되는 지에 대한 그간의 연구결과 얻은 잠정적 결론 내지 가설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생물학적 남성이 여성으로 자신의 성을 정체화 하는 경우, 그런 분들의 사주는 대부분 강한 음기(陰氣)를 지니고 있다.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던 경력을 지니고 있는 바, 그들이 여성으로 스스로를 매기는 것은 음양오행상으로 표현하면 음적인 여성보다는 양적인 남성에게 끌리게 되고 그러면서 스스로를 여성으로 택하게 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또 성의 정체성이 변하게 되는 것은 대부분 10대의 사춘기 시절에 결정되는 것 같다.
반대로 생물학적 여성이 남성으로 자신의 성을 택하는 경우는 대부분 사주에 양기(陽氣)가 지나치게 강한 경우이다.
양기가 강하다보니 정서적으로나 섹스에 있어 강한 양기(陽氣)가 자신의 몸속으로 유입되는 것에 대해 반드시 섹스를 경험하지 않았어도 거부감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줄여 말하면 양기(陽氣)가 싫은 것이다.
좀 더 진지하게 말하면 남성의 성기(性器)는 스폰지와 같은 것으로서 발기 시에 피가 그 속으로 유입되어 빠져나가지 않기에 발기 상태가 유지하고 섹스를 지속할 수 있는 것이다.
피는 뜨거운 것이니 문자 그대로 양기(陽氣)의 결집체이자 정수라고 말할 수 있다. 양기가 선천적으로 지나치게 강한 여성은 그 같은 양기 덩어리가 생래적으로 거북하고 때로는 불쾌하기까지 한 것이 아닐까 여겨진다.
다시 말해 삽입방식의 성교를 싫어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는 반드시 섹스를 경험하지 않아도 이미 몸은 알고 있기에 거부하게 되는 것이다.
호모가 되는 사람은 주로 겨울 생이 많고 레즈비언이 되는 사람은 여름 생이 많은데 이 것만으로 그런 성적 정체성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아직 우리들은 생명의 오묘한 신비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나도 많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다만 한의학적 측면에서 얘기하면 좀 더 본질적인 이해가 가능하다고 본다.
한의학에서 말하는 간의 기능과 연관이 깊다. 간양(肝陽)이 부족한 자는 호모가 되는 경향이 있고, 간음(肝陰)이 부족한 자는 레즈비언이 된다는 필자의 가설이다. 서구 사회에 동성애자가 많은 것도 그런 풍토적인 영향이 큰 탓이라 여긴다.
마지막으로 최근에 국내에도 개봉된 일본 영화 "메죵 드 히미코", 역시 동성애자들에 대한 이해를 크게 도울 수 있는 좋은 영화로서 추천하고자 한다. 동성애를 지닌 남편과 그를 끝까지 따뜻한 사랑으로 지켜준 아내의 얘기가 중심으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영화이다.
다양성과 관용이란 측면에서 우리보다는 진일보한 문화 구조를 지닌 일본이 한편 부럽기도 하다. 기세와 명분을 앞세우는 우리 문화가 양(陽)이라면 일본은 본질에 있어 음(陰)의 문화적 정체성을 지녔다고 생각된다.
며칠 전 밤에 비가 내리기에 풀벌레 소리와 어울려서 듣기에 좋았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어느덧 천지에 가을기운이 완연해졌다.
그리고 보니 오늘이 백로(白露), 찬 이슬이 내리는 절기이다. 천지의 모든 기운이 시들고 마르기 시작하는 때가 된 것이다. 시들고 말라야만 결실을 거둘 수 있는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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