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위기가 심각해지고 있다. 2006년 9월 1일 발표된 미 국방부의 이라크 현황 보고서는 "이라크 분쟁의 핵심이 종전 수니파 저항세력의 무력투쟁에서 소수 수니파와 다수 시아파 간 종파 분쟁으로 옮아가며 내전의 여건이 조성되고 있다"고 말한다. 이로 인한 이라크인 사상자도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라크 '분쟁'의 여전한 핵심은 점령군과 이라크인들 사이에 존재한다. 이라크인들의 직접적인 피해는 종파간 갈등이 아니라 점령으로부터 비롯되고 있다. 6월에 폭로된 하디타 양민학살 전에도 미군은 이미 2004년 4월과 11월 팔루자에서 야만적인 학살을 자행했다. 올해 3월에도 미군은 라마디 지역에서 '벌떼 작전'이라는 대규모 공격을 벌였다.
이미 2004년 말 영국의 의학잡지 <랜싯>은 2003년 개전 이후 10만 명의 이라크인들이 죽었다는 통계를 보고한 바 있다.
게다가 '갈등과 내전'의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하는 것 역시 점령정책이다. 이라크인들은 지역 사회에서 종파와 민족에 따른 분할과 같은 규정을 가지지 않았다. 2003년 바그다드 함락 직후 미국이 곧바로 바트당 지도자 52명의 지명 수배 명단을 만들었는데, 그 중 38명이 후세인 대통령의 수니파가 아니라 시아파였던 사실은 종파·민족 구분이 우리가 느끼는 것만큼 뚜렷하지 않다는 것을 입증한다.
미군의 점령 정책은 '분할 지배 전략'이었다. 점령이 시작되면서 점령군이 개입해 만든 조직과 제도는 종파적 기반에 의해 분할됐다. 심지어 초기에 점령군은 이라크 군대도 종파적 기반에 의해 분할 운영되기를 바랬다. '분할 지배 전략'은 수니파와 시아파가 단결해서 점령에 맞섰던 2004년 5월 팔루자 저항과 8월 나자프 저항이후 더욱 가속화 됐다.
갈등이 심화될수록 점령군의 책임은 더욱 분명해 지고 있다.
이라크 위기와 자이툰
지난해 현 국회 국방위원장 김성곤 의원(열린우리당)은 파병 재연장을 정당화하며 "우리가 몽땅 철군하면 이라크는 심각한 내란에 빠질 게 분명하다. 지금 상황에서 그냥 철군하자는 것은 우리 국민 생명만 중요하고 이라크 민족의 생명은 중요하지 않다는 논리다."(<프레시안> 2005년 11월 4일 보도)라고 말했다.
그러나 점령군이 증파됐고-미군은 8월에 4000명을 바그다드로 증파했다- 자이툰 부대가 여전히 주둔하고 있다고 해도 이라크 내의 갈등이 사라졌다는 징후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이라크인들을 학살하고 갈등을 부추기고 있는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점령 정책을 지지해 온 노무현 정부의 자이툰 파병이야말로 '이라크 민족의 생명'을 내팽개치고 있는 장본인이라 말할 수 있다.
자이툰 부대는 부패하고 억압적이며 전쟁지지 세력이기까지 한 쿠르드자치정부(KRG)를 지지·후원하고 있고, 이들의 민병대이자 저항세력 학살에 투입되고 있는 페시메르가를 훈련시킨 바 있다.
자이툰 부대는 "적대 세력의 저강도 장기 저항 기도를 억제하기 위해 27만3000명의 치안 전력 양성을 목표로 현재 21만7000명을 교육 훈련했다." (<연합뉴스> 2005년 7월 28일 보도)
쿠르드 민병대는 지난해 4월 미국의 팔루자 학살 때 직접 공격에 가담했고, 11월 팔루자 학살 때는 미군이 팔루자에 집중할 수 있도록 북부 지역의 치안을 맡았다.
자이툰 부대는 이라크 내 갈등의 원인을 제공한 직접적 당사자이기도 한 것이다. 이처럼 자이툰 부대는 이라크 내 분열과 갈등에서 결과적으로 일익을 담당하고 있고 따라서 파병을 다시 연장할 이유는 전혀 없다.
노무현 정부의 "사막 이야기"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시작한 부시 대통령의 "테러와의 전쟁"은 지금 중동에서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다. 이라크에서 미끄러지기 시작한 부시는 레바논 전쟁에서 이스라엘과 함께 실패했다. 아프가니스탄 또한 이라크 못지않은 수렁이 되고 있다.
사실 미국과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은 이란 공격의 전초전이고 한번 시작한 전쟁 드라이브는 쉽게 멈추지 않고 있다.
부시는 8월 31일 재향군인회 연설에서 "이슬람 급진주의"를 "나치와 공산주의자"에 비교하며 우라늄 농축 중단을 요구를 담고 있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을 거부한 이란에 대해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강력 경고했다.
부시의 전쟁을 정치적이고 실질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한국 정부의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이미 부시의 주요 전쟁 지역인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병력을 파병했고, 이스라엘과 미국을 도와 레바논 파병을 추진하고 있다. 이처럼 부시의 전쟁이 더욱 위기에 빠질수록 한국 정부의 지원은 중요해지고 있다.
그러나 파병은 단순히 위기에 빠진 미국을 지원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한국이 필사적으로 전쟁 지원에 나서고 있는 이유는 다른 곳에도 있다.
2004년 파병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을 때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이라크 파병에 따른 경제적 효과가 2008년까지 102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물론 이라크인들의 저항 때문에 이익이 현실화되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중동 지역 석유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게도 이라크는 매우 탐나는 곳이다. 91년 1차 걸프전쟁 때 노태우 정부가 파병을 한 것도 석유와 무관치 않았다. 국방연구원의 김재두 연구위원에 따르면 한국은 후세인 치하인 1994년 이라크의 유전개발을 시도했고, 4개 기업이 가서명 상태까지 가기도 했다.
그리고 한국 정부는 경제 규모에 걸맞은 군사력을 갖추고 과시하고자 한다. 최근 레바논에 평화유지군을 파병해야 한다는 명분에 대해서도 정부는 "평화유지군에 상당한 재정적 기여를 하고 있긴 하지만 파병 규모 면에서는 기여도가 낮은 만큼, 유엔 사무총장 후보까지 배출한 한국의 위상"에 걸맞게 파병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바다 이야기'는 노무현 정부의 국내 정치에서의 실정을 상징한다. 밖에서는 부시의 '테러와의 전쟁'을 지원하는 '사막 이야기'가 노무현 정부 대외 정책의 아킬레스건이 되고 있다. 이라크 점령과 자이툰 주둔의 명분이 명백한 거짓임이 분명한 지금, 자이툰은 즉각 철군할 때다.
아울러 자이툰 철군과 이라크 점령 종식, 부시의 새로운 전쟁에 반대하기 위한 반전 평화 운동의 구실이 더욱 중요해 지고 있다. 9월 23일 오후 3시 서울역 광장에서는 파병반대국민행동(www.antiwar.or.kr)의 "자이툰 연내 완전 철군을 위한 9.23 반전 행동"이 열린다. 한국의 반전·평화·양심 세력이 또다시 힘을 모아야 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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