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내로라하는 유명한 인사들의 이름으로 채워진 127개의 의자... 그런데, 그 중 한 개에는 한국인의 이름이 새겨져있습니다. 바로, 백악관 직속 연방 정부기구인 국가장애위원회 차관보 강영우 박사인데요
오늘 박인규의 집중 인터뷰에서는 최근 '꿈이 있으면 미래가 있다'라는 책을 펴내고, 한국을 방문한 강영우 박사를 초대했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 축구시합 도중 사고로 실명을 한 이후 어머니와 누나마저 잃고, 가족들 모두 뿔뿔히 흩어져 살아야 했던 아픔을 극복하고 현재, 미국 5400만 장애인 정책에 앞장서고 있는 강영우 박사...
시력을 잃은 것이 오히려 인생의 성공요인이 됐다는 그의 긍정적인 사고방식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차관보 강영우 박삽니다.
강영우 박사는 1944년 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났습니다. 1968년 서울 맹학교 고등부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교육학과에 입학, 72년 문과대학 전체 차석으로 졸업했습니다. 그 해 여름, 미국 유학길에 올라 76년 피츠버그 대학에서 교육전공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부시행정부의 종교 및 사회봉사 자문위원, 유엔 세계 장애위원회 부의장 등을 역임했고 96년에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국제 장애인상 창설을 주도해서, 한국이 이 상의 첫 수상국이 되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2001년부터 현재까지 미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 차관보를 맡고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박인규 : 한국에서 굉장히 바쁘신 일정을 보내신 걸로 알고 있는데, 좋은 시간 보내셨습니까?
강영우 : 예. 동분서주하면서 강연회로 바빴습니다.
박인규 : 미국에서 공직생활 하시기도 바쁘실 텐데, 시간을 내서 한국에 오신 이유가 있으십니까?
강영우 : '꿈이 있으면 미래가 있다.' 이 신간을 출간하기 위해서 나왔습니다.
박인규 : 책 얘기에 앞서, 7월 13일에 루즈벨트 재단에 있는 위인기념의자에 강박사님 이름이 올라갔습니다. 우선 축하드리구요, 어떻게 해서 거기에 이름을 올리시게 됐는지 궁금하네요.
강영우 : 저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사회에 완전 통합돼서 함께 더불어 사는 편견 없고 차별 없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꿈을 갖고 살았어요. 그렇게 살다 보니까 그런 꿈을 공유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더라구요. 그래서 만나서 같이 활동하다 보니 제가 격상된 거죠. 미국 상류층에 속해서, 같은 꿈을 공유하다 보니까 그 분들에게 인정을 받은 거죠. 이게 하루아침에 결정된 게 아니라 3년 동안의 역사프로젝트입니다. 재단에서 크리스토퍼 브라이세트 박사.. 역사학자로 대학총장을 오래 하신 분을 고용해서 3년 동안 객관적인 기준으로 평가를 해서 선정하도록.
박인규 :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도 장애인이었죠.
강영우 : 그렇죠. 39세에 소아마비가 돼서 중증장애인으로 살았죠.
박인규 : 그걸 보면 사실 몸이 좀 성치 않다고 해서 큰 일을 못하는 게 아닌데 말이죠. 이번에 '꿈이 있으면 미래가 있다.' 이 책을 펴내셨는데 나름대로 이것을 어떤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하셨을 것 같은데요?
강영우 : 이 책은 장애인들을 위한 책이 아니고, 지금 저는 이제 한 세대를 다 살았잖아요. 60이 넘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세대, 젊은 세대. 교육에서는 30년을 1세대로 합니다. 그래서 특별히 30살에서 60살까지 그 세대. 그 분들에게 어떻게 승리의 삶, 성공의 삶을 살 수 있느냐 하는 교육원리 7가지를 가지고 쉽게 쓴 책입니다. 대개 30세에서 60세 되기 전 그 기간 중에 자녀를 양육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성공적인 자녀교육은 어떻게 시키고, 남은 생을 어떻게 승리하며 성공적으로 살 수 있겠느냐. 또 어떻게 자녀들은 어떻게 성공적으로 양육해서 세계화 시대의 주역으로 만드느냐 하는 7가지 원리를 가지고 제가 개인적 체험과 위인들의 체험을 갖고 쓴 책입니다.
박인규 :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한 박사님의 개인적 경험이 녹아있는 책이라고 생각되는데요, 7가지를 간단히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강영우 : 그럼요. 우선 교육에서, 인물이 되려면 인물을 만나야 한다. 이게 통계적으로 나온 원리입니다. 우리가 보통, 만남을 한국에서는 혈연, 지연, 학연을 주로 하거든요. 그걸 교육에서는 우연한 만남이라고 합니다. 그건 자기가 조절하기가 어려운 거거든요. 어느 집에 태어나서 혈연관계가 되고, 그 지역에 살다 보니 주위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학연도 그 학교에 들어가니까 클래스에 누가 있어서 만나게 되고. 이런 소극적인 만남. 그런데 지금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그것만으론 안 되고 보다 적극적이고 의도적인 만남이 있습니다. 이걸 인텐셔널 프랜드(intentional friend)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만드는 게, 자기와 생각이 같고 가치관이 같은 사람들과 같은 집단에 속한다든지 해서 만남을 갖는 거죠. 인생의 가치관을 정립하고 인생의 목적을 정립한 다음에 자기와 같은 사람. 이 지구상에는 자기와 같은 생각과 느낌을 가진 사람들이 많거든요. 그러니까 그렇게 의도적으로 만나는 거다. 우리가 하나의 자기 생각을 하나의 작은 물줄기로 본다면 이것이 만나서 시내와 강물을 이루고 바다로 들어가면 힘차게 들어가잖아요. 그러니까 21세기 주류사회에 합류하라. 그 말은 다민족 다문화에서 공통적 가치로 생각하는 보편적 가치관을 먼저 정립하라는 거죠. 그리고 한민족으로서 민족적 긍지나 민족적 가치관은 고유 가치관이거든요. 그것과 보편적 가치관의 마찰이 있을 때는 우선순위를 보편적 가치에 둬야 한다는 교육의 원리. 그리고 한국 사람들의 경우는 시련과 역경에 직면하면 그걸 극복한다고 얘기하고 그걸로 끝나거든요. 그런데 캄캄한 인생의 터널이 끝난 다음에, 또 인생의 폭풍이 불었다가 그게 영원히 지속되지 않고 잠잠해지잖아요. 그 다음에. 그걸 통과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됩니다. 능력과 비전이 있는 사람이 되기 마련입니다. 그걸 영어로는 negative capacity라고 해요. 고난의 능력, 자산인데 그런 개념이 한국에 없어요. 그래서 그걸 제가 썼구요. 저도 어린 시절에 어려움을 많이 겪었는데, 그랬기 때문에 강인해졌고, 장애인으로 어려움을 겪었으니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꿈을 꾸게 된 거고.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도 만나게 된 거고. 그리고 거기서 쉽게 포기하지 않는 끈기가 생겼고. 이런 것이 자산이고 능력이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제가 젊은 세대들에게 기구한 운명 이런 것도 탓하지 말라.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것, 환경 탓하지 마라. 이것도 당신들이 극복한 후에는 축적된 자산이요 능력이 돼서 정말 승리하고 복된 삶을 살아간다. 이것도 한 챕터가 있구요. 하나만 더 말씀드리면 7장 중 마지막이, 섬기는 지도자 되어 세상을 변화시켜라. 한국에서 전통적인 리더십은 권위로 다스리는 리더십이거든요. 자리에 붙어있는 권위, 권력으로 아랫사람들에게 지시하고 그들을 다스리는 것인데. 지금 세계화시대, 지구촌시대를 이끌어가는 리더십은 섬김의 리더십입니다. 이건 기독교문명에서 비롯된 거죠. 서번트 리더십이 아주 각광받는 시대기 때문에 이 서번트 리더십을 어떻게 개발하느냐. 그래서 미국에서는 최고공직자 등용이 서번트 리더를 뽑는 거죠. 섬길 줄 아는 사람들. 그래서 아버지 부시대통령이 취임사를 할 때, 취임사를 시작하기 전에 기도하자고 해놓고 '저에게 대통령의 권력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권력을 나를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백성을 섬기는 데만 쓰게 해주소서.' only to serve people. 대통령이 하는 일도 제일 중심이 되는 건 국민을 섬기는 일이라는 거죠. 공직자도 마찬가지로 퍼블릭 서번트라고 하잖아요. 공복. 그런데 여기에 공복으로 섬기기만 해서 되는 건 아니니까, 섬겨서 따라오는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마음을 사서 그들이 충성심을 갖고 따르게 만들고 그들을 이끌어가는 능력이 있어야 되는데 이것이 3C입니다 미국에서는. 실력, 인격, 헌신의 자세. 이 3C를 갖춘 섬기는 지도자.
박인규 : 장애인 뿐 아니라 젊은이들을 위한 책이다. 국내에서 많은 강연을 다니셨다고 말씀하셨거든요. 다녀보시니까 반응이 좀 오던가요?
강영우 : 그럼요. 제가 해군사관학교, 육군사관학교에 가서도 섬김의 리더십을 했습니다. 장군들부터 교수까지 전원 들어왔는데 다들 그렇게 좋아하시고 또 불러오라고 재청받고, 사법연수원생들을 위한 강의에서도 워낙 반응이 좋아서 내년에 또 오라고.. 재청을 받아놓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지금 선풍적인 인기죠.
박인규 : 한국에 오신 보람을 충분히 살리셨네요. 오늘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에서는 미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차관보 강영우 박사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지금부터는 강박사님 하시는 일에 대해서 여쭤보겠습니다.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차관보를 맡으신지 6년째 돼 가는데 국가장애위원회가 어떤 일을 하는지 간단히 설명해 주시죠.
강영우 : 5400만 장애인의 국가정책을 만드는 겁니다. 만들어서 대통령께 3개월에 한 번씩 보고하고 추천하는데, 그게 전부 령이 되는 건 아니고 그 중에서 대통령령이 되고. 1년 후에 되는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고. 또 입법절차를 밟아야 하는 건 국회로 1년에 한 번씩 보내집니다. 그래서 미국의 장애인 인권법 ADA가 세계적으로 영향을 주는 거죠. 이것도 국가장애위원회가 만든 거죠.
박인규 : 차관보라면 상당히 고위직이라고 알고 있는데 강박사님은 어떻게 미국의 공직과 인연을 맺게 되셨는지..
강영우 : 미국의 공직시스템이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가 450만 연방정부 공무원 중 2500자리에요. 그 중에서 500개 자리는 대통령의 임명만으로 안 되고 임명동의안이 상원인준을 받아야 하는 자린데, 그래서 이름 앞에 Honorable이라는 경칭이 붙습니다. 대통령이 저를 지명해 주시고 상원의 인준을 받아서 된 거죠. 제가 공무원 자리로 가려고 했던 건 아닙니다.
박인규 : 강박사님처럼 탁월한 능력을 가지신 분이 미국에서 활동하시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에서 활동하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는데, 한국에서는 그럴 기회가 없었나요?
강영우 : 저는 정규 유학을 간 거거든요.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에 돌아와서 교수를 하는 게 제 목적이었죠. 1976년에 돌아오려고 했는데 여기서 취직이 되질 않아서..
박인규 : 장애인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나요?
강영우 : 그렇습니다. 그때는 피츠버그대학에서 교육학계는 특별히 인물이 많았는데, 그런데도 써주질 않아서 8개월 동안 엄청나게 고생했죠. 제일 고생했습니다 그때.
박인규 : 미국에서 장애인정책을 오랫동안 해오셨으니까.. 한국도 장애인문제가 계속 커지고 있거든요. 보시면서 한국의 장애인 정책에 대해서 전문가로서 조언해 주신다면요?
강영우 : 저는 한국의 장애인정책에 대해서 사실 노태우 대통령 이후에 계속 간접적으로 관여가 돼 있습니다. 한국이 참 갈 길이 멀지만 엄청나게 발전을 했습니다. 특히 지난 30년 동안 많이 발전했어요. 그것에 감사하고, 그걸 토대로 해서 더 가면 되는 거죠. 그런데 무엇보다 제도적으로 개선이 좀 있었으면 좋겠어요. 미국의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처럼, 대통령 수준에서 정책도 개발되고. 그리고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우리가 대통령한테 정책을 올리기 전에 각 부서의 장들이 모여서 그걸 조율해야 되거든요. 조율을 해서 하니까 한 목소리가 대통령한테 올라갑니다. 그런데 사실 지금 한국은 그런 면에서 굉장히 혼선이 오는 거예요.
박인규 : 좀 더 힘있고 일관적인 정책을 세워라.
강영우 : 그것도 있고. 구체적 예를 들면 보건복지부와 노동부가 서로 협력해서 같은 걸 하라는 거죠. 보건복지부는 다른 걸 하고 노동부가 다른 걸 해서 서로 싸웁니다. 의견일치가 안 되는 거예요.
박인규 : 강박사님은 워낙 고생을 많이 하셔서 가족애가 남다르시다고 말씀을 들었습니다. 특히 아드님들, 자식농사를 아주 잘 지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올해 미국에서 1월 13일을 한인의 날로 정하는 데 둘째 아드님이 큰 역할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강영우 : 아들 며느리 내외가 다 박사에요. 큰아들은 하버드를 거쳐서 의학박사, 안과의사로 교수로 있는데, 라이징스타.... 떠오르는 별이라는 미국의 안과학회에서 1년에 한 명 젊은 교수에게 주는 상이 있어요. 그걸 받을 정도로..
박인규 : 큰 아드님은 아버님의 눈을 띄우기 위해서 안과를 갔다는 말도 있던데요.
강영우 : 네. 어린 시절에 아버지 눈을 고쳐주는 안과의사가 된다는 꿈을 갖고 그 꿈을 이룬 거죠. 그래서 지금은 아주 2세들에게도 큰 귀감이 돼서 이번 9월에 미국의 2세들.. 한미장학재단이 제일 크거든요. 꿈나무들을 기르는 장학재단. 거기서 장학금을 수여하는 데서도 강진석 박사가 기조연설을 합니다. 안과의사는 큰 아들입니다. 그리고 한인의 날 제정한 건 법학박사 변호사인 강진영이가 미국의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단. 원내대표와 부대표, 원내총무를 모시는 수석법률보좌관이에요. 본회장에 사무실도 있고 전용주차장도 있고. 상원에 입법보좌관으로 들어가서 네 번 승진해서 그 자리에 갔습니다. 의회역사상 그 자리에 간 건 최연소인데, 한인의 날을 제정한 것이 민주당 상원 원내총무인 리차드 더빈 상원의원이 하신 거예요. 그런데 그 분에게 한인사회에서, 첫 한인의 날을 맞아서 고맙다고 한인 언론인들이 인터뷰를 하면서, 어떻게 해서 이걸 스폰서 해서 만들게 됐냐고 했더니. 그 분이, 자기가 데리고 있는 보좌관이 한인인데 그 한인 크리스토퍼 강(강진영)이 아이디어를 주고 하라고 해서 할 수 있었다. 그 사람 덕분에 만들었다. 그렇게 언론에서 얘길 했죠.
박인규 : 듣고 보니까 개인으로 가장으로 이룰 수 있는 걸 거의 다 이루신 것 같은데 앞으로 하시고 싶은 일이 있다면 어떤 게 있는지 마지막으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강영우 : 저는 지금 한 세대를 복되게 살고, 또 교육자의 삶을 살았으니까 남은 생.. 제 임기가 2년 남았습니다. 부시대통령과 같이 물러나는 거거든요. 물러나기 전에도 그렇고 물러난 후에도 젊은 세대들을 위해서 승리의 삶,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교육원리, 또 저는 신앙인이기 때문에 신앙과 교육을 접목시키는 걸 보급해 주고. 또 자녀교육을 어떻게 성공적으로 시켜서 명문가문을 만드느냐. 이런 것에 남은 생애를 바치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쓴 책 중에 '도전과 기회 3C혁명' 실력, 인격, 헌신의 자세가 미국의 공직자 등용기준인데, 젊은이들에게 저는 실력은 기본이고 인격과 헌신의 자세도 겸해 갖춰서. 저는 그걸 몰라서 차관보를 했지만 젊은 세대 여러분들은 장관도 하고 대통령도 하고 그렇게 되시고. 자녀들도 지적인 교육에 집중하지 마시고, 제일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감성과 의지를 길러주는 정의적인 교육, 태도의 교육입니다. 케네디 대통령도 아이큐116을 가지고, 아버지가 인간의 성공의 척도는 돈이 아니고 가문을 어떻게 잘 일으키고 자녀교육을 잘 시키느냐가 성공의 척도다. 이 철학을 가지고 아들들을 기른 겁니다. 그래서 그런 면에 힘쓸 생각입니다.
박인규 : 앞으로도 한국과 미국의 장애인들, 젊은이들을 위해서 많은 역할 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이 인터뷰는 강박사가 출국하기 직전인 지난 14일 녹음된 것입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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