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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명리학 <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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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명리학 <246>

성공(成功)을 원하는 자에게

책방에 가면 성공으로 향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많은 책들이 있고, 일의 특성마다 알아야 할 지식이 있다. 하지만 그것과 관계없이 일을 성취함에 있어 반드시 배우고 익혀서 체화(體化)시켜야 하는 지혜가 있으니 오늘은 그것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이 세상은 이미 그렇게 주어져있는 바의 소연(所然)이 있고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 하는 바의 응연(應然)이 있다. 다소 어려운 말로 여겨지면, 풀어서 소연은 현실(現實)이고 응연은 가치(價値)라고 받아들여도 큰 무리가 없겠다.

쉬운 예를 하나 들기로 하자.

가령 어떤 청년이 지방선거에 출마했다고 하자.

선거는 경쟁이고 승부이니 상대 후보보다 많은 표를 얻어야 한다. 유권자들에게 잘 보여야 하는 게임이다. 주어진 기간이나마 더욱 밀접하게 다가가야 하고, 그들의 환심을 살 수 있는 공약(公約)도 내걸어야 할 것이다.

점점 유세전이 치열해지면, 지킬 수 있는 것인지를 따지기보다는 당장 환심을 살 수 있는 선거공약을 표명하게 될 것이고 나아가서는 남발하는 경우도 생길 것이다.

선거운동원도 더 필요하니 선거 브로커들에게 금전을 주고 무리한 선거운동도 하게 될 것이며, 더러는 불법적인 일도 주저하지 않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상대가 약간의 반칙이라도 하면 나 역시 그럴 수 있는 명분이 생긴다. 기화(奇貨)로 삼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막판의 혼탁한 선거양상'이 전개되는데, 여기서 우리는 소연(所然)과 응연(應然)이 무엇인지를 잘 알 수 있게 된다.

당초 공명정대한 선거를 다짐하고 나섰다 하더라도 눈앞의 현실, 즉 주어진 바대로의 소연(所然)은 너무나도 급박하고 혼탁하다.

이랬을 때 청년 후보가 당초의 페어플레이 정신을 지키겠다는 응연(應然)으로 임할 것인지, 다소 무리이지만 혼탁한 현실의 소연(所然)을 인정하고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의 대응을 할 것인지 갈등을 겪는 것은 당연하고도 흔한 일이라 하겠다.

더러는 정정당당했지만 선거에 지고 다시는 공천의 기회마저 없는 불운도 있을 것이고, 혹은 그 자세를 인정받아 나중에 다시 기회를 얻는 일도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극단적으로 온갖 빈 약속들의 남발과 함께 돈을 끌어들여 미디어 플레이와 운동요원을 대거 투입하여 승리만 바라보는 강력한 승부 근성의 후보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러다가 낙선의 고배를 마시고 엄청난 후유증으로 삶 전체가 피폐해버리는 한심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있을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실로 다양하지만, 여기서 가장 옳은 길은 어떤 길이 되는 것일까? 그 답은 소연(所然)을 음(陰)이라 하고 응연(應然)을 양(陽)으로 하여 음양 간에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것이다.

일을 이루는 데 있어서의 음양(陰陽)을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세력(勢力)의 향배(向背)와 도리(道理)의 순역(順逆)'이라 하겠으며, 그를 보아 그 가운데(其中)를 취해야 하는 것이고 그로서 진퇴(進退)를 정해야 하는 것이다.

세력이 어느 쪽을 향하고 또 등지는지, 지금의 일이 과연 어느 정도 옳고 그른 일이지를 판단하여 균형을 잡는 것인데, 그로서 진퇴를 정한다는 말은 대단히 중요하다.

가령 선거가 혼탁하여 편법을 통하지 않고는 이길 수 없다고 여길 경우, 무리한 행위라도 마다치 않는 후보도 있겠고, 당초의 의미가 퇴색한다고 여겨 공명하게 승부하고 지더라도 후회하지 않는 마음으로 임하는 후보도 혹은 있을 것이다.

그 어느 쪽을 택하든 그것은 후보 자신의 가치관과 현실감 사이에서 정해지는 것이고, 그로서 물러남이 마땅하다 싶으면 물러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유형은 '까마귀 우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의 '백로'과로 분류할 수도 있겠다.

중요한 것은 진퇴를 정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에게 진솔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세상은 맑고 흐림의 청탁(淸濁)이 반반(半半)이라 사실 무슨 일을 이루려고 할진대, 손에 흙 묻히지 않고 심지어는 피 묻히지 않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배우고 익힌 도덕률에 따라 혼탁의 세상을 탓하며 물러남도 일리가 있는 것이고, 혼탁을 개선하기 위해 혼탁 속으로 뛰어드는 것도 이치에 크게 틀리지 아니한다.

앞서 진퇴를 정할 때 스스로에게 솔직하라고 함은 어떤 편법이라도 써서 이기고 싶다면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물론 스스로 명분-실은 핑계거리-을 만들면 될 일이다. 이 세상에 가장 쉬운 일, 흔한 일이 핑계 만드는 일이니 말이다. 이런 경우에 어울리는 것이 '시세(時勢)를 아는 자 곧 영웅(英雄)'이란 말이다.

그러나 새길 것이 하나 있다.

사물의 옳고 그른 이치, 즉 순역(順逆)을 외면하고 그저 세력만을 좇는다면 작게는 공명(功名)에 눈이 멀어버린 필부(匹夫)의 기개(氣槪)에 그칠 것이고, 요행히 한 때 일을 이룬다 해도 마침내 자신의 몸을 망치거나 훗날 이름을 더럽히게 됨은 물론 세상을 해(害)하고 어지럽히게 된다는 것이다.

반대로 까마귀 동네를 피하는 '백로'에 대해 해 줄 말도 있다.

사물의 도리(道理)만을 따져 운신(運身)한다면 훗날 절개(節槪) 곧은 지사(志士)의 아명(雅名)을 얻을지는 몰라도, 청탁(淸濁)이 뚜렷치 않은 현세에서 그 포부와 뜻을 펴기가 여간 어렵지 않을 것이며, 따르는 사람들의 노고(勞苦)를 헛되이 하여 마침내 뿔뿔이 흩어지게 하고 스스로마저 영락(零落)하여 당초의 큰 뜻은 간 곳이 없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치는 큰일만이 아니라, 개개인의 직장생활이나 자신의 작은 사업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직장 역시 같이 일하는 동료가 때로는 친구, 때로는 라이벌일 수 있는 것이며 상사나 부하도 마찬가지이다. 이에 적당히 부화뇌동해야 함도 필요할 것이며, 자신의 주관을 뚜렷하게 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하위직급일 때는 성실하게 일하고, 윗사람에게 충성하면 충분하지만, 중간 간부나 그 이상의 직급으로 올라가고자 하면 능력보다 정치, 어쩌면 정치가 능력의 전부인 양 느껴지는 순간도 있을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실패할 경우, 우리는 '조직의 쓴 맛'을 봤다고 표현한다. 물론 조직이 비대하거나 주인이 확실하지 않을 경우 정치적 능력은 더욱 비중을 키운다.

이기고 지는 승부에서 가장 깔끔한 것은 바둑일 것이다. 프로 기사들은 별 말이 없으니, 반상의 승부가 뚜렷해서 승복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한 쪽이 패배를 시인하고자 돌을 던졌을 때, 이긴 자는 과한 웃음을 자제하여 아량을 보여주고 패한 자는 분하지만 표정을 담백하게 하면 그 뿐이지 별 말이 필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승부는 바둑과는 다르다. 다시 말해 깔끔하지가 않다.

현실의 승부는 대부분 타인들로부터 평가를 얻는 일에 기초를 둔다.

좋은 물건이다 하는 중평을 얻으면 많이 팔릴 것이고, 그럴 듯한 인물로 보이면 선거에 이기는 것이라 그곳은 사실 진리라든가 정답과는 거리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 탓에 홍보가 중요하고 입소문이 결정적이며, 중인의 환심을 사는 정치가 말을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성공을 하려는 자, 뜻을 세상에 펴고자 하는 자로서 앞서 말한 '세력의 향배와 도리의 순역'에 대한 이치는 실로 가슴깊이 새기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해주고 싶은 말은 소기의 성공을 얻지 못했다고 너무 기죽거나 가슴을 상하지는 말라는 말이다.

눈을 들어 세상을 보라!

세상은 '주류(主流)'된 무리와 그 자리를 앗으려는 '비주류(非主流)'간에 변변치 않은 명분을 앞세운 가운데 연이은 드잡이로 가득하니, 그 뿌연 진애(塵埃)가 한 낮의 태양을 가릴 정도이다.

그러나 제3의 길도 있다. 살다보니 눈치를 차리고 '주류'이기를 포기한 자들도 간혹 있으니 필자는 이를 '외류(外流)'라 일컫는다. 주류와 비주류의 밖에 처한 외류.

도덕의 경계(境界)가 애매모호한 세상, 청탁(淸濁)이 갈마드는 현세에서 주류와 비주류 전체를 초월하여 의식(衣食)만 이을 수 있으면 족하다 여겨서, 자연을 벗하여 풍류를 즐기고 마음 맞는 사람들과 정을 나눌 수 있으면 한 세상살이에 아쉬움이 없다 여기는 마음이다.

일러서 최근 우리사회에 회자되는 '소오강호(笑傲江湖)'의 마음 경계라 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비가 오려나 보다, 문득 창밖이 소란해진다.

(전화:02-534-7250, E-mail :1tgkim@hanmail.net)
- 김태규의 명리학 카페 : cafe.daum.net/8c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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