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이 모임에 소속된 36명의 우리당 의원 가운데 외유 중인 의원을 뺀 27명에게 직접 의견을 물은 결과, 17명이 노 대통령 발언에 반대 입장을, 4명이 찬성 입장을 보였다. 6명은 "당청 갈등으로 비칠까봐 답변하기 곤란하다"는 등의 입장을 밝히고 의견 표명을 거부했다.
지난 9일 노무현 대통령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통상절차법을 하겠다면 국회가 협상하겠다는 얘기냐", "조약체결권을 국회가 갖고 가는 건 적절치 않다. 3권분립 원칙에 따라 처리돼야 한다" 등의 발언을 한 바 있다.
"조약동의는 입법의 한 형태… 당연히 국회가 협상내용 알아야"
답변한 의원 중 상당수는 외국과의 중요한 통상 협상에서 국회가 거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내며 노무현 대통령의 통상절차법 비판 발언을 재반박했다.
최재천 의원은 "현재 국회는 조약체결에 관한 비준동의권을 가지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사후 동의에 그칠 뿐 협상 시작이나 내용 확인, 국민 의사 전달과 관련된 어떠한 실질적인 권한도 갖고 있지 못하다"고 비판하면서 "조약에 의해 국내 법규가 개폐되는 이상 정부는 국회가 각종 조약체결 절차에 사전에 참여해야 할 필요성을 당연히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최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의 3권분립 발언에 대해서는 "3권분립의 의미는 국익과 새로운 헌법 해석에 따라 변화되는 것이지 칸막이식 3권분립을 고집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이제 국회가 헌법의 범위 내에서 조약 체결에서 비준까지의 과정에 관여할 수 있는 시점이 됐다"고 말했다.
정성호 의원 역시 "국회가 갖고 있는 조약의 동의권은 입법의 한 형태"라며 "통상절차법이 3권분립과 어긋난다는 주장은 동의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정 의원은 "대통령 만이 조약 체결의 전권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며, 국회도 협상의 내용과 절차가 제대로 추진 될 수 있도록 논의할 권한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태홍 의원은 "통상절차법을 추진하는 것은 국회가 직접 협상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국회가 배제되어 있는 현실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의미"라며 "국회에 정보를 알려주지 않으면 진지한 논의는 물론 사회적 공감대도 이루기 어려운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우원식 의원도 "지금까지 국회는 비준권 밖에 없어 과정에 개입할 수 없었지만 국민들을 대신해서 국가에 개입하고 감독할 필요가 있다"며 "통상절차법을 통해 그런 절차를 정하는 것이 문제될 것 있을까"라는 의견을 보였다. 이어 우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도 국회에 있었으면 통상절차법 하자고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적일지 몰라도 효율적이지 않다"
하지만 한국과 미국의 차이를 비교하며 통상절차법이 삼권분립에 어긋난다고 주장하는 의원도 소수 있었다.
노웅래 의원은 "미국의 경우 통상교섭권을 의회가 가지고 있어 협상 방향을 제시하고 내용에 적극적으로 관여할 수 있지만 우리는 교섭권을 정부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 통상절차법은 어렵다"고 주장했다.
노 의원은 "현재의 헌법체계 상 통상절차법이 정부의 교섭권을 침해한다고 볼 수 있다"면서 "그러나 국회의원이 법률안을 낸 것을 침해라고 표현하는 것은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고 지적했다.
채수찬 의원도 통상 절차법에 분명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채 의원은 "국회가 행정부에 대해 협상에 대한 여러가지 요구를 할 수 있다"면서 "그러나 협상 과정 자체에 국회가 직접 개입하는 것은 한국의 법체계에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회가 협상 내용을 미리 보고 과정에 관여하는 것은 생산적이지 못할 뿐더러 현실성도 없다"고 덧붙였다.
정덕구 의원도 "국회가 비준권만 갖고 있는 이상 협상 과정에 관여해야 할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이럴 경우 협상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 있다"면서 "국회에 행정부가 보고하는 정도는 모르겠지만 직접 심의를 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민주노동당의 통상절차법은 지나친 느낌"
그러나 많은 의원들이 통상절차법은 필요하다고 보면서도 현재 통외통위에 계류되어 있는 권영길 의원의 통상절차법은 다소 과도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임종인 의원은 "현재 민노당에서 낸 통상절차법은 사실상 교섭권까지 의회가 갖는 성격이 있다"면서 "그동안 국회가 통상교섭이나 조약 비준에 있어 지나치게 소외되어 있었던 것은 분명하고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은 분명하나 현재 통상절차법안은 과도한 감이 있다"고 지적했다.
임 의원은 "우리 국회의 특성상 의회가 통상교섭권을 갖게 되면 통상교섭이 사실상 가능하지 않게 된다"면서 "정부의 교섭권과 국회의 비준권을 존중하는 선에서 보고의무 규정과 정보 공개범위를 정하는 선에서의 통상절차법은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승희 의원도 "통상절차법은 제정되어야 하지만 그 수위나 강도는 앞으로 논의과정에서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며 "행정부의 자율성이나 협상교섭권은 존중해야 하지만 국민의 알권리도 있기 때문에 통상절차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단계 수위 낮춘 통상절차법 준비 중" 이와 관련해 이상민 의원을 비롯한 몇몇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권영길 의원의 통상절차법을 개정한 수준의 새 통상절차법을 준비중이다. 이상민 의원은 "권영길 의원의 통상절차법안의 28조와 29조를 보면 특정 조약을 추진하고자 할 때는 협상을 개시하기 전에 국회의 동의를 얻도록 되어 있다"면서 "정부가 특정 협상을 추진하고자 하는 것부터 국회의 동의를 얻도록 되어 있는 것은 정부의 협상권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라고 본다"고 지적했다. 또 이 의원은 "34조 3항에 보면 국회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협상단의 일부를 추천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이 역시 정부의 협상 실무 업무에 관한 부분을 과도하게 침해하고 관여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 의원은 체결문이 서면으로 작성되기 전에 국회의 동의를 얻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양국이 정식 체결하기 전에 만들어진 합의문에 대해 체결 전에 국회의 동의를 얻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체결 후에 국회가 동의를 하지 않거나 내용 변경 요구를 하게 되면 대외 신인도가 추락할 수 있기 때문에 사전에 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권영길 의원의 법률안을 수정하는 것이므로 양해를 구할 생각"이라며 "이 정도 수준의 법안이면 그리 지나친 것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정덕구 의원은 "서명 전에 동의절차를 받게 되면 나중에 비준 절차가 유명무실해 질 수 있다"며 비판적인 입장을 밝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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