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는 왜 이렇게 인사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또 대통령은 왜 이렇게 인사권에 집착하는 것일까? 이러한 인사의 문제는 다른 역대 정권과 달리 참여정부만이 갖는 독특한 문제인가? 그렇다면 여기서 어떠한 교훈을 얻어야만 하는가? 이 분야는 비록 필자의 전문분야(국제정치)는 아니지만 감히 사회과학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위의 질문에 답을 시도해 보고자 한다.
흔들리는 참여정부: 적은 내부에 있는가 아니면 외부에 있는가?
역대 정부와 참여정부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아직까지 참여정부의 실세 중 권력 혹은 특권을 남용하여 큰 이권을 챙긴 대형 부정부패 사건이 없었다는 점이다. (외환은행 매각과 관련한 비리사건이 있긴 하나 아직 그 내용의 전모가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지 않으며 그 당시의 관료들이 참여정부의 사람, 특히 실세로서 당시의 일에 관여한 것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최근 터지는 법조비리의 성격도 참여정부 실세의 비리로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만약 이후 참여정부 실세들의 부정부패 사건이 터진다면, 이 글의 전체적인 분석은 의미가 없어질 것이므로 그 때에는 이 글을 완전히 무시해 주기를 부탁드린다).
즉 대통령 스스로 혹은 그 측근 및 가족, 자제가 직접 권력을 남용하고 부정부패 스캔들 및 소문에 말렸던 과거의 정권과는 달리 참여정부의 실세들은 그러한 소문과 스캔들에서 상대적으로 매우 자유로웠다고 할 수 있다. 물러난 장관 및 총리도 부정부패 및 대형 권력형 비리 사건으로 물러났기보다는 도덕성의 문제가 주요한 원인이었고, 현 정부의 연이은 선거 참패도 부정부패보다는 무능력, 독선, 실정 등에 기인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선거 관련 이러한 부분을 가장 통찰력 있게 제일 먼저 제시한 글은 전주대 이강로 교수의 글이다. 참고로 미래연 홈페이지의 논단, 혹은 <프레시안> "선거후 여권의 대응, 이래선 안된다."를 보시길)
이러한 상황에서 대통령을 비롯하여 참여정부의 실세들은 떨어지는 지지도와 현재 1년 반 남은 시점에서 전방위에서 날아오는 비판이 매우 섭섭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가장 깨끗하고 열심히 일한 자신들을 인정하고, 북돋워 주기는커녕 오히려 부정부패의 원죄를 아직 완전히 청산해 내지 못한 야당에 선거 때마다 표를 몰아주는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보수 진영뿐만이 아니라 과거의 지지세력이었던 진보진영마저 비판의 날을 세우는 것에도 역시 상당한 배신감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지지도의 하락과 이탈에 대한 이들의 해석은 아주 단순화하여 본다면 두 가지 방향으로 향하는 듯하다. 첫째는 보수 언론의 담론 장악이고, 다른 하나는 소위 말하는 레임덕이다. 즉 참여정부가 흔들리는 원인을 모두 외부에서 찾는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 해석의 요지는 다음과 같을 것이다. 참여정부는 그야말로 깨끗하게 최선을 다하였고 또 역대 정권에 비하여 크게 정책적으로 잘못한 것도 없는데 보수 언론이 흔들어 대고, 또 그들의 담론이 사회 전반에 먹혔기 때문에 정부에 대한 지지도가 떨어졌다는 해석이다. 이러한 인식은 보수 언론에 대한 과도하게 민감한 반응과 대응으로 나타난다. 매번 보수 언론의 정부비판이 있을 때마다 언론에 대하여 즉각적이고 대대적인 반격을 하거나 취재거부를 하는 것과 같은 반사작용이 그러한 예이다. 정부의 대국민 홍보활동의 심도, 빈도, 범위가 정권 후반기로 오면서 나날이 확대되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왜 정부의 대언론 반박의 강도가 강해짐에도 불구하고 왜 이들 언론의 영향력이 더욱 강해지는지를 설명하지 못하고, 또 왜 이제는 진보언론마저도 등을 돌리고 있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그래서 참여정부는 두 번째 해석이 필요해진다.
두 번째 해석의 요지는 다음과 같을 것이다. 참여정부는 그야말로 깨끗하게 최선을 다하였는데 보수언론 때문에 점점 지지도가 떨어지자 다음 대권을 노리는 세력들이 참여정부를 때리면서 반사이익을 보려고 한다는 해석이다. 특히 여당, 진보 진영의 학자, 그리고 심지어는 진보매체까지 이러한 정부 때리기에 가담하는 것을 보고 상당한 실망과 권력 누수의 불안함을 느끼고 있을지 모른다. 이러한 인식은 집권 후반기의 레임덕에 맞물리면서 여당 및 진보진영과의 권력투쟁이 시작되었다는 강한 인식으로 연결되고 권력투쟁에서 밀려서는 안 되는 몇 가지 사안에서 충돌을 빚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가장 중요한 사안이 바로 대통령의 인사권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진보진영이 정권의 중반부터 황우석 사태, 경제정책 및 대북정책, 그리고 한미 FTA라는 구체적 사안을 중심으로 일찍이 돌아서기 시작했다는 점을 설명하지 못한다. 현 정부의 언론과의 싸움은 이 글의 주제가 아니므로 여기서는 인사권 문제만 분석해 보기로 한다.
인사권 집착: 충성(loyalty)과 보상(compensation)의 전근대적 교환관계
여기서 참여정부가 다른 사안의 권력투쟁보다 왜 인사권에 집착하는지 그 이유를 유추해 보자. 그 이유는 사실 어떻게 보면 매우 간단해 보인다. 참여정부가 상당히 마음을 비웠기 때문이다. 즉 참여정부는 민주주의와 개혁을 위하여 역대 정권이 가지고 있었던 거의 모든 특권을 버리고자 하였고 또 사실 많이 버렸다. 정보기관에 의한 사찰, 세무조사, 권력남용에 의한 이권 챙기기, 언론통제 등을 상당부분 포기하였고, 인사청문회와 같은 투명성을 제고하는 등 과거 정권에서 빈번히 해 오던 악습들과 특권을 과감히 버리는 마음비우기를 했다. 그런데 문제는 출세지향적인 정치인이 속세에서는 마음을 완전히 비울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적당히 비우면서 많은 것을 버리고 나면 남는 것이 별로 없다는 데에 있다.
고생해서 쟁취한 권력과 고생해서 일한 보람이 대기업 사원보다 크게 나을 것 없는 월급과 마음대로 휴가도 못가고, 마음대로 술도 못 마시고, 차도 마음대로 타거나 살 수 없고, 말도 마음대로 못하는 그런 신분상의 제약으로 귀결되는 것을 보고 속세에서 그냥 안분지족하고 살기가 쉽지 않다. 실상 권력획득은 엄청난 욕구가 원동력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권력을 획득하고 나서 마음(즉 욕망)을 비우는 도를 닦는다는 것은 뼈를 깎는 고통이 된다.
그래서 도덕적으로 깨끗하다고 자부하는 참여정부가 유일하게 가질 수 있는 인센티브가 바로 "자리"가 된다. 특권과 이권을 포기하고 남는 것이 있다면 "자리"에서 생겨나는 권위와 명예가 된다. 날 위해서 충성을 바친 사람에게 수십억이나 회사 하나를 떼어 주지는 못하지만 한 자리 또는 몇 자리는 줄 수 있어야 열심히 일할 인센티브가 생기는 것이며, 일한 것에 대한 보상이 되는 것이다. 그게 참여정부의 실세들이 할 수 있는, 또 가질 수 있는 최대한의 보상이 되어 버렸다. (충성과 자리의 교환관계가 심화되면서 내부에서 노선투쟁이 벌어지면 점차 인재 풀이 더욱 줄어드는 내부 동학이 생길 수 있는데 그것이 이른바 돌려막기 인사로 발전된다.)
여기서 바로 대통령의 인사권이 대통령 고유의 권한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또 그 고유의 권한을 지키고자 하는 당청간의 "합의" 도출 노력이 생기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지 않다면 대통령도 나머지는 다 버리고 유일하게 남아 있는 대통령의 권한(혹은 특권)마저 잃어버린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이 권한을 잃어버리면 가뜩이나 적은 인재풀 안에서 권력누수는 훨씬 빨라질 것이라는 고민을 아니 할 수 없다. 사실 이는 현 정부 실세들의 매우 인간적인 고뇌의 산물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인간적인 고뇌의 뒷면에서는 참여정부가 근대적인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시대에 "자리"를 위하여 정치를 하는 매우 위험한 전근대적인 왜곡이 생겨나고 있다. 참여정부 스스로에게는 매우 아이러니컬하게도 가장 근대적인 시스템을 완비하려다가 가장 전근대적인 관료국가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이는 다시 말하자면 사회의 근대화 속도를 정부나 정치인 의식의 근대화 속도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버림의 미학의 아이러니
이러한 아이러니가 생겨나는 이유는 불행하게도 참여정부가 자본주의 근대화를 완성시키는 과정에서 스스로의 정당성을 근대적인 전문성보다는 전근대적인 청빈의 가치에서 주로 찾았기 때문이다. 과거 정권의 부패와 부도덕성이 워낙 컸기 때문에 국민은 새로운 집권세력에게 청빈과 투명성을 요구하였고 그러다 보니 참여정부는 남들이 우러러 보는 국가권력을 장악했음에도 불구하고 소위 그 권력의 경제적, 권력적 혜택은 특별히 누리지 못하고 있다. 이들의 삶은 자본주의 시대에서는 돈 많은 기업가와 자산가보다 특히 나을 것이 없고, 민주주의 시대에서는 자신들을 매일 같이 때려대는 기자와 지식인보다 나을 것이 없다. 그렇다고 자신들이 추구하는 정책이 효력을 발휘해서 국민생활이 나아지고, 그래서 존경을 받는 것도 아니다. 연예인이나 운동선수, 그리고 꽉 막힌 대학에서 경쟁력 없어 보이는 교수들보다도 존경을 못 받는 것이 이상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참여정부의 인사들은 자리와 직급과 그에 따르는 일정 정도의 명예 등이 필요하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시대에 자리를 통한 보상은 더 높은 자리를 얻기 위하여 대통령에게 극도의 충성도를 보이려고 하는 부작용이 생기고, 대통령은 충성도가 높은 측근을 중심으로, 특히 집권 후반기에 다가가면서, 계속 "돌려막기 인사"를 하게 된다. 과거 전근대 사회에서는 출세를 한다는 것이 관에 등용되는 것이고 관에 등용되면 부와 명예와 권력을 다 얻게 되는 그러한 사회였다. 마찬가지로 개인의 자유로운 영리활동이 보장되지 않은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공정한 분배제도가 어느 정도 확립되기 시작하면 공평한 생산의 배분이라는 인센티브보다도 당에서의 "자리"가 더욱 중요한 인센티브가 되고, 자리의 인센티브에 접근조차 하기 힘든 일반인들은 상징과 어느 정도 종교성을 띤 동원체제 안에 포함되게 된다. (과거 전근대 사회가 대부분 종교적 동원체제였다는 것은 그 이유가 있다.) 북한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가 전근대적인 종교 사회와 유사해지는 동학이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여하튼 과거 정치지망생들은 출세를 통하여 신분을 상승시키고, 그러한 신분의 상승이 부와 명예와 특권을 가져다 줄 것으로 믿었으나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나갔다. 아무리 정부의 요직을 얻는다 하여도 자리라는 명예는 얻을 수 있으나 대기업 임원보다 부를 많이 축적할 수 없고, 세간의 이목 때문에 남들 같이 행동의 자유를 누릴 수 없으며, 기자 같이 언론을 장악할 수 없고,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보다 인기도 없고 인지도도 떨어진다. 즉 과거의 특권이 상당부분 사라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왜 정치를 하고 정부에 들어가려 할 것인가? 집권의 인센티브를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여기가 바로 선진화 담론이 깊이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선진 정치인의 덕목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 야당은 아직도 과거의 특권을 되찾으려 한다는 인상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즉 집권을 하면 권력을 통하여 부와 명예와 권력과 이권을 가지려 한다는 인상을 지우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런 것 말고 국민을 위하여 집권할 것이라는 비전을 변변한 것 하나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가 그리울 뿐인 것으로 보인다. 과거가 그립다는 것은 특권과 이권이 그립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정말 선진화 세력이라면 자신의 철학과 비전을 실현하고자 하는, 그리고 사회의 문제점을 제대로 고쳐보고자 하는 그러한 목적으로 정부라는 수단을 장악하고자 할 것이다. 즉 보다 나은 국가와 사회를 국민에게 안겨주겠다는 (특권의식이 아닌) 봉사정신으로 권력을 획득하고자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국민을 위한 봉사를 훌륭히 해낸 정치인들과 관료들은 퇴임 후 사회의 존경과 동시에 경제적인 인센티브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미국의 경우에 이에 해당하는 것이 퇴임 후의 회고록과 강연을 통하여 벌어들이는 엄청난 수입이다. 그리고 성공한 정치인이나 관료는 대기업의 CEO로 모시거나 큰 로비회사 및 로펌의 대표나 중역이 된다. 유명세를 이용하여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인 부를 획득하는 것이다. 또한 아주 성공한 정치인은 그 이름으로 도서관, 기념관, 공항 등을 지어 명예와 존경을 항구화한다. 실패한 정치인이나 관료는 그만큼 퇴임 후 경제적 보상과 사회적 보상이 작아지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재임기간 중 국민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대한의 성과를 내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을 수 없다. 즉 윈-윈 구도가 성립되는 것이다.
따라서 참여정부의 "마음을 비우는 정치", "청빈의 정치"는 근대적 정치발전에 역행하는 생각이며 정부 실세들끼리만의 정치가 될 수 있다. 퇴임 후에 시골에 가서 농사나 짓고 살겠다는 생각보다는 퇴임 후에 국민들의 존경과 또한 경제적 보상을 받겠다는 생각으로 정치를 하여야 오히려 민심을 정확히 읽고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보다는 "역사"가 알아 줄 것이라는 매우 막연한, 종교적 정치를 하게 된다. 이는 사실 매우 전근대적인 발상이다.
남은 기간 참여정부의 과제
참여정부는 불행하게도 민주주의, 자본주의, 근대화의 발전 도상에서 전환기의 다리(bridge)에 해당하는 소임을 운명적으로 갖게 되었다. 전환기의 다리는 새로운 시대의 출발을 위한 기반을 잘 깔아주고, 또 새로운 시대의 이상적인 표준(standard)을 만들어 주는 것이 가장 큰 과제다. 무언가를 완성하여 업적으로 남긴다는 생각은 자신의 운명적 소임을 거스르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따라서 남북관계, 한미 FTA, 한미동맹, 부동산, 교육정책, 실업문제 등 무언가를 끝장내겠다는 생각보다는 큰 흐름, 물줄기를 만들어서 이를 새로운 시대의 표준으로 남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참여정부가 정말 마음을 비우고자 한다면 이제 참여정부의 국정을 완수한다는 "끝내기"에 연연하지 말고 미래지향적인 선진적인 정치세력을 구별하여 이들이 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어 주는 것이 더욱 바람직할 것이다. 그리고 새 시대의 표준이 무엇인지를 몸소 과정 상에서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황우석, 김병준 교수의 표절 및 논문 조작 등은 매우 잘못된 선례를 남겼다. 나라를 움직이는 정치인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것들이 하찮은 것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또 몇 십억, 몇 백억의 부정부패에 비하면 이러한 것들이 하찮은 것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의 직업윤리를 어긴 것은 매우 심각한 사건이다. 이는 정치인이 부정선거를 하고, 군인이 탈영하고, 직장 상사가 성희롱을 한 것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이제 참여정부는 국민과 동떨어진 실패한 구상들을 무리하게 추진하기보다는 철학과 자기 비전을 갖고 이를 봉사정신으로 실현하려는 능력 있는 새로운 정치세력에게 길을 열어주는 것이 업적이 될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새로운 시대의 선진적인 표준을 확실히 확립해 주는 것이 더욱 큰 업적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업적을 인정받는 한 은퇴 후에도 정당한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보상을 기대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렇지 않으면 전근대적인 특권을 재탈환하려는 정치세력에게 권력을 넘겨주는 역사의 죄를 지게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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