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우리더러 날아보라고!"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우리더러 날아보라고!"

팔레스타인과의 대화 <5> 인종분리장벽과 휴전선

한국을 생각하면 나로서는 이산가족들이 50년 만에 상봉하는 장면이 처음 떠오른다. 그리고 이 장면은 내게 국외로 추방된 팔레스타인인들이 국경에서 울타리를 가운데 두고 가족을 만나는 모습을 보았을 때와 똑같은 격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얼굴 생김새가 다르다는 것만 빼면 두 장면은 너무나 똑같아서 서로 뒤바뀔 수도 있을 지경이다.

현대 정치사에서 한국과 팔레스타인은 보통 사람들의 의사하고는 상관없는 전쟁의 무대가 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득을 놓고 다투는 지역적, 국제적 도박사들이 지도를 갈라 친구와 적을 만들어 놓았으며, 보통 사람들이 자신의 목숨과 소망을 희생하여 그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한국과 팔레스타인 양쪽에 이제껏 똑같이 남은 결과는 전선, 장벽, 경계들인 것 같다. 이 벽들은 지리적으로 국토를 분리시킬 뿐 아니라 사람들을 자연스러운 존재 규범으로부터 갈라놓는다. 나는 팔레스타인인들과 비슷한 고생을 해 온 한국인들에게 형제애를 느낀다.
▲ 이스라엘이 분리장벽 건설을 시작한 다음 해인 2003년부터 세계 각국의 예술가들이 팔레스타인에 몰려들어 분리장벽의 팔레스타인측 벽에 장벽 건설에 반대하는 만화를 그려넣고 있다. 이 사진들은 스웨덴의 여성 사진작가 세실리아 파르스베르그(Cecilla Parsberg)가 촬영해 유럽의 <유로진>(Eurozine: www.eurozine.com)이라는 인터넷 매체에 기고한 것들이다. ⓒ세실리아 파르스베르그

2년 전, 이스라엘이 인종분리장벽1)을 짓기 시작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나는 베를린에 있었다. 당시 나는 철학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있어서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독일의 춥고 외로운 밤마다 팔레스타인은 내 안에 있는 고향이었고 터널 끝에 보이는 단 하나의 빛이었다.

독일에 머무르는 6년 동안 나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아침마다 신문에서 조국에 관한 기사들을 훑어보았다. 독일 신문들과 유럽에서 발행되는 아랍어 신문을 비교해서 읽으면서 나는 상반된 두 영역 사이에 끼어 고문당하는 듯한 아픔을 느끼곤 했다. 하나는 그 '망명 생활' 동안 내 마음과 영혼을 온통 차지하고 있던 팔레스타인이고, 다른 하나는 중립 지대로 남아 6년이나 되는 세월이 지나도 나의 내면을 조금도 건드리지 않았던 독일이었다. 때로 나는 뉴스 보도를, 장벽으로 인해 팔레스타인으로부터 분리된 땅들을 구경하는 용도로 이용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국제 뉴스의 렌즈가 장벽에 반대하는 시위대 속에 있는 내 친구들의 얼굴을 비추기라도 하면, 나는 마치 먼 곳의 유령에게 사로잡힌 듯 넋이 나갔다.
▲ ⓒ세실리아 파르스베르그

마침내 내가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왔을 때, 분리장벽은 거의 마무리 단계였다. 거대한 인종차별의 기념물 앞에서 나는 내 동포들이 이미 겪었을 엄청난 상실감을 비로소 느꼈다. 적나라한 현실과 비교하면 그동안 내가 봐 왔던 모든 보도들은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장벽은 팔레스타인 집들의 작은 마당을 가로질렀다. 집주인들은 자기 마당에 있는 나무에 열린 열매를 따러 가기 위해서 이스라엘 군대로부터 특별허가증을 받아야 했다. 이런 일이 21 세기 '멋진 신세계'라는 악몽 속에서 벌어지고 있다.

장벽은 또한 서안 지구의 많은 마을들을 고립시켰다. 마을 주민들은 학교, 직장, 경작지, 묘지에 갈 수가 없다. 안보라는 명분으로 최종의 목표를 달성하려는 식민주의자들의 이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다시 한 번 보통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과 죽음을 대가로 치르고 있다. 식민주의자들의 최종 목표는 이것이다. 땅은 최대화하고 사람들은 최소화한다.

머잖아 장벽은 팔레스타인 사회를 도시별로 해체해 각 도시를 세상에서 가장 큰 감옥으로 만들어버릴 것이다. 지역적, 인구적 단일체를 "생존능력"이 부족한 땅 조각들로 낱낱이 쪼개버릴 것이다. 식민주의자들은 팔레스타인인들로 하여금 장벽을 새로 주어진 현실로 받아들여 자기들의 상상력과 존재가 나아갈 수 있는 한계가 거기까지라고 체념하게 만들려는 것이다.

거의 백 년을 끊임없이 싸워 온 우리 팔레스타인인들은 좌절하지 않았으나, 국제적 지원이나 무기에 있어서 우리가 열세임을 확실히 인식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인간으로서 존엄하게 살 자격이 있다는 믿음으로부터 힘을 끌어낸다. 전략적 허점을 메우기 위해 우리가 사용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은 풍자다. 어둡고 쓴 풍자는 점령자들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상처 입히기도 한다. 툭 내던지는 풍자가 현실을 실제로 바꾸지는 못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지러진 현실에 맞서 인간성을 견지함으로써 승리는 얻어진다.

지난 2년 동안 분리장벽에 관한 수많은 예술작품들과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졌는데, 대개 풍자적이다. 풍자를 통해 작가들은 "현실"과 그에 대한 인식뿐 아니라 현실에 대항하고 넘어서는 방법 또한 그리려고 한다. 그들은 막힌 수평선 너머로 상상력을 넓히고, 허락된 한도보다 멀리 존재를 확장하기를 꿈꾼다.

분리장벽에 대한 두 가지 농담이 기억난다.

하나는 친구로부터 들은 것이다. "이븐 칼둔에 따르면 고대 사람들은 물가에 도시를 지었다네. 하지만 현대 이스라엘 점령군에 따르면, 팔레스타인인들은 검문소 근방에 도시를 세운다고 하지."2)

다른 하나는 장벽에 그려진 벽화와 낙서에 관한 다큐멘터리에서 들은 것이다. 한 장면에서 인터뷰 하는 사람이 물어본다. "이스라엘이 이 장벽을 세우는 진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합니까?" 응답자는 웃으며 답한다. "우리더러 날아보라고!"

옮긴이 주

1) 이스라엘 분리장벽은 팔레스타인인들이 폭발물을 가지고 이스라엘과 이스라엘 정착촌에 들어오는 것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2002년 건설되기 시작했다. 요르단 강 서안지구에 건설되는 이 장벽은 두께 1m, 높이 5~8m, 총길이 700km의 거대한 콘크리트 장벽으로, 67년 전쟁 이전 '그린 라인'으로 설정된 팔레스타인 땅의 반 이상을 빼앗는다. 그리고 팔레스타인인들의 모든 일상생활을 옥죄어 팔레스타인인들은 자유와 인권만이 아니라 생계마저 위협당하고 있다.

2) 이스라엘 점령군의 검문소를 통과하기 위해 팔레스타인인들이 하도 오래 줄을 서야 하므로, 실제로 검문소 주변에 장이 선다.

<'팔레스타인을 잇는 다리(
thebridgetopalestine@gmail.com)' 기획·번역>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