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간 이어진 '김병준 파동'은 김 교육부총리의 자진사퇴로 2일 일단락됐다. 형식적으로는 '명예로운 자진사퇴' 모양새를, 내용상으로는 '정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듯한 결론을 이끌어 냄으로써 여권은 김병준 파동의 후속 파장을 최소화한 점에선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국정운영의 핵심인 김 부총리가 사실상 '불명예 퇴진'함으로써 노 대통령의 임기 말 국정운영 구상에 차질이 불가피해졌고, 후임 교육부총리, 법무부장관 인선 결과에 따라선 제2의 '김병준 파동'이 몰려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당정청 '명예로운 퇴진' 위한 역할분담?
지난 28일을 전후해 본격화된 여권 전반의 기류는 '사퇴 불가'→'사실관계 규명이 우선'→'해임건의 검토'→'명예로운 자진사퇴'로 흘렀다.
이 과정에서 당정청 공통의 목적은 결국 '김 부총리의 명예회복'과 '정치적 쇼크'의 최소화에 맞춰졌다. 이는 당정청이 1일 교육위 전체회의 후에도 "김 부총리의 해명으로 상당부분 의혹이 풀렸다"고 입을 맞춘 대목에서 드러난다.
여권 안팎에서는 이같은 흐름을 두고 '김병준 파동' 본질에 해당하는 '학자의 양심', 나아가 노무현 정부의 도덕성 문제로까지 번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묵시적 합의'가 존재했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는 김근태 의장이 김 부총리가 사의를 표명하기 직전까지 "명예로운 자진사퇴"를 강조했던 것에서도 확연하다.
물론 그 동안의 과정에서 표면적으로는 당정청 간의 '온도차'가 확연한 듯 보였지만, 당과 청와대 사이에 폭발력 있는 충돌이 적어도 이번 '김병준 파동'에선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에 주목해 보면 동일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각자의 역할분담으로 해석되기에 충분하다.
우선, 청와대는 1일 교육위 회의 뒤까지 "사실규명이 중요하고 아직까지 거취에 관해서 판단을 내리지 않고 있다"고 말해 김 부총리에 대한 미련으로 해석될만한 뉘앙스를 풍겼다.
김 부총리의 낙마가 기정사실화 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의 애매한 태도에선 김 부총리 개인에 대한 배려의 의미와 함께 '결정적 하자'가 아닌 '여론 공세'에 밀려 읍참마속 하는 듯한 모양새를 만들어내기 위한 의도가 엿보였다.
사퇴 불가피론으로 일찌감치 입장을 정하고 비교적 강경한 기류를 주도해 온 듯 보인 열린우리당도 사실상 초점을 '정치적 책임'에 맞추고 '도덕적 책임'에 대해선 털끝도 건드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한명숙 국무총리가 막후 조정자 역할을 수행한 것이 부각돼 당정청 간 이견 조율 능력의 복구로 비쳐지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당은 김 부총리의 사퇴를 앞장서 요구함으로써 여론의 악화를 차단하고 일시적인 정책 주도권을 확보했다. 또한 청와대는 마지못해 사퇴요구를 수용하는 듯한 모양새를 취해 '김병준 개인'은 읍참마속해도 그가 주도한 각종 정책기조의 정당성은 훼손 받지 않았다. 총리실 역시 당청간의 가교 역할을 부각시킴으로써 사태의 자연스런 마무리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얻었다.
노무현 정부 출범 초기부터 국정운영 기조와 각종 정책을 관장해 온 김 부총리의 상징성에 대입해 보면 여권으로선 성공적인 마무리인 셈이다.
사실상 '불명예 낙마'…국정운영 차질 불가피
그러나 논란이 9일간 지속되면서 논문 표절 의혹에 이어 중복 게재, 연구비 이중수령 등의 추가 의혹이 꼬리를 물었고, 그 때마다 김 부총리의 '학자적 양심'이 도마에 오른 것은 물론이고 bk21 사업에 대한 총체적 불신, 노무현 정부 인사정책의 난맥상이 어쩔 수 없이 부각됐다.
또한 이번 사태와 관련해 시민사회단체와 국민 여론 가운데에는 임기 말로 접어든 노무현 정부의 레임덕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해석하는 분위기도 적지 않다. '노무현의 사람'인 김 부총리가 취임 13일 만에 사실상 '불명예 퇴진'한 데에 따른 내상은 이제부터 후유증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김 부총리가 주도해 온 국정로드맵 관리와 개혁과제 완성이라는 노 대통령의 임기말 국정운영 구상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또한 2008년 대입제도 정착, 전교조 문제, 외국어고 모집제한 문제 등 교육현안은 적어도 후임 부총리가 임명될 때까지는 표류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후임 교육부총리 물색, 노 대통령의 휴가 복귀 후에 있을 법무부 장관 인선이라는 또 다른 '뇌관'이 도사리고 있어 제2의 파장이 몰려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의 고집스런 인사 스타일이 또다시 적용될 경우 여권 내부는 물론 정치권 전반이 요동칠 수도 있다.
'김병준 파동'을 거치며 당청관계에서 일시적인 주도권을 확보한 듯 보이는 우리당도 이 과정에서 얼마든지 역전 상황으로 내몰릴 가능성도 있다.
비록 '김병준 파동'은 일단락됐지만 노무현 정부의 인사정책 붕괴, 당청 갈등 등 여권 전반의 위기가 돌이킬 수 없는 국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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