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천하도'란 것을 몇 장 본 적이 있었기에 더욱 관심이 갔다.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천하도는 조선에서만 독특하게 만들어졌으며 당시 조선인들의 관념적 세계관을 담고 있는 지도이다. 세계를 하나의 원으로 표기하고 있는 천하도를 보면서 늘 놀라운 것은 18 세기 중반까지도 널리 유행했었다는 사실이다.
이미 당시에는 정확한 지리적 정보를 담은 서양지도가 중국을 통해 조선에도 제법 널리 소개되고 있었던 터인데 당시 우리 조선인들은 천하도를 더 좋아했었던 것이니 말이다.
천하도는 위의 그림에서 보듯이 사각형이 아니라 원형이다. 내용을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지도는 더더욱 아니다. 세상은 그 중앙에 중국과 우리나라 조선이 있는 큰 땅덩어리가 있고 바깥 대륙이 둥그런 고리마냥 안쪽의 대륙을 에워싸고 있다. 사이에는 바다가 있어 격리되어 있다.
자세히 도면을 보면 대단히 흥미롭다.
오른쪽의 동쪽 끝에는 해가 떠오르는 부상(扶桑)이 있어 뽕나무가 그려져 있고, 서쪽 끝에는 해가 지는 방산(方山)이 있어 거기에 '반격송(盤格松)이 그려져 있다. 부상의 왼쪽에는 감연(甘淵)이 있고 바깥의 고리와 안쪽의 대륙 사이에는 신선들이 산다는 봉래삼산인 방장, 영주, 봉래의 세 섬이 크게 표시되어 있으며 조선에 붙어서 일본이 표시되어 있다.
천하도에 나타나 있는 나라들은 일본이나 유구(琉球)국, 안남(安南)국, 서쪽의 월지(月支)나 대완(大宛) 정도, 그리고 실크로드상의 몇몇 나라들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모두 상상 속의 나라들이다.
중국 부분을 보면 태산을 비롯한 다섯 산인 오악(五嶽)이 표시되어 있고 황하와 장강이 과장되게 표시되어 있다. 유럽 각국들은 전혀 나타나있지도 않다.
또 흥미로운 것은 지도상에 해와 달은 모두 그 폭이 삼천리, 1200 km 이고 큰 별은 오백리, 200 Km이며 천지간, 즉 하늘과 땅의 거리는 4억 2천리(1억 6천만 8백 Km), 동서남북의 각 모퉁이로부터 거리는 균일하게 2억3만5천리(8천1만 4천 Km)이며 세상에는 불교의 영향으로 8만4천의 나라가 있다고 되어있다.
천하도는 따라서 중국과 조선, 일본 등 동아시아의 몇몇 나라들을 제외하고는 오행사상과 산해경(山海經)의 세계를 반영하고 있는 지도일 뿐이다. 다시 말해서 지도는 실제 세상에 대한 지리적 정보를 담은 지도가 아니라, 동아시아적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는 관념적인 천하도인 것이다.
그런데 이 천하도가 중국이나 일본보다 유독 조선에서만 인기가 많았다는 사실은 무엇을 반증하고 있는가?
이미 조선에도 1603년에 중국에 들어온 예수회의 마테오리치가 전해준 실제 세상을 말해주고 있는 '만국여도'가 전해져 있었건만 그로부터 백년이 훨씬 지난 뒤에도 여전히 만국여도보다는 관념상의 세계관인 천하도가 더 인기가 있었다는 것이 필자로서는 대단히 궁금한 것이다.
중국은 이미 서양 문물을 통해 세계에 눈을 떠가기 시작했고 일본 역시 바다 무역을 통해 서양을 연구하자는 란가쿠, 즉 난학(蘭學)의 열기로 활발하게 더 넓은 세상에 대비하기 시작하였는데 조선은 애써 눈길을 관념의 세계인 천하도에 고정하고 있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다시 말하지만 천하도는 음양오행사상을 근거로 하고 유불선의 사상으로 그려진 세계지도이다. 물론 천하도에 담긴 관념들은 중국과 우리, 일본이 공유하던 것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유독 조선에서만 인기가 좋아 활발하게 제작되었다는 것은 지도에서 조선은 천하의 중심 대륙인 중국의 오른 쪽에 붙어있기에 그 역시 천하의 중심에 속한다는 것으로서 서양제국의 진출에 대해 불안한 마음을 달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그래봤자 바다 건너 변방의 오랑캐들인데 소중화(小中華)인 조선에 무슨 큰 일이 있으랴 하는 자위하는 마음 비슷한 것 말이다.
대다수 조선의 주류 계급들이 이처럼 천하도의 세계관에 빠져있었다면 오랑캐인 서양 문물을 수용해야 한다는 일부 사람들의 얘기는 실로 공허한 메아리였을 것이다.
한편으로 그 같은 세계관이 지배하던 조선 사회더러 후손이랍시고 오늘날의 입장에서 조선사회가 내적 탄력성이 없었다고 야멸차게 비판하는 것 역시 부질없는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세계관, 다시 말해 세계를 보는 눈과 생각이 그렇게 되어있었다면 엄청난 천변지이의 충격적 변화가 아니고서는 그 생각을 바꾼다는 것은 당시나 지금이나 어렵긴 마찬가지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엄청난 충격이란 19세기 말, 전 지구를 덮친 서구열강들의 여타 세계에 대한 지배 또는 식민화 과정이었고 조선이 나라를 앗긴 것 또한 어떤 면에서 당연한 귀결이 아니었을까 싶은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라를 팔아먹었다고 지탄을 받는 이완용을 비롯한 을사오적이지만, 그들에게 전적으로 망국(亡國)의 책임을 물을 수는 없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저 급변하는 시대를 맞이하여 자신의 안위를 택했던 처신이 문제될 뿐인 것이다. 부언하면 이완용의 무리들은 매국(賣國)이라는 거창한 욕을 먹어도 될 정도의 그릇이나 인물이 될 수 없다는 것, 끝물의 피라미에게 역사의 무거운 형을 매기는 것은 양형(量刑)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또 다른 방면에서 복잡한 생각이 든다. 바로 음양오행에 관한 것이다. 천하도에 깃든 핵심사상이 음양오행이고 그것에 바탕에 세계관으로 인해 조선이 아픔을 겪어야 했다면 음양오행에게도 그 죄를 물어야 할 것이다.
허지만 음양오행은 과거 2천년간 동 아시아인들에게 세상을 가장 합리적으로 설명해주고 이해시켜주던 세계관이었다. 수천 년간 그 많은 사람들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그토록 오랫동안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인식의 틀로 자리했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음양오행이 대단히 성공적인 세계관이었기 때문이다.
필자가 음양오행과 그에 기초하여 인간의 운명을 내다볼 수 있는 명리학을 30년 이상 붙들게 된 것은 결코 복고(復古)의 취미가 아니며 근대 과학과 서구 사상에 대해 무지해서도 아니다. 좀 거북한 얘기지만 필자는 따분하거나 우울할 때, 현대물리학 텍스트 속에 나오는 문제들을 미적분 방정식으로 풀어보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다.
과학이 사물을 연구 탐색하는 과정에서 수(數)만을 택하고 질(質)을 버렸다면 음양오행은 바로 이 질의 문제를 인류가 만든 학문 중에서 가장 탁월하게 설명해내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솔직하고도 진지한 생각이다.
그렇기에 음양오행은 죄를 물어 방기하거나 일부의 인식처럼 미신(迷信)으로 치부되어야 할 그 무엇이 결코 아니라는 생각이다.
예를 들어, 어떤 기업이 장구한 세월 동안 번영하다가 어느 날 문을 닫게 되었을 때 그 원인으로서 그 기업을 장구하게 유지시켜온 힘이나 원리가 있다면 그것은 훗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가르침으로 남아 또 다른 누가 그것으로 성공할 수 있는 발판이 되는 것이지 버려야 할 대상은 아닌 것이다.
필자는 앞으로 우리가 여기서 더 앞으로 발걸음을 옮겨놓으려면 근대화 이래 우리가 범했던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여기고 있다. 그런 어리석음이란 서구에 대한 맹신(盲信)과 함께 우리의 장점과 잘난 점을 다시 따져보지도 않고 아무런 이유도 없이 부정하고 버렸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그저 해방 이후 만들어진 신생국, 그것도 외세의 힘을 빌려 급조된 신생국이고 어찌어찌하다가 세계 10대 경제대국이 되었다면 그 번영은 뿌리가 없는 것이니 언젠가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그 발전 속에는 우리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가 그래도 힘을 발휘하고 있다고 여긴다면 한 때 우리를 어렵게 만들었던 천하도를 그저 미워할 게 아니라 오늘날의 입장에서 수용과 이해 그리고 비판이 함께 있어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세상 어느 것에 빠지지 않는 음양오행의 세계관도 오늘에 맞게 되살리고 더욱 발전시켜서 궁극에는 우리가 남을 인도하고 이끌어줄 힘의 원천으로서 삼아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장마 속에 책상에 놓인 천하도를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해보는 이런 생각이 그저 백일몽은 아닐 것이다.
(전화:02-534-7250, E-mail :1tg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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