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동치는 이 지역 민심을 의식해서인지 안, 문 두 후보는 추석을 앞두고 나란히 호남을 방문했다. 안 후보는 여수에서 태풍 피해 지역 민심을 살폈고, 문 후보는 광주를 방문해 참여정부 시절 과오를 사과하며 "호남의 아들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호남 민심은 문재인과 안철수 가운데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 <프레시안>은 추석 연휴 전날인 지난 9월 28일부터 2박 3일에 걸쳐 광주, 전주 등지를 돌며 총 31명의 주민들과 심층 인터뷰를 가졌다. 조사 결과, 31명 중 29명은 "야권 단일화가 필요하다"고 답했으며, "누가 되든 야권 후보를 찍겠다"고 답했다. '정권교체'라는 목표의식을 공유하면서도 호남의 민심은 세부 지역에 따라, 또 세대에 따라 미묘한 차이를 보였다. 요약하자면, 전남은 '백중세', 전북은 '안철수 우세', 40대 이상은 '접전', 20~30대는 '안철수 압도'였다.
이번 조사에는 총 40여 명이 응했으며, 31명은 지지 후보와 근거를 명확히 밝히는 등 유의미한 답변을 한 인원이다. <편집자주>
전남 "文, 참여정부 적자 안 돼" vs "安, 대통령 못 해먹겠단 소리 나올 것"
지난 9월 28일, 광주광역시 상무지구 중흥 아파트 앞. 이곳에서 좌판을 늘어놓고 장사하던 이용진(남, 44) 씨와 한재팔(남, 44) 씨는 한창 입씨름을 벌이는 중이었다. 한 씨가 "참신한 사람이 낫지 않나. 안철수가 돼야 한다"고 말하자, 이 씨가 "대통령이 되려면 그래도 정치를 좀 알아야지. 안철수는 아직 때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다시 한 씨가 "이미 여론조사에서 끝난 거 아니냐. 박근혜 이기려면 안철수 밖에 답이 없다"고 하자, 이 씨는 "참여정부 때도 힘이 없어서 지지부진하다가 정권 끝났는데, 안철수는 더 심할 거다. 당적이 있는 문재인이 돼야 한다"고 맞받아쳤다.
각기 안 후보와 문 후보를 지지하는 이들의 설전은 팽팽하게 오갔다. 이들의 대결만큼이나 전남 지역에서 문 후보와 안 후보의 가상 대결은 접전이다. 기자가 만난 광주 전남지역 주민 18명 가운데 안 후보와 문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힌 이들은 각각 7명으로, 동률이었다. 이날 오전 <광주일보>가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도 혼전 양상이 나타났다. 광주에서 조사한 후보별 지지율에서 안 후보는 44.8%, 문 후보는 35.3%로 안 후보가 앞섰지만, 전남에서는 문 후보가 42.0%의 지지율로 안 후보 41.3%에 비해 0.7% 포인트 앞섰다. 야권 단일후보 지지도 조사는 더욱 박빙이었다. 광주에서는 안 후보와 문 후보가 44.8%로 동률이었고, 전남에서는 문 후보가 44.7%를 기록, 41.3%를 기록한 안 후보에 근소한 차로 우세를 보였다.
각 후보 지지자들에게서 좀 더 깊이 있는 얘기를 들어봤다. 13년 째 택시 영업을 하고 있는 이종원(남, 52) 씨는 대뜸 "전북에 공중전화가 많은 이유를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늘 호남 사람들한테는 국방부나 기재부 말고 체신부나 정통부처럼 힘 없는 자리만 장관 시켜줬다"며 "참여정부 때도 마찬가지였다. 호남 사람 시켜는 줘야겠고, 줄 데는 마땅찮아 그런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민주당과 열린우리당 분당 사태를 언급하며 "죽으나 사나 같이 가야지. 괜히 편 가르기 해서 동지였던 사람들도 적으로 만들어버렸다"며 "안철수는 편 가르기 할 것 같은 인상이 아니라 믿음이 간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씨는 "사실 안철수에 대해선 소문은 많이 들었지만 아직 잘 모른다"고 말했다. 이 씨 뿐 아니라 40대 이상 중년층 가운데 "안철수를 뽑겠다"고 한 이들 대개는 안철수 개인에 대한 호감보다는 참여정부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다.
이 씨의 택시에서 내린 곳은 광주 시내 대표적 재래시장인 양동시장이었다. 시장 내 <하나분식>에서 만난 임태호(남, 39) 씨, 오정아(여, 35) 씨 부부는 문 후보 지지자였다. 이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열렬한 팬이기도 했다고 밝혔다. 마침 이들과 만난 분식집은 노 전 대통령이 국밥을 먹고 간 것으로 유명한 식당이었다. 오 씨는 "참여정부 때 호남 소외시켰다고 실망했다는 사람 많던데, 난 그렇게 생각 않는다"며 "만약 참여정부 때 호남 사람들이 득의양양 했어봐라. 얼마나 다른 지역 사람들한테 욕을 얻어먹었겠냐"고 말했다. 임 씨는 "정치 경험 없는 안철수가 만약 대통령 되면 노 대통령보다 더 한 소리 나올 거다. 못 해먹겠다느니, 그만두겠다느니"라며 "안정적인 사람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가 태풍 볼라벤 피해를 입은 전남 나주 한 마을을 방문해 주민들과 막걸리를 마시고 있다. ⓒ뉴시스 |
전북에 부는 참여정부 심판론… "'전북 홀대' 더는 못 견뎌"
박빙이라지만 현재까지 상황은 문 후보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여론조사에서 접전이거나 안 후보에게 크게 뒤진 적은 있어도 크게 이긴 적은 없기 때문. 전남은 그나마 상황이 낫다. 전북은 문 후보가 가장 고전하는 지역이다. 문 후보는 당내 경선 때도 전북에서 37.54%의 득표율을 받았다. 전체 누적 득표율(56.5%), 광주·전남 지역 득표율(48.46%)에 모두 크게 밑도는 성적이었다. 당내 대선후보로 확정되고 난 이후에도 인기는 좀체 오르지 않고 있다. KBS전주방송총국이 27일 보도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선호하는 대선 후보가 누구냐'는 질문에 전북 도민들은 안 후보(53.0%), 문 후보(31.5%), 박 후보(15.5%) 순으로 답했다. 기자가 만난 전북 지역 주민 13명 가운데 안 후보 지지자는 6명, 문 후보 지지자는 4명이었다.
전북 김제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김근배(가명, 남, 59) 씨는 이번 선거를 "박정희와 노무현을 모두 심판하는 선거"라고 규정했다. 김 씨는 "참여정부가 정권 잡자마자 했던 소리가 뭔가. '참여정부는 부산정권'이라는 얘기"라며 "호남 사람이 문재인을 찍는다면 그건 위선"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참여정부의 여러 실정도 지적했다. "농민 위한다는 사람이 나서서 FTA 문제될 것 없다하지 않나. 정권 잡기 전엔 국가보안법 폐지하자고 했으면서 국회 과반 넘기니까 입 싹 닫질 않나. 그게 위선"이라고 강조했다. 대안을 묻자 "역사의 죄인인 박근혜를 찍을 순 없고, 안철수가 낫다"고 말했다. 안 교수를 지지하는 이유로 '헌신'을 들며 "아무리 부자라도 제 이익 포기하기가 쉽지 않은 거다. 그것만으로도 '된 사람'"이라고 말했다.
전북대학교 앞에서 레스토랑 겸 호프를 운영하는 박창우(남, 45) 씨는 '문재인'이라는 이름을 꺼내자마자 "폭폭하다('답답하다'는 뜻의 전라도 방언)"며 가슴을 쳤다. 박 씨는 "그동안 민주당이 전북에 해준 게 뭐 있었냐"고 반문하며 "호남은 영남한테 치이지만, 전북은 전남에 치이느라 관심 밖"이라고 말했다.
박 씨는 특히 LH공사의 전주 이전이 불발된 데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LH공사 이전은 참여정부 시절 전북 지역 공약이었으나, 현 정부 들어 이전 예정지가 경상남도 진주시로 변경됐다. 그는 "(전주) 효자동에 어마아마한 규모의 땅 사서 건물 짓고, 이사만 오면 되는 상황이었는데 참여정부 때부터도 질질 끌어서 안 됐다"며 강한 분노감을 드러냈다. 그는 "민주당만 밀어주면 (정치인들이) 발전시킬 생각을 안 하니까 전북이 낙후될 수밖에 없다"며 "차라리 안철수가 민주당 후보보다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문재인의 사과'를 받아들이고, 다시 믿어보자는 의견도 있었다. 전북 고창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고 있다는 김재성(남, 33) 씨는 "사과를 했다는 건 호남을 홀대했다는 걸 인식했다는 증거 아니냐"며 "지역색이 없는 안철수보단 문재인이 낫다"고 말했다. 전주 덕진구 호성동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조윤선(여, 40) 씨 역시 "누가 되든 이 지역이 그동안 소외돼왔다는 걸 아는 게 중요"하다며 "안철수보다는 문재인이 전북 지역민들의 소외감을 많이 풀어줄 것 같다"고 말했다.
전주 고속 터미널에서 만난 김종연(남, 71) 씨는 전주 토박이 출신답게 "무조건 민주당, 무조건 문재인"이라고 했다. 김 씨는 "호남 생각하는 건 그래도 민주당밖에 없다. 그리고 사과했다지 않냐"며 "박근혜가 되면 더 혜택 없다. 영남 가서는 신공항이다 뭐다 말하지 않았냐. 박근혜가 되면 (전북 지역은) 서자 취급 당하는 것 불 보듯 훤하다"고 말했다. 안 후보에 대해선 "잘 모른다. 그런데 중요한 건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안다고, 정치는 해본 사람이 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태풍 신비 피해를 입은 전남 여수를 방문해 주민들과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
20대 안철수 몰표 "지역 중요치 않아"
기자가 현장에서 만난 20대 유권자 8명의 선택은 전남·북을 막론하고 같았다. 안철수 후보였다.
광주지역 젊은이들의 집결지인 전남대학교 앞 한 패스트푸드점. 그곳에서 만난 진경원(남, 25) 씨는 스스로를 "안철수 팬"이라고 칭했다. 기자와 만났을 때도 진 씨는 스마트폰으로 안 후보의 페이스북 계정인 'Ahn's sperker'에 올라온 게시글을 보고 있었다. 그는 안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로 "젊고 도전의식이 있다"는 점을 꼽았다. 그가 안 후보에게 바라는 것은 지방 청년실업 문제의 해결이다. 경영대를 다니는 진 씨는 "선배들 보면 지방에선 경영대 나와서 할 게 없다. 이것저것 시도해보다가 서른 다 돼서 공무원 준비로 빠지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방 젊은이에 대한 투자가 시급한데, 그나마 안철수가 젊은 사람들의 절박한 마음을 알 것 같다"며 "본인도 벤처(기업) 경험 있으니 (젊은이들 마음을) 잘 알 것"이라고 말했다.
전북대학교 캠퍼스에서 만난 고민식(가명, 남, 28) 씨는 안 후보를 "상식적인 정치인"이라고 말했다. 대학 졸업 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그는 "우리가 정치권에 요구하는 건 단지 상식일 뿐인데, 지금 정치인들은 비정상적인 삶을 살도록 인도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를 상식적이면서도 역동적으로 이끌 수 있는 사람은 안철수 뿐"이라고 답했다. 안 후보가 당선이 되면 호남에 이득이 될 것 같냐고 묻자 "대통령은 국가라는 큰 배를 이끄는 사람"이라며 "어느 지역에 편중되지 않은 채로 국가를 돌보고, 여러 국가 속에서의 대한민국을 돋보이게 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회복지를 전공하는 문보라(여, 22) 씨는 <안철수의 생각>을 읽고 "이 사람이다"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문 씨는 "안 후보가 보편적 복지에 관심 많은 것 같다"며 "그런 부분에서 안철수 생각이랑 나랑 맞다"고 말했다. 문 후보 정책 공약에 대해선 "일자리 관련 공약 대기업 위주로 내놓던데, 실제로는 중소기업이 더 중요한 것 아닌가. 대기업에 치중하면 문제 안 풀린다"라며 본인과 뜻이 다르다고 했다. 문 씨는 지난 주 터진 안 후보 '다운계약서 사건'에 대해서는 "차라리 잘 됐다"는 입장이었다. 그는 "오히려 당당하게 시인하고 사과하지 않았나. 다른 후보들 같으면 일단 발뺌하고 봤을텐데 역시 달랐다"면서 "새누리당에서는 어떻게든 흠집내려고 혈안이던데 오히려 안철수한테 더 유리한 국면을 만들어줬다"고 답했다.
한편 30대 유권자 8명 가운데서도 4명이 "안철수", 2명이 "문재인", 2명이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40대 이상에서는 문 후보와 안후보가 전남북에서 고른 지지를 받은 것과 달리, 젊은 층에선 안 후보가 문 후보를 압도한 것이다.
부동층…인물로는 '행복한 고민', 호남 발전에는 '괴로운 고민'
▲ ⓒ연합뉴스 |
홍경기(남, 32) 씨는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면서 "둘 다 이미지도 좋고, 개인적으로 봤을 땐 전체적으로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렇다고 두 분 가운데 누가 돼도 호남을 먹여살려줄 것 같은 느낌은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아와(남, 63) 씨 역시 "두 후보 모두 훌륭해서 고민"이라면서도 호남 지역 발전과 관련해서는 "둘 다 구체적으로 말한 게 없어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럴 바엔 차라리 박근혜" 반 야권 정서도 곳곳 아예 박근혜 후보를 찍겠다는 이들도 소수나마 있었다. 민주당뿐 아니라 야권 전체에 대한 기대감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광주·전남 지역신문 기자인 김성환(가명, 남, 49) 씨는 "전남 지역 사람들은 누가 되든 이제 크게 관심이 없다"면서 "안철수도 깨끗할 거라 기대했는데 그런데도 부정(다운계약서 사건 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차라리 여성 지도자가 나와서 부패했던 예전 정부들을 밀어내고 새로운 정부를 꾸렸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광주 양동시장에서 생선가게를 운영하는 양정준(남, 55) 씨 역시 비슷한 의견을 냈다. 그는 "박근혜처럼 정치 생활을 오래하면서 부패 문제 없는 정치인이 없다"면서 "여성 대통령이면 아무래도 본인도 그렇고 주변도 깨끗하지 않겠냐"고 밝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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