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미란 공공의약센터 활동가는 'HIV/AIDS 감염인 인권증진을 위한 에이즈 예방법 대응 공동행동'의 발족을 알리기 위한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이날 기자회견은 그간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에이즈예방법)이 HIV/AIDS 감염인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문제제기를 해 온 시민사회단체들이 연대체를 꾸렸음을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
이 '공동행동' 에는 'HIV/AIDS 인권모임 나누리 플러스'와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등 전국 36개 시민사회단체가 참가하고 있다.
"HIV/AIDS 감염인들을 시한폭탄으로 여기는 에이즈 예방법"
에이즈 예방법은 '에이즈'에 대한 공포가 전세계적으로 높았던 1987년에 만들어진 법으로 "에이즈의 예방과 그 감염자의 보호·관리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정함으로써 국민건강의 보호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 법은 감염인의 실명과 주민등록번호를 비롯한 모든 개인정보를 국가가 관리하게끔 하는 근거가 되고 있어, 그간 학계나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감염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법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에이즈예방법이 HIV/AIDS 감염인들을 질병을 퍼뜨리고 다니는 시한폭탄처럼 여기면서 이들에 대한 감시와 통제에만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2005년 말 에이즈 예방법 개정안을 내놨다. 만약 에이즈 예방법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개정된다면 5번째 개정이 된다. 그럼에도 기본적인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번 개정안에 대해 '공동행동'은 "이번 개정안은 '에이즈의 예방 및 관리'와 '감염인의 보호·지원'을 구분함으로써 새로운 접근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으나 그 내용에서는 여전히 질병관리와 감염인 지원의 차이를 이해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공동행동'의 공동대표를 맡은 김진섭 '한국 HIV/AIDS 감염인 연대(KANOS)' 대표는 "각 개정 시기마다 개정의 이유를 조금씩 다르게 내세워 왔지만, HIV/AIDS라는 질병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예방 패러다임의 근본은 바뀌지 않았다"면서 "이러한 방식으로는 결코 에이즈를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명보고 체계는 오히려 치료의 기회를 막는다"
김진섭 대표는 에이즈 예방법이 감염인의 실명과 주민등록번호를 비롯한 모든 개인정보를 국가가 관리하도록 하고 있는 실명보고 체계에 대해 특히 강한 비판을 가했다.
김 대표는 "감염인들은 불필요한 정보노출로 인해 가족과 친구들, 지역사회로부터 배제되고 있다"면서 "이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감염상태를 확인하고 더욱 일찍 치료의 기회를 얻거나 자신의 건강을 관리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가인권위에서도 예방법의 인권침해적 요소를 없앨 것을 권고했고, 국제적으로도 HIV/AIDS 감염인에 대한 익명의 신고와 보고를 권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에이즈 예방법 제19조의 전파매개행위 금지의무 조항도 삭제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만약 전염이 되어 타인에게 해를 입혔다면 형법상으로도 충분히 처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김진섭 대표는 "에이즈 예방법에 위 조항을 두는 것은 감염인들을 관리의 대상으로 놓고 통제하겠다는 의도라고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라며 "실질적 예방조치가 되지 않는 전파매개 행위 금지 의무조항을 즉각 삭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제 '은폐'는 그만둬라"
이날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현재 HIV/AIDS는 감염경로가 정확히 밝혀진 질환이며, 따라서 예방가능하고 관리가능한 질병이라고 지적했다. HIV/AIDS에 대한 과도한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에이즈 예방법과 한국사회의 태도가 HIV/AIDS가 특별히 치명적인 질병인 것처럼 편견만을 조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질병에 걸린 사람에 대한 과도한 인권탄압과 질병에 대한 공포를 기반으로 하는 예방은 "은폐"일 뿐 "예방"이 될 수 없다고 확신한다"면서 "무엇보다도 그 법의 당사자인 HIV/AIDS 감염인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 예방법 개정은 재검토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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