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안철수 대선 후보에게 바란다
먼저, 문재인, 안철수 두 대선 후보는 곽노현 교육감에 대한 대법원 판결의 부당성에 유감을 표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정권이 바뀌면, 그를 사면 복권시키고 반드시 교육부 수장으로 임명하기를 권한다. 이 나라 교육의 진로와 지표에 대해 곽노현 교육감만한 인물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는 부당한 사법판결의 희생자이자, 보수 세력의 비열한 공세에 시달려온 진보교육의 지도자다.
곽노현 교육감이 헌재에 낸 위헌소송 판결이 나기 전, 대법원은 서둘러 유죄판결을 확정했다. 왜 그랬는지는 누가 봐도 뻔하다.
검찰은 매수 사실을 입증하지 못했다. "사후 매수"라는 방식으로 돈을 준 것만으로 그 돈의 성격을 규정했다. 사후라는 것은 선거가 끝난 뒤 언제까지를 말하는 것인가? 그리고 상대가 어려운 처지에 빠져 돕는 것도 매수에 해당하는가?
대법원 판결문도, 곽노현 교육감이 매수 합의를 승인하지 않았고 강경선 교수의 조언으로 상대의 어려운 처지에 동의해서 돈을 준 사실을 명확히 밝혔다. 그런데도 후보사퇴의 대가라는 규정을 내린 근거는 뭔가? 답하라.
윤리적 선을 처벌하는 사법부
윤리적 선을 처벌하는 사회는 누군가 궁지에 빠져도 돌아보지 않는 비정한 사회가 되고 말 것이다. 2억에 가까운 돈을 주는 것은 뭔가 음험한 의도가 있다? 그런 선의를 행해보지 않는 자들의 생각이다.
길바닥에 떡판을 벌려 모은 돈을 어느 학교에 몽땅 기부하는 할머니들의 이야기에 감동하는 우리다. 대상이 다르고 돈을 조달하는 방식이 다를 뿐, 죽을 처지에 놓인 절박한 상대를 구하겠다는 마음에서 나온 행위의 의미는 결코 "사후 매수"라는 말로 난도질당할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법부는 곽 교육감을 처벌했다. 이는 우선 명확한 사실에 근거한 사법논리가 아니라는 점에서 대법원의 권위를 스스로 추락시킨 사태다.
여기서 대법원 판결문을 모두 조목조목 비판하지는 않겠다. 그 발상의 기초만 가지고 정리해보자. 대법원 판결문은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인 법 감정"이라는 단어를 동원해서 이 사건을 해석하고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인 법 감정이라는 말처럼 애매모호한 개념이 있는가?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인 법 감정? 그 상식이 누구의 상식이고, 뭐가 건전하고 뭐가 불건전한 건가? 그리고 통상적인 법 감정이라는 게 또 뭔가? 어떤 걸 통상적이라고 하고, 법의 논리가 아닌 법의 감정은 무얼 지칭하는가? 감정은 각기 다를 텐데, 설마 법을 감정(鑑定)하자는 이야기였던 건가?
우리 사법부의 수준이 이런 줄은 정말 몰랐다.
보통의 경험과 상식 그리고 감정으로 볼 때, 정황이 그러니 그랬을 수 있다는 식이다. 정황논리로 유죄판결을 내리면 더더욱 법은 무소불위의 무서운 칼이 된다. 우리는 사법부에게 그런 칼을 맡긴 적이 없다. 정황논리는 사법적으로 사람을 구제하기 위해 정상참작의 경우에만 적용되는 논리다.
곽노현이 만들어낸 희망
곽노현 교육감의 등장은 우리 교육에 매우 소중한 희망을 만들어 냈다. 무상급식은 물론이고, 학생들의 자율성과 교육의 창조적 의지를 불러일으킬 혁신학교의 모델을 확장하고자 하는 그의 비전과 노력은 이미 상당히 구체적인 성과를 보이고 있는 중이었다. 교육이 학생들을 멍들게 하고 부모들에게 고역이 되고 이 사회를 황폐화시키는 현실에 대해 곽노현 교육감의 존재는 그 답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일깨우는 가치를 지녔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교육을 기능인 양성 공장으로 만들고 학벌위주의 신분질서라는 기득권을 지키려는 세력의 반발을 가져왔다. 교권의 권위로 학생들의 자율성을 억압하는 것에 길들여져 온 자들과 교육을 사유화하려는 세력들이 그의 교육관과 정책을 공격했다. 진보교육의 싹을 이참에 자르겠다고 벼른 자들이 모두 힘을 합해 그를 유배시키는 일을 지속적으로 벌여온 것이다.
하지만 곽노현 교육감을 그런 식으로 귀양살이 시킨다고 그들의 뜻대로 상황이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곽노현 교육감의 교육시책은 많은 학부모들의 지지와 성원을 받았다. 애초에 그에게 반감을 가졌던 학부모들조차도 그를 지지하는 쪽으로 돌아선 것은 그만큼 곽노현 교육감의 진실성과 그의 정책이 교육현장에 중요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고 확신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곽노현 교육감은 자신과 선거에서 경합하고, 이후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몰락한 지경에 빠진 상대에 대해 아파하고 어떻게든 다시 일어나 교육운동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그에게 돈을 주었다. 적지 않은 빚으로 고통을 겪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 돈으로 빚을 다 갚을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준 돈은 채무 변제의 수준으로 보면 도리어 미약했다.
그가 아니면 할 수 없었던 선택
하지만 그런 조력으로나마 상대가 용기를 얻고 새로운 자리에 설 수 있게 된다면 감사할 일이라고 곽노현 교육감은 믿은 것이다. 이러한 판단과 선택에는 그의 친구 강경선 교수의 역할이 컸다. 강경선 교수는 심지가 곧고, 신앙인으로서의 헌신이 누구에게나 존경받는 이라 오랜 친구인 그의 조언은 곽노현 교육감의 결정에 중대한 비중을 가졌던 것이다. 그러기에 강경선 교수는 이 사건은 "곽노현 사건"이 아니라 "강경선 사건"이라고까지 말한다.
언젠가도 언급했지만, 이런 일은 곽노현 교육감이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가 선거의 경쟁자가 선거 후 재기의 가능성을 놓친 채 절망적으로 살아가고 있는데도 나 몰라라 하고 외면하는 인물이었다면? 그래서 상대가 더는 살 희망을 잃고 이 생을 저주하면서 정말로 죽음에 이르렀다면? 그런 사태가 벌어졌을 때, 곽노현은 어떤 평가를 받게 되었을까?
자신이 오해받을 수 있고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선택을 하는 이는 드물다. 평생을 깨끗하게 살아왔고, 이 사회의 의를 위해 전심전력을 다해 온 곽노현이다. 인권을 비롯해서 거대 자본의 불법과 비리에 대해 정의로운 목소리를 낮춘 법이 없었던 곽노현이다.
그에게 누가 유죄판결을 내리겠다는 것인가?
그런 그가 남에게 진실한 선의를 베풀어 본 적도 없고, 이 사회의 정의를 위해 거대한 권력과 맞서 싸워본 적도 없는 이들에게 유죄판결을 받았다. 여러분들은 이런 사태를 어떻게 생각하시나? 이제 진짜 누가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인 법 감정을 가졌는지 분명하게 가려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라틴 아메리카의 지식인 에드아르도 갈레노가 한 말이 있다. "감옥에 들어가야 할 자들이 감옥 열쇠를 쥐고 있다." 우린 지금 그런 세상에 살고 있는 모양이다.
곽노현의 진실이 반드시 온 세상에 드러나 그로써 세상의 의가 또 하나 바로 잡히는 날이 곧 올 것이다. 다시 말한다. 정권이 바뀌면, 그를 반드시 교육부의 수장으로 임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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