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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체제 분석은 커다란 '텐트', 그 속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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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체제 분석은 커다란 '텐트', 그 속에선…

[월러스틴 인터뷰] ④ 세계체제론의 역사와 현재

월러스틴은 2011년 <근대 세계체제> 시리즈의 네 번째 책을 발간했다. 세 번째 책 발간 이후 20년이 걸렸다. 그는 그의 책이 시간순으로 진행되고 지리학적으로 확장하면서 공부할 양이 많아져 집필기간이 오래 걸렸다고 말했다. 16세기를 다뤘던 1편을 출간할 때와는 달리 18세기에 대한 연구는 읽어야 할 자료들이 더욱 방대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월러스틴은 세계체제론을 입각한 저명한 학자다. 그는 여러 주장과 관점들을 하나의 이론, 논쟁으로 합치고 묶어놓은 것이 본인이 기여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 월러스틴은 역사의 분석 단위로 "장기(長期:longue duree)"의 개념을 중심에 놓았는데, 이러한 방식으로 구성한 세계체제 분석은 일종의 커다란 '텐트' 라고 언급했다.

그와 함께 세계체제론을 구상한 조반니 아리기(Giovanni Arrighi), 사미르 아민(Samir Amin), 안드레 군더 프랑크(Andre Gunder Frank)에 대한 이야기도 잊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포함한 이 네 명의 학자가 갖고 있는 견해에 대해 솔직하게 답변했다. 그는 "우리 넷은 80% 정도 같은 입장이었고, 20%정도만 달랐다"며 "때로 아민과 나, 그리고 아리기와 프랭크가 하나가 되어 생각을 달리 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20%정도의 의견 불일치가 있었지만 80%가 같다는 것은 꽤 높은 수준의 동의이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세계체제 분석을 지지하는 진영의 입장이다"라고 언급했다.

"내가 세계체제론에 기여한 건 융합적 학문체계를 세워본 것"

김민웅: <근대 세계체제> 4권의 발간을 축하한다. 4권은 3권 출간 이후 20년이 걸렸다. 그 20년간 무엇을 했는가?

월러스틴: 우선 그렇게 시간이 걸린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첫째는 공부할 양이 막대해졌기 때문이다. 책은 시간 순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지리학적으로 확장해간다. 16세기에 대한 1권을 출간할 때와는 달리, 18세기 연구에서는 시간이 갈수록 읽어야 할 자료들이 점점 방대해졌다. 역사 자료와 연구들이 점점 늘어났기 때문에. 나는 보다 더 많은 국가들에 대한 더 많은 자료들을 공부해야 했다. 둘째로 내가 참여하는 일들이 이전보다 더 많아졌다. 강연, 연구, 대담 등의 양과 분야가 더 늘어나서 책 집필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이 자연히 줄어들었다. 실제로 책 한권이 나올 때마다 시간이 점점 더 소요되었다.

▲ 이매뉴얼 월러스틴 교수 ⓒ프레시안 (최형락)

1971년과 1972년에 집필한 첫 번째 책을 1974년에 책을 출판하였고, 1980년에 두 번째 책을 출판하였다. 첫 번째 책은 1년, 두 번째 책은 5~6년이 걸렸고 3번째 책은 8~9년이 걸렸고, 4번째 책은 20년이 걸렸다. 5권이 50년이 걸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웃음) 물론 앞으로 얼마나 더 읽고 공부하고, 얼마나 시간이 있을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김민웅: 세계 자본주의의 이해에 있어서 당신의 역할과 기여는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당신에 대한 비판들에 대한 당신의 입장이 궁금하다.

월러스틴: 먼저 두 번째 질문에 대해 답하자면, 1권의 서문에 다 써 있다. 출판된 해에 많은 비판이 있었고, 나는 그에 반응하였다. 그걸 읽는 것이 나을 것이다. 여기서 말하기엔 너무 길 것이라 생각된다.

김민웅: 잘 알겠다. 책의 서문에 나온 반박들을 언제 정리해보겠다.

월러스틴: 세계체제분석에 대한 나의 기여라고 하면, 전통적인 방식으로 '현대사회'를 이해하는 것을 비판하는 다양한 의견, 관점, 행동, 반응 등을 묶고 정리한 것이 아닐까 싶다. 라틴아메리카경제위원회인 ECLA(Economic Commission for Latin America)와 라울 프레비쉬(Raul Prebisch)가 그것을 종속이론으로 발전시켰다. 나는 중심부와 주변부를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이 시간의 관점에서 말하는 장기지속의 개념과 결합시켰고, 세계 경제 구조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논리를 비판적으로 재정리해나갔다. 이는 50년대와 60년대 아시아적 생산양식(mode of production)에 관한 논쟁들, 그리고 폴 스위지와 모리스 돕이 자본주의 이행과정에 대한 논쟁을 했던 내용들을 세계적 구조 속에서 재조명해나간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한 일은 여러 주장과 관점들을 하나의 이론, 논쟁으로 합치고 묶어놓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융합적 학문체계를 세워본 것이다. 또한 나는 역사의 분석 단위로 "장기(長期:longue duree)"의 개념을 중심에 놓았다. 이러한 방식으로 구성한 세계체제 분석은 일종의 커다란 텐트이다. 이 텐트에 들어오는 데는 물론 최소한의 조건이 있다. 그것은 자본주의 문제를 세계적 차원에서 접근할 것, 그리고 그 변화 발전의 시기를 길게 잡고 분석해볼 것 등이다. 그 조건만 충족하면 들어올 수 있다.

하지만 텐트에 들어온 이후부터는 사람들마다 다양한 생각들을 펼쳐보였다. 조반니 아리기(Giovanni Arrighi)는 나와 같은 텐트에서 지냈지만 우리는 서로 다른 시각과 입장을 지니고 있다. 사미르 아민(Samir Amin) 도 마찬가지다. 군데르 프랑크(Andre Gunder Frank)도 그렇다.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세계체제론 4인방이라고들 한다.

우리 넷은 <지구적 위기의 역학(Dynamics of Global Crisis: 1982)>등을 비롯해서 두 권의 책을 같이 썼다. 우리는 80% 정도 같은 입장이었고, 20%정도 만 달랐다. 그 다름의 관계도 복잡했다. 아민과 나, 그리고 아리기와 프랭크가 하나가 되어 생각을 달리 했고, 어떤 경우에는 나와 프랭크가 같은 입장이 되어 아민과 아리기가 그 대상이 되기도 했다. 20%정도의 의견 불일치가 있었지만 80%가 같다는 것은 꽤 높은 수준의 동의이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세계체제 분석을 지지하는 진영의 입장이다. 80%정도가 다르면 그건 서로 다른 것이다.

세계체제론 4인방, 월러스틴, 프랑크, 아리기, 아민

김민웅: 프랭크와 아리기는 고인이 되었고, 당신과 아민은 생존해있다.

월러스틴: 힘차게 살아남아 있다(웃음). 나도 아민도 여전히 책을 많이 집필한다. (웃음)

김민웅: 세 친구들에 대해 간단히 언급해주면 좋겠다.

월러스틴: 우선 프랑크부터 말하자. 프랑크는 1990년쯤에 우리가 80% 정도 동의한 부분에 대해서 기존의 입장을 뒤집기로 결정했다. (웃음) 그리고 그의 주장은 '5천년 세계 체제'라는 개념으로 구체화되었다. 세계 체제의 설명에서 고전적 문명사의 개념을 결합시켜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우리 셋은 모두 그에 대한 비평을 하였다. 프랑크가 낸 <세계체제 5천년 분석>에 나의 비판적인 글도 실려 있다.

▲ 왼쪽부터 이매뉴얼 월러스틴, 조바니 아리기, 안드레 군더 프랑크, 사미르 아민. ⓒ프레시안 자료사진

아리기, 아민, 나의 비평은 프랭크의 관점이 자본주의의 개념을 실종시켰다는 점이다. 뭐라고 해야 할까. 사실 논리적으로 일관성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정치적인 결론을 그 스스로의 분석으로부터 도출해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정치적으로는 늘 여러 사안들에 대해서 급진적인 운동가였다. 그런데 그의 세계체제 분석에서는 그런 논리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내용이 보이지 않는다. 물론 중국의 역사는 서구 사회에서 30여 년 전까지 무시되어 왔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중국을 오랫동안 그렇게 존재해온 것처럼 세계의 영원한 중심으로 본 것이다. 사실 이는 근거가 부족한 견해라고 여겨진다. 다양한 중심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프랑크가 말하고자 한 것은, '세계 체제론 안에서도 중국은 무시 받아왔어'라는 일종의 반격이 아니었나 싶다.

김민웅: 그 바람에 그와의 우정에 금이 가지는 않았는지?

월러스틴: 우정의 측면에서 아무 문제가 없었다. 전혀. 그 이후에도 그에 관한 여러 비판적인 글들을 썼다. 사실 내가 만난 이 세 사람 모두 69년에서 72년쯤 만나서 그때부터 쭉 친구로 지내왔다.

아리기는 탄자니아에서, 아민은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에서, 프랑크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만났다. 프랑크를 제외한 우리 셋을 묶은 것은 아프리카에 대한 실증적인 고민이었다.

김민웅: 아리기는?

월러스틴: 그는 멋진 사람이었다. 죽는 날까지 나와 매우 가까웠다. 초기의 책 <제국주의 기하학>과 <장기 20세기>는 모두 매우 흥미로운 주장을 하고 있다. 하지만 나와 그의 근본적인 차이는 그는 현대 사회를 하나의 역사의 단계로서 보고 싶어 했고, 나는 16세기부터 지금까지가 본질적으로 같고 지금에야 뭔가 변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 우리는 토론을 많이 했다. 물론 해결을 본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토론은 서로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 아리기는 말년에 아시아의 변화에 깊은 인상을 받게 된다. 그것이 그의 학문세계의 내용도 일정하게 바꾸어 갔다.

사미르도 매우 친한 친구이다. 1년에 한번 정도는 만나는 것 같다. 여기저기서. 그나 나나 모두 여행을 많이 하니 그렇다. 자연스럽게 보게 된다. 내가 보기엔 그의 분석에는 아직도 너무 많은 19세기적 마르크스주의가 들어 있지 않은가 싶다. 거꾸로 그는 내가 충분히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고 여긴다. (웃음)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친하고, <세계사회포럼>에서 함께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김민웅: 전반적으로 말해서 누가 당신의 학문세계에서 가장 큰 영향을 주었는가?

월러스틴: 당연히 마르크스가 가장 중요하고, 브로델, 슘페터(Joseph A. Schumpeter), 프리고진(Ilya Prigogine), 파농(Frantz Fanon) 등이다.

김민웅: 현재 뉴헤이븐에 거주중인데 뉴헤이븐 좋아하는가?

▲ 이매뉴얼 월러스틴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월러스틴
: 오! 뉴헤이븐은 멋진 곳이다. 우선 날씨가 좋다. 이건 개인적인 취향이다. 나는 뉴욕 출신인데다가 뉴헤이븐은 뉴욕에서 아주 가깝다. 나는 미국의 북동쪽 기후를 좋아한다. 거기에다가 뉴헤이븐에는 품위 있는 문화적 삶이 있다. 식당 등도 멋지고. 물론 예일의 도서관은 엄청나다. 뉴욕에 가려면 그날로 오갈 수 있어 이 역시도 좋다. 기차로 2시간밖에 안 걸린다.

김민웅: 항상 공부만 하는 것 같은데, 쉴 때 뭐하나?

월러스틴: 십자 단어 퍼즐을 한다. <뉴욕타임스> 선데이 크로스워드 퍼즐. 매주 일요일 일주일의 시작을 그걸로 한다. 오늘 아침에도 한판 했다. 내게는 휴식의 방법이다. 또한 나랑 내 아내는 영화를 좋아해서 영화를 많이 보러 간다. 오페라도 보러가고, 내가 유난히 연극을 좋아하는 편이다. 화랑이나 박물관도 내가 즐겨 가는 장소다. 여행도 휴식이다.

김민웅: 세계 여기저기 돌아다녔는데,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월러스틴: 음식에 있어서 나는 아무 것이나 잘 먹는 편이다. 어렸을 때는 편식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대부분의 음식을 좋아하고. 중국, 인도, 터키, 이라크, 프랑스 등등 나는 사실 어느 나라 음식이나 다 좋아하는 편이다. 음식에 있어서는 일종의 세계주의자라고나 할까? (웃음)

김민웅: 팔십이 넘은 연세에도 대단한 학문적 업적을 계속 내고, 지구촌 곳곳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는 것에 경의를 표한다. 늘 건강하시고, 긴 시간 여러가지 흥미롭고 의미 있는 대담을 해주셔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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