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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알타이에 대해 무엇을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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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알타이에 대해 무엇을 아는가?

서길수 교수의 '알타이 답사기' 〈74·끝〉3주만의 귀가

오후 4시 35분, 아카뎀 고로독에 도착했다. 비가 많이 내렸던지 도로 곳곳이 침수되어 있다. 4시 45분 고고민족학연구소에 도착함으로써 우코크 고원 200㎞를 포함한 총 3040㎞의 대여정이 막을 내린 것이다. 연구소에서 짐을 푸는 데에도 한참 시간이 걸린다.

오늘은 어디에 텐트를 칠 것인가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동생과 나는 에스페란토로 대화가 되는 플루스닌 교수 집에서, 원철이와 화동이는 이리나 아줌마 집에서 자도록 주선해 놓았기 때문이다. 오늘 저녁은 플루스닌 교수가 자기 집으로 초청했다. 저녁밥을 먹고 나서 7시 40분이 되었으나 시베리아의 저녁은 아직도 밝다. 그래서 아카뎀 고로독에서 유명한 식물원을 구경하기 위해 떠났다. 조금 전까지 햇빛이 비치더니 갑자기 물을 쏟아 붓듯 비가 내린다. 매년 여름에 한 번 정도는 이런 비가 내린다고 하는데 그 날이 바로 오늘인 모양이다. 물위를 달리는 자동차 속에서 혹시 시동이 꺼질까봐 걱정했는데 시베리아 차들은 잘도 견뎌준다. 전체 면적이 1000㏊나 되는 식물원을 결국 보지 못하고 돌아왔다.

8시 반, 이리나 아줌마 집에 가서 남편 생일 축하파티에 참석했다. 이것저것 많이 준비하여 아주 즐거운 환송파티를 겸했다. 오늘은 이리나 남편의 생일이고 어제는 꾸바레프 교수 부인의 생일이었다. 그래서 가능한 한 어제 도착하려 했었는데 일정이 늦어져 오늘에야 도착한 것이다. 이리나 남편 녜로다 교수는 정말 좋은 사람이다. 처음 본 사람인데 마치 옛날부터 친했던 것처럼 대해 주어 참 편했다.

플루스닌 교수 집에 돌아와 가족들과 함께 촬영한 비디오를 보느라 11시가 다 되어 잠자리에 들어 시베리아의 마지막 밤을 보낸다.

"이거 당신 여권 맞아?"

7월 21일, 마지막 날이 밝았다. 6시부터 일어나 짐을 싸며 보니, 올 때보다 짐이 상당히 늘었다. 이리나 집에서 온 원철이, 화동이와 간단한 아침밥을 먹고 꾸바레프 교수 차로 공항에 도착했다. 억수같은 비는 오늘도 계속되더니 아카뎀고르독을 지나자 비가 멈추고 노보시비르스키 시내로 들어오니 비가 내린 흔적이 없다. 토요일 아침이라 시내는 한산했고 가볍게 도시와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8시 5분, 노보시비르스크 공항 도착. 아카뎀고로독에서 정확하게 1시간 거리다. 꾸바레프 교수와 내년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긴 포옹을 한 뒤 출발준비를 했다. 올 때는 먹을 것 잔뜩 가져 왔어도 초과요금을 내지 않았는데, 갈 때는 무려 34.5㎏이 초과다. 이곳에서는 비행기 안에 가지고 들어가는 짐까지 합쳐서 무게를 재 1㎏이라도 넘으면 1㎏당 1달러씩 추가 부담을 해야 한다. 비행기 안에 가지고 들어가는 짐도 함께 무게를 다는 것은 어쩌면 합리적인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국 심사하는데 생각하지도 않았던 일이 발생하였다. 여권검사를 하던 러시아 관리가 내 여권을 받아들고 나와 대조를 하더니 이상한 모양이다. 검사관이 보니 여권에 있는 사진과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전혀 다른 사람인 것이다. 다른 직원을 부르고 세관 검사하는 관리까지 와서 확대경으로 사진을 면밀히 검토하더니 나를 한쪽에 가서 앉아 있으라고 하며 다른 사람 여권 검사를 한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다 나간 뒤에도 계속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결국 책임자에게 보고하게 되고 책임자가 나와서 몇 가지 사항을 더 확인하더니 모두 웃으며 그냥 보내 주었다. 러시아 말이 통하지 않으나 내가 그들에게 한 말은 오직 한 마디, "알타이!"였다.

우리가 아는 알타이, 우리가 모르는 알타이

10시 30분, 노보시비르스크 톨마체보 공항을 뜬 비행기는 곧바로 기수를 남쪽으로 돌려 한국으로 향한다. 이번 탐사는 지금까지 내가 한 여행 가운데 가장 힘든 여행이었고, 일정에 비해 저렴한 여행이었으며, 전문가, 통역, 요리사, 특수차량 들을 동원한 대규모 디럭스 여행이었다. 처음으로 알타이 깊숙이 들어가 조사한 결과는 지금까지 우리가 알타이를 너무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알타이는 분명 우리와는 다른 하나의 분명한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었고, 그 문화는 우리 문화보다 결코 뒤지지 않은 찬란한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도 확실하다.

흔히 우리는 알타이나 바이칼 문화를 연구할 때 우리와의 상관성을 전제로 한 선입견을 가지고 시작하는데, 우리가 두 문화권을 비교하기에는 상대 문화에 대한 연구가 걸음마 단계에도 이르지 않았다는 반성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흔히 100개 가운데 90개가 다르고 10개가 비슷하면 그 10개를 가지고 모든 것이 같은 것으로 일반화 하는 잘못을 저지르곤 한다. 우리는 먼저 90 : 10이란 비율은 과연 맞느냐는 의문과 90은 무엇이고 10은 무엇인가에 대한 냉철한 분석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번 탐사는 그런 기초자료를 마련했고 앞으로 계속 연구할 수 있는 징검다리를 만들었다는 데 큰 뜻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오후 5시 30분, 노보시비르스크를 떠난 지 5시간 만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 타고 오는 5시간 내내 머릿속에는 이미 내년 탐사가 하나하나 준비되고 있었다.
▲ ⓒ서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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