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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만년 전 인간의 흔적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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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만년 전 인간의 흔적과 만나다

서길수교수의 '알타이 답사기'〈67〉데니소바 동굴

7월 17일, 7시가 되어서야 일어났다. 이번 탐사에서 가장 늦은 것이 아닌가 모르겠다. 날씨는 계속 추워 7시가 되었는데도 바깥 날씨가 11.3℃이다. 어제 저녁처럼 날씨가 잔득 흐려있다. 자 이제 알타이의 마지막 날이 시작된다.

쌀밥을 말아먹는 아침밥 메뉴는 한국 팀에게는 솔직히 별로 인기가 없다. 출발 준비를 하는 동안 뒷산 기슭에 올라 관광타운과 주변을 촬영했다. 그리고 이어 오늘의 답사 가운데 가장 중요한 데니소바 동굴(731m, N51°23'830", E84°40'595")의 구석기 유적을 찾아갔다.

구석기 유적은 석기시대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아, 정말 오래 되었구나!" 하는 정도지 감동을 느끼기 어렵다. 역사를 연구하는 나도 석기시대는 정말 어렵고 쉽게 정이 가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우선 석기시대는 고고학적으로 가장 오랜 시대이기 때문에 쉽게 '석기시대는 언제 시작되었는가?', '그 때는 어떤 도구를 사용해서 먹고 살았는가?', '그 때는 어떤 동물들이 살았는가?', '그 때 살았던 인간들은 어떤 인간들이었는가?'같은 간단한 의문을 가지고 접근하면 아주 흥미로울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이야기를 좀 더 쉽게 끌어가기 위해 "이 동굴을 왜 '데니소바'라고 했는가? "부터 시작에 이 동굴에 대한 현지의 전설 같은 가벼운 주제로 시작하려고 한다.

이 동굴을 '데니소바'라고 하는 것은 18세기 후반 이 동굴에 속세를 떠난 '디오니시'라는 사람이 살았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지 알타이 사람들은 이 동굴을 아유-따쉬("곰 바위")라고 부른다. 우리는 지금까지 깔박-따쉬를 비롯해서 많은 '따쉬'를 보았다. 산지 알타이 사람들에게 이 바위는 중요한 대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옛 전설에 따르면 이 동굴에 검은 샤먼이 살고 있었는데 주민들에게 나쁜 짓만 하고 비를 많이 내리게 했다. 이 비가 몇 년 동안 그치지 않자 주민들은 악마를 쫓아 낸 적이 있는 흰 샤먼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흰 샤먼은 모든 비를 한 덩어리로 말아서 돌로 만들어 '곰 바위' 동굴에 숨겼다는 아주 간단한 전설이다.

여기서 나오는 흰 샤먼과 검은 샤먼은 시베리아 샤머니즘에서 많이 나오는 것으로 '흰 샤먼은 창조적인 힘을 상징하고, 검은 샤먼은 파괴적인 힘을 나타낸다.'(차플리카, 『시베리아의 샤머니즘』). 이런 개념은 야쿠트족의 샤머니즘을 연구한 결과에서 온 것이고, 브리야트 샤머니즘에서는 '검은 샤먼은 이미 세상을 등진 인간들의 혼백이나 지상에 떠도는 다양한 영적인 존재와 인간들 사이를 매개하는 능력을 가진 존재이고, 흰 샤먼은 그 보다 더 높은 차원의 영적 존재들과 교통하는 존재를 의미한다.'(양민종, 『샤먼 이야기』)고 한다.

앞에 나온 개념은 좋고 나쁜 개념에서 본 것이고, 뒤에 본 것은 샤먼이 상대하는 영계의 수준을 가지고 나눈 것이다. 곰바위 전설은 이 두 가지 개념을 모두 가지고 있다. 쉽게 보면 좋은 샤먼과 나쁜 샤먼의 이야기지만, 좀 더 깊이 들어가 보면 흰 샤먼의 능력이 훨씬 차원이 높다는 점에서 부리야트 사머니즘의 정의도 들어맞는 것이다.

최근 데니소바에 비가 많이 내린다고 한다. 그러자 옆 마을 사람들이 "고고학자들이 와서 동굴을 파기 시작한 이후 다시 비가 내렸다!" 고 수군거린다고 한다. 비를 뭉쳐 놓은 돌을 깨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혹시 우리가 갔을 때 계속 비가 오고 날씨가 흐린 이유도 이 때문이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 ⓒ서길수

19세기 초 이곳에 온 러시아 선교사들이 처음 이 동굴을 알게 되었고, 이 동굴을 고고학적으로 발굴을 시작한 것은 1982년이다. 노보시비르스크에 있는 고고민족학연구소에서 데레비안코(A. P. Derevianko) 교수의 지휘 아래 이 동굴에 대한 학술적인 발굴과 연구가 시작된 것이다. 발굴된 15~20종의 유물 가운데 대부분(대략 5만 점)은 노보시비르스크 고고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고, 일부 유물은 비스크 향토지박물관, 쌀로녜쉬노에, 쵸르니 아누이학교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동굴 꼭대기에는 창문처럼 구멍이 있어 빛이 들어오며, 지금도 그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 볼 수도 있다. 그리고 동굴 안에서 밖으로 연기가 빠져나가는 곳이 있어 불을 피워 동굴을 따뜻하게 할 수 있고 환기에도 염려 없다고 한다.

우리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도 발굴이 진행되고 있었다. 발굴에 참여하고 있는 체르니코프 이반(Chernikov Ivan)이라는 젊은 학자가 데니소바 동굴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해 주었다. 데니소바 동굴은 알타이뿐 아니라 전 유라시아 대륙에서도 가장 유명한 동굴 유적 가운데 한 곳이다. 동굴 그 자체로는 별로 흥미 있는 곳이 아니다. 깊지도 않고, 종유석도 없고, 길도 없다. 다만 여기서 아주 오래 전 인류가 살았던 흔적이 있기 때문에 유명해진 것이다.

이 동굴도 우리가 우스트-칸 동굴 발굴자로부터 들은 것처럼 일반 동굴과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동굴은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카르스트 동굴인데 건조하고 입구가 넓고 바깥 계곡이 크다. 일반적으로 햇빛을 받지 못한 동굴 안은 바깥보다 더 춥다. 그런데 이 동굴은 바깥 온도가 3℃일 때 동굴 안에는 10℃로 훨씬 따뜻하고 앞에서 보았듯이 연기가 나갈 수 있는 구멍까지 뚫려 있어 사람들이 살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동굴은 현재 강 수면에서 22m 높이에 자리하고 있지만 30만 년 전에는 동굴의 3~4m 아래로 하천이 흘렀다. 그렇기 때문에 30만 년 전 강물이 낮아질 때부터 이 동굴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이다. 생물학적으로 보았을 때 2만2000년 전까지만 해도 이 지역은 넓은잎나무가 자라는 아주 따뜻한 지역이었다. 그 뒤 기후가 추워지고 인간 진화에 영향을 주었다.

동굴 안에서는 지금까지 발굴된 문화층도 확인할 수 있었는데 모두 22층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가장 밑에 있는 22층에서도 유물이 발견되었는데 연대가 30만 년 전까지 올라간다. 그러나 이 층에서는 유기체의 흔적이 나타나지는 않았다. 21~14층에서도 도구는 출토되었지만 마찬가지로 인간의 흔적이나 다른 유기체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고, 15만 년 전에 해당하는 문화층에서 처음으로 유기체의 흔적이 나타났기 때문에 이 동굴을 사용한 최초 년대에 대해서 아직도 다른 의견들이 존재하고 있다고 한다. 21층과 14층에서 사람의 이빨 2개가 나왔는데 21층에서 나온 15만 년 전의 이빨이 여기서 가장 오래된 인간의 흔적이라고 한다.

11층부터 후기 구석기 유물이 나오는데 검사 결과 3만9000년 전의 것으로 밝혀졌다. 이 층에서 뼈로 만든 예쁜 치렛거리(귀걸이 목걸이 같은)들이 나왔는데 이것이 북아시아에서 가장 오래 된 것이라고 한다. 발굴 담당자는 여기서 나온 유물들을 지리학자, 고대 식물학자들과 공동으로 기후와 식물을 연구한 결과 이 동굴의 구석기 연대를 30만 년 전으로 판정했다며, 알타이에서 가장 오래 된 동굴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발굴은 1982년부터 시작하여 1984년까지 기본 층을 발굴하고 1984년부터 본격적인 발굴을 하여 올해로 20년 간 줄곧 계속되고 있는데 고고학, 지리학, 지질학, 생물학 같은 여러 분야에 걸쳐 종합적인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작년에 맘모스(mammoth) 새끼 이빨이 나와 지금까지 알타이 산간지역에는 맘모스가 살지 않았다고 하는 주장이 틀렸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우스트-칸에서 보스트노프 교수가 한 이야기를 참고하면, 데레비얀코 교수 같은 많은 학자들은 데니소바 동굴이 30만 년 전에 최초로 사용되었다고 보고 있는 반면 보스트노프 교수의 경우는 15만 년 전으로 보고 있어 오히려 우스트-칸 동굴이 데니소바 동굴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가졌다고 주장한다. 고고학 자체가 종합적인 성격을 띠는 학문이긴 하지만 동굴 고고학의 경우는 그런 성격이 더욱 강해 연구하기에 아주 까다롭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순간에 15만년이 왔다 갔다 하는데 그렇다면 그 진실은 무엇일까?
▲ 데니소바 동굴 발굴 현장(2003)(좌), 지층 21층까지 보인다(우). ⓒ서길수

▲ 후기 구석기(4만~1만5천년 전)(좌), 골기 후기 구석기(2만~1만5천)(우). ⓒ서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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