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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에 마주친 알타이 최고의 '목젖노래'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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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에 마주친 알타이 최고의 '목젖노래' 공연

서길수 교수의 '알타이 답사기' 〈64〉

신석기 동굴유적을 답사하고 나니 12시가 다 되었다. 어제 약속한 대로 개울 건너편 관광숙소로 찾아갔다. 그런데 갑자기 얘기가 아주 달라졌다. 오늘 한다던 결혼식은 취소되었으니 악사 한 명만 데려와 춤은 자기가 추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요구한 금액이 100달러, 이곳 한 달 월급이다. 한국에서 왔다는 것을 안 주인은 너무 터무니없는 값을 부른 것이다. 서울 가서 제대로 된 비즈니스 공부를 못한 모양이다. 어떻게 하루 전에 결혼식이 취소될 수 있을까?

하루 이틀 차이 때문에 축제는 구경도 못하고 떠나는구나 하고 개울을 건너오는데 많은 알타이 사람들이 모여 있다. 알타이는 우리를 외면하지 않았다. 내일 개막식에 공연할 우스트-칸 예술팀이 연습을 하러 바로 우리 앞에 와 있는 것이다. 음악팀은 물론 알타이 전설을 공연할 어린이 연극팀도 함께 왔고, 20~30명이나 되는 학부형과 관계자들이 동원된 대부대였다. 아이들 연극은 말을 알아들을 수 없어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인간과 동물과 신 사이에 벌어지는 이야기 같았다. 배경은 아주 간단하다. 펠트 위에 벽화처럼 그림을 그렸는데, 사람 눈을 그려 아래를 내려다보는 존재를 나타내고, 그 아래는 여러 가지 동물을 사냥하는 인간들이 그려져 있는데, 활을 쏘는 사냥꾼과 말을 타고 짐승을 쫓는 사람도 있다. 이 배경 옆에는 제법 큰 산짐승을 잡아 네 발을 묶어 거꾸로 매달아 놓았다.

촬영을 위해 특별 연주를 부탁했더니 기꺼이 연주해 주었다. 한국에서 온 우리 4명을 위해서 특별 공연이 시작되었다. 젊은이 악단은 단순한 아마추어가 아니고 "알띈-뚜우(Altyh-Tuu)"라는 5인조 악단이다. 알띈-뚜우, 황금의 산(Golden Mountain)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한 이 악단은 남자 4명에 여자는 1명으로 다른 지역에 연주차 초대를 받을 정도로 알려진 악단이다.

그들의 공연은 기대 이상으로 훌륭했다. 한 청년이 그 유명한 알타이의 '목젖노래'를, 다른 한 청년이 옆에서 두 줄 현악기인 '툴쉬르'로 반주를 하는 동안 하늘과 땅과 땅속이 모두 하나가 되는 영혼의 트랜스 상태에 들어가게 해 주었다. 알타이 예술에서 이 발성법이 독특한 '목젖노래'는 나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이다. 우리가 갖고 있는 음역과 전혀 다른 소리를 내던 청년이 이번에는 카무스(러시아어 : 보르간)를 꺼내 입에 대더니 주변의 모든 영혼을 달래는 울림의 소리를 들려준다. 이어 가야금을 연상케 하는 '자다간'이라는 8줄의 현악기를 연주하며 잔잔한 물소리를 따라 우리를 알타이의 품속으로 안내해 주었다.

어딘가 좀 어설픈 점이 있는 것 같기도 하면서 너무나 깨끗한 연주가 정말 맘에 들었다. 그들은 순수했다. 마지막이 되어 선물로 줄 것이 별로 없어 어찌하지를 못하고 있는데 저쪽에서 낮밥이 다 되었다고 우리를 끌고 한사코 먹으라고 한다. 그저 즐겁게 노래하고, 연주하고, 먹고, 마시고, 그리고 찾아온 손님 극진하게 대접하고, 그래 이것이 바로 알타이의 고갱이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서길수

알타이 최고의 선물, 산꿀

오늘 일정은 학술적인 것과 예술적인 것이 어우러져 정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우리가 알타이 예술에 빠져 있을 때 우리 차량들은 이미 자리를 옮긴 뒤였다. 날이 흐리기 때문에 비가 많이 와 물이 불면 차가 건널 수 없기 때문에 건너편 길가로 차를 옮겨 낮밥 준비를 마친 지 오래였다. 통조림 육개장과 감자탕으로 낮밥까지 잘 먹고 나니 이미 시간은 2시 40분이나 되어버렸다.

출발하여 우스트-칸을 지나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그 사이 나는 잠깐 잠이 들었다가 깨어보니 포장이 안 된 도로를 달리고 있다. 꾸바레프 교수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여러 번 길을 묻더니 드디어 마을로 들어가 어떤 농가 앞에 차를 세운다. 내가 집에 돌아갈 때 선물로 유명한 알타이의 산꿀을 사고 싶다고 했더니 낮밥 먹고 첫 행사가 꿀 사는 일이었던 것이다. 비오는 날을 이용한 점도 있지만 이제 중요한 일정을 거의 소화하고 초과달성한 팀의 여유라고도 할 수 있다.

현재 알타이공화국에서 가장 으뜸을 이루는 러시아 농가들의 삶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널찍한 울타리 안에는 이층짜리 큰 목조 건물이 있고 안쪽으로 5~6칸 되는 창고 건물이 길게 늘어서 있고, 한쪽에는 제법 큰 텃밭이 있다. 텃밭에는 감자, 양배추, 사탕무, 당근, 호박, 해바라기 같은 여러 가지 작물들이 있어 스스로 먹고도 남을 만큼 농사를 짓고 있다. 그러나 이 집의 가장 으뜸가는 일은 벌을 치는 것이다. 본 건물 지하에 내려가 보니 우유를 나르는 통과 2말은 들어감직한 플라스틱 통에 꿀들이 가득가득 들어 있다.

말은 꿀 사러 왔다고 하지만 마치 초대받은 사람처럼 환대를 받았다. 먼저 꿀술을 맛보라고 주는데 나는 술을 마시지 않아 모르지난 원철이가 먹어보고 막걸리 비슷하다고 한다. 술 좋아하게 생긴 주인 멜토코비치 씨의 꿀술 자랑은 대단하다. 꿀술을 만드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하자 그것은 '비밀'이라고 입을 딱 다문다. 하기야 술 먹고 깨려면 꿀물을 먹는데 꿀로 술을 만들었으니 얼마나 좋겠는가? 그리고 바로 그 점이 멜토고비치를 술꾼으로 만든 것은 아닌지! 멜토코비치 씨의 친절은 꿀술로 끝나지 않는다. 차를 끓여 먹는 나무껍질인데 '붉은 뿌리(krasnyi koren, 학명 : kopeechnik)'라는 것을 꺼내와 설명하자 꾸바레프 박사가 가장 먼저 신청하여 빼앗듯이 챙겼다. 술에다 2~3주 담근 뒤 꺼내 한 숟갈씩 마시면 장을 튼튼하게 하는데 아주 효과가 크다고 한다.

오늘의 방문 목적은 꿀을 사는 것이다. 보통 설탕 값은 1㎏에 20~23루블(1루블=37원이니 1㎏=740~851원)인데, 꿀은 설탕보다 3배 이상 비싼 1㎏=70루블(70×37=2590원)이라고 한다. 5ℓ짜리 플라스틱 한 통(1ℓ=1.6㎏) 8㎏은 560루블(2만720원)이다. 러시아팀 4명에게도 작은 통 하나씩 해서 꽤 많은 12.5ℓ(1660루불=5만1420원)의 꿀을 구입했다. 꿀 사러 갔다가 알타이의 러시아 농부와 아주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술 좋아하는 주인 아저씨, 깐깐해 보이는 할머니, 가냘픈 며느리, 귀여운 손녀, 손자…. 1시간이 훌쩍 넘어가버렸다.

꿀을 사가지고 돌아오면서 지도를 아무리 둘러봐도 지금 우리가 어디를 달리는지 알 수가 없다. 플루스닌 교수에게 지도에 표시를 해달라고 해서 보았더니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딴 방향으로 가 있었다. 나는 다음 목표인 데니소바 가는 도중에 있는 마을에 들어간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꿀을 사기 위해 일부러 우스트-칸에서 서쪽으로 22~23㎞ 떨어진 뜌드랄라(Tyudrala)라는 마을까지 간 것이다. 유리 할아버지가 20년 전 좋은 꿀을 샀던 기억이 나는 바람에 양봉하는 마을까지 찾아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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