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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의 신석기 유적, 우스트-칸 동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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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알타이의 신석기 유적, 우스트-칸 동굴

서길수 교수의 '알타이 답사기' 〈63〉

7월 16일(수), 6시 일어나 온도를 재보니 바깥이 7~8℃, 텐트 안에도 12~13℃다. 해발 고도는 지금까지 다닌 지역에 비해 꽤 낮은데 온도는 낮다. 그런데다 산에 가려 해가 늦게 뜨는 곳이라 온도가 빨리 올라가지 않는다. 텐트 문을 젖히니 텐트 바로 앞에 에델바이스와 다른 꽃들이 잔뜩 피어 있다. 5~6마리 소가 텐트 언저리에서 풀을 뜯고 있고, 강 건너 초원에는 목동들이 말을 타고 아침 소몰이에 바쁘다. 유리 할아버지는 벌써 아침 커피 마실 불을 피우고 이리나는 아침 준비를 하는데 다른 대원들은 기침을 하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 가는 질서가 참 특이하다. 화장실 하나를 가지고 20명 가까운 사람이 쓰기 때문에 특별한 규칙을 정해야 했다. 즉 화장실을 들어갈 때 깃대에 깃발을 올리고 나와서는 내리는 간단한 것이지만 아주 편리한 규칙이다. 화장실에 가려는 사람은 먼저 화장실 지붕에 깃발이 있는지 없는지 바라보면 되는 것이다.

8시. 어제 남은 밥을 데워서 먹는다. 이리나가 높은 고원에서도 밥을 잘 하더니 마지막이 가까워지니 긴장이 풀렸는지 엊저녁 설은 밥을 만들었다. 그대로 먹을 수가 없어 라면을 끓여 그 국에 말아 먹었다. 발굴 책임자 알렉산드례 포스트노프(Alexandre Postnov) 대장도 자리를 함께 했다. 포스트노프 교수가 갑자기 일어나 자기 캠프로 가더니 어디서 젓가락을 구해가지고 와서 달걀을 들어 올리는 따위의 제주를 부려 한국에서 온 손님을 대접한다. 그 매운 신라면을 거뜬히 먹고 "맛있다."고 한다. 매운 라면 10개를 선물로 주면서 "밥통이 나빠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인사를 했더니 "나 혼자 먹을 것이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즐거워한다.

오늘의 첫 일정은 보스트노프 교수의 안내를 받아 발굴이 진행되고 있는 우스트-칸 동굴을 가보는 것이다. 동굴 유적은 이번에 처음 보게 된 것이다. 동굴은 2개의 서로 다른 지층이 만난다는 곳에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겉보기로도 확인할 수 있었는데 동굴은 주변의 다른 곳들과는 다르게 흰색을 띠고 있었다. 동굴을 오를 때 처음에는 발굴을 위해 만든 나무 계단으로 오르다가 계단에서 벗어나 고대 사람들이 바위를 파서 만들었다는 돌계단을 이용해 올라보았는데 나무 계단보다 훨씬 더 편하게 오를 수 있었다.

동굴 입구에 도착해보니 주변의 경관이 한 눈에 들어왔다. 동굴 입구에서 GPS로 위치를 재보니 1080m, N50°54'747", E84°48'813"으로 캠핑하는 곳 보다 52m 쯤 더 높다. 동굴 안에는 4명의 발굴 인원이 조심스럽게 발굴 작업을 하고 있었다. 동굴은 아래부터 54m 높이에 있으며, 동굴 입구는 높이가 4m, 너비가 14m, 안쪽 길이는 34m라고 하였으나 안에 들어와 보니 그리 넓어 보이진 않았다. 보스트노프 교수는 능숙하고도 여유롭게 설명을 계속했다.

현재 서부 알타이에는 400여 곳 이상의 동굴이 있는데 우스트-칸 동굴은 그 가운데에서 가장 특이한 곳이라고 하며 몇 가지 특징을 든다.

① 보통 동굴은 습하고 내부 온도가 낮기 때문에 사람이 살 수 있는 조건이 되지 않는데 우스트-칸 동굴은 동굴 안이 건조하고 따뜻하다. 동굴이 세모꼴로 막혀 겨울에는 따뜻한 공기가 안으로 들어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동굴은 신기하게도 바람이 불 때면 바람이 바위 절벽에 부딪히고 동굴 안으로는 들어오지 않는데 바람이 강할 때 가벼운 것을 동굴에서 던져 보니 실제로 날아가지 않았다고 한다.

② 다른 곳에 비해 동굴의 위치가 사람이 오르기에 편한 곳에 위치한다고 하였다.

③ 주변에 샘이 9개나 있는데 모두 샘물이 좋아 약수다. 그 물을 떠다 이 동굴에 반 년을 두어도 썩지 않는다.

④ 남향이라 하루 종일 따뜻하다.

⑤ 일반적으로 동굴은 물에 의해 만들어지는데 이 동굴은 두 지층이 합쳐지면서 그 사이에 틈이 생기며 만들어진 것이다. 하얀색 바위가 더 오래 되었는데 40억 년 전에 생긴 것이다.

우스트-칸 동굴은 모두 20개 지층으로 나뉘는데 그 가운데 10번째 지층에서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약 30만 년 전에 해당하는 문화층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동굴이 사용되기 시작한 가장 이른 시기를 20만 년 전으로 보고 있었다. 20만년 이전의 지층에서는 인간의 흔적이라든지 유기체의 흔적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2.5m를 파면 20만 전의 지층 바닥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마지막 시대의 불탄 자국이 나왔다. 중국의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결과와 비교해 보니 북아시아에서 20만 전의 불자리는 이곳이 처음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흔적을 현지인들이 없애버렸다. 중요한 유적이라 천으로 덮어 놓았는데 현지인들이 무슨 특별한 것이 있는 줄 알고 파내버렸다는 것이다.

당시 사람은 주로 말을 많이 잡아먹었을 것이라고 하는데 동굴에서는 말뼈가 많이 출토되었고 조류의 뼈도 70개 넘게 나왔다. 올해(2003년) 나온 보고서를 우리에게 보여주는데 여러 방면에 걸쳐 과학적 분석이 이뤄지고 있었다. 현재는 4만 년 전의 문화층을 발굴 중인데 발굴 기간만 올해로 4년째이며 올해는 특별한 유물이 나오지 않고 있다고 하였다.

재미있는 것이 후기 구석기 이후에는 동굴을 사용한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 동굴은 넓게는 30만 년 전부터 2만 년까지 사용되었고 주로 사용된 시기가 3만~2만5000년 전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그 뒤 2만 년 동안은 이상하게도 인간의 흔적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데니소바 동굴은 춥고 습도가 높아 조건이 좋지 않은 데도 불구하고 인간들이 계속 살았는데, 조건이 훨씬 좋은 이곳은 왜 2만 년 전부터 인간이 살지 않았을까?

이런 인간 행동 문제는 고고학자들이 해결하기 어렵다. 그래서 이 발굴에 고식물학, 생태학, 인류학 같은 다양한 학자들이 참여해 함께 연구하는 중이라고 한다. 그래서 철학을 가르치는 플루스닌 교수도 이 연구에 참가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 뒤 언제부터 인간의 흔적이 나타났는가?"

"앞으로 계속 연구해야 할 과제이다. 그런데 2년 전 보드카 병이 하나 나왔다. 그것도 현지인들이 버린 것이 아니고 어떤 군인이 마셨던 것인데, 왜 군인이 이곳에 와서 보드카르 마셨는가는 인류학자가 알아서 할 일이다."

꾸바레프 교수가 잘 아는 발굴대장의 호의로 우리는 동굴 깊숙이 파고 있는 발굴현장을 자세하게 관찰할 수 있었고 많지 않지만 새로 나온 유물도 있는 대로 다 보여주었으며, 사진도 마음대로 찍게 해주어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동굴 설명을 마치고 보스트노프 교수는 우리를 동굴 아래로 내려와 왼쪽으로 데리고 가더니 느닷없이 하얀 돌덩이를 우리에게 건네준다. 4억 년 전의 산호 화석이었다. 이곳은 20억 년 된 바닷가 절벽이었고, 4억 년 전까지는 이곳이 바다 아래였다고 한다. 주위에 산호 화석이 많이 눈에 띠었다.

알타이의 신석기 유적은 구석기 유적에 비해 많지 않다. 지금까지 알타이 신석기 유적으로는 유명한 까민나야(Kaminnaya)와 니지네팃께스까야(Nizhnetykeskaya)에 이어 이 우스트-칸 유적이 크게 각광을 받고 있다. 1954년 루덴코가 이 유적을 처음 발굴했을 때 구석기시대의 긁개, 재단기, 자갈로 만든 찌르개, 뼈로 만들어진 날카로운 날, 창의 날 같은 것이 나왔다고 해서 대략 60만 년 전 유적으로 보았다. 현장에서 들은 설명과 차이가 난다. 우스트-칸 동굴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에르미따쥐 박물관과 바르나울에 있는 향토지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 ⓒ서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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