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 구덩이들이 많다. 하나인 경우도 있고 2~3개가 함께 붙어 있는 것도 있으며, 어떤 곳은 아주 많이 모여 있기도 하다. 그 구덩이는 예전에 살던 주민(알타이 추디)의 집이라고 한다. 많은 돌무지에 비석이 서 있는 것은 그들의 무덤이다.
전설에 따르면 이곳에 추디 민족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하얀 나무, 즉 하얀 자작나무가 자랐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이 나무와 함께 하얀 왕(白王)이 태어나 그들을 정복하여 죽일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사람들은 스스로 너무 놀라서 하얀 왕이 그들을 죽이기 전에 먼저 자살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주거지 위에 사다리를 놓고 나무로 엮은 뒤 그 위에 돌을 쌓았다고 한다. 그리고 모여서 주술의식을 갖고 각각 마지막 인사를 나눈 뒤 나무 기둥을 잘라 넘어뜨렸다. 그 위에 쌓여 있던 돌이 사람들에게 무너져 내리면서 그들은 모두 죽었다. 이 전설은 노인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대형 돌무지 가운데는 파져 있고 커다란 나무가 한 그루 서 있는 대형 꾸르간을 보고 만들어진 전설인 것이다. 빠지릭은 2500년 전 번영했던 문화이고, 아마 이 전설을 만들어낸 후예들은 그 보다 훨씬 뒤 적어도 뚜르크 이후의 후예들이 만들어낸 전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뚜엑따에서 우스트-칸까지
뚜엑따에서 3㎞를 가면 큰 삼거리(950m, N50°51'330", E85°50'662")가 나오는데 여기서 왼쪽으로 꺾어 들어가면 우리가 오늘 목적지로 하고 있는 우스트-칸(Ust-Kan)이다. 표지판에 나온 거리를 보면 우스트-칸까지는 95㎞가 남았다.
오후 5시, 우리는 딸다(Talda, 980m, N50°50'552", E85°46'456")라는 조그마한 마을 앞에 차를 세우고 대형 꾸르간을 촬영했다. 바로 딸다강이 우르술강으로 흘러드는 합수머리 들판인데 언뜻 보아도 10기 남짓한 꾸르간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 가운데 바로 가까운 곳에 있는 대형 꾸르간은 정말 작은 산만큼 크다.
"아직 발굴되지 않은 꾸르간들이 대부분이다. 한국과 함께 발굴할 의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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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바레프 박사가 자기 의사를 분명하게 밝힌다. 까라꼴에서는 까라꼴문화의 꾸르간을 발굴할 수도 있다고 하였다. 내년에 다시 와 자세하게 살펴보기로 하고 오늘은 그냥 지나친다. 만일 재정적인 여유가 생긴다면 언젠가 빠지릭문화나 까라꼴문화의 꾸르간을 한 번 발굴해 봤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우리나라에 참 많은 고고학자들이 있는데 국제적인 발굴에 참여하는 팀은 극히 적은 것으로 안다. 아시아사 전체에서 우리의 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시베리아를 비롯해 유목지역에 대한 발굴도 꼭 필요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딸다를 떠나 작은 산기슭을 돌아서니 바로 쉬바(Shiba)라는 마을이 나온다. 딸다보다 더 큰 마을이기 때문에 기록에 보면 모두 딸다의 꾸르간을 쉬바의 꾸르간으로 기록하고 있다.
삼거리에서 15㎞를 더 가면, 뗀가(Tenga)강이 우르술 강으로 흘러들어가는 곳에 뗀가라는 작은 마을이 있는데 여기서 강 상류로 올라가면 유명한 까라꼴문화 꾸르간이 발굴되었던 오제르노예가 있다. 우르술 강 주변에는 지류마다 곳곳에 유적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고대 이 지역은 상당히 사람들이 많이 모여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목장이 많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목축을 하기에 알맞은 지역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자료에 보면 까라-꼬븨(Kara-Koby)와 까라-봄(Kara-Bom)에 바위그림 유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뗀가에서 옐로(Elo)까지 11㎞인데 그 주위에 이런 유적들이 있는 것이다. 까라-꼬븨는 까라-봄 가는 도중 이정표에 20~21km라고 되어 있는 넓은 평원에 자리 잡고 있는데 '까라'는 '까맣다'는 뜻이고 '꼬븨'는 '무덤'이란 뜻이니 '까라-꼬븨'는 '까만 무덤'이 되는 것이다. 이 지역에도 꾸르간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마을이름이다.
나는 답사나 여행을 할 때 현지 사람들에게 마을이나 지역 이름이 갖는 뜻을 꼭 물어본다. 그런 이름에는 어떤 역사적 사실이 담긴 뜻이 많기 때문이다. 까라-봄은 옐로(1078m, N50°46'664", E85°33'532")에서 남쪽으로 까얄릑(Kayalyk) 가는 길가에 있는데 까라-봄이란 이름에서 이미 길이 강가 절벽이 있는 곳을 지나고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까라-봄은 옐로에서 7㎞ 가면 있다고 해서 바위그림을 보고가자고 했더니 꾸바레프 박사가 "바위 1개에 그림이 있어 별로 볼 것이 없다."며 그냥 지나가자고 했다. 옐로를 지나며 34km 표지판 못 미치는 지점 오른쪽에 대형 빠지릭 꾸르간들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이 지역에 상당히 많은 유적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정표 26~51㎞는 비포장도로지만 시속 80km를 낼 수 있을 정도로 도로 상황이 좋다. 우리 차는 쎄민스키이 산맥을 넘어가기 위해 천천히 산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이 산맥을 넘어가기 전에 우리는 먼저 해야 할 일이 하나 남아 있다. 목을 축이기 위해 알타이말로 '아르잔'이라는 부르는 샘에 들리는 일이다. 이곳 아르잔(1176m, N50 47.423 E85 24.310)은 이 길을 지날 때면 꾸바레프 박사가 반드시 차를 세워 시원한 물을 마시고 아울러 큰 통에 앞으로 먹을 물을 저장하는 아주 중요한 식수원이다. 꾸바레프 박사는 며칠씩 먹을 물을 반드시 큰 통에 떠가지고 다니는데 알타이 전역에 있는 좋은 아르잔을 모두 꿰고 있다. 이 주변을 다닐 때는 이 아르잔을 최고로 친다. 바로 길가에 있어 차가 지나갈 때 먼지가 심하게 일기는 하지만 버드나무로 덮인 이곳 샘물은 정말 맑고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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