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나오려는데 꾸바레프 박사가 "오늘은 아주 특별한 것을 보여주겠다"며 우리를 복도 끝에 있는 방으로 안내했다. 방으로 들어가자 정말 놀라운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많이 듣고 읽었던 까라꼴 벽화 실물들이 놓여 있었다. 원래 에르미타쉬 박물관에 전시 되어 있는 유물인데 독일 전시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잠깐 들른 것이고, 우리가 바로 그 시간과 공간에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이런 세계적인 유물을 가까이에서 자세하게 살펴 볼 수 있는 것은 흔치 않은 기회이기 때문에 우리는 자세하게 들여다 보고, 사진도 찍고 비디오도 촬영하였다. 1993년 중국 집안에서 처음 고구려 벽화를 볼 때의 감격이 되살아난다. 색을 칠한 채색화를 주로 하였는데 돌을 쪼아서 그린 바위그림도 있다. 바위그림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 꾸바레프 교수로부터 즉석 강의도 들을 수 있었다.
까라꼴 벽화는 바위그림처럼 쪼아파기와 새기기 기법으로 표현한 것도 있고, 가장 놀라운 것은 색깔을 써서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다. 이러한 채색 그림은 알타이는 물론 시베리아 전체를 통틀어 까라꼴 밖에서는 아직 발견된 것이 없다. 특히 생생하게 남아 있는 물감의 흔적과 색상은 청동기 아시아의 다른 지역에서도 그 예를 찾을 수가 없다.
그림의 빛깔은 빨강, 검정, 하얀빛 같은 3가지로 비교적 단순한 편이지만 청동기에 이런 색깔 있는 그림을 그렸다는 그 자체가 놀라운 것이다. 물감은 주로 광물성이라고 한다. 현지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물감의 대부분 황토와 숯을 광물과 함께 녹이고 또 다른 물질을 혼합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무덤 주인공의 얼굴을 그리는 데 쓴 빛나는 검은색은 아직 그 성분이 무엇인지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까라꼴의 그림은 마치 피카소나 마티스의 그림처럼 단순하면서도 매우 독창적이다. 이 그림들은 고고학에서 연구해야 할 대상인 동시에 고대의 미적 감각과 당시의 세계관을 알려주는 귀중한 정보다. 그림을 잠깐 보는 우리의 가슴이 이렇게 뛰는데, 발굴 당시 4000~5000년 전의 그림을 처음 본 꾸바레프 박사의 감동은 얼마나 컸겠는가? 뜻하지 않은 까라꼴문화의 고갱이를 바라보며 수많은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널돌 안에 왜 그림을 그렸을까?
벽화는 왜 널돌 안쪽에만 그렸을까?
벽화에 나온 주인공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인가?
자신들이 그린 그림을 5000년 뒤 인간들이 꺼내 볼 것을 알았을까?
초여름 어느 날 갑가지 이루어진 까라꼴 벽화와의 우연한 만남은 수 없이 많은 의문만큼이나 감동도 크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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