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빠지릭 꾸르간이 발굴된 울라간에서 약간의 밀을 심고 있지만 빠지릭 당시 경작을 했다는 증거가 없고 가장 큰 생업은 목축업이었다. 발굴 결과에 따르면 당시의 가축으로는 말, 큰 뿔을 가진 소(야크 포함), 두 개의 작은 뿔을 가진 동물인 염소와 양 같은 것들이었다. 황소 뿔로 만든 유물들이 여러 꾸르간에서 발견되었는데, 특히 꾸르간 3호에서 한 쪽만 멘 북과 암소의 엉덩이뼈와 등뼈가 나왔다. 야크 털은 2호와 5호에서 나왔고, 숫양의 엉덩이뼈로 만든 유물들이 모든 꾸르간에서 나왔다. 꾸르간 2호와 5호에서는 양털이, 5호에서는 양의 가죽이 나왔다.
가축 가운데 가장 으뜸 자리를 차지한 것은 말이었다. 유목민의 삶에서 말이 갖는 의미는 카자흐와 키르기즈 사람들의 생활에서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 말은 교환의 기본 단위가 되고, 큰 뿔이나 작은 뿔을 가진 동물들의 가치를 재는 표준이 되었다. 예를 들면, 말 1마리에 소 2마리, 야크 3마리, 양 12마리라면, 소 1마리는 양 6마리와 바꾸고, 야크 1마리는 양 4마리와 바꾸는 교환방식을 말한다. 말은 동물 가운데 유일하게 사람과 동등한 가치로 인정받았다.
오환(烏桓)에서는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이 말 한 마리를 바치면 풀려나기도 했다. 오환은 흉노와 마찬가지로 동호의 후예인데 알타이인과 마찬가지로 목축이 주된 생업이었다. 말은 고기와 젖은 물론, 그 가죽으로 옷, 그릇, 가죽 끈을 만드는데 사용했다. 말은 이동수단으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마차에 이용하기도 했지만 특히 타고 다니는 것은 유목민의 일상생활이었고, 심지어는 죽은 뒤 저세상에도 함께 가는 동물이었다. 알타이 경제에서 두 번째 자리를 차지한 것은 양이다. 양은 고기, 가죽, 털, 젖을 제공했다.
꾸르간에서 빠지릭인들이 사냥을 생업으로 했다는 증거가 나오지 않았으며, 사냥 도구들도 나오지 않았다. 이런 상황은 당시 빠지릭 유목민에게 목축이 주된 생업이고 사냥은 부차적인 것이라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사슴, 엘크, 산양 같은 사냥은 고기와 가죽을 쓰기 위한 소비용이고, 담비는 교역에 필요한 상업용이었다. 대부분의 꾸르간에서 아주 화려한 담비가죽 옷들이 발견되었는데, 이런 담비옷은 알타이뿐 아니고 주변의 모든 지역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아 중요한 교역품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연 조건 때문에 고기잡이는 주된 생업이 아니었다.
유목민들이 먹는 음식 가운데 고기는 당연히 으뜸 자리를 차지한다. 한편 당시 유제품 가운데 치즈가 많이 발견돼 관심을 끈다. 특히 2호 꾸르간에서는 가죽 부대 속에 많은 치즈가 발견돼 발굴자들을 놀라게 했다. 음식을 어떻게 해 먹었을까 하는 것은 자세하게 알 수 없지만 목이 좁은 토기나 끓여 먹는 데 쓰는 솥들이 발견되어 고기를 물에 넣고 삶아 먹었고, 또는 그냥 불에 구워 먹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당시 주택은 자작나무 껍질 텐트, 펠트 텐트(끼빗끼), 통나무 오두막집 같은 3가지로 추정하고 있다. 이런 추정은 헤로도투스가 기록한 스키타이인의 주거 습관과 근대까지 비슷한 생활을 유지해 온 카자흐인들의 집, 그리고 꾸르간 5호 널방에 남아 있는 자작나무 껍질 벽 들을 종합해서 판단한 것이다.
알타이 빠지릭인들의 경제와 삶을 재현할 수 있는 유물은 그 외에도 수없이 많다. 마차, 토기, 나무로 만든 그릇, 가죽 가방, 장식품 같은 수많은 유물들이 나왔는데 앞으로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는 후학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란다. 사실 우리가 알타이를 '우리와 같은 알타이어 계통이다', '우리 선조는 알타이에서 왔다'라고 단순하게 얘기하기에는 알타이에는 너무 많은 문화와 유적이 있고, 발굴된 유물도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앞으로 이런 모든 역사 유적과 유물이 종합적으로 연구되어 우리와의 관계설정이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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