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지릭 꾸르간에서 발굴된 유물은 현재 쌍 뻬쩨르부르그의 헤르미타지 박물관으로 가 원시문화 부문에 보존되어 있다. 원시문화 부분은 크게 7개의 홀에 걸쳐 전시가 되고 있는데 여기에는 시베리아 쪽의 스키타이 문화뿐 아니라, 흑해 북쪽지방, 이누신스키 지역, 유럽 지역의 스키타이 문화를 같이 전시하고 있다. 여러 지방의 스키타이 민족의 특성을 잘 나타내주고 있기 때문에 스키타이 민족이라는 커다란 민족 그룹의 동질성을 평가하는 데 중요한 평가 자료로 이용되고 있다. 발굴 과정과 일부 유물은 비스크와 고르노-알타이스크의 향토지박물관과 아카뎀 고로독의 고고학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빠지릭의 발견은 2500년의 역사를 상당 부분 재현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유물을 제공했다. 단 5기의 꾸르간을 발굴해 잊혀진 한 시대의 사회와 문화를 이처럼 상세하게 복원할 수 있다는 것은 이 발굴이 얼마나 중요한 작업이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발굴보고서의 분석을 보면 이곳에서 발굴된 유물을 가지고 수 백 쪽에 달하는 빠지릭 역사책을 한 권 완전하게 완성했음을 알 수 있다. 경제와 삶, 옷과 개인의 꾸미개, 이동수단, 여러 가지 재료를 다루기 위해 채용한 기술, 사회구조를 알 수 있는 증거, 예술, 종교적 믿음과 의식 같은 굵직한 제목만 보아도 쉽게 그 방대한 내용을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구동토층 때문에 2000년 이전의 생활용품이 원상태 그대로 세상에 나오면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이란 수사가 붙은 물건들이 수두룩하다. 그 가운데 유명한 이야기가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손으로 짠 카펫이 바로 뻬쩨르부르그의 헤르미타지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빠지릭(Pazyryk) 카펫이라는 것이다. 카펫은 고대 바빌로니아, 앗시리아, 메디아, 페르시아 같은 많은 나라에서 생산됐지만 유물에 그려진 그림을 빼놓고 실물은 단 하나도 남지 않았다. 그런데 2000년 이상 냉동실에 보관했던 빠지릭 꾸르간 5호가 열리면서 실물이 나타난 것이다.
이 양모 카펫은 1.89×2m 짜리 긴네모꼴인데, 가장자리부터 안으로 계속 테를 두르며 4번 들어가다가 5번째 한 가운데는 바둑판처럼 4×6=24개의 네모꼴이 생긴다. ① 한 가운데 있는 4×6=24개의 네모꼴 안에는 4송이 꽃이 '十 자'꼴로 그려지고 4개의 별빛이 ×꼴로 겹쳐 있는 무늬를 놓았다. ② 이 24개의 도안은 테를 두르듯 42개의 네모꼴 도안으로 둘러싸여 있다. 테를 두른 띠에 그려진 도안은 날개를 펴고 머리를 뒤로 돌린 그리핀들이다. ③ 다음 테는 너비가 좀 더 넓은데 풀을 뜯는 얼룩무늬 사슴 24마리가 시계방향으로 가고 있다. ④ 다음 테는 다시 너비가 좁은데, 한 가운데 있던 무늬처럼 꽃과 별빛으로 이루어진 무늬 66개로 구성되어 있다. ⑤ 다음 테는 너비가 가장 넓은데 28명의 말 탄 기사들이 시계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다. 즉 사슴과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⑥ 마지막 테는 다시 ②번과 같은 그리핀 무늬인데 약간 더 크고 방향이 반대로 되어 있다. 이 카펫은 여러 가지 색을 썼는데 짙은 빨강, 옅은 파랑, 초록빛, 옅은 노랑, 오렌지색 및 기타 색조 같은 부드러운 톤이다.
이 카펫은 언제 어디서 만들어졌을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굴 보고서에서는 카펫의 무늬에 관심을 가졌다. 먼저 무늬에 나오는 사슴의 종류에 관한 것이다. 언뜻 보기에 손바닥 꼴을 가진 엘크처럼 보인다. 그러나 몸에 점이 찍혀 있고, 주둥이의 생김새와 몸통의 구조를 보면 엘크보다는 팰로(fallow) 사슴(Cervus dama)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특성은 아케메네스 왕조(Achaemenian 시대) 때 팰로 사슴을 대표하는 Hither Asian의 특성과 같다는 것인데, 아케메네스 왕조는 BC 6∼4세기 페르시아에 있던 나라다.
독수리 그리핀은 몸통이 사자인지 호랑이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뒤로 돌린 큰 귀가 달린 머리, 반쯤 벌린 입 밖으로 내민 혀, 치켜 올린 날개와 말아 올린 꼬리가 특징이다. 엉덩이에는 초승달 같은 무늬가 있다. 전체적으로 사슴 및 그리핀과 조화를 이루는 것은 안장 없이 상자조각을 덮은 말을 타고 천천히 말을 모는 기사이다. 말은 꼬리로 매듭을 짓고 죽은 이의 영혼을 장식하였다. 안장 대신 카펫 같은 것을 깔고 상자조각으로 말을 장식하는 것은 전형적인 앗시리아 식이지만 꼬리로 매듭을 지어 매는 것은 앗시리아식이 아니고 페르시아식이라고 한다. 이런 결과를 바탕으로 카펫을 만든 솜씨가 메디아(Median)식이냐, 빠르띠아(Parthian)식이냐? 그것도 아니라면, 페르시아 식이냐? 이런 논란은 있지만 카펫을 만든 시기는 대개 BC 5세기로 보았다.
이렇게 보자면, 이 카펫은 대개 페르시아 쪽에서 만들어져 BC 5세기 무렵 알타이에 수입된 것으로 보인다. 이 카펫은 알타이가 멀리 페르시아까지 장거리 교역을 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라고 할 수 있으며, 당시의 수공업 수준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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