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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깊은 산중에 무덤을 만든 뜻은…

서길수 교수의 '알타이 답사기' 〈46〉

정오가 다 되었지만 낮밥을 준비하는 동안 먼저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북쪽 산으로 올라갔다. 널찍한 초원에 당당하게 자리 잡은 5기의 대형 꾸르간이 한 눈에 들어온다. 빠지릭 시대의 지도자가 왜 이런 깊은 곳에 자신들의 무덤을 만들었을까, 새삼 주변을 둘러보게 된다.

남쪽을 꽉 막고 있는 꾸라이산맥의 각 계곡에서 북쪽으로 흘러내리는 물줄기, 동쪽을 차단한 치카체바산맥 계곡에서 서쪽으로 흘러내리는 물줄기, 북쪽을 막고 있는 울라간 고원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물줄기가 모여 큰 바쉬까우스(Bashkaus))강을 이룬 뒤 서북쪽으로 흐르다가, 울라간 고원 넘어 같은 방향으로 흐르는 출릐쉬만(Chulyshman)강과 만다 텔레츠코예 호수로 들어간다. 빠지릭은 울라간 고원에서 바쉬까우스로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따라 형성된 울라간 계곡에 자리 잡고 있다.
▲ 빠지릭 꾸르간 평면도 (Rudenko, "Frozen Tombs of Siberia") ⓒ프레시안

우선 무덤의 위치와 분포부터 보기로 한다. 발굴보고서에는 5개의 무덤을 조사하고 분석한 순서대로 번호를 매겼기 때문에 책에 나온 꾸르간 번호와 현장의 위치와는 달라 자세하게 대조하지 않으면 좀 혼란스럽다. 우리가 GPS 측정 자료를 바탕으로 북쪽에 있는 꾸르간부터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① 3호 꾸르간(1,414m, N50 44.861 E88 04.390)

② 4호 꾸르간(1,409m, N50 44.827 E88 04.370)

③ 1호 꾸르간(1,409m, N50 44.760 E88 04.285)

④ 2호 꾸르간(1,418m, N50 44.722 E88 04.272)

⑤ 5호 꾸르간(1,457m, N50 44.501 E88 04.351)

각종 서적은 물론 많은 도록에 1호 무덤, 5호 무덤 하는 식으로 표기하고 있는데 사실은 가장 위에 있는 꾸르간이 1호가 아니고 3호인 것이다. 아울러 각 꾸르간 사이의 거리도 크게 차이가 난다. 3, 4호 사이는 47m로 가까이 있고, 1, 2호도 71m로 가까이 있다. 반면에 1, 2호와 3, 4호 사이는 167m이고 3, 4호와 5호의 사이는 247m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

(3호 꾸르간) -47m- (4호 꾸르간) -167m- (1호 꾸르간) -71m- (2호 꾸르간) -247m- (5호 꾸르간)

이제 무덤의 구조를 보기로 한다. 먼저 생땅을 파서 그 안에 집을 짓는다. 내가 집을 짓는다는 표현을 쓴 것은 실제로 그 크기가 작은 집의 크기만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파낸 땅속은 이미 영구통토층(그림 13 참조)이었는데, 보통 4m 정도를 파냈다. 다만 3호 꾸르간만 5.2m이다. 그리고 방의 크기도 51~55㎡로 우리나라의 15평짜리 집만큼 크다. 4호 꾸르간은 예외로 30㎡(9평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널방은 마치 시베리아지방에서 지은 통나무집처럼 튼튼하게 짓는데 그것도 이중으로 짓는다. 기둥과 들보를 아주 잘 깎아 맞추어 못을 쓰지 않고도 집을 짓는 시베리아 통나무집의 기술이 그대로 이용되고 있다. 집을 이중으로 짓는 것은 이 널방 위에 다시 통나무와 깨진 돌들을 채우기 때문에 그 무게를 견딜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널방의 바닥은 흙이나 깨진 돌을 깔아 만들었다. 바닥 위에 자작나무 껍질과 이깔나무 껍질을 깐 뒤 마지막으로 꾸릴라이 차이(영어로는 smoky tea, 학명 Potentilla dasiphora fruticosa L. Rybd)의 잎을 깔았다. 이처럼 바닥을 나무껍질로 깐 것은 방안에 습기가 차지 않게 하는 것으로 보이고, 차로 마시는 나무의 잎을 깐 것은 어떤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으나 자세한 것은 알 수가 없다. 주인공은 통나무를 위부분만 따내고 안을 파낸 널 속에 넣고 뚜껑을 덮어 큰 널방의 남쪽에 동서 방향으로 놓는다. 한편 널방 밖에는 말이나 마차를 치장한 그대로 묻어 빠지릭 시대 말과 마차가 생활에 얼마나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널방은 주로 땅속을 파낸 부분의 절반 높이만 차지하고 나머지 위 부분은 깨진 돌과 통나무로 채운다. 5호 꾸르간 같은 경우는 돌을 넣지 않고 통나무만 가지고 채웠는데 무려 300개의 통나무를 썼다. 이렇게 되면 땅거죽과 같은 높이로 다 차게 되는데 그 위에 1차 흙으로 덮은 뒤 겉에는 돌들을 쌓아 대형 돌무지(積石)를 만든다. 돌무지는 지름이 36~46m로 널방에 비해 몇 배나 크게 해 위엄과 장엄을 보여 준다.

이런 무덤을 일반적으로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墳)이라고 한다. 신라에서 금관이 출토된 무덤은 모두 이런 돌무지덧널무덤이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아주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 이 문제는 이미 우코크의 빠지릭 문화를 볼 때 보았기 때문에 여기서는 줄인다. 다만 덧널(木槨)이란 표현에 대해 한 마디 덧붙이고 싶다. 일반적으로 무덤을 화려하게 꾸미기 위해 널(棺) 위에 다시 덧널(槨)을 만든다. 그러나 빠지릭 꾸르간에서는 덧널이라기보다는 통나무로 만든 널방(墓室)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고고학 용어에는 없지만 좀 정확하게 이름을 지어본다면 돌무지통나무널방무덤(積石木室墳) 정도가 될 것이다.

5기 무덤의 구조는 간추리면 다음과 같은 4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① 동서방향으로 긴네모꼴 통나무 널방(墓室)을 지었다. ② 주검은 통나무를 파낸 널(棺)에 넣어 널방의 남쪽에 놓았다. ③ 널방 바깥 북쪽에 말을 함께 묻었다. ④ 엷은 흙무지 위에 돌로 봉분을 만들었다(돌무지무덤, 積石墓).
▲ 5호 꾸르간 단면도(S. Redenko, "Frozen Tombs of Siberia") : 1. 베게 또는 발판; 2. 통나무 널; 3. 주검; 4. 손수레 막대; 5. 목제 발판; 6. 펠트 벽걸이; 7. 마차 막대; 8. 마차 바퀴; 9. 마차 끌개; 10. 말의 몸통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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