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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발굴팀과 만나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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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발굴팀과 만나 보니…

서길수 교수의 '알타이 답사기' 〈42〉

7월 13일(일), 6시에 눈을 떴으니 거의 9시간을 잔 셈이다. 이번 탐사에서 처음으로 마음 놓고 잔 것 같다. 기록하면서 보니 오늘이 일요일인데 알타이를 돌아다니는 동안 요일이라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7시가 되어도 아무도 기침하는 사람이 없는 것을 보니 모두들 피곤했던 모양이다. 7시에 대원들을 기상시키려고 했는데 비가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하여 걱정이 된다. 다행히 조금 있으니 비가 그치고 하늘이 맑게 개고, 기온도 13~14℃로 따뜻한 편이다. 8시 조금 넘어 아침밥을 다 먹었는데도 텐트를 말리고 다시 정리하느라 10시 15분이 되어서야 떠난다.

어제 우리가 잔 야영지는 큰 길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으면서도 조용하고 추야강으로 흘러드는 띄드뚜갬(Tydtygem)강 물이 있어 참 좋은 곳이다. 눈 녹은 추야강물처럼 탁한 물이 아니고 바로 쓸 수 있는 깨끗한 물이기 때문이다. 장소를 확인하기 위해 추야도로에 올라 이정표를 보니 842㎞/120㎞ 지점(1802m, N50°10'869", E88°07'432")이다.

추야도로를 조금 달리니 나지막한 고개를 넘으며 길가에 아주 크고 인상적인 오보가 서 있다. 삭막한 코쉬아가치를 떠난 뒤 점차 산과 들에 풀과 나무가 나타나며 경치가 달라지더니, 바로 여기서부터 꾸라이스텝이 시작되는 곳이다. 오보를 찍고 출발한 우리 차는 고개를 내려가자마자 바로 추야도로를 벗어나 왼쪽 비포장길로 들어선다. 추야강을 따라 한참 가더니 추야강 다리를 건너 서남쪽으로 계속 가는데 꾸바레프 교수도 몇 번씩 차에서 내려 길을 확인하곤 한다. 이 지역은 최근에야 발굴을 시작하는 곳이라 길이 익숙하지 않다고 한다. 11시 30분 발굴장(1609m. N50°10'475", E87°47'897")에 도착했다.
▲ 추야도로에서 발굴장으로 갈라지는 곳 ⓒ프레시안

발굴장은 '꼬올(Kool)' 이라는 지역인데 바로 악뚜루(Akturu)강과 꼬룸두(Korumdu)강이 만나는 합수머리에 형성된 그리 크지 않은 평원에 있었다. 악뚜루강은 4073m의 악뚜루산에 있는 유명한 악뚜루빙하가 녹아서 내린 물이 이룬 강이다. 발굴장에는 꾸바레프 교수와 같은 연구소 동료인 에브게누 보그다노프 교수와 이고르 슬류사렌꼬 교수가 학생 20명을 데리고 꾸르간을 발굴하고 있었다. 꾸르간은 대형의 것은 보이지 않았고 대부분이 너비 6~8m 이내의 것이고 3m가 안 되는 작은 것들도 꽤 많아 보였다.

현재 발굴하는 꾸르간은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뗏장을 파내고 돌덩이를 드러내는 일을 하고 있다. 학생들은 노보시비르스크 사범대학 역사학과 학생들인데, 러시아 학생들은 입학하고 1년이 지나면 의무적으로 발굴에 참여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야만 실습 학점이 나오고 장학금이 나온다. 장학금은 돈이 직접 나오는 것은 아니고 학비에서 감면해 주는 제도라고 한다. 학생 비율이 남녀 반반 정도였는데 학생들은 조금 지쳐 보였고 즐거워하는 표정은 찾을 수 없었다. 자발적으로 온 것도 아니었고 그동안의 야영 생활로 많이 지쳤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슬류사렌꼬 교수가 인터뷰를 통해서 발굴 진행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이 지역에만 전체 600기가 넘는 꾸르간이 있는데, 이미 지난 1달 동안 5기의 꾸르간을 발굴했고 지금은 여섯 번째 꾸르간을 발굴 중이라고 했다. 슬류사렌꼬 교수가 아주 진지하게 인터뷰를 하는 동안 나는 자꾸 윗도리를 벗은 모습이 걱정이 되는데 정작 당사자는 태연하다. 발굴 내내 그렇게 살았는지 아주 습관이 되어서인지 학생 앞이건 우리 같은 방문객 앞이건 아무런 거리낌 없이 당당 그 자체다. 아무리 당당해도 비디오카메라를 들이대고 인터뷰를 하면 옷을 입는 것이 보통인데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혹시 자신이 옷을 입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12시가 넘어 우리는 발굴팀의 야영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30명이라는 대규모 발굴단 막사는 마치 병영처럼 거대하다. 30명이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는 천막, GAZ-66 트럭을 비롯한 많은 장비들, 수많은 천막들, 학생들이 실습으로 오지 않고 비용을 들여 한다면 꿈도 꾸지 못하는 발굴이라고 한다. 그동안 출토된 유물들을 보여주는데, 현재까지 발굴된 5기 가운데 2기에서는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2기는 빠지릭 시기의 것인데 그리 많은 유물이 출토된 것은 아니라고 했다.

3개의 꾸르간에서 출토된 유물 가운데 특징적인 것은 청동기 시기의 단지, 청동 재갈, 장식 없는 청동거울, 산양이 장식된 청동거울, 알타이 사슴(maral) 이빨로 만든 장신구, 목재 말 장식(기원전 4세기 양식) 같은 것들이다. 사슴 이빨로 만든 장신구는 처녀들의 무릎에 차면 건강해진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유물 가운데 동물 모양의 손잡이가 달린 작은 구리거울은 그 생김새가 아름답고 표면에 거울을 담았던 주머니의 가죽이 붙어 있어 당시 어떤 짐승의 가죽을 썼는지 알 수 있기 때문에 아주 귀중한 발굴품이라고 한다.

나무로 만든 유물도 나왔는데 습기 때문에 쉽게 훼손되어 보여주지 못해 유감이라고 양해를 구한다. 슬류사렌꼬 교수가 현지 지도를 펴놓고 600기가 넘는 꾸르간의 분포와 규모, 시대를 설명해 주는데, 주로 청동기시대에서 뚜르크까지 여러 시대에 걸친 다양한 꾸르간이 있고, 대형 꾸르간도 상당 수 보인다.

이번 발굴에는 고고학자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함께 참여하고 있다. 발굴된 유물에서 동물의 생김새를 연구하기 위해 여름방학을 이곳에서 보내는 학자도 있고, 구석기를 전공하는 학자도 있다. 구석기를 전공하는 야로슬라프 꾸즈민 교수는 한국에 두 번이나 갔다 왔다며 배기동, 이융조, 임효재 같은 한국 학자들의 이름을 줄줄이 열거한다. 발굴 현장에 있는 사람치고는 너무 깔끔하고 현장을 이해하는 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해서 거부감이 들 정도였다.

발굴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과 식당 천막 안의 긴 탁자에 둘러앉아 낮밥을 함께 먹었다. 꽤 오랫동안 사람을 기다리게 하더니 포도주, 팬케익, 감자, 소고기 통조림 국, 빵, 쨈, 비스킷, 호박 통조림 같은 여러 가지 음식을 내어놓았다. 우리를 위해서 준비했던지 특별 메뉴로 기대하지 않았던 볶음밥까지 맛볼 수 있었다. 뜻하지 않은 환대를 받고 우리는 미리 준비한 것이 없어 라면 1박스를 내놓은 정도로 감사의 표시를 했다.
▲ (좌)발굴장으로 가는 길 (우)마치 병영 같은 발굴단 야영장 ⓒ프레시안

▲ (좌)꾸르간을 발굴하고 있는 학생들 (우) 발굴 책임자의 인터뷰 ⓒ프레시안

▲ (좌)발굴에 대한 설명 (우)대형 식당에서 낮밥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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