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와 경찰은 4일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철두철미한 작전에 따라 10시간 만에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미군기지 확장이전 지역 안에 있는 대추리 대추분교에 대한 강제퇴거(행정대집행) 작업과 기지이전 터에 대한 철조망 설치 작업을 모두 마쳤다.
400여 명 연행 … 100여 명 부상자 발생
이날 행정대집행으로 경찰은 대추분교에서 시위 중이던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평택 범대위)'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과 학생, 노동자, 주민 등 400여 명을 연행했으며, 강제진압 과정에서 100여 명의 부상자(평택 범대위 집계)가 속출했다.
경찰은 이날 오전 4시 30분께 전의경 115개 중대와 경찰관 1400여 명 등 1만3000여 명의 병력을 대추분교 진입로인 원정삼거리와 본정 농협, K-6(캠프 험프리스) 미군기지 등에 배치했다.
이 가운데 원정삼거리에 집결한 경찰 34개 중대는 시위대와의 격렬한 싸움 끝에 6시50분께 대추분교에 도착해서 학교를 포위한 뒤 오전 9시 20분께 물대포를 쏘며 학교로 진입해 운동장에 있던 주민 등 100여 명을 연행했다.
이어 경찰은 오후 2시 30분께 대추분교 본관 2층에서 돌과 화분 등을 던지며 대치하던 시위대 300여 명 전원을 2차로 연행함으로써 10시간 만에 행정대집행을 사실상 마무리했다.
이날 대추분교에 대한 경찰의 행정대집행 과정에서 경찰 117명(중상 18명)과 시위대 70여 명이 다친 것으로 경찰은 집계했다.
인권위의 '인권유린' 감시 활동에도 아랑곳않는 경찰
이날 경찰의 대추분교 행정대집행 현장에는 13명의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원들이 '인권 지킴이' 활동을 위해 찾아왔다. 이들은 하늘색 조끼를 입고 대추분교 곳곳을 다니며 경찰의 강제진압 과정에서 일어날지 모를 '인권유린' 현장을 감시했다.
인권위의 '인권 지킴이' 활동은 자료 수집에 일차적인 목적을 둔 것이며 이후 인권위 내부 회의를 거쳐 권고 등의 조치를 취하기 위한 활동이긴 하지만, 감시를 통해 현장에서 벌어지는 인권유린을 제어하기 위한 의미도 있었다. 그러나 경찰 중 그 누구도 인권위 조사원들의 경고를 귀담아 듣지 않았고, 오히려 조사원에게 대들기도 해 이들의 역할은 유명무실한 것으로 그쳤다.
오히려 경찰은 '인권위 조사원들이 지켜보고 있으므로 괜찮다'는 핑계를 대어 오후 4시 대추분교 2층 시위대의 진압 현장에 기자들이 접근하는 것을 통제해 반발을 샀다. 한 기자는 "기자들을 내몰고 무슨 악한 짓을 하려고 그러느냐"며 "떳떳하다면 현장을 공개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이날 '인권 지킴이' 활동을 맡은 인권위의 최재경 팀장은 "경찰이 조금이라도 우리의 감시활동을 의식했다면 다행이지만, 현재 우리로서는 (우리의 활동 성과를) 평가하기 어렵다"고 말해 답답함을 표현했다.
또 그는 "앞으로 어떤 조치를 내릴 지는 인권위 내에서 보고와 회의를 거쳐야 알 수 있다"면서도 "그간 '인권 지킴이' 활동을 통해 지켜본 다른 시위에 비해 부상자도 많이 나오는 등 훨씬 격한 수준인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언론의 이목이 쏠린 대추분교 행정대집행, 그러나…
경찰의 인권에 대한 무감각은 언론의 생중계 앞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날 국방부와 경찰의 행정대집행 소식에 대추분교에는 전날 밤부터 국내 대다수 언론이 찾아와 주민들과 함께 쪽잠을 자며 밤을 지샜고, 이날 대추리에서 벌어지는 행정 대집행을 실시간으로 중계했다.
그럼에도 경찰은 카메라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시위대를 과격하게 진압하는 모습을 보였다. 오히려 몇몇 기자들이 경찰이 휘두르는 방패와 곤봉에 머리나 눈 등을 맞아 부상을 입기도 했다.
또 일각에서는 진압과정에서 경찰이 여성 시위자를 연행하면서 성추행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여성 경관이 아닌 남성 경관이 여성 시위대를 진압, 연행하는 과정이 목격되기도 했다.
철조망 설치 완료…이날부터 경찰 24시간 경계근무
국방부도 이날 오전 7시 30분께부터 병력 2800여 명(보병 2000여 명, 공병 600여 명, 헌병 150여 명, 의무병 60여 명 등)과 용역직원 700여 명을 굴착기 등 중장비와 함께 투입해, 주민들의 영농행위를 막기 위한 철조망 설치 작업을 벌였다.
국방부가 투입한 군 병력은 경찰 50여 개 중대의 호위를 받으며 본정리 본정농협 앞길과 도두리 배밭길을 통해 도두리와 대추리 등 기지이전 지역 농지에 진입해, UH-60 헬기가 공중에서 투하한 철조망을 설치했다.
국방부는 이날 오후 3시 50분 현재 이중철조망을 포함해 19.1㎞ 구간의 철조망 설치 작업을 완료했으며, 오후 6∼7시 사이에 29㎞ 구간에 대한 설치가 완료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동시에 국방부는 철조망을 친 지역을 중심으로 주한미군 기지 이전 예정부지 285만 평을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설정했다고 밝혔으며, 경찰은 이날 미군기지 확장 이전지역에 쳐진 철조망 주변에 전의경 2500여 명을 배치해 24시간 경계근무에 들어갔다.
안정훈 국방부 홍보관리관은 이날 오후 "국방부가 오늘 평택시장에게 군사시설보호구역 지정을 통보해 이 지역을 보호구역으로 설정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이 지역은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마을의 정해진 통로 외에는 일반인이 출입할 수 없게 됐고, 이 지역의 건물 신증축도 군 부대와의 협의를 거쳐야 가능하게 됐다.
"국방장관 해임 건의안 올리는 방안 검토 중"
이날 대추분교를 찾은 임종인 열린우리당 의원과 천영세 민주노동당 의원은 모든 상황이 종료된 이후 대추분교 운동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천영세 의원은 "민주노동당은 그간 미군기지 이전 계획에 대한 문제제기를 지속해왔다"면서 "고작 이틀 간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고 해놓고, 이날 군병력과 경찰, 용역 등을 동원해 대추리를 침탈하는 것은 묵과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천 의원은 "민주노동당, 그리고 뜻을 같이 하는 의원들과 같이 구속자 전원 석방과 100명이 넘는 부상자에 대한 책임 있는 조치를 요구하고 현 정부에 대해 책임을 묻기 위하여 조만간 한명숙 국무총리를 면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천의원은 "국방장관 해임 건의안을 올리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며 "미군기지 확장 이전 문제는 물리력으로 해결할 것이 아니라 각계 원로 등의 의견을 수렴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협의기구를 만들어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임종인 의원은 "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왜 이리 소모적인 싸움을 벌이고, 왜 이 땅을 미군에게 주어야 하는지 정말 슬프다"면서 "미군도 줄어들고, 럼스펠트 국방장관도 더 줄인다고 발표하는 마당에 이렇게 넓은 땅을 줄 필요 없다"고 주장했다.
임 의원은 "오늘의 싸움은 미국의 마름 격인 우리 정부가 지주인 미국의 이익을 위해 소작인에 해당하는 주민과 싸움을 벌인 것"이라며 "정부는 미국과 재협상을 벌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 의원은 "주민들도 모든 땅이 다 안 된다는 것은 아닐 것"이라며 "손과 발로 만든 땅이니만큼 283만 평 전부가 아닌 반절 정도만 제공하면 우리 정부도 체면을 세우고 주민의 생존권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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