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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배운대로 행하려 할 뿐"

[정찬주 연재소설] '하늘의 도' 제2장 살아남은 자의 노래〈10〉

양팽손은 스승 송흠만 동암에 머물게 하고, 암자가 비좁은 탓으로 나머지 일행은 쌍봉사 요사채로 안내했다. 물론 여인도 함께 쌍봉사로 내려갔다. 양팽손은 혜공의 허락을 받아 일행에게 방을 안내해주고 나서는 해탈문을 나섰다.
그런데 그때 부끄러움을 탄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암 나으리를 뵙게 해주시어 무어라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여인은 양팽손에게 용기를 내어 고마움을 표시했다. 캄캄한 해탈문 밖에서 사내를 기다리다가 말을 붙인다는 것은 여인으로서 진심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그린 초상화를 두고 모두들 생전의 정암과 다를 바 없다고 하니 다행이오."
양팽손은 조금 놀랐으나 기분은 좋았다. 아마도 여인은 자신의 신분이 선비들 사이에서 알려지는 것이 부담스러워 때를 엿보아 말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용서하십시오. 이렇게 부끄러움을 무릅쓰고라도 감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더구나 정암 대감님이 나으리 얘기를 들려준 인연이 있습니다."
"내 얘기를 정암에게 들었다니 믿어지지 않는구려."
"그렇습니다. 용인에서의 일입니다. 그때 나으리 얘기를 들었습니다."
"정암을 용인에서 만났단 말이오."
"정암 대감님을 처음 뵌 곳은 평안도 희천 땅이었으나 그때의 저는 입이 있어도 벙어리나 다름 없었고 눈이 있어 보아도 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정암 대감님을 실제로 뵌 곳은 용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암과 그런 인연이 있었다니 세상이 좁구려. 처자의 이름은 무엇이오."
"한훤당(김굉필의 호) 어른께서 지어주셨습니다만."
"한훤당이라면.... 정암의 스승을 말씀하시는 것이오."
"그렇습니다."
양팽손은 한훤당이란 말에 동암으로 갈 생각을 접었다. 마침 비가 갠 동암 쪽의 하늘에 달이 뜨고 있었으므로 해탈문 앞의 연못가를 산책하기에 그만이었다.
"그때의 일이 궁금해지는구려."
"귀 담아 들으실 만한 얘기는 아니옵니다만."
"정암을 희천 땅에서 보았다 하고 한훤당 어른이 이름을 지어 주었다고 하니 어찌 궁금하지 않겠소."
양팽손이 강하게 요구하자, 여인은 할 수 없이 지난 얘기를 이슬비 내리듯 가만가만 털어놓았다.
▲ 철감선사탑 올라가는 길. ⓒ프레시안

"저의 고향은 평안도 희천(熙川)입니다. 저의 이름은 원래는 없었으나 한훤당 어른께서 희천 땅으로 유배를 오시어 저를 수양딸로 삼고 초설(初雪)이란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처음에는 김굉필이 서설(瑞雪)이라고 지었다가 여인의 아비에게 초설로 하자고 고쳤다는데, 여인의 아비가 "나으리, 서설이 좋지 않겠습니까." 하고 서설을 고집했지만 김굉필은 "첫눈이 와서 나에게 좋은 일이 생기겠지 하고 무심코 서설이라고 지은 이름이니 거둬들이겠네. 한 사람의 이름을 내 기분대로 지을 수야 없지. 그러니 초설이라고 하는 것이 좋겠어. 첫눈처럼 깨끗한 마음으로 지조를 지키며 세상을 살아가라는 내 당부가 담긴 것이니 초설이라고 하게나." 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역에서 참리(站吏)로 일하던 여인의 아비가 희천의 김굉필을 자주 찾아갔던 것은 희천 부근에 있는 장동(長洞)역의 조원강(趙元綱) 찰방이 수시로 심부름을 보냈기 때문이었다. 조원강은 아들인 조광조를 김굉필에게 맡겨 공부시키기 위해 참리 편에 곡물이나 조정에 진상하고 남은 꿩이나 약초를 보내곤 했고, 참리 또한 영특한 장녀를 김굉필에게 보내어 글이라도 깨치게 하고 싶어 하던 중 마침 김굉필이 시중 들 동자를 구하고 있었으므로 자기 딸을 소개했던 것이다.
그때 초설의 나이는 15세였고, 조광조는 17세였다. 초설은 철없이 조광조 등과 함께 공부하기를 원했으나 김굉필은 '7세가 되면 사내아이와 계집아이가 자리를 같이 하지 않게 하며, 또 함께 먹지 않게 한다(七年不同席不共食)'라고 말하며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초설은 강의가 없는 날 아주 잠깐 불려가 <소학>을 배우거나 귀동냥으로 한문을 조금씩 깨쳤다.
제자들이 모여 강의를 듣는 날에는 적소(謫所)의 방에 얼씬도 할 수 없었다. 김굉필이 제자들이 와 있을 때는 적소를 벗어나 있으라고 엄명을 해놓았던 것이다. 그러니 제자들은 빗자루를 들고 있거나 호미로 풀을 뽑는 초설을 청소하는 관노쯤으로 알고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초설 또한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김굉필이 희천에서 순천으로 이배되기까지 2년이란 세월이 흘렀는데도 초설은 김굉필의 제자들을 대부분 알지 못했다.
다만, 단 한 사람 조광조만은 예외였다. 그날 조광조가 초설이 저지른 실수를 스승인 김굉필 앞에서 감싸주었기 때문이었다. 그 무렵 김굉필은 또 다시 조원강이 보내준 꿩 한 마리를 놓고 매우 들떠 있었다. 조원강은 김굉필의 건강을 염려하여 보냈건만 김굉필의 생각은 다른 데 있었다. 마침 강의가 없는 날이어서 초설은 적거 안팎을 쓸고 닦고 있는 중이었다.

김굉필은 마당가로 나와 조원강이 보내준 꿩을 잡아 털을 뽑고 내장을 꺼내며 물었다.
"초설아, 꿩이 우리 몸에 어디에 좋은지 말해 보아라."
"이곳 희천에서는 아낙이 출산 후에 허리나 배가 아플 때 먹사옵니다."
"옛 문헌을 보면 간을 좋게 하여 눈을 밝게 하고, 설사를 멎게 하는가 하면 치질이나 종기를 없앤다고 나와 있다. 허나 내가 오늘 꿩을 받고 좋아하는 것은 그보다 다른 까닭이 있어서이다."
"나으리, 꿩이 우리 몸 어디에 좋습니까."
"기침이나 목감기에 특효가 있느니라."
"누가 감기에 걸린 분이 있사옵니까."
김굉필은 칼질한 꿩을 우물물에 정성스럽게 씻은 후 말했다.
"서울에 어머니가 계시느니라. 당신께서 기침이 심해졌다는 소식을 엊그제 들었는데 마침 오늘 꿩을 선물 받았으니 어찌 기분이 좋지 않겠느냐."
김굉필이 어느 날보다 들떠 있는 것은 어머니에게 효도할 수 있다는 기쁨이 컸기 때문이었다. 도학의 대학자라고 명성을 날리는 김굉필도 어머니 앞에서는 무언가를 자랑하고 싶어 하는 어린 아이가 되고 마는 이치였다. 초설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져 말했다.
"나으리, <소학>에 나오는 효(孝)란 말이 생각나옵니다."
"어디 한번 외워 보거라."
초설은 마루를 닦던 걸레를 놓고 바른 자세로 서서 외웠다.
-<예기(禮記)>에, 효자로서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이 깊은 사람은 반드시 온화한 기운이 있고, 온화한 기운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즐거워하는 빛이 있으며, 즐거워하는 빛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온순한 모습이 있다. 효자는 부모 모시기를 옥(玉)을 잡은 듯하며 가득한 그릇을 받든 듯하여, 정성스럽게 하고 조심조심하여 이기지 못할 것 같이 하고 장차 떨어뜨려 잃을 것 같이 한다.
"나이 30이 될 때까지 사서삼경을 밀쳐두고 오로지 <소학>만 읽은 나를 두고 세상 사람들이 '소학동자'라 불렀거늘 지금 네가 외우는 모습을 보니 나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할 게 없구나."
45세에 희천으로 유배 온 김굉필에게 있어서 <소학>은 늘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소의경전이나 다름없었다. 그러한 그에게 이제 겨우 글을 깨친 초설이 <소학>의 한 구절을 한 자도 틀리지 않고 능숙하게 외우니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네 아비가 장동역 참리라 했지. 그 아비에 그 딸이야."
"과찬이옵니다."
"초설이는 앞으로 무엇을 할 작정이냐."
"중인의 신분인 데다 여자로 태어났으니 무엇을 하겠사옵니까. 다만 한 가지는 할 수 있을 것 같사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큰 재산을 마련하여 공부하는 선비들의 뒷바라지를 하는 것이 꿈이옵니다."
"허허. 기특하도다. 무엇으로 재산을 마련한단 말이냐."
"서울로 들어가는 지역에 여관을 운영하면 재산이 금세 불어날 것 같사옵니다."
"네 뜻이 기특하니 내 힘이 닿는 대로 도와주겠느니라. 역 주변에는 이미 여관이 들어서 있을 터이니 선비들 출입이 잦은 용인 길목 같은 곳이 좋을 것이다."
점심을 한 후에도 김굉필은 초설이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식곤증이 왔는지 하품을 하며 말했다.
"햇볕에 이러 저리 잘 말려야 하느니라. 개나 고양이도 조심하고. 알겠느냐."
"나으리, 걱정하지 마셔요."
그런데 초설이도 김굉필이 낮잠을 즐기는 동안 햇볕에 쪼그리고 앉자 졸아버렸다. 눈을 뜨고 두리번거렸을 때는 도둑고양이가 꿩고기를 물고 달아나버린 후였다. 초설이는 당황하여 적소를 한 바퀴 돌고, 또 적소 밖으로 나가 허둥지둥 이 곳 저 곳을 뒤져보았지만 이미 도둑고양이는 사라지고 없었다. 초설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마당에 엎드린 채 사실대로 고백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으리, 나으리."
"무슨 화급한 일이라도 생긴 것이냐."
"고양이가..."
"고양이가 어쨌다는 것이냐."
"꿩을 물고 달아나버렸사옵니다."
"뭣이라고 했느냐."
마침 제자들도 오후 강론 시간에 때맞춰 돌아와 모두들 놀랐다. 이처럼 김굉필이 화가 나 언성을 높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초설이를 나무라는 김굉필의 모습은 평소와 너무 달랐다.
"내가 뭐라고 일렀더냐. 고양이나 개를 잘 지키라고 하지 않았더냐."
"나으리, 벌을 주셔요."
"무슨 벌을 받고 싶으냐."
"잘못이 크오니 나으리께서 벌하는 대로 달게 받겠사옵니다."
"알았다. 저리 물러가 있거라."
그러나 초설은 물러가지 않고 벌을 받듯 마당에 무릎을 꿇고만 있었다. 김굉필은 적소 밖에 사는 양인들이 몰려와 마당으로 들어서는 것을 보고는 화를 억눌렀다. 제자들은 분기탱천한 스승의 모습을 보고는 누구 하나 말을 붙이지 못하고 있었다. 김굉필이 조금이나마 화를 누그러뜨린 듯하자 조광조가 나서서 한 마디 했을 뿐이었다.
"소자(小子)가 한 마디 해도 되겠습니까."
"무엇인가."
조광조는 두려워서 떨고 있는 초설이와 의아해 하는 김굉필을 번갈아 살펴보고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소자가 적이 의혹되는 것이 있어 말씀드리고자 하옵니다."
"어서 말해 보거라."
"스승님께서 부모를 봉양하는 정성은 비록 간절하오나 군자는 말과 기색을 잘 살펴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옵니다. 하온데....."
조광조는 매우 겸손하게 말하고 있었으나 그의 조언은 이미 김굉필의 마음에 비수처럼 꽂이고 있었다. 명분이 무엇이라 하더라도 군자는 고성을 지르거나 붉으락푸르락 안색을 바꿔서는 소인배나 다름없다는 조광조의 주장이었다.
"나도 바로 뉘우쳤는데 네 말이 또한 내 마음과 같으니 부끄럽구나."
김굉필은 조광조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리고는 초설이를 불러 세웠다.
"초설이는 일어나라. 초설이는 잘못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 나를 되돌아보게 한 공이 크다. 또한 광조는 나를 부끄럽게 했으니 지금 이 순간만은 너희들이 나의 스승이다. 내가 너희들의 스승이 될 수 없느니라."
초설이는 더욱 고개를 들지 못했다. 고개를 들지 못했을 뿐더러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어 자신을 감싸는 듯한 발언을 한 조광조를 감히 바로 볼 수 없었다.
▲ 쌍봉사 당간지주. ⓒ프레시안
'그때 희천 적소에서는 정암의 얼굴을 바로 보지 못했으니 만나지 못한 것이나 다름없었다는 말이로군.'
양팽손은 초설이의 얘기를 다 듣고 나서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초설이 왜 용인으로 갔으며, 조광조를 왜 잊지 못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정암을 잊지 못하여 쌍봉사로 내려온 그대를 이해하겠소."
"용인으로 가서 조광조를 바로 만나보았소."
"그러지 아니하였습니다. 행여 공부에 방해될까 정암 대감님 댁 부근에는 단 한 발짝도 디뎌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럼, 무얼 하고 지냈소."
"부친의 도움을 받아 허름한 민가를 한 채 샀고, 한 달이 지난 뒤 여관을 개업했습니다. 지금도 여관은 번창하여 저 없이도 잘 되고 있습니다. 나으리께서도 용인에 오시면 제 집으로 모시겠습니다."
"고맙소."
연못에도 달이 떠 있었다. 초설은 연못에 뜬 달을 보며 말했다.
"정암 대감님은 저에게 두 가지 은혜를 주신 분입니다. 희천에서는 철없는 저를 감싸주셨고, 용인에서는 저의 마음을 받아 주신 분이십니다."
"대단하시오. 그 인연으로 도학자들을 알게 모르게 후원해 왔다니 말이오."
"나으리, 부끄럽습니다. 제가 한 일은 지나가는 가랑비처럼 미미합니다."
그러나 초설이 용인에서 사림들에게 베푼 일화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녀의 여관은 시도 때도 없이 기호지방의 사림 개혁 세력들이 모이는 안가(安家) 구실을 했던 것이다. 첩보와 순발력이 다소 떨어지는 호남 사림만 모르고 있을 뿐이었다.
양팽손은 밤공기에 어깨가 축축해지고 차가워짐을 느꼈다. 문득 동암에 스승인 송흠이 혼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양팽손은 초설이 해탈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는 동암으로 올라갔다.

다음 날.
송흠 일행은 조광조의 시신이 묻혀 있던 중조산 골짜기로 올라갔다. 그곳에는 이미 혜공과 초설이 먼저 가 초가사당 제단에 제물을 진설하고 있는 중이었다. 제단 위에 조광조의 초상화만 안치하면 말 그대로 초가사당은 유영각(遺影閣)이 될 터였다.
쌍봉사에서 초가사당까지는 반 마장 정도 떨어진 의외로 지척의 거리에 있었다. 쌍봉사 앞을 흐르는 개울물은 중조산의 여러 계곡 물줄기들이 합수되어 흐르는데, 초가사당이 있는 계곡 물줄기가 가장 길고 그윽했다. 그래서 양인들은 가뭄이 들면 그곳의 용박골로 들어가 기우제를 지내곤 했다.
산길에는 풀이 웃자란 데다 빗방울을 머금고 있어서 바지자락을 금세 적셨다. 산길에 익숙한 양팽손이 앞섰고, 초행길인 일행은 뒤따라 걸었다. 양팽손은 중조산 골짜기로 가는 산길을 걸을 때마다 감회가 남달랐다. 조광조가 사사 당하자 자신이 달려가 시신을 염해주었으며, 시신을 입관하여 행여 시신이 정적들의 지시로 훼손될까 두려워 능주에서도 가장 오지인 중조산 골짜기에 숨겨 묻었던 것이다.
양팽손이 비통하고 황망한 가운데서도 중조산 골짜기를 선택한 것은 조광조와 쌍봉사의 인연이 있어서였다. 조광조가 혜공의 억울한 누명을 벗겨준 적이 있어 조광조의 가묘를 관리하는 데 혜공의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양팽손은 조광조의 시신이 용인으로 귀장된 후에도 혜공의 도움을 받았다. 가묘를 썼던 자리에다 초가사당을 짓는데 혜공이 물심양면으로 울력을 해주었던 것이다.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다. 구름이 걷히고 한 줄기의 햇살 기둥이 골짜기를 비쳤다. 간밤의 잠자리가 불편했는지 송흠 일행의 눈두덩이 모두 부어 있었다. 박상은 조광조가 유배 오면서 광주를 지나칠 때의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무너지는 듯했다.
"눌재 형님, 무얼 그리 생각에 잠겨 있습니까."
"자꾸 정암 생각이 나는구먼."
"그래도 눌재 형님은 오가는 정암을 다 보았지 않습니까."
"그래,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지."
실제로 박상은, 조광조가 유배 올 때나 시신이 용인으로 귀장할 때나 모두 본 유일한 인물이었다. 조광조를 실은 소달구지가 광주를 오갈 때마다 박상은 거리로 달려 나와 눈물을 뿌렸는데, 내려올 때는 포승줄에 묶여 나졸의 감시를 받고 있었고, 올라갈 때는 입관된 시신이었던 것이다. 박상이 조용히 말했다.
"이보시게. 내 시 한 수 들어보시게."

무등산 앞 기슭에서 만났었는데
지금은 소달구지에 실려 총총히 고향으로 가는구려
훗날 저승에서 만나더라도
세상의 시비 뒤섞는 일은 말하지 맙시다.
無等山前曾把手
牛車草草故鄕歸
他年地下相逢處
莫說人間是非
▲ 요사채 담장. ⓒ프레시안

박상이 처연하게 자신의 심정을 읊조리자, 양팽손이 기다렸다는 듯이 한 마디 했다.
"귀장할 때 몸이 불편하여 용인을 따라가지 못한 것이 지금도 미안할 뿐입니다."
"지하의 정암이 학포의 마음을 다 이해하지 않겠소. 생전의 정암은 그렇다 치더라도 사후의 정암은 학포가 곁에 있었으니 더욱 빛이 났던 것이오. 여러분들 안 그렇습니까."
박상이 뒤돌아보며 동의를 구하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송흠이 말했다.
"생전의 정암 주변엔 눈도장이라도 찍고 싶은 사람들로 붐비었다는 것을 들어 알고 있소. 정암에게 큰 권력이 있었기 때문이오. 그런데 지금 이 자리에는 고작 몇 사람이 모여 정암을 추모하고 있을 뿐이오. 이것이 세상의 차가운 인심이오. 그래서 정암에 대한 학포의 우정이 소중한 것이오. 가히 지란지교(芝蘭之交)라 할 만하지 않습니까."
"스승님, 저는 배운 대로 행하려고 할 뿐입니다."
"아닐세. 아는 것보다 행하는 것이 더 어렵다고 했네. 정암은 자네가 어떤 사람인지 생전에 알았을 것이네."
사당에 정암의 초상화를 거는 의식은 혜공이 집전하기로 했다. 유가의 예를 따르고 싶어도 명분이 약하고 사례가 드물었다. 사실 영정을 안치하는 의식은 본래의 상례(喪禮)에는 없는 일이었다.
혜공은 진설을 마치고 염불하며 송흠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혜공은 모두가 사당에 들어서자 바로 영정을 걸었다. 그리고는 맨 먼저 촛불을 켠 후, 혜공 자신이 먼저 절을 올리고 일행에게도 절을 요구했다.
간단한 의식이 끝나자 일행은 모두 사당 마루바닥에 앉았고 혜공은 죽비를 치고 입정(入定)에 들었다. 입정이란 정신을 집중하여 맑게 하는 의식이었다. 혜공은 입정의 의미를 간단하게 설명했다.
"정암의 영정을 봉안하였으므로 잠시 입정을 하는 것입니다. 정암의 일점영명(一點靈明)이 어디에 있는지 그것을 관(觀)하기를 바랍니다."
침묵이 잠시 흐른 후, 혜공은 죽비를 세 번 치더니 향을 꽂고 불을 붙였다. 이윽고 혜공이 입을 열어 게송을 읊조리기 시작했다.
"이 한 가지 향은 삼세 모든 부처님의 법인(法印)이며, 역대 모든 조사의 안목이며, 오늘 영가의 본래 모습이며, 일체 중생들의 목숨이라. 특별히 오늘 영가가 깨달아 가는 길을 장엄하기 위하여 향로에 향을 꽂노라."
일행은 혜공의 깊이를 알 수 없는 게송을 들으며 숙연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혜공의 법문은 선비들에게 알쏭달쏭할 뿐이었다. 마침내 혜공의 설법이 끝나고 나서 가장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성격이 활달한 최산두였다.
"학포, 사당을 어찌 운영할 셈이오."
"빈 사당으로 남겨 두느니 교생들이 모여 공부한 바를 토론하는 서원으로 운영할 생각입니다."
"좋은 생각이오. 사당이 됐건 서원이 됐건 간에 사람이 드나들지 않으면 폐가가 돼버린다니까요."
양팽손도 그 점을 염려하여 현재의 사당은 유영각에 머물러 있지만 앞으로는 조광조 위패를 배향하는 서원으로 운영하고 싶었다. 실제로 양팽손의 계획은 잘 맞아떨어졌다. 사당은 훗날 능주 죽수서원의 전신이 되었고, 사당 자리는 민가가 하나 둘 더 들어서면서 조대감골 혹은 서원터라고 불리게 되었던 것이다.<계속>.

*[정찬주 연재소설] "하늘의 도"는 화순군 홈페이지와 동시에 연재됩니다.
☞ 화순군 홈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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