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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문제 강경대응' 통해 한국은 무엇을 얻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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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독도문제 강경대응' 통해 한국은 무엇을 얻을까?

<분석> 대통령 4.25 특별담화의 전략적 함정

  한반도 식민지배의 역사를 가진 일본의 도전은 국민들의 지지에 목마른 노무현 대통령에게 언제나 단비 같은 역할을 한다. 노 대통령은 그같은 정치적 '호재'를 십분 활용해 왔고, 독도 문제에 대한 '정면대응'을 천명한 4.25 특별담화 역시 국내정치적 상승효과를 노렸다는 걸 모르는 이는 없다.
 
  지지도 일반을 높이는 동시에 얼마 남지않은 지방선거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한 포석이라는 것은 너무도 쉽게 읽힌다. 세인의 관심을 끌었던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일에 특별담화를 발표하는 '택일 솜씨'도 예전 그대로다.
 
  그렇지만 노 대통령이 국내정치에 이용할 목적으로 일본의 독도 수역 해저 탐사를 유도한 것은 아니었고, 일본측 '도발'의 정도가 심각했으며, 정부의 단호한 대응이 요구되는 상황이었다는 점 등을 감안할 때 노 대통령의 특별담화 자체를 '정략적'이었다고 덮어놓고 비판할 수는 없다.
 
  이때 비판의 기준이 되는 것은 결국 특별담화의 내용이다. 노 대통령과 그의 외교안보팀이 이번 해저 탐사 사태를 계기로 일본에 대한 대응 전략을 치밀하게 재검토한 끝에 나온 게 이번 담화라면 정치인인 대통령이 그것을 국내정치에 어느 정도 이용한다한들 크게 문제될 건 없다. 반대로 국내정치적인 고려가 지나치게 앞선 나머지 외교에 있어서의 전략적 사고가 결여된 담화문으로 판명난다면 '국내정치용'에 불과하다는 비판은 결과적으로 설득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강경대응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가 분명히 드러나야 한다는 말이다.
 
  분리에서 통합으로
 
  4.25 대일(對日) 특별담화의 핵심은 영토(독도) 문제와 과거사 문제의 통합 대응이다. 노 대통령은 "독도 문제에 대한 대응방침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며 "독도 문제를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더불어 한일 양국의 과거사 청산과 역사인식, 자주독립의 역사와 주권수호 차원에서 정면으로 다뤄나가겠다"고 밝혔다.
 
  영토와 과거사 문제를 통합할 것인지 분리할 것인지는 그간 우리 정부의 대일외교에서 중요한 화두였다. 참여정부는 출범 이후 기존의 분리 대응 원칙을 견지해 오다가 지난해 3월 통합 기조로의 전환을 꾀했다. 일본 시마네현의 독도 조례안이 통과되고 극우 단체인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이 집필한 '왜곡 교과서'의 검정 통과가 확실시되던 때였다.
 
  정동영 당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통일부 장관)은 2005년 3월 17일 발표한 '신 대일(對日) 독트린'에서 독도 문제는 "단순한 영유권 문제가 아니라 해방의 역사를 부정하고 과거 침탈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이라며 영토-과거사의 통합 대응 원칙을 천명했다.
 
  이어 노 대통령도 3월 23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한일관계 관련 국민에게 드리는 글'이라는 서신을 게재해 "각박한 외교전쟁"도 불사하겠다며 시마네현이 선포한 '다케시마의 날'에 대해 "지난날의 침략을 정당화하고 대한민국의 광복을 부인하는 행위"라고 강도 높게 비판하며 '통합 대응 원칙'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러나 당시의 '독트린'과 서신은 일본 정부에 우리의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의도였을 뿐 구체적인 정책에 있어서의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았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실제로 대일 정책을 바꿀 의도가 없었기도 했거니와, 기존의 분리 대응 원칙을 변경시키는 것에 대한 국내외적 우려가 높았고, 변화를 실현시킬 정책 도구도 변변찮았다는 이유 등으로 사실상 '분리 대응' 기조가 이어졌던 것이다.
 
  노 대통령 본인도 '싸움' '지구전' '비장한 각오' 등 특유의 강한 표현이 등장했던 서신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자 "경제협력까지 중단한다는 건 아니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한 걸 보면 실제 기조 변화의 의지가 뚜렷하지 않았거나, 우려와 비판을 받아들여 한발 물러선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4.25 특별담화는 달랐다.
 
  노 대통령은 "독도는 그냥 우리 땅이 아니라 특별한 역사적 의미를 가진 우리 땅"이라고 운을 뗀 뒤 독도 영유권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 지난해보다 한층 강화된 논리로 이 문제를 과거사 문제와 통합하겠다는 점을 확고히 했다.
 
  이는 "독도는 완전한 주권회복의 상징이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 역사교과서 문제와 더불어 과거 역사에 대한 일본의 인식, 그리고 미래의 한일관계와 동아시아의 평화에 대한 일본의 의지를 가늠하는 시금석이다"고 한 데에서도 확인된다.
 
  영토 문제와 과거사 문제는 대통령의 진두지휘 하에 이렇게 강력히 결합하게 된 것이다.
 
  좁아지는 일본 내 양심세력의 입지
 
  그러나 구구절절 '옳은 말씀'임에도 불구하고 그저 박수만 치고 넘어갈 수 없는 것은 '영토-과거사 통합 대응'에 도사리고 있는 함정들 때문이다.
 
  우선 지적할 수 있는 문제는 과거사 문제, 교과서 문제 등과 관련해 그동안 견제ㆍ비판의 역할을 해 왔던 일본내 양심적 시민세력의 입지가 극도로 축소되는 반면 보수우파의 위상이 강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일본 내 양심세력들은 선조들의 제국주의 침략과 그 과정에서 벌어진 오욕을 역사를 미화한 교과서를 채택하지 말아야 한다는 운동을 폈고 결국 승리했다. 사회 전체의 우경화 분위기 속에서도 그같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이유는 이들의 활동이 평화와 인권이라는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에 호소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극우적 교과서의 채택률을 1% 이하로 묶어 놓았던 데에는 바로 이들의 활동이 원동력이었다.
 
  그들의 활동에는 한국과 중국 정부의 측면 지원과 동북아 시민사회의 연대활동도 음으로 양으로 큰 힘이 되었는데, 반대로 우리 정부가 일본 정부에 대해 과거사 문제와 관련한 항의를 할 때에도 일본 내 양심세력의 그같은 움직임은 커다란 논리적 근거를 제공했다.
 
  그러나 과거사 문제에 영토 문제가 결합된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영토 문제는 하나의 통합된 행위자로서의 국가 간의 문제라는 특성을 갖고 있어서 아무리 양심세력이라 하더라도 내부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오히려 한국의 강경대응을 빌미로 일본내 극우세력의 위상이 강화될 것이 분명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한일관계 전문가는 "일본 내의 합리적인 세력들은 과거에도 한국과 중국이 영토 문제와 과거사 문제를 분리해서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었다"며 "영토와 역사를 엮으면 모든 문제가 국가간 문제로 치환되어 문제 해결이 어렵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노 대통령이 이번 담화에서 영토 문제가 역사 문제와 맥을 같이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을 두고 일본 내 우군을 잃지 않겠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지만 그건 희망사항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그렇게 될 경우 과거사 문제에서조차 양심세력들의 목소리가 작아질 수밖에 없게 되어 지금껏 쌓아 왔던 연대의 틀이 위협받게 된다는 점이다.
 
  이같은 지적은 지난해 3월 우리 정부의 '신 대일 독트린' 발표 당시 일본의 한반도 전문가인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에게서도 나온 바 있다. 와다 교수는 3월 28일 <중앙일보> 특별대담에서 "교과서 문제는 일부 단체의 문제지만 '다케시마'는 국가의 방침과 관련된 문제"라며 "그런 점에서 한국이 교과서와 다케시마 문제를 하나로 묶어 거론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충고했다.
 
  영토-역사 통합 대응이 계속된다면
 
  국가간 문제인 영토 문제가 '정면대응' 기조로 나아가고, 그와 관련해 일본의 시민사회를 설득할 수 없다면 갈등은 결국 '힘 대 힘'의 대결 구도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로써 파생되는 문제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한국이 독도에 대해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른바 강경대응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매우 불투명하다.
 
  전문가들은 한국과 일본이 독도 문제를 두고 강경대응을 할수록 싸움의 승패와 상관없이 결과적으로 '독도의 분쟁지역화'라는 일본의 의도가 고스란히 관철되게 된다고 말한다. 또 그렇게 해서 문제가 국제 외교 무대로 옮겨가 다른 의미의 '힘 대결'이 벌어질 경우 국제사회의 영향력에 있어 우리가 일본을 누르기란 쉽지 않다고도 지적한다.
 
  다른 일본문제 전문가는 "일본은 2차대전 전범국이라는 외교적 취약성이 있었지만 지난해부터 힘의 외교를 추구했다"며 "대통령의 '모험'이 국내정치에서처럼 국제관계에서도 통용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그는 "단호한 대응과 전략적 사고는 구분해야 한다"며 "힘과 힘의 대결이란 궁극적으로 모든 관계의 단절까지도 감안하는 것인데 이미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는 독도 문제를 가지고 경제 협력 같이 모든 걸 포기하는 게 과연 전략적인 선택인지도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한국과 일본의 '힘 대 힘' 대결은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만 높여주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미국은 1965년 한일협정과 1983년 첫 한일정상회담 등을 배후에서 중재 혹은 강요하며 한미일 공조 체제를 유지해 왔다. 그같은 역사에 비춰 볼 때 독도를 두고 한일 양국의 갈등이 고조된다면, 한미일 공조를 정치ㆍ안보에서 경제 분야로까지 끌어올려 동북아에서의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미국이 또다시 '중재'를 명분으로 나설 게 뻔하다.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의 이번 담화가 한일간의 모순을 극대화 시켜 미국을 끌어들이려는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속은 시원하지만…
 
  많은 국민들로부터 '속 시원하다'는 평을 받았던 4.25 특별담화는 이처럼 적잖은 전략적 허점을 내포하고 있어 '역시 국내정치용'이라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게 한다.
 
  국가 안보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에 의해 발표되어 더더욱 돌이킬 수 없게 된 이번 담화가 별다른 구체적인 정책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이제는 기억조자 가물가물해진 지난해 3월의 대국민 서신과 같이 공허한 것이 될 공산이 크다.
 
  반대로 특별담화 액면 그대로 영토-역사 문제를 통합해 강력히 추진한다면 앞서 지적한 전략적 함정에 빠져 헤어나올 수 없는 갈등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감정적 대응을 자제하고 냉정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노 대통령의 담화는 과연 '냉정하게' 준비된 것인지 국민들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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