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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으로, 서쪽으로 날아가는 사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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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으로, 서쪽으로 날아가는 사슴들

서길수 교수의 '알타이 답사기'〈40〉산꼭대기의 제사터

낮밥을 먹고 나니 오후 3시가 다 되었다. 우리는 우 백호에 해당하는 산줄기를 따라 천천히 올라가면서 마치 소풍 가서 보물찾기 하는 것처럼 바위그림을 찾았다. 100점 정도의 그림이 있다는데 우리가 찾은 것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주로 사슴이나 산양 같은 그림이었다. 이곳의 바위그림은 대부분 청동기와 스키타이(빠지릭) 시대의 것이고 뚜르크의 그림은 거의 없다. 그 동안 바위그림을 많이 봐 왔기 때문에 이제는 이 정도의 그림을 보고는 감탄을 하지 않는다. 산위에 거의 다 올라가니 다시 산등성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평평하고 넓은 덕땅이 나타난다. 여기저기 꾸르간들이 널려 있다. 이곳 유적은 마치 계단식 밭처럼 층을 이루고 층마다 꾸르간들이 널려 있다.

맨 꼭대기에는 아주 웅장하게 우뚝 솟아 있는 바위가 버티고 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우리는 엄청난 크기와 수준 높은 대형 바위그림을 만나게 된다. 바로 이곳이 이 고대 종합 유적의 최고 정점인 하늘에 제사 지내는 곳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높이와 너비가 1.5~2m 정도 되는 바위 면에 온통 사슴들로 가득 찬 작품은 한마디로 '사슴들의 큰잔치' '사슴들의 전당'이다.

뭇 사슴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것은 1m가 넘는 큰 사슴 두 마리다. 위의 사슴은 수평으로 날아가는 자세인데 머리 부분에 뿔이 없고 마치 새처럼 유선형으로 그렸다. 몸을 길게 늘이고 특히 눈과 부리를 새처럼 강조하여 나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아래 사슴은 하늘로 힘차게 날아오르는 모습을 그렸는데 뿔을 크게 강조하고 물결 같은 꼴을 하게 만들어 마치 날개 같은 느낌에 들게 하였다. 아울러 성기를 그려 사슴이 수컷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큰 사슴 두 마리의 엉덩이 부분에는 사람이 한 명씩 그려져 있는데 그 크기가 아주 작아 이 그림에서는 사슴에 비해 인간의 존재를 지나칠 정도로 축소하였다. 아래 큰사슴의 주변에는 뿔이 큰 사슴들이 4~5마리 함께 날고 있는데 소위 '사슴돌'에 그린 사슴의 분위기를 그대로 내주고 있다.

하나 특이한 것은 큰 사슴을 비롯하여 아주 작은 사슴까지 서쪽을 향해 날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깔박-따쉬의 인간상은 모두 해가 뜨는 동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 사슴들은 어디로 날아가는 것일까? 새처럼 '날아가는 사슴'은 길게 나온 부리와 날개 같은 뿔을 그려 사슴이 하늘로 날아가는 것을 표현하는 것으로 죽은 영혼이 선조들이 사는 하늘나라로 날아가는 것을 표현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영혼들이 사는 하늘나라는 서쪽에 있는 것인가? 불교가 태어나기 전 이미 서방정토가 있었단 말인가? 현지 학자들은 이 그림을 초기 스키타이(빠지릭시대, BC 8~6세기) 것으로 본다. '사슴의 전당' 바닥은 슬레이트 같이 엷은 널돌로 덮여 있는데 아마 해마다 여기서 제사를 드렸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 대형 그림 서쪽 모서리에 아주 잘 그린 그림이 있다. 전면에는 사슴이 주제가 되어 있는 반면 이 그림에는 말을 타고 사슴을 쫓는 장면과 활로 사냥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 (좌)'나르는 사슴'이 그려진 제사터 (우)서쪽 측면의 사냥도 ⓒ 프레시안

▲ (좌)작품 '날아가는 사슴' (우)선으로 그린 그림 ⓒ 프레시안

산을 내려오면서 아무리 보아도 이곳은 정말 특별한 곳이다. 이곳에는 모든 시대의 독특한 유적들이 한군데 모여 있다. 구석기, 청동기, 초기 철기시대, 중세, 제사물건, 낙인, 룬문자 텍스트가 쓰인 기념비, 고대 유목민의 꾸르간, 다양한 시대의 바위그림, 라마교 신도의 그림, 돌 조각상, 이처럼 다양한 유적이 한꺼번에 몰려 있는 곳은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오늘도 역시 새로운 감동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다. 탐사를 시작하여 하루도 빼지 않고 이처럼 감동적인 유적과 자연을 보여주는 곳은 이 세계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특히 코쉬-아카치에 들어섰을 때는 황량한 사막 같았고, 한가한 몇몇 마을을 빼놓고는 나무 한 그루 없는 민둥산들이라 저으기 실망했었다.

오늘도 낮에는 31℃까지 올라가는 온도에 저녁에는 10℃ 이하로 내려가는 일교차, 인간들이 살기에는 그다지 적합한 곳이 아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민둥산 계곡마다 수 천 년이 흐른 찬란한 문화유산들이 남아 있어 우리를 계속 흥분시키고 있는 것이다. 자연히 "옛날에는 이곳에도 사람이 살기 좋은 기후와 환경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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